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시 20분, 베오그라드발 포드고리차행 버스에 올라탔어요. 굳이 포드고리차행 버스에 올라탄 이유는 그래도 왠지 한 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몬테네그로 들어갈 때에도 별 일 없겠지?'
예전에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였지만 이제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전혀 다른 나라. 그래서 세르비아에서 몬테네그로를 갈 때에는 반드시 국경심사를 받아야 해요. 몬테네그로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무비자 입국을 허용해 주었는지는 잘 몰랐지만 비자를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만약 몬테네그로 입국시 비자가 필요하다면 낮에 만난 한국분께서 알려주셨을 거에요. 그러나 마케도니아 비자가 없어졌다고 하자 매우 좋아하시면서 이제 발칸 유럽에서 비자 받아 들어가야 하는 국가는 없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믿고 일단 몬테네그로로 가기로 결정한 것이었어요.
잠을 자고 있는데 국경 심사를 받게 되었어요. 버스 기사가 여권을 전부 걷어 갔어요. 세르비아 출국 심사는 별 일 없었어요. 이제 몬테네그로 입국 심사를 받을 차례. 몬테네그로 입국 심사도 버스에서 내릴 필요가 없었어요.
"헤이! 컴 히어!"
"와이?"
버스 기사가 저와 후배를 불렀어요. 그래서 일단 저 혼자 버스 기사에게 갔어요. 국경 검문소 직원이 저를 불러서 버스 기사가 저를 부른 것이었어요. 국경 검문소 직원은 저와 후배 여권을 따로 빼서 쥐고 있었어요.
"이즈 디스 유어 패스포트?"
"예스."
"비자!"
국경 검문소 직원이 저를 부른 이유는 여권에 비자가 없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당당하게 남한에서 왔다고 말했어요. 직원은 '사우스 코리아?'라고 되물었어요. 그래서 '예스, 아임 프롬 사우스 코리아'라고 다시 대답해 주었어요. 직원은 알았다고 하고 제게 가보라고 하더니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로 무언가 검색을 하기 시작했어요.
잠시후. 국경 검문소 직원이 버스에 들어와 여권을 다시 나누어 주었어요. 우리 여권도 별 말 없이 돌려주었어요. 여권을 펼쳐보니 몬테네그로 입국 도장이 아주 잘 찍혀 있었어요.
도대체 얼마나 산으로 버스가 들어가는지 밖에 보이는 것은 온통 산 뿐이었어요. 거기다 눈발까지 무섭게 날리고 있었어요. 오늘은 3월 20일. 눈이 내릴 때는 지났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눈이 매우 많이 내리고 있었어요.
버스가 휴게소에 멈추어 섰어요.
정말 펑펑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어요. 먼저 화장실을 간 후 터키식 커피 2잔을 시켰어요.
"저 잠깐 씻고 나올께요."
후배가 화장실을 간 사이 커피가 나왔어요. 한 모금 마셨어요. 정말 맛있었어요. 우리나라 믹스 커피 맛과는 다른 매우 훌륭한 맛이었어요. 커피를 홀짝 홀짝 마시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어요.
"헤이! 헤이!"
버스 기사가 저를 불렀어요. 그래서 왜 부르나 보았더니 버스가 출발한다고 부르는 것이었어요. 후배는 아직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일단 급히 계산을 하고 버스에 올라탔어요. 제가 올라타자마자 버스기사는 버스 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어요.
"스톱! 스톱!"
기사 옆으로 달려가 기사에게 멈추어달라고 이야기했어요.
"드루가 프 뚜알렛! 드루가 프 뚜알렛!"
'친구가 아직 화장실에 있어요'라고 말해야 하는데 여기 말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서 그냥 '친구 화장실 안에!'라고 말했어요. 기사는 제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어요. 잠시 후, 후배가 버스에 올라탔어요.
