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갈래?"
"아니. 안 들어가."
친구가 다시 한 번 물어보았어요. 친구에게 딱 잘라서 대답했어요. 돈 내고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들어가서 보아야할 이유를 못 찾았거든요. 정말 들어가고 싶다면 다음날 아침에 와서 들어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냥 상하이 관광 그 자체에 아무 의욕이 없었어요. 여기는 말 그대로 귀국하기 위해 온 곳. 애초에 오고 싶어서 온 곳이 아니었어요. 단지 친구와 만나서 같이 위구르인들의 땅을 여행하기 위해 온 곳이고, 비행기표를 왕복으로 끊었기 때문에 여기로 돌아온 것이었어요. 게다가 예원은 친구가 몇 번 씩이나 가보았다고 했어요. 친구가 보고 싶다고 하면 그냥 친구 따라 구경하는 셈치고 들어갈텐데 친구는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을 들어가보았어요. 아는 사람이 상하이로 놀러올 때마다 예원 데려가서 몇 번을 들어갔대요. 저도 들어가볼 생각이 없고 친구도 제가 원하지나 않으면 들어갈 생각이 없으니 당연히 결정은 '안 들어간다'였어요.
상하이 라오제를 다시 되돌아나왔어요.
"너 정말 가고 싶은 곳 없어?"
"응? 모스크!"
그냥 장난으로 말했어요. 친구가 절대 모스크 갈 리가 없었거든요. 지금까지 친구의 반응을 보면 분명히 무슨 모스크냐고 짜증을 내야 정상이었어요.
"모스크? 그래, 모스크 어디야? 가자, 가!"
"어? 진짜?"
"까짓거 하나 가주지."
앗! 이런 횡재가!
당연히 친구가 절대 안 가겠다고 대답할 줄 알았어요. 친구에게 모스크를 가자고 말한 것은 진짜 모스크를 가자고 말한 것이 아니었어요. 친구에게 모스크 가자고 하면 짜증내니까 친구 약올리려고 장난으로 말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친구가 모스크를 가자고 했어요. 이런 횡재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되었어요. 친구가 모스크 가주겠다고 하니 얼씨구나 하면서 모스크를 향해 걸어갔어요.
거리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모스크는 상하이 라오제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도 않았어요. 왜 친구가 갑자기 모스크를 가겠다고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친구의 두뇌에 두드러기가 돋아나기 전에 빨리 가야 했어요. 지금 친구는 모스크에 간다는 것이 엄청나게 괴롭기는 하지만 저를 위해 꾹 참아주는 것이 분명했거든요. 친구가 정말 크게 마음먹고 저를 위해 결정한 것이었어요.
'이 여행을 뭐라고 할까?'
길을 걸으며 계속 생각했어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제 여정은 실크로드를 따라 왔어요. 원래 가고 싶은 나라는 아프리카 서쪽 끝에 위치한 나라인 세네갈이었는데 어떻게 된 것이 계속 동쪽으로 동쪽으로 왔어요. 그것도 희안하게 실크로드를 따라서요. 그러나 이 거진 10년에 걸쳐 조금씩 완성해나간 저의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실크로드 완주라고 하기는 정말 싫었어요.
원래부터 실크로드를 싫어한 것은 아니에요. 그냥 실크로드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에서 1년 체류한 후, 중앙아시아를 여행했다고 하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실크로드 여행해서 부럽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실크로드에 대한 이상한 환상을 계속 제게 이야기했어요. 한두 번은 듣고 그냥 웃어주었지만 계속 들으니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어요. 이들의 환상 속 실크로드는 사치와 향락, 퇴폐와 음탕함, 그리고 히피의 길. 서구의 오만과 편견이 가득 담긴 실크로드의 환상을 일본이 입맛에 맞게 가공한 것에 태국 카오산 로드의 히피적 분위기를 살살 뿌려놓은 것.
