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76 중국 탈출, 그리고 다시 한 번 게으름의 축복

좀좀이 2016. 12. 2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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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어요.


잠이 오지 않는 밤.


신장-위구르 지역을 벗어나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어요. 한족 지역에 있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이제 대망의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왔어요. 편안한 침대에 누워서 마지막 밤을 푹 자고 눈을 뜨자마자 푸동 공항으로 가면 되는데, 그냥 잠이 오지 않았어요. 한족 지역이 싫은 것은 싫은 것이고, 여행을 끝내기 싫은 것 또한 싫은 것이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다시 기차를 타고 카슈가르로 가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래야할 이유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위구르어 교과서는 8월에 들어온다고 했거든요. 지금 위구르 지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교과서는 구할 수 없었어요. 비자는 한 달 짜리였구요.


조용히 밖으로 나가서 유스호스텔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어요. 냉장실을 보니 제가 마시던 밀크티가 보이지 않았어요. 매장을 한 바퀴 돌아보니 몇몇 음료수와 함께 따로 전시되어 있었어요.


"쩌거쩐머마야?"


친구가 말하는 것을 하도 들어서 외운 말. '얼마에요?'를 중국어로 말하자 뭐라고 대답했어요. 자기들은 모르겠으니 계산대로 가져오라는 것이었어요. 음료수를 들고 계산대로 갔어요. 포스기에 음료수를 찍자 5.5위안이 나왔어요. 다른 점원 아주머니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2개 사면 7.5위안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밀크티 두 병을 계산대로 가져갔어요. 이번에는 '삥?'이라고 했어요. 대충 氷이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부' 라고 대답하고 계산하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밀크티를 하나 마시고 자려는데 잠이 계속 오지 않았어요. 이대로 여행이 끝나버린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때마침 카슈가르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위구르 여자로부터 위챗 메시지가 날아왔어요. 대충 알아볼 수는 있었지만,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가뜩이나 위구르어는 대충 알아듣는 수준인데, 라틴 알파벳으로 전사하니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대충 때려맞추어 가며 몇 마디 이야기하다 대화가 끊겼어요.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은 오지 않고, 뒤척이기만 했어요. 그렇게 새벽 5시가 지나가버렸어요. 공기를 쐬러 밖으로 나가보았어요. 밖은 쓰레기 천지였어요. 담배 꽁초가 무수히 돌아다니고 있었고, 건물 맞은편 쓰레기통은 멀쩡한 쓰레기통을 뒤엎어 놓았는지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어요. 상쾌한 아침, 맑은 아침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풍경이었어요.


잠이 오지 않아서 노트북을 켜고 여행 기록을 정리했어요. 이제 한국 돌아가면 여행기 써야지. 그러고보니 밀린 여행기가 상당히 많네. 대체 언제 다 쓰지. 여행 기록을 정리하며 밀린 여행기도 많은데 이 여행까지 여행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까마득했어요. 2016년 5월 27일부터 동년 6월 16일까지의 여행이니 20박 21일의 여정. 둔황에서 란저우 넘어가는 일정이라든가 오늘처럼 귀국하는 일정 같은 경우는 하루 한 편 나오겠지만, 나머지 날들은 보통 하루에 몇 화 나올 건가? 사진 정리를 해야 대충 감을 잡을 수 있겠지만 얼추 50화 정도 나오지 않을까 싶었어요.


'여행기 제목은 뭘로 하지?'


여행기를 쓰려며 제목도 정해야 했어요. 아까 친구와 모스크를 가면서 '위대한 모스크 로드의 완주'라고 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이 중국 여행기 제목으로 쓰기는 정말 아니었어요. 여행기 본문은 본문이고, 여행기에 제목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뭔가 확 끌리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제목은 전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여행은 전혀 다른 성격의 여행 3개가 한 덩이로 묶여 있었어요. 일단 위구르인들의 땅인 신장 위구르 자치구, 회족과 한족의 땅으로 크게 둘로 나누어져 있었어요. 이 둘은 시공간적으로 연결되기만 할 뿐 아예 다른 여행이어서 여행기를 각각 따로 해도 되었어요. 회족과 한족의 땅 여행은 B가 합류한 시안 일정, 그리고 저와 친구 둘이서 다닌 일정으로 또 갈렸어요. 단순히 '다른 친구 하나가 합류해서 같이 놀았다'로 넘겨도 되는 차이가 아니었어요. B가 합류해 있는 동안은 여행 방식 자체를 다 바꾸었으니까요. 한 번에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여행한다 해도 여행에 임하는 기본적인 자세, 태도, 생각은 별로 변하지 않는데, 이 여행은 이런 것들의 변화가 정확히 선을 그은 것처럼 세 부분으로 딱 쪼개져 있었어요. 여행기를 쓸 때 마침표를 딱 찍고 끝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부분이 4곳 있었어요. 이것들을 한 번에 아우르는 큰 제목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어요.


