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는 제가 사실상 가장 처음 외국 여행으로 갔던 나라에요. 튀니지 가기 전에 독일, 스페인에서 경유로 공항에서 잠시 머무르고,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또 경유하며 잠시 밀라노를 보기는 했지만, 이때 제대로 여행이 시작된 곳은 튀니지였어요.
그 당시 여행기가 제 블로그에 있는 '첫 걸음 (2007)'이에요. 그때 튀니지, 모로코, 세우타, 지브롤터, 스페인 남부와 밀라노를 다녀왔었어요.
링크 : 튀니지, 모로코, 스페인 남부 여행기
이때 튀니지를 여행하면서 튀니지가 너무 좋았어요. 국가는 크지 않지만 그 국가 안에 모든 아름다움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포카리 스웨트 광고에 나왔던 그 하얀 벽에 파란 문이 빛나는 마을, 지중해 해변, 사막, 유적, 산 등등 '아랍', '지중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그 아름다운 풍광들 모두 있는 나라가 튀니지였는데, 국토가 그렇게 큰 편이 아니라 더욱 매력적이었어요. 동화책 삽화로 나오는 작고 아름답고 귀여운 요정 같은 나라였어요. 튀니지가 아쉬웠던 점은 하필 북쪽은 지중해, 그리고 양 옆이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이 여행가기 상당히 어려운 알제리, 리비아라는 점이었어요. 유럽 국가들에서는 튀니지가 관광 국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사는 사람 입장에서 튀니지는 무비자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참 가기 애매한 나라에요. 그래서 모로코는 스페인 여행과 묶여서 같이 뜬 반면, 튀니지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여행지로 그렇게 뜨지 않은 나라이기도 해요.
튀니지 여행 중 이것저것 먹기는 많이 먹었는데, 그 중에서 기억나는 요리는 쿠스쿠스와 따진이었어요.
쿠스쿠스와 타진은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많이 먹는 음식으로, 대표 국가로는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가 있어요. 이 세나라 국민들은 서로 자기들이 이 셋 중 가장 잘 났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어요. 언제부터 이런 라이벌 의식을 갖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 가지 원인으로 이들 세 국가는 모두 한때 프랑스의 식민 통치를 받았던 나라들로, 오늘날까지도 프랑스로 일하러 많이 가요. 즉, 프랑스에서 같은 일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처지다 보니 라이벌 의식이 더 생겨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게다가 문화도 서로 비슷하구요.
이는 음식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이 북아프리카 지역을 대표하는 쿠스쿠스와 타진에 대해 튀니지, 모로코, 알제리 사람들은 서로 자기들 것이 최고라고 주장해요. 단, 따진의 경우, 튀니지 따진은 모로코와 알제리 따진과 정말 크게 달라요.
자료들을 보면 튀니지식 타진과 쿠스쿠스는 모로코와 알제리식과 조금 차이가 있고, 모로코와 알제리의 것들은 서로 비슷하다고 해요.
저는 예전에 튀니지식 따진과 쿠스쿠스, 모로코의 따진과 쿠스쿠스를 여행 중 여러 번 먹어보았어요. 하지만 알제리는 가본 적도, 갈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저도 잘 몰라요.
예전 기억에 의하면 튀니지 것과 모로코 것의 차이는 다음과 같아요.
먼저 따진. 따진은 진짜로 차이 많이 나요. 튀니지 따진은 구운 요리에요. 그래서 국물이 없어요. 반면 모로코 따진은 찜요리로, 국물이 있어요. 이건 이름만 같지 실제로는 그냥 다른 요리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차이가 커요.
쿠스쿠스의 경우, 튀니지 따진은 향신료 향이 강한 편이에요. 모로코 따진은 수수하구요. 또한 튀니지 쿠스쿠스의 좁쌀 같은 밀가루 쪄낸 것은 고추 소스인 하리사 소스가 들어가기 때문에 붉으스름한 갈색빛이 나요. 그러나 모로코 것은 하리사 소스가 안 들어가기 때문에 노란빛이 나요.
이라크 음식은 먹어보았기 때문에 또 다른 추억이 담긴 음식인 튀니지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서 어디 있나 찾아보았더니 수원 성균관대역 2번 출구에 튀니지 식당이 하나 있었어요.
수원? 까짓거 가지, 뭐.
의정부에서 수원은 솔직히 엄청 멀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먼 송탄에 몇 번 가보았기 때문에 송탄보다 가까우니 그렇게 멀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의정부에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쭉 가다가 청량리역에서 구로역 사이에서 수원, 병점, 천안 방면으로 가는 전철로 갈아타야 해요. 구로에서 갈아타면 플랫폼을 바꾸어서 환승해야 하기 때문에 구로역 가기 전에 인천행 지하철에서 내려서 잠깐 기다렸다가 천안 쪽으로 가는 전철로 갈아타는 것을 추천해요. 만약 의정부에서 서서 가는 중이었다면 청량리에서 갈아타는 것을 추천하고, 앉아서 가는 중이었다면 신도림에서 갈아타는 것을 추천해요.