제 앞에서 그런 괴상한 실크로드의 환상을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서울 동대문 야시장이나 가보라고 했어요. 그게 실크로드에 가까운 모습이니까요. 동대문 야시장 어디에 그런 사치와 향락이 가득찬 우아한 문화와 학문 교류의 장이 열리는지 한 번 가서 찾아보라고 했어요. 어지간하면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겠는데, 이것은 정말로 맞장구를 쳐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어요. 미적 취향이야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것은 미적 취향 문제가 아니라 아예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을 신봉하는 것이니까요.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짜증이 났고, 일본과 우리나라의 국력 차이를 느꼈어요. 실크로드에 대한 환상을 만드는 데에 크게 일조한 다큐멘터리 상당수가 일본 다큐멘터리거든요.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에 오카리나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 중 하나인 '대황하'라는 곡이 일본 NHK 3부작 다큐멘터리 '대황하'에서 사용된 곡이에요.
모스크 로드?
2009년 7박 35일 유럽 여행에서 알바니아, 코소보, 마케도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불가리아에서 모스크를 보았고, 2010년 여행에서는 터키에서 모스크를 보았어요. 2011년 카프카스 여행에서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에서 모스크를 보았고, 2012년 중앙아시아에 있었을 때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에서 모스크를 보았어요. 그리고 2016년. 중국에 와서 우루무치, 카슈가르, 쿠차, 둔황, 란저우에서 모스크를 보았어요. 시안은 모스크 입구까지는 갔어요. 더 놀라운 사실은 여행간 국가 상당수에서 모스크는 가보았다는 점이에요.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요. 심지어는 불교 국가인 태국, 라오스, 베트남에서조차 모스크를 보았어요. 일부러 지도에서 모스크를 찾아서 간 것도 아닌데 가다보면 모스크가 나왔어요.
이쯤 되니 지금껏 일부러 모스크를 찾아다닌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어요.
'이왕 이름 붙이는 거 '위대한'도 붙여?'
위대한 모스크 로드!
"야, 나 이제 위대한 모스크 로드 완성한다! 영어로 하면 The Great Mosque Road 냐?"
"영어 하지 마! 더 끔찍해!"
친구가 바로 반응을 보였어요. 그러고보니 친구는 정말로 의도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저 때문에 중국 모스크 탐방기를 썼어요. 왜냐하면 둘이 같이 다녔으니까요. 저와 친구가 중국에서 본 모스크 갯수 차이는 제가 딱 1개 더 많았어요. 란저우에서 친구가 황하 강변에서 자는 동안 제가 모스크 한 곳을 다녀왔거든요.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모스크 하나를 다녀온 상태였기 때문에 친구 또한 란저우에서 모스크를 가기는 했어요. 게다가 시안에서 제가 청진대사 입구가 있다고 친구에게 보여주었구요. 친구도 중국 여행하며 모스크를 꽤 가보았어요. 본인은 거부하고 싶었지만 모스크 경험치가 상당히 많이 올라갔어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어요. 친구의 기분은 더욱 우울해졌어요.
"이쪽 어디란다."
"여기 우리 첫날 밤에 왔던 데잖아!"
첫날밤 어둠 속에서 돔지붕을 본 기억이 났어요. 그때는 그것이 무슨 결혼식장 같은 것인 줄 알았어요. 깜깜하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이라 잘 보이지 않았고, 중국 상하이에 모스크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던 때였어요. 그렇게 스쳐지나갔던 곳이 바로 모스크였어요. 너무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어요. 이 여행은 애초에 시작부터 모스크였단 말인가! 친구가 한숨을 푹 내쉬었어요.
이 모스크는 샤오타오위안 모스크 上海 小桃园清真寺 였어요. 이 모스크는 1917년 이슬람의 번영을 위해 상하이 이슬람 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진 즈윤의 제안으로 건설되었고, 1925년부터 다시 세우기 시작해 2년후 완공되었어요. 이 당시 이슬람 건축 양식과 중국 전통 건축을 혼합해 만들었대요. 하지만 문화대혁명 시기 많이 파괴되었고, 이후 개혁개방 정책 시기에 정부의 지원하에 다시 복구한 모스크라고 해요.
모스크에 들어오자마자 비가 폭우로 바뀌었어요.
안에서는 회족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어요.