복습의 시간?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익힌 것들을 이번 여행에서 거의 다 사용해보았어요. 여행을 하면서 여행 계획을 짜고 여행하는 요령이 늘어나 점점 편한 여행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전에 익힌 것들을 다 사용해볼 기회는 별로 없었어요. 일단 일정 자체를 험하게 짜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여행 난이도도 점점 더 쉬워졌어요. 여행을 갈 때마다 익힌 여행의 요령을 다 활용할 일이 점점 더 줄어들었어요. 그러다 이번에 여행하며 그 요령을 거의 모두 활용해 보았어요.


'이거 나름 괜찮은데?'


처음 상하이로 가기 위해 방에서 비빔 라면 4개 끓여먹고 인천공항을 향해 가던 순간부터 귀국의 순간을 기다리는 지금 이 순간까지 가만히 생각해보았어요. 저 제목은 세 개로 딱 갈라져버리는 이 여행의 세부 일정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제목이었어요. 이 여행의 쓰디 쓴 백미라 할 수 있는 란저우 라면조차 그렇게 분노한 이유가 한국에서 그것과 똑같은 맛이 나는 중국제 봉지 라면을 끓여먹어보았기 때문이었으니까요.


제목을 고민하며 여행 기록 정리를 마치고 여행기를 조금 쓰다 보니 아침이 되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이른 아침 상하이 걸어볼까?'


귀찮았어요. 그냥 노트북 컴퓨터를 끄고 다시 두 눈을 감았어요. 아마 아침 7시쯤 잠들었을 거에요. 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누워서 얼마 안 되어 바로 잠들었으니까요. 제 자취방으로 돌아갈 때가 되니 몸이 알아서 다시 저절로 주침야활 상태로 돌아가버렸어요.


"야, 일어나."

"어?"

"가야지."


친구가 깨워서 일어났어요. 아침 10시였어요. 체크아웃은 12시까지였어요.



"점심 먹고 공항 가야지."

"점심 안 먹어."

"진짜?"

"어. 별로."


점심으로 마지막으로 볶음밥이나 먹고 돌아갈까 잠깐 생각했지만 관두었어요. 볶음밥보다 밀크티를 원없이 마시고 싶은데 새벽에 많이 마셨어요. 잠을 별로 자지 못해서 조금 졸렸지만 괜찮았어요. 기차에서 자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편히 누워있었거든요. 그냥 나갈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이 조금 귀찮을 뿐이었어요. 이 숙소 와서 짐을 풀지도 않았기 때문에 짐을 다시 쌀 것이라고 해봐야 전선과 충전기, 노트북 컴퓨터와 디지털 카메라를 챙기는 것 뿐이었어요.


11시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샤워를 한 후 새 옷으로 갈아입었어요. 옷을 계속 빨아 입었기 때문에 짐에서 처음 꺼내는 옷이었어요. 지금까지 입었던 셔츠와 양말은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셔츠는 정말 많이 고생해서 색이 빠져 붉은 색이 되어버렸어요. 양말은 구멍이 났구요. 둘 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상태라 미련없이 깔끔하게 쓰레기통에 집어넣었어요.



"너 정말 아무 것도 안 먹고 가도 돼?"

"어. 안 먹어. 이제 중국에서 돈 쓰기 싫다. 공항이나 빨리 가자."


친구가 상하이 푸동 공항까지 가는 방법으로는 자기부상열차와 지하철이 있는데 무엇을 타고 싶냐고 물어보았어요.


"뭐가 더 싸?"

"지하철."

"지하철로 가게. 어차피 시간은 많고 상하이 와서 지하철 한 번도 못 타보았잖아. 굳이 비싼 것으로 갈 필요 없잖아."


일부러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어요.


상하이 길거리



좁은 골목길에서 빠져나오자 바로 번화가가 나왔어요.




지하철역에 도착하자 지하철 카드 판매기로 갔어요.


중국 지하철 카드 판매기


중국 상하이 지하철 카드는 이렇게 생겼어요.


중국 상하이 지하철 카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이런 카드를 기념으로 하나 갖고 싶었는데...'