지하철 1호선 성균관대역에 도착하면 2번 출구로 나가서 조금 앞으로 나가면 큰 길이 나와요. 여기에서 일단 맥도날드가 보일 때까지 쭉 걸어가요. 걸어가다보면 횡단보도가 나오고, 길 건너편에 작은 파출소가 보여요. 여기에서 길을 건너서 횡단 보도 건넌 방향으로 계속 앞으로 가서 한 블록 들어간 후, 첫 번째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되요.
여기는 이라크 식당과 달리 네이버 지도 및 다음 지도에서 검색하면 나오기 때문에 '벨라튀니지'라고 검색해서 찾아가시면 되요. 전화번호는 031-296-8327 이니 먼 곳에서 가시는 분이라면 영업 하는지 확인하고 가시면 되구요.
이 튀니지 식당은 지하에 있었어요.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데 그 북아프리카 여행 중 엄청나게 맡았던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났어요.
식당에 들어갔을 때 한산했어요.
자리에 앉자 메뉴판을 2개 갖다 주셨어요.
메뉴판은 한국어 메뉴판과 영어 메뉴판 - 이렇게 두 종류였어요. 그런데 한국어 메뉴판에는 쿠스쿠스가 없고, 영어 메뉴판에만 쿠스쿠스가 있었어요.
혼자 왔기 때문에 이것저것 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게다가 제가 먹을 메뉴는 이미 딱 정해져 있었어요. 쿠스쿠스와 따진이었어요. 이것 둘 다 하나가 한 끼 식사이기 때문에 이 두 개를 시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무리이기는 했어요. 그래도 의정부에서 수원까지 온 것이 아까워서 과감히 쿠스쿠스와 따진을 시켰어요.
오자 Ojja 는 6천원, 로즈 파스타는 6500원이고, 훔무스는 종류에 따라 5500원부터 6500원이었어요. 이것들은 먹어보고 싶었지만 혼자 간 것이라 시킬 수가 없었어요. 참고로 여기 메뉴판에는 훔무스가 함마스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러고보면 훔무스처럼 참 다양하게 불리는 음식도 적은 편이에요. 훔무스, 함마스에 홈무스라고 하는 곳도 있고, 잘 모르는 사람은 영어식으로 엉터리로 읽어서 허머스라고 하기도 해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단체 하마스 안 나온 게 다행이에요.
여기에서 파는 타진은 치킨 타진과 양고기 타진 - 이렇게 두 종류인데 저는 치킨 타진을 시켰어요. 치킨 타진은 7500원, 양고기 타진은 8000원이에요. 타진 또한 '따진' 이라고 쓰는 사람이 있고 '타진' 이라고 쓰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영어 메뉴판에만 있는 쿠스쿠스. 치킨 쿠스쿠스는 10000원, 양고기 쿠스쿠스는 13000원이에요. 저는 여기에서 양고기 쿠스쿠스를 시켰어요.
식당 주인 겸 주방장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문을 받아갔어요. 왜냐하면 저 혼자서 2종류 시켰으니까요.
주방으로 들어간 식당 주인 아저씨는 요리 준비를 하더니 다시 나와서 제게 왔어요.
"치킨 타진이랑 쿠스쿠스 양고기 시킨 거 맞죠?"
"예. 치킨 타진이랑 쿠스쿠스 양고기요."
"타진은 밥이 같이 나오고, 쿠스쿠스도 밥 같은 거라 양 많아요. 타진 밥을 또띠야로 바꾸어줄까요?"
"예."
솔직히 두 개 시킨 것이 양으로 상당한 무리라는 점을 저도 잘 알고 있었어요. 튀니지 음식을 처음 경험해보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라 예전 튀니지에서 먹었던 음식을 다시 먹어보고 싶어서 온 것이었거든요. 그리고 굳이 이러지 않아도 하나가 한 사람분인데 혼자 2인분을 시켰으니 누가 봐도 무리해서 주문한 것이었어요. 주인 아저씨가 먼저 밥을 빵으로 바꾸어주어도 되나고 물어보자 얼씨구나 좋다 하면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어요.
