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고리차에서 출발한 버스가 달리기 시작했어요.
버스는 어느 도시 버스 터미널에 들어갔어요.
아주 짧은 휴식 시간. 내릴 손님은 내리고 탈 손님은 탔어요. 버스에 탔던 승객들은 내려서 먹을 것도 사오고 담배도 태우고 그랬어요. 10분의 휴식 시간이 끝났어요. 버스 기사가 버스에 올라타자 저도 따라서 버스에 올라탔어요.
버스는 산길로 들어갔어요.
"헉! 이거 완전 무서운데요?"
버스가 달리는 길은 진짜 공포스러웠어요. 꼬불꼬불한 산길을 매우 빠른 속도로 마구 달리는데 버스 옆 1m 밖은 바로 낭떠러지. 가드레일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어요. 옆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격과 공포. 더 놀라운 것은 앞에서 차가 오면 직진하고 후진하고 옆으로 비키고 했다는 것이었어요. 후진도 충격적이었는데 두 대가 스쳐 지나갈 때에는 진짜 무서웠어요. 아래는 까마득한 낭떠러지인데 두 대가 아슬아슬하게 스칠 듯 말 듯 하며 지나갔어요. 한 대가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아니, 굴러떨어져야 정상일 것 같았어요.
"계속 산만 나와요."
후배가 울상이 되었어요. 진짜 우리나라 대관령, 말티재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극악의 산길. 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부서진 의자에 몸을 기대 잠을 청했어요. 후배는 무서워서 잠도 자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저는 매우 잘 잤어요.
눈을 떴을 때, 비경이 펼쳐졌어요.
정말 푸르른 강물이 흐르고 있었어요.
"이거 정말 비경인데!"
"오빠...정말 무서워요. 버스 굴러 떨어지는 거 아니에요?"
버스는 계속 빠른 속도로 험한 산길 비포장 도로를 달리고 있었어요. 터널도 통과했어요.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터널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그러니까 문경새재 같이 생긴 터널도 통과했어요.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올라왔는지 여기는 한겨울이었어요. 눈 쌓인 산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진한 초록빛 강물.
이쯤 되니 그냥 모든 걸 포기했어요.
'제발 살아서 도착하게 해 주세요.'
연착 따위를 따질 때가 아니었어요. 그런 건 정말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어요. 빙판길에 버스가 미끄러져서 굴러떨어지느냐 안 굴러떨어지느냐가 달린 문제인데 그까짓 연착이 뭐가 문제겠어요. 속으로 '이 미친 버스 속도 좀 줄이라구! 아니면 내려서 체인을 감던가!'라고 생각했어요. 빙판 때문에 버스가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 때마다 엉치부터 머리 끝까지 전기가 짜르르 올라왔어요. 연착? 그런 건 안 중요해요. 지금 사느냐 죽느냐가 걸린 문제.
버스는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한참 또 내려가더니 드디어 멈추었어요.
아래는 레프팅하는 곳인 것 같았어요. 당연히 비수기라서 쉬는 것 같았어요.
버스가 멈춘 이유는 바로 국경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경. 국경 직원이 들어와서 여권을 싹 걷어갔어요. 잠시 후 여권을 돌려주었어요. 이 국경도 입국 심사 및 출국 심사 때문에 버스에서 내릴 필요가 없어서 좋았어요.
표지판을 보면 '스릅스카 공화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혀 있어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하나의 국가이지만 그 안에는 2개의 공화국이 존재하고 있어요. 하나는 이슬람계와 크로아티아계의 국가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이고 하나는 세르비아계 국가인 스르프스카 공화국 (Republic of Srpska)에요.
보스니아 전쟁 (혹은 보스니아 내전)은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일부에요. (참고 : http://ko.wikipedia.org/wiki/%EC%9C%A0%EA%B3%A0%EC%8A%AC%EB%9D%BC%EB%B9%84%EC%95%84_%EC%A0%84%EC%9F%81) 우리가 알고, 또는 접하는 유고 내전과 관련된 자료 중 상당수가 보스니아 전쟁과 관련있어요. 보스니아 전쟁은 인류 역사에 아주 크고 굵은 획을 그은 사건이에요. '유럽은 지구상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던 유럽에서 인종청소와 학살이 일어나고 서로 합의가 아니라 박멸을 위해 싸우는 모습이 나타나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전쟁이에요. 과거 유고슬라비아 연방 중 가장 복잡하고 골치아픈 국가가 바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요.
나토군까지 보스니아 문제에 직접 개입해 1995년에는 스르프스카 공화국을 폭격하기에 이르렀어요. 정말 답이 없던 보스니아 문제는 결국 1995년 11월 미국이 강제적으로 분쟁 당사자들을 데이턴 협정에 조인하게 해서 전쟁이 끝났어요. 말이 좋아 협정이지 그 이면에는 '이거 어기면 아주 그냥 박살내 버리겠다'는 협박이 있어서 데이턴 협정이 잘 유지되고 있는 거에요.
우리가 통과한 국경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스르프스카 공화국과 몬테네그로의 국경이었어요. 국경을 넘자 다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어요.
다시 푸른 강물이 등장했어요.
버스는 도시로 들어와 버스 터미널을 향해 달렸어요.
우리가 도착한 곳은 포차 (Foča)였어요.
여기에서 타는 사람은 없었어요. 사람들이 몇 명 내리고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어요.
오후 3시 40분. 드디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에 도착했어요.
첫 인상은 별 것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