지하철 카드를 들고 잠시 생각에 빠졌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이런 카드 하나를 구해서 갖고 싶었어요. 위구르어가 적힌 것을 하나라도 더 기념품으로 구해 갖고 싶었거든요. 거리에 위구르어는 많이 적혀 있었지만 정작 기념품으로 구입할만한 것 중 위구르어가 적힌 것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정작 제 기념품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구입한 책 외에는 거의 없었어요. 냉장고 자석에라도 위구르어가 적혀 있었다면 하나 구입했을텐데, 위구르어는 고사하고 '우즈베키스탄'이라고 적힌 것까지 가져다 팔고 있었어요. 그래서 더욱 이런 카드 한 장을 구해서 기념으로 소장하고 싶었지만 결국 못 구했어요.


지하철 승강장으로 갔어요.


상하이 지하철역



지하철을 탔어요. 다행히 중국의 기상과 패기는 없었어요. 그냥 평범했어요.




1시간 정도 전철을 타고 가자 푸동 공항에 도착했어요.



전철에서 나오자마자 중국에서 롯데리아 같은 존재인 디코스가 보였어요. DICOS 매장은 중국에 정말 많았어요.



무빙워크를 타지 않고 천천히 구경하며 앞으로 갔어요. 공항으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이런 저런 민족 흉상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이야, 중국이 일본 엄청 싫어하기는 싫어하나보다."



이것은 딱 봐도 일본. 다른 흉상은 이상하게 그려놓더라도 눈, 코, 입이 다 있었는데 일본은 눈이 없었어요. 게다가 포즈도 딱 무언가를 외면하는 포즈. 중국이 일본을 매우 싫어하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해놓을 줄은 몰랐어요. 자세가 아주 시치미를 딱 잡아떼는 자세였어요. 중국은 일본과 역사적인 갈등 뿐만 아니라 센카쿠 열도 문제로 인한 영토 갈등도 있어요.


상하이 푸동 공항


푸동 공항에 도착하니 바깥 바람을 조금 쐬고 싶어서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기로 했어요.


"왜 입구를 다 막고 하나만 열어놨지?"

"아, 여기 며칠 전에 테러 일어났대."

"테러?"


알고 보니 6월 12일에 푸동 공항에서 테러가 발생했대요. 다행히 위구르인과 관련된 테러는 아니었어요. 인터넷 도박빚 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남성이 사제 맥주병 폭탄을 터뜨린 것이었어요. 그 테러로 인해 공항에서 보안 검색은 매우 까다로워졌어요. 공항 출입구를 하나만 놔두고 전부 폐쇄한 것도 바로 그 테러로 인한 보안 검색 강화를 위해서였어요.


'진짜 중국스럽다. 관료제에 짝퉁 진짜 대박이네.'


폭탄 테러 뉴스를 보면 테러에 사용된 폭탄의 위력에 비해 사상자 수가 항상 매우 적어요. 그 이유는 사람들이 조밀하게 모여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한 폭탄 테러 뉴스를 보면 반드시 사람들이 밀집한 공간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나와요. 제대로 계획하고 테러를 일으킨다면 당연히 어느 정도의 위력은 갖춘 폭탄을 사용할 거에요. 사람들이 몰려 있을 수록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내기 좋아요. 그런데 출입구를 한 곳 제외하고 전부 폐쇄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당연히 폐쇄되지 않은 출입구 하나에 몰렸어요. 여기에서 사람들이 3열 횡대로 줄을 서서 간단한 보안 검색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어요. 이것은 테러가 일어난다면 안정적으로 사망자를 만들라는 것인가? 푸동 공항이 작은 공항도 아니고 출국하러 오는 사람들이 적은 것도 아닌데 출입구를 하나만 열어놓았으니 당연히 사람들이 몰렸어요. 어차피 중국이 현재 전시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중국 공항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난다면 공항 전체를 파괴해 항공 시스템 마비를 획책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 및 심리적 충격에 빠뜨리기 위해 일으키는 것일텐데, 이렇게 사람들을 알아서 잘 모아주니 오히려 테러하기 좋은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물론 공안과 공항 직원들은 모든 공항 이용객을 감시하기 편하겠지만요. 전형적인 관료제스러운 발상이었어요.


마지막 야간 이동에서 중국은 혼란스러우면 정리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를 오히려 조장한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어요.



오후 1시 반. 수속하러 수속창구로 갔어요.



직원에게 표와 여권을 건네주고 수하물로 부칠 제 백팩을 저울 위에 올려놓았어요.


11kg!