주방을 보니 주인 아저씨가 주방장이고, 요리사 한 명이 더 있었는데 외국인이었어요. 둘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둘 다 그쪽 사람 맞았어요. 북서아프리카에서 사용하는 아랍어 방언으로 이야기하고 있었거든요. 이 방언은 정말로 알아듣기 힘들어요. 모음이 많이 생략된 형태라 자음군이 마구 튀어나와서 얼핏 들으면 상당히 빨라요. 그래서 아랍어 방언 중에서도 이쪽 -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방언은 가장 어려운 방언으로 손꼽혀요. 튀니지 아랍어 방언은 아주 예전에 잠깐 공부하고 튀니지 영화를 몇 편 구해서 열심히 보았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그래도 몇 마디 알아들었는데 지금은 전혀 못 알아들어요. 가끔 파키스탄인이 터키 케밥을 팔고 있다든지 하는 엉뚱한 나라 사람이 전혀 다른 외국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경우가 있는데, 여기는 일단 그것은 아니었어요.
밥 대신 바꾼 빵이 나왔어요.
이것은 속이 텅 비어 있었어요. 그냥 가볍게 구수한 맛이었어요. 원래 타진과 같이 나오는 밥 대신 나온 빵이었지만 이 빵은 나중에 쿠스쿠스 먹을 때 같이 먹었어요.
먼저 치킨 타진. 사진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왼쪽에는 하얀 소스가 있었어요.
"이거 정말 최고다!"
이건 제가 먹어본 닭고기 요리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맛이었어요. 카레 비슷한 냄새가 나는 향신료가 은은하게 자리잡고 있었어요. 구운 닭이 카레향으로 예쁘게 화장하고, 마지막으로 오른쪽 매운 빨간 소스, 왼쪽 새콤 고소한 하얀 소스로 옷을 입었어요. 맛이 자극적이지 않고 강하지도 않았어요. 그렇지만 맛있었어요.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있게 '맛있다'고 소개할만한 음식이었어요. 은은한 맛이 매력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맛이 약하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에요.
은은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튀니지 사람들이 떠오르는...응???
그런데 튀니지 사람들은 상당히 붙임성 좋고 쾌활한 사람들. 단지 여행 가서 본 소감이 아니라, 아랍인들을 많이 겪어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에요. 보통은 외국인이라 하면 처음에 조금 거리를 두거나 살짝 수줍어하거나 하는 게 있기 마련인데, 튀니지 사람들은 그런 게 참 없는 편. 은은하다는 표현은 의외로 튀니지와 참 안 어울려요.
어쨌든 예전 튀니지 여행 중 먹었던 것의 맛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해주었고, 그런 잡다한 생각을 다 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먹었을 때도 분명히 이건 매우 뛰어나게 맛있었어요.
치킨 타진을 싹 다 비운 후, 이제 양고기 쿠스쿠스를 먹을 차례가 되었어요.
일단 모양은 합격점.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 쿠스쿠스는 튀니지식이기 때문에 붉어요. 그리고 건포도, 호두도 올라가 있었어요.
사진이 흔들리고 참 이상하게 나왔어요. 일단 이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튀니지 쿠스쿠스는 붉그스름한 갈색빛이 나요. 그리고 저 좁쌀같은 것이 좁쌀이 아니라 밀가루로 만든 것이에요. 만드는 방법을 보면 밀가루를 계속 손으로 비벼대더라구요.
양이 적어보이는데, 양이 절대 적지 않았어요. 접시가 푹 파여 있고, 거기에 저 밀가루로 만든 것이 수북히 쌓여 있고 그 위에 양고기와 감자 등이 올라가 있는 것이거든요. 푹 파인 접시에 음식이 담겨 있어서 양이 얼마나 많은지 입체적으로 보이게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이것 또한 맛이 괜찮았어요. 양고기에서는 역시나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요.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싫어하시는 분은 치킨 쿠스쿠스를 시키시면 될 거에요. 이것은 튀니지에서 먹었던 것과 향에서 약간 차이가 있었어요. 튀니지 여행 중 먹었던 것은 위에서 타진 설명할 때 말했던 그 카레 비슷한 향신료 냄새가 강했어요. 튀니지에서 처음 튀니지 쿠스쿠스 먹을 때 얘들이 오뚜기 카레 가루 섞었나 싶을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이것은 그렇게 향신료 향이 강하지 않았어요. 그냥 한국인들이 무난히 먹을 수 있는 맛이었어요.
그리고 생긴 것과 달리 맛이 자극적이지도, 세지도 않았어요. 만약 이것이 맛이 상당히 강했다면 배가 이미 어느 정도 차버린 상태에서 먹다가 남겼을 거에요. 다행히 맛이 세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아서 다 먹을 수 있었어요. 정말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맛이었어요.
쿠스쿠스, 타진 모두 매우 맛있었어요. 그리고 맛이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강하지 않아서 부드럽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어요. 그렇게 느끼하지도 않았구요. 그냥 맹물 마시면서 먹었는데 그래도 아무 문제 없었어요.
그리고 주인 아저씨는 튀니지 사람인데 한국어를 매우 잘 했어요. 저도 그냥 한국어로 편하게 이야기하고 주문했어요.
왜 저런 식당은 의정부에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