아침 7시 30분. 드디어 포드고리차에 도착했어요.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일단 나와서 짐을 끌고 걸어다니는데 볼 만한 것이 안 보였어요. 한참을 걷다가 다시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어요.
"정말 볼 거 없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어요. 어제 만난 아저씨의 조언대로 부드바나 코토르로 갈까 생각했어요. 그러나 단지 수도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그다지 크게 끌리지 않았어요. 더욱이 부드바나 코토르로 갈 경우, 반드시 숙소에서 잠을 자야 했어요. 부드바나 코토르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방법에 대한 정보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이드북에도 몬테네그로 정보는 없었어요. 혹시 세르비아 편에 같이 들어가 있나 살펴 보았지만 세르비아 편에 몬테네그로 정보는 없었어요. 게다가 몬테네그로는 유로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어요. 유로를 사용한다는 것은 물가가 다른 지역보다 비싸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그냥 사라예보 갈까요?"
"그렇게 해요."
후배는 일정에 대해 큰 생각이 없었어요. 이 여행은 아무 준비도 안 한 저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어요. 후배는 제가 가자고 하니까 따라온 것이었지 원래부터 여행을 가야겠다고 계획하고 출발한 것이 아니었거든요.
9시 30분 사라예보행 버스를 타기로 결정하고 이번에는 다른 길로 걸어가 보았어요.
평범하고 허름한 아파트. 무언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없었어요. 아침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도 거의 안 보였어요.
정말 수도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황량했어요.
아파트는 이렇게 생겼어요. 베란다에 왜 구멍을 뿡뿡 뚫어놓았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정말 무언가 특징을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발견한 것이 바로 저 베란다에 뚫린 구멍이었어요. 전쟁의 흔적이 아니라 지을 때 일부러 저렇게 구멍을 뚫어 놓은 것이었는데 대체 왜 구멍을 뚫어 놓았는지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이것은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의 전통 가옥 같아 보였어요. 느낌은 그냥 '허름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요.
나름 번화가 같아 보였는데 그냥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읍내 같았어요. 몬테네그로가 독립한 이유는 이 나라의 민족주의가 강해서라기 보다는 세르비아 때문에 몬테네그로도 덩달아 세트메뉴로 고생했기 때문이 커요. 세르비아에 대한 나토의 폭격도 같이 당했고, 경제재재도 함께 당했어요. 그래서 독립을 선언하고 별다른 충돌 없이 독립 국가가 되었어요. 하지만 경제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지역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포드고리차를 돌아다니는데 한 나라의 수도라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어요.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프리슈티나보다도 못한 도시였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도로 표지판이었어요. 전날 거리 곳곳에 포진해 있던 표도르 형님들을 봐서 그런지 이게 참 인상적이었어요. 표지판 속에서는 남자도 여자도 참 크고 튼튼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어요.
걷다보니 여기까지 도착했어요. 이것은 포드고리차 구시가지의 오래된 시계탑.
"이제 돌아가죠."
"예."
더 볼 만한 것이 나올 것 같지 않아서 돌아가자고 했어요. 후배는 좋다고 했어요.
돌아가는 길. 'Права за Србе!'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어요. '세르비아인들을 위한 권리!'라는 뜻.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어요.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시간이 되었는데 버스가 올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설마 버스 안 오는 거 아니야?"
표까지 구입했는데 버스가 제 시각에 오지 않자 당황스러웠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예정 시간보다 10분 지나서야 버스가 터미널에 들어왔어요.
버스에 올라탔어요. 자리에 앉았어요.
"이거 의자 왜 이래?"
제 좌석 의자만 고장이라 의자가 계속 뒤로 넘어갔어요. 다른 자리로 옮기고 싶었지만 버스에 사람이 다 차서 옮길 자리가 없었어요.
"이거 완전 벌 받듯 허리 세우고 가야 하나..."
투덜대면서 의자에 몸을 기댔어요. 창밖을 보려면 벌을 받듯 앉아야 하고 의자에 기대자니 편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옮길 자리가 없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