백팩 무게는 11kg이었어요. 이런 것을 계속 메고 돌아다녔단 말이야? 왠지 가방 두 개가 상당히 무겁더라. 여행하면서 체력이 군대 시절만큼 좋아졌나봐요. 여행 초기에는 백팩 무게가 11kg까지 나가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책을 구입하기 전이었으니까요. 여행 초기에는 백팩을 메고 다니지 않아도 여행하면서 힘들었어요. 그래도 나중에는 그래도 조금 적응되어서 가방 두 개 메고 얼마 못 걸어서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느끼지는 않았어요. 이 가방의 무게는 카슈가르에서 책을 구입한 후 거의 변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지금은 백팩에 1.5리터 생수 두 개 꽂지 않아서 어찌 보면 여행중보다 훨씬 가벼웠어요. 그런 가방을 메고 20km 넘게 걸은 날도 있었어요. 백팩 무게에 한 번 놀라고, 그 무게를 짊어지고 열심히 돌아다니게 된 제 체력에 다시 한 번 놀랐어요. 여행을 하러 중국을 돌아다닌 것인지 체력 훈련을 하러 중국을 돌아다닌 것인지 애매해졌어요.


직원은 수하물 표만 주고는 수하물 검사실로 가라고 했어요. 수하물 검사실에서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이 제 앞에 있던 한국인의 수하물 중 테이프로 꼼꼼하게 둘러싼 박스를 뜯으라고 명령했어요. 한국인은 적당히 테이프를 발라놓은 것이 아니라 아주 꼼꼼하게 미라 만들듯 테이프를 발라놓은 상자였기 때문에 가위로 입구만 긁어서 열고 벌렸어요. 직원은 박스 속 내용물이 다 보이도록 위를 활짝 열라고 명령했어요. 한국인이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다 뜯어내자 직원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포도주 세 병을 확인한 후 한국인에게 테이프를 던져주었어요. 테이프는 얼마 남아있지 않아서 다시 상자를 밀봉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했어요. 한국인이 테이프 더 없냐고 직원에게 물어보자 직원은 퉁명스럽게 기다려보라고 대답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왠지 알아서 테이프 구해와서 상자에 바르든가 말든가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제 차례가 돌아왔어요. 화면에 둥글고 검은 원통형 물체가 떴어요. 직원은 백팩을 열어보라고 했어요. 백팩을 열고 우루무치에서 구입한 캔맥주를 보여주자 검사가 끝났어요. 직원은 가방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으라고 명령했어요. 가방을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은 후 제 비행기표를 달라고 했어요. 직원은 수속창구로 가서 표를 받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다시 수속창구로 가서 표를 달라고 했어요. 그러자 직원이 제 표를 찾아서 주었어요.


가방을 부치자 몸이 홀가분해졌어요. 친구와 잡담을 나누다보니 슬슬 출국장으로 들어갈 시간이 되었어요.


"편의점 가자."


마지막으로 밀크티 하나 마시고 들어가기 위해 친구와 편의점으로 갔어요.


"과자 하나 골라. 내가 사줄께."


공항까지 배웅 나온 친구에게 매우 고마웠어요. 이 친구는 제가 아무 것도 안 먹는다고 해서 오늘 계속 같이 굶고 있었어요. 친구는 이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뭔가 먹을 것을 좀 더 사주고 싶었지만 위안화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았어요. 친구에게 과자를 사주고 남은 돈은 정확히 21위안이었어요. 이 돈은 출국심사와 보안검사를 통과한 후 공항 안에 편의점이 있다면 거기에서 밀크티를 구입할 때 사용할 계획이었어요.


친구에게 과자를 사주고 친구가 과자를 다 먹자 친구와 작별하고 출국심사를 받으러 갔어요. 이 순간, 군대에서 전역하는 날의 그 기분이었어요. 영문을 통과하기 바로 직전 그 기쁨과 허무함이 뒤엉킨 느낌. 친구는 앞으로 며칠 후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이었어요. 친구도 한시 빨리 한국으로 귀국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이제 드디어 중국을 탈출하는구나!


상하이 푸동 공항은 출국심사를 받고 보안검색을 받는 구조였어요. 출국심사대는 외국인용과 내국인 전용으로 분리되어 있었어요. 외국인 출국 심사대에 줄을 섰어요. 곧 제 차례가 돌아왔어요. 직원은 저를 보더니 아무 말 없이 팔을 쭉 뻗어 손가락으로 왼쪽을 가리켰어요. 왼쪽은 내국인 전용 출국 심사대였어요. 직원이 뭘 말하고 싶어하는지 대충 알 수 있었어요. 저를 중국인인 줄 알고 중국인 전용 출국 심사대로 가라는 것이었어요.


"뭐?"


영어로도 중국어로도 딱 봐도 저기는 중국인 전용 심사대인데 내가 거기로 왜 가야 하는데? 직원에게 '뭐?'라고 말하며 여권을 들이밀었어요. 저의 초록빛 대한민국 여권을 본 직원은 제 여권에 중국 출국 도장을 쾅 찍어서 돌려주었어요.