친구는 아주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어요. 친구 표정을 보니 빨리 사진을 찍고 둘러보고 나가야겠는데, 비가 와서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어요. 공간은 협소했고, 빗방울이 거칠게 쏟아지고 있었거든요. 어두침침한데다 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비가 퍼붓는 공간으로 나가야 했어요. 우산은 하나였고, 비가 퍼붓는 공간으로 나가면 카메라 렌즈에 빗방울이 튈 것이 분명했어요.
친구는 자신이 상하이에서까지 모스크를 가버렸다는 사실에 거대한 충격에 빠져 있었어요. 그 모습은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튀르크 제국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서양 기독교인들의 표정이었어요. 입구 사진도 제대로 한 장 찍고 싶은데 이 빗속에서 둘이 같이 나가서 사진을 찍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우산은 작고 하나 밖에 없었거든요. 한 명이 비를 쫄딱 맞는 동안 한 명이 우산 쓰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친구가 과연 그렇게 할 지 의문이었어요. 분명히 장담컨데 무조건 비 오니까 사진 찍지 말고 빨리 가자고 할 것이었어요.
"나 잠깐 입구 좀 사진으로 찍고 올께."
"응."
"너는 사진 안 찍어?"
"안 찍어."
"그럼 여기에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우산을 들고 입구로 갔어요.
입구 사진을 찍은 후, 아까 여기로 올 때 보았던 작은 모스크를 향해 달려갔어요.
"여기는 여성용 모스크를 따로 세워놓았네?"
모스크 안에 여성 예배실은 따로 있어요. 여성 모스크는 여기가 처음이었어요. 혹시 안쪽을 볼 수 있나 가까이 다가갔어요. 안쪽에서는 회족 여성들이 방 안에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어요. 허락맡고 안을 한 번 볼까 했지만 뭔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말이라도 통한다면 안에 들어가서 예배실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겠는데, 중국어를 몰라서 대화 불가였어요. 조용히 밖에서 건물 외관 사진만 한 장 더 찍었어요.
건물 사진을 찍고 친구에게 돌아왔어요. 친구는 바로 돌아가자고 했어요. 저는 '위대한 모스크 로드'를 완주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좋다고 했어요.
"야! 너 때문에 모스크 갔다가 폭우 제대로 만났잖아!"
"이게 모스크의 저주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둘이서 연인처럼 꼭 붙어서 우산 하나에 의지하고 걸어가는 중이었어요. 이제 비가 너무 강하게 퍼부어서 둘이서 작은 우산 하나 쓰고 가는 것은 무리였어요. 저도 친구도 2/3은 쫄딱 젖었어요. 둘 다 머리만 우산으로 가리고 있었어요. 친구는 이것이 모스크의 저주라고 툴툴대었어요. 그냥 얌전히 친구의 구박을 받아주었어요. 저는 '위대한 모스크 로드'를 완주했으니까요. 친구도 '위대한 중국 모스크 로드'를 완주당해버렸구요.
"저 육교 아래에서 좀 있다가 가자."
비가 너무 거칠고 강하게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질 때까지 육교 아래에서 비를 피하다 다시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이제 '위대한 모스크 로드'를 완주했으니까 이름 앞에 무슨 칭호 붙여야하는 거 아냐?"
"아우...이 모스크만 보면 흥분하는 놈."
"이거 영어로 하면 The Great Mosque Road 맞지?"
"영어 하지 마! 더 끔찍해!"
"너도 중국의 모스크 로드 완주했잖아."
"이제 모스크 듣기만 해도 치가 떨린다."
친구와 잡담을 하며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만을 기다렸어요. 빗줄기가 조금 약해졌어요. 대각선 맞은편에는 테스코가 있었어요.
"우리 테스코 갔다 가자. 저 안에서 구경 좀 하고 놀다 나오면 비 그치겠지."
친구와 테스코로 갔어요.
테스코 안으로 들어왔는데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어요.
"나 화장실 다녀올께."
"어. 다녀와."
화장실로 갔어요.
"오! 역시 중국! 비싼 데라고 여기는 화장실 좀 신경썼구나!"
