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역에서 서부 광장으로 나오면 (태흥시네마 건물쪽) 김밥천국이 두 곳 있어요.
예전 학원에서 근무할 때 일이 끝나면 김밥천국 가서 늦은 저녁을 먹곤 했어요. 주말에 보강 및 자습지도를 나갔을 때도 끝난 후 종종 갔구요. 제가 주로 간 김밥천국은 KFC가 있는 쪽이 아니라 그 반대 방향에 있는 쪽이었어요.
이때 김밥천국을 간 이유는 별 거 없었어요. 주변에 더 맛있다는 돈까스집도 있고 김밥집도 있었지만, 여기가 가장 저렴했거든요. 김밥 두 줄에 돈까스 하나 시켜서 8천원에 먹을 수 있는 곳은 지금도 여기 뿐이에요. 사실 맛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배 채우려고 가던 곳이었고, 지금도 그러니까요.
그래도 아예 맛이 없는 것은 아니고 그냥 먹을만한 수준이기는 해요.
학원을 그만둔 후, 한동안은 잘 안 갔지만 김밥이 갑자기 먹고 싶어져서 모처럼 한 번 가보았어요. 당연히 이번에도 주문한 것은 제일 저렴한 메뉴인 야채김밥 두 줄과 돈까스였어요. 야채김밥은 1500원, 돈까스는 5000원이에요.
먼저 야채김밥.
다른 김밥들도 괜찮기는 하지만, 결국은 이거 먹게 되더라구요. 참치김밥, 땡초김밥 등등 다른 종류의 김밥들도 있지만 그냥 무난한 것 시키고 싶을 때는 가장 기본적인 김밥인 야채김밥 시키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 같아요.
속에 들어간 것은 맛살, 단무지, 계란 지단, 우엉, 햄 등이에요. 어렸을 적 소풍 가면 아이들이 도시락으로 싸오는 김밥 구성이 이것과 거의 비슷했죠. 어렸을 적 참치, 깻잎 들어간 김밥은 거의 보지 못했어요. 동네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제가 살던 동네에서는 거의 다 저렇게 단무지, 계란 지단, 맛살, 소시지/햄, 시금치가 들어간 김밥이었어요.
김밥에 김치를 올리면 김치 김밥이 되기는 하는데, 저건 당연히 실패작. 저렇게 먹으면 김치맛이 다른 모든 맛을 다 덮어버려요. 저 크기의 김치라면 김밥 2개와 같이 먹어야 맛의 균형이 맞더라구요.
야채김밥에 김치는 사실 정말 안 어울려요. 딱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보스 놀이 하는 고등학생 같은 모습이랄까요? 김치 맛은 물에 빨아먹지 않는 한 어떻게 해도 강하기 때문에 김밥 맛을 다 죽여버려요. 김치를 아주 조금 잘라먹든가 아니면 김밥을 한 입에 2개씩 넣든가 해야 그럭저럭 맛의 균형이 맞아요.
돈까스는 김밥천국마다 큰 차이를 보여주는 메뉴. 김밥은 그래도 속에 들어가는 재료만 똑같이 넣으면 큰 차이가 안 나는 거 같은데, 돈까스는 진짜로 지점마다 제각각이더라구요. 어디는 너무 태우고, 어디는 고기 질이 형편 없고, 어디는 소스 뒤범벅을 하고, 어디는 짜고 등등요.
여기 돈까스는 그냥 무난한 돈까스에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참 한결같이 그냥그런 돈까스였어요. 맛집이라고 할 것은 전혀 아니구요. 마땅히 밥 먹을 곳이 없는 애매한 시각에 가서 그냥 있으니까 먹는 돈까스라고 하면 될 거에요.
여기는 맛집이랄 것도 없고, 무언가 기대하고 갈만한 곳도 아니에요. 단지 식당들 문이 닫았을 때 여기 혼자 문을 열고 있기 때문에 진짜로 야심한 시각에 밥 먹으러 가기 좋은 곳일 뿐이지요. 그래도 무난히 먹을만한 맛은 되요. 마구 맛없다고 혹평을 날리고 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냥 무난함 중의 무난함, 맛보다 양을 따질 때 가면 좋은 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