이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면 출국 절차는 끝이었어요. 출국 심사는 엄청나게 빨리 끝났는데 보안 검색은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사람들이 다 이 앞에 몰려 있었어요. 처음에는 출국 심사를 워낙 빨리 끝내주어서 그런가보다 했어요. 그런데 제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딱히 무질서하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앞쪽을 바라보았어요.


"안내문이라도 하나 좀 붙여!"


사람들이 보안 검색대를 쉽게 통과 못하는 이유는 너무나 세심하고 꼼꼼하게 기내 수하물을 검사해서가 아니었어요. 사람이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때 삑 소리가 울리면 이 소리가 안 날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통과를 시키고 있었는데, 이렇게 걸리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다 허리띠 때문이었어요. 허리띠 풀라는 안내문만 하나 있어도 고속도로 하이패스처럼 통과할 수 있었어요. 왜냐하면 공항에 들어올 때 이미 보안 검색을 마쳤으니까요. 그런데 그 안내문 하나가 없어서 사람들은 죄다 허리띠를 매고 있는 상태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고 있었고, 그때마다 삑 소리가 울려퍼졌고, 그러면 다시 통과시키는 것이었어요.


앞에서 계속 허리띠 때문에 걸리는 것을 보고 슬슬 제 차례가 다가오자 허리띠를 풀렀어요. 소매를 걷은 얇은 외투 주머니에 모든 자잘한 소지품 다 집어넣어서 벗고, 허리띠를 풀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자 소리가 안 났어요. 당연히 바로 통과였어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자 면세점이 나왔어요.


상하이 푸동 공항 면세점



면세점에서 마땅히 살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어요. 혹시 편의점이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편의점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냥 친구 과자나 하나 더 사줄걸.'


21위안 쓸 곳이 없어졌어요. 여기에서 밀크티를 구입해 한국으로 들고 가겠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어요.


딱히 할 것도 없고 비행기 탑승까지 시간은 여유롭게 남아서 공항을 처음부터 끝까지 쭉 걸어보았어요.


"커피 자판기다!"


중국 상하이 푸동 공항 커피 자판기


그러고보니 중국 여행 중 커피를 단 한 번도 못 마셨어요. 밀크티에 환장해 밀크티만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캔커피가 잘 보이지 않았거든요.


"이거나 한 잔 마시면서 시간 때워야지. 중국 자판기 커피 맛은 어떨건가?"


자판기에 어떤 커피가 있나 보는데 기겁했어요.



"무슨 커피 한 잔이 이렇게 비싸!"


제일 저렴한 커피 한 잔이 50ml 인스턴트 에스프레소로 10위안이었어요. 1위안을 170원으로 계산한다 해도 한 잔에 1700원. 나머지는 대부분 160ml 에 20위안.


"이거 가격표 잘못 붙어 있는 거 아니야?"


버튼을 한 번 눌러보았어요.



가격이 잘못 붙어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이 커피 자판기에서 뽑아마실 수 있는 커피 가격이 더욱 황당한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자판기 때문이었어요.


중국 자판기


이 자판기에서 판매하는 제품들 가격은 이랬어요.



하리보 젤리 6위안, 500ml 주스 한 통이 6위안.


설마 커피 자판기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건가? 돈 넣으면 그 사람이 직접 커피를 타서 내놓는 건가?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가격. 아무리 여기가 공항이라 물가가 비싸다 해도 그렇지, 자판기 커피 한 잔이 20위안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되었어요. 20위안이면 거의 4천원 돈이거든요. 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가격을 책정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정말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거 아니야? 인간을 저렴하게 보는 중국이라면 그럴 거 같기도 하기는 한데...


커피 자판기를 보며 중국의 놀라운 가격 정책에 감탄하며 공항을 계속 돌아다녔어요.





공항을 전부 둘러본 후, 제가 탈 비행기 탑승구인 D79 앞에 가서 탑승이 시작되기를 기다렸어요.


'왜 OZ가 안 뜨지? 그리고 우리나라로 왜 이렇게 백인들이 많이 가지?'


제가 타고 갈 비행기는 아시아나 항공이었기 때문에 OZ 가 떠야 하는데 탑승 시간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전광판에 OZ가 뜨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상하게 백인들만 바글거렸어요. 우리나라 사람이나 중국인은 보이지 않았어요. 중국이 미세먼지가 워낙 심해서 서양인들 중 일부는 중국으로 발령받으면 우리나라에서 거주하면 일이 있을 때만 중국으로 비행기 타고 간다던데 그래서 이렇게 백인이 바글거리나? 하지만 상하이에서 우리나라로 귀국하는 한국인들이 나 말고 분명 한 명은 있을텐데?