윤이 나는 변기와 깔끔한 바닥. 담배꽁초는 커녕 담뱃재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역시 중국. 여기는 그래도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관리 엄청 하는구만. 칸막이도 없고 너무 더러워서 쭈그려 앉아 볼일을 보는 것을 감사히 여기던 그 화장실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갑자기 시간을 100년 껑충 뛰어넘어왔어요. 상하이 같은 대도시만 보고 떠난 사람들은 중국의 낙후된 모습을 상상도 못 하겠지. 이 엄청난 화장실 차이에 화장실 변기를 사진으로 찍었어요.
아랫배에서 신호가 왔기 때문에 바지를 벗고 변기에 앉았어요.
촤아아아아 콰르르륵 슈우우우
"어? 뭐야!"
변기에 앉아서 자세를 잡으려는데 변기 물이 제멋대로 내려갔어요. 순간 당황해서 벌떡 일어났어요. 나는 아직 볼 일 보지도 않았는데!
그래, 이것은 손님 맞이 청소라고 생각하자.
다시 변기에 앉고 자세를 잡으려는 순간.
촤아아아아 콰르르륵 슈우우우
"아, 뭐야! 이거 고장 아냐?"
어쨌든 다시 앉았어요. 역시나 자세를 잡으려는 순간 물이 또 내려갔어요. 이미 두 번 겪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변기에서 물이 내려가는 동안 자세를 잡았어요. 변기에 물이 다시 차오르자 볼 일을 보았어요.
촤아아아아 콰르르륵 슈우우우
"볼 일 좀 보자!"
배설물이 변기에 떨어지자마자 또 변기 물이 내려갔어요. 집중할래야 집중을 할 수 없는 상황. 그래도 배설을 시작했으니 도중에 끊고 일어날 수도 없어서 물이 내려가든 말든 볼 일을 보았어요. 이제 볼 일을 다 보고 휴지로 닦아낼 차례. 엉덩이 한 쪽을 들어서 휴지로 닦으려는 순간.
촤아아아아 콰르르륵 슈우우우
"아, 진짜! 이거 완전 중국제네!"
엉거주춤 일어나서 뒷처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물이 내려가는 것을 참아내며 휴지로 뒷처리를 했어요. 변기에서 일어나자 또 물이 내려갔어요. 볼 일 한 번 보는데 변기 물이 여섯 번 내려갔어요.
"이거 사람들 빨리 꺼지라고 이렇게 일부러 만든 거 아냐?"
진짜로 집중을 하나도 할 수 없었어요. 변기 위에서 조금만 꿈틀대면 바로 물이 내려갔거든요. 변기 청결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었어요. 사람이 앉았다 하면 물이 계속 내려가서 더러운 것이 변기에 남아 있을 수 없었어요. 변기가 결벽증에 걸린 건 여기 와서 처음 보았어요. 이것은 그렇게 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어요. 더러운 인간을 변기가 거부하고 있었어요. 역시 중국제라고 감탄했어요.
친구와 테스코 매장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피아노 매장이 보였어요. 친구는 피아노 매장을 구경하겠다고 들어가더니 피아노를 쳐보기 시작했어요.
"어? 너 피아노 칠 줄 알아?"
"응. 피아노 배웠어. 체르니 40번까지 쳤어."
"40번? 그 연두색 책?"
"어."
친구가 적당히 도레미파솔라시도 쳐보는 것이 아니라 곡 하나를 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친구가 예술을 좋아하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피아노를 쳤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거든요. 게다가 체르니 40번까지 쳤다고 했어요. 체르니 40번이라면 100번, 30번 다음에 치는 책이잖아! 친구가 기타를 조금 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피아노를 그렇게 깊이 배웠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놀랐어요.
대충 뚱띵거리는 것이면 빨리 가자고 할텐데 곡 하나를 정말 잘 쳐서 친구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어요. 직원들도 비에 옷이 젖고 까맣게 탄 꾀죄죄한 꼴로 와서 갑자기 곡 하나를 치자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어요. 친구는 피아노로 곡 하나를 친 후 매장 점원들과 피아노 가격 얼마냐고 물어보고 잡담을 좀 하다가 피아노 매장에서 나왔어요. 친구가 피아노 연습했다는 말은 대학교 이후 한 번도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피아노 앞에 앉아서 그렇게 바로 연주를 하나 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했어요.