뭔가 이상해하며 탑승 게이트 앞에서 탑승이 언제 시작되나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 한 명이 왔어요. 그러더니 제게 아시아나 항공 비행기 타냐고 물어보았어요. 맞다고 말하자 아시아나 항공 탑승구는 D228로 바뀌었다고 알려주었어요. 직원은 제게 D228 게이트로 가라고 알려준 후, 다른 아시아나 항공 이용객을 찾으러 공항 안을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이런 건 그냥 팻말 세우라고!


아무리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이라지만 이런 건 그냥 팻말 세우라고! 한국어로 안 쓰고 그냥 영어로만 써놔도 되니까! 어려운 영어나 중국어 쓸 필요 없이 탑승시각 및 항공편명 쓰고 그 아래에 'D79->D228' 이라고만 쓰면 되잖아? 아무리 인건비가 저렴하다고 해도 그렇지, A4 용지 한 장이 그렇게 아깝냐? 이런 건 대충 손으로 종이에 찍찍 써서 탑승구 앞에 테이프로 붙여놔도 되잖아! 직원이 돌아다니며 일일이 승객 찾아서 알려줘봐야 하나도 안 친절해!


창조적으로 노동력을 낭비하고 효과적으로 자원을 절약하는 것을 경험하고서 D228 게이트로 갔어요.




푸동 공항은 연착에 연착을 거듭해 비행기가 엄청나게 밀렸고, 게이트도 막 바뀌었고, 연착도 마구 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D228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탑승이 시작되었어요. 짜이찌엔, 중국아! 나는 이제 돌아간다!


어서 빨리 이 나라를 떠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탑승구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제 제 차례였어요. 갑자기 직원들이 탑승을 중단시켰어요.


'또 뭐야?'


이번에는 직원들끼리 손으로 탑승한 사람 표 갯수를 마구 세기 시작했어요. 몇 번을 그렇게 세더니 한참 뒤에야 탑승이 재개되었어요.


이번에는 버스로 비행기까지 이동했어요. 버스를 타고 가는데 밖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어요.


버스가 계단 앞이 아니라 계단 반대쪽 기체 옆구리에 멈추어서더니 걸어서 계단으로 가라고 했어요. 살다살다 걸어서 비행기 기체 아래를 통과해 탑승하러 가는 것은 또 처음이었어요. 비행기를 타고 여러 나라를 가 보았지만 버스로 비행기로 이동할 때에는 항상 계단 앞에 버스가 멈추었어요. 항상 계단 코 앞에 버스가 멈추어섰던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계단쪽에는 버스가 멈추었어요. 이렇게 아예 반대쪽에 세워놓고 기체 아래로 걸어가서 계단으로 가라는 것은 수십 번 비행기를 타본 제게 처음 있는 일이었어요. 낮은 포복으로 기어서 가라고 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원래 이 비행기는 4시 20분 출발 비행기였는데 제가 탔을 때가 4시였어요. 의자 앞에 비치되어 있는 아시아나 항공 책자 3권을 다 읽으니 5시가 되었어요. 그래도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책자도 다 읽었겠다, 할 것이 없었어요. 전날 밤을 새고 오늘 아침에 잠을 조금만 잤기 때문에 의자에 기대어 잠을 청했어요. 중국 기차 좌석칸과 비교할 수 없는 포근함과 안락함이 느껴졌어요. 자다가 더워서 깨어났는데 역시나 비행기는 출발하지 않고 있었어요.


오후 6시. 드이어 이륙했어요. 기내방송으로 7시 10분 (한국 시각 8시 10분)에 도착예정이라 했어요. 원래 표에는 4시 20분 출발, 7시 20분 도착이었어요. 도착시각은 현지시각으로 나오니 2시간 걸린다는 건데, 이걸 1시간 10분에 끊겠다는 것이었어요. 처음에는 잘못 들은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짜 지금껏 타본 비행기보다 빠르게 날아갔어요. 구름이 쇅쇅 지나갔어요. 그리고 기내식. 비행시간 1시간 10분이면 김포-제주 비행시간과 거의 비슷해요. 그 짧은 시간에 제대로 기내식이 다 나가야하니 스튜어디스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빨리빨리 기내식 나오고 기내식 먹기 시작하자 홍차, 커피 주냐고 돌아다니고, 다 먹자마자 걷어가는 건 또 처음이었어요.


비행기는 진짜 한국시각 8시 10분에 인천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자리를 못 찾았는지 갑자기 빌빌빌 이동하더니 8시 30분쯤에야 비행기 게이트가 열렸어요.


입국심사 받고 짐 찾고 밖으로 나오니 밤 9시.



"드디어 자유대한의 품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도착하자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기분이 좋았어요. 진짜 선진사회로 돌아온 기분이었어요. 사람들이 줄을 서요. 초록불에 버스와 차량, 오토바이가 돌진해오지 않아요. 라인, 페이스북, 구글 모두 마음껏 이용할 수 있어요.


인천공항 cu 편의점에 가보니 천원짜리 캔커피가 있었어요. 얼마만에 먹는 커피인가. 중국 가서 단 한 번도 마시지 못한 커피였어요. 대신 밀크티를 이제 마시지 못하겠지. 아쉬움을 달래려고 오늘 하루만 밀크티를 세 통 마시고 왔지만 그래도 부족했어요. 500ml 밀크티 한 통을 사서 조금씩 마시며 의정부로 돌아가고 싶은데 이때는 500ml 밀크티를 편의점에서 팔지 않았어요. 계획대로 되었어요. 출국할 때 지갑에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남기며 귀국하면 편의점 가서 캔커피 하나 사마셔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것대로 되었어요.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중국 상하이 푸동 공항에서 밀크티 500ml 한 통 사서 들고와 의정부까지 전철 타고 갈 때 마시는 것이었어요.


지하철에서 의자에 앉아 목을 뒤로 젖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가? 길을 건널 때 초록불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지 아는가?


그 소소한 것으로 치부되던 모든 것이 너무나 귀중한 것이란 것을 깨달았어요.


인천공항에서 의정부까지 가는 공항 버스를 타고 가면 편하게 귀가할 수 있지만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하철을 탔어요.



10시 42분 서울역에서 소요산 가는 전철로 환승했어요.


11시 40분. 드디어 의정부역에 도착했어요. 운이 따라준다면 6월 16일이 넘어가기 전에 집에 돌아갈 수 있었어요. 의정부역에 가서 의정부역 사진 한 장 찍고 집으로 돌아가면 이 여행은 끝나는 것이었어요. 발걸음이 가벼웠어요.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이 약간 있기는 했지만, 집에 돌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어요. 이렇게 여행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는 순간이 즐거웠던 적은 없었어요.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었어요.


E-14


갑자기 'E-14' 가 뜨면서 에러가 발생했어요.


"이거 다른 카드 때문에 에러 생긴 건가?"


지갑에서 카드를 빼서 다시 찍어보았어요. 그러나 개찰구는 열리지 않고 E-14만 뜰 뿐이었어요. 개찰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옆 개찰구로 가서 카드를 찍어보았어요. 역시나 E-14만 뜰 뿐이었어요. 저와 같은 전철을 탄 사람은 모두 나갔어요. 저만 못 나가고 있었어요. 이것은 분명히 교통카드 문제였어요. 일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무원을 호출해야 하는데, 역무원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개찰구 구석에 있는 문으로 가서 호출 버튼을 눌렀어요.


"교통카드가 안 먹혀요."

"화면에 뭐라고 뜨나요?"

"E-14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무실에서 역무원이 나오더니 제게 다시 카드를 찍어보라고 했어요. 카드를 찍어보았더니 E-14 가 다시 떴어요.


"이거 잔액 부족해서 그런 거에요. 카드 충전하시고 다시 찍으시면 되요."

"저 지금 지폐 없는데요."


천원 짜리 지폐 한 장 있던 것은 공항에서 캔커피 사먹으면서 사용해 버렸어요. 갖고 있는 현금이라고는 고작 600원. 역무원에게 600원을 보여주었어요.


"지갑에 지폐 있는 거 아니에요?"

"이거 외국 돈이에요."

"이게 제가 얼마 받고 통과시켜드릴 수는 있는데, 그러면 다음에 찍을 때 수수료 물어요."

"수수료 얼마나 물어요?"

"1250원쯤 물 거에요."


개찰구를 통과하지 않는 한 일단 답이 없었어요. 개찰구를 빠져나와야 역사 안에 있는 ATM에서 현금이라도 인출해 다시 충전할 수 있었어요.


"지금 한국 돈 없는데...그러면 저기서 돈 뽑아서 충전해서 올께요."

"그러세요. 카드 충전한 후에 다시 불러주세요."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일단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ATM으로 갔어요. 제가 사용하는 체크카드로는 수수료 없이 아무 ATM에서 돈을 뽑을 수 있고, 체크카드 계좌에 돈이 약간 남아 있었어요. 씨티은행 ATM에 산업은행 체크카드를 집어넣었어요. 씨티은행 ATM에서 저의 체크카드로 인출한 일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안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때 생각하던 것은 만원을 인출해서 어떻게 깨야할지였어요. 체크카드 계좌에 있는 돈은 생활비. 정말 아껴써야하는 돈이었어요. 만원 전부를 교통카드 충전에 사용할 수는 없었어요. 딱 2천원 정도만 충전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머지 8천원은 생활비로 사용할 생각이었어요.