테스코 매장을 구경하다 밀크티 하나를 구입해서 밖으로 나왔어요.
이제 비가 거의 그쳤어요. 굳이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어요.
갑자기 뭔가 떠올라서 밀크티를 들고 사진을 찍었어요.
이 장면이 이 여행의 하나의 상징 같은 것이었어요. 사진 속 저 밀크티는 제가 거의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한 밀크티에요. 그리고 팔을 보면 시계 자국이 있어요. 쿠차에서 나올 때는 저것보다 더 많이 검었어요. 저것은 그나마 하얘진 것이에요. 쿠차에서 절정을 찍은 후 피부가 조금씩 원래 색깔이 돌아와서 상하이 도착했을 때에는 저 정도까지 하얘졌어요. 모자를 안 쓰고 다녔기 때문에 얼굴도 저 정도로 탔어요.
교통질서는 잘 지켜지고 있는 상하이였지만 거리 여기저기가 이랬어요.
10위안에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어서 들어가 보았어요.
딱히 살 것은 없었어요.
저녁 8시. 숙소로 돌아왔어요.
밖은 다시 비가 내리는 것 같았어요. 친구와 둘이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우리 뭐 안 먹어?"
"먹긴 먹어야지."
"뭐 먹을래?"
"볶음밥."
"대단하다."
다시 나가기 귀찮았어요.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했어요. 이 저녁이 중국에서 친구와의 마지막 저녁 식사였어요. 오늘밤은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 그렇게 중국의 마지막 밤은 흘러가고 있었어요.
밤 10시가 되어서야 숙소에서 나왔어요.
얼마 전까지 비가 퍼부어서 거리는 매우 한적했어요. 노점상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식당 어디 문 열은 곳 없나?"
맛집을 찾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저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았어요. 웬만한 가게는 다 문을 닫았거든요. 왜냐하면 이때 밤 11시가 되어 가고 있었어요.
"저기 문 열었다."
아직 장사를 하고 있는 식당이 보여서 들어갔어요. 선택이고 뭐고 없었어요. 거의 다 문을 닫았거든요. 게다가 다시 비가 내리게 생긴 하늘이라 빨리 숙소로 돌아가야 했어요.
볶음밥 2개와 맥주 한 병을 시켰어요. 사람들이 이 가게에 와서 계속 음식을 포장해갔어요.
식당 바닥에서는 담배 꽁초가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여기는 중국이니까요. 이 정도면 그냥 괜찮은 정도의 청결도였어요.
조금 기다리자 음식이 나왔어요.
맥주는 부드러웠어요. 그냥 음료수로 마시기에 좋았어요.
"이거 진짜 최고다!"
"여기 왜 이렇게 맛있지?"
중국 여행 중 먹어본 차오판 중 가장 맛있는 차오판이었어요. 절대 비공을 가진 무림 은자를 발견해낸 기분이었어요. 중국에서 차오판을 질리게 먹었다는 친구도 여기는 정말 끝내주게 맛있다고 감탄했어요. 둘이 열심히 볶음밥을 퍼먹었어요. 비록 화려한 만찬은 아니었지만, 맛 만큼은 화려한 만찬이었어요. 이 여행의 마지막으로 정말 잘 어울리는 볶음밥이었어요. 비싸지는 않으나 맛도 저렴하지는 않았거든요. 1위안 짜리는 1위안의 값어치를 한다는 중국에서 이런 것을 발견해내다니 너무 기뻤어요.
볶음밥을 먹고 조금 더 돌아다녀볼까 했지만 다시 비가 내리려 하고 있었어요.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밀크티를 사서 숙소 앞 테이블에 앉았어요. 친구와 앞으로 나중에 무엇을 같이 할 것인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같이 여행 관련된 일을 한다면 참 좋겠는데 무엇을 해야할지 딱 떠오르는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와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었어요. 저녁을 먹고 숙소 돌아왔을 때 자정이 거의 다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매우 늦어졌어요. 다음날을 생각해 자러 방으로 들어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