'건물 안 편의점 가서 바꾸어달라고 해야 하나? 안 바꾸어주면 뭐를 사지?'


만원을 깰 생각을 하며 카드를 집어넣었어요. 평소와 다르게 이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어요.


'이거 설마 말로만 듣던 그 카드 복사!'


다시 카드를 집어넣었어요. 역시나 사용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어요. 순간 머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가 떠올랐어요.


내 체크카드는 밤 11시 30분부터 먹통이 된다!


제가 사용하는 체크카드의 단점은 밤 11시 30분부터 1시까지, 토요일은 밤 11시 30분부터 일요일 새벽 4시까지 시스템 점검 때문에 먹통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에요. 카드가 먹통이 되어버리는 시간이 매우 빨라요. 시간이 애매할 때, 식당에서라면 일단 결제부터 하고 먹으면 되요. 문제는 오늘처럼 지하철 타고 의정부 돌아갈 때 11시 30분이 넘어버리는 경우. 이때는 정말로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이 상황이 바로 이 답 없는 상황에 빠져버린 것이었어요.


다른 은행 통장에서 만원을 뽑을까 고민했어요. 하지만 수수료 나갈 것을 생각하니 너무 아까웠어요. 이렇게 수수료로 돈을 날릴 거라면 출국할 때 인천공항에서 그렇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 거에요. 귀국해서 인천공항에서 캔커피를 사서 마시지도 않았을 거에요.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허망하게 끝나버릴 위기였어요. 그렇다고 현금을 인출하지 않고 해결할 뾰족한 방법도 없었어요.


결국 다른 체크카드로 돈을 뽑기 위해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려는 순간 그것이 눈에 들어왔어요.


1회용 지하철 카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할 때 1회용 지하철 카드를 종종 주웠어요. 이것을 환불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외국인이 많다보니, 외국인들이 이것을 잘 버리고 갔어요. 이것을 주워서 환불받는 것은 게스트하우스 일할 때 부수입 중 하나였어요. 나중에 글로 쓰고 환불받으려고 한 장을 남겨놓고 있었는데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어요. 당연히 이 카드도 중국 여행갈 때 카드 빼놓는 것을 까먹어서 들고갔고, 한국 귀국해서 지갑에 카드를 끼워넣을 때 이것도 다시 지갑에 끼워놓았어요.


지하철 카드 환불을 받기 위해 카드를 집어넣었어요. 처음에는 환불불가가 떴어요. 순간 이것마저 안 되면 안 되는데 하면서 당황했지만, 다시 카드를 기계에 집어넣자 500원이 나왔어요. 기계에서 나온 500원과 주머니에 있던 100원짜리 동전 5개를 합쳐 천원을 만든 후, 교통카드에 딱 천원을 충전했어요. 정확히 얼마가 부족한지 모르는 상황. 제발 이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라며 호출 버튼을 눌러 개찰구를 다시 통과했어요.


삑.


무사히 통과되었어요. 지하철 카드에 남은 잔액은 900원.


"백원 부족해서 이랬던 거야?"


꽤 많은 금액이 부족해서 잔액부족이 뜬 것이라 생각했는데 부족한 액수는 고작 백원이었어요. 천만다행으로 무사히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었어요. 다시 한 번 저의 게으름이 제게 축복을 내려주었어요. 출국할 때에는 귀찮아서 환전하지 않은 말레이시아 링깃 덕분에 음료수를 마실 수 있었어요. 귀국할 때에는 마찬가지로 귀찮아서 보증금을 환급받지 않은 1회용 지하철 카드 덕택에 지하철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었어요.



시계를 보니 밤 11시 45분이었어요.


"이 여행을 6월 16일에 마칠 수 있을까?"



역을 빠져나와 자취방을 향해 열심히 걸어갔어요. 가는 길에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어버렸어요.


"결국 6월 17일에야 이 여행이 끝났구나."


자정이 넘은 것을 보자 다리에 힘이 쭉 빠졌어요. 가방의 무게가 1.5배 더 무거워져 온몸을 꽉 짓눌렀어요. 땅으로 자유낙하하려는 가방 두 개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자취방으로 돌아왔어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너무 편안했어요. 한동안 멍하니 가만히 앉아 있다가 집에 전화를 드려야한다는 것이 떠올랐어요.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어요. 방금 자취방으로 돌아왔다고 말씀드렸어요.


"중국 어땠니?"


어머니의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중국은 문제가 없어요. 왜냐하면 '문제'라는 개념 자체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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