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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석탄의 길 (2022) 89

석탄의 길 1부 28 - 강원도 삼척시 신기역에서 동해시 동해역으로 무궁화호 1682 기차 타고 가기

"살았다!" 다행이다? 아닙니다. 살았습니다. 살아서 완주했습니다. 운탄고도1330 8길은 아직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구간이기는 했지만 크게 위험한 구간은 없었어요. 덤프트럭이 많이 다녀서 신경 거슬릴 때가 많기는 했어도 덤프 트럭에 치일 수도 있겠다고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구간은 딱 하나 - 마차리에서 철로 밑 다리를 지나갈 때 뿐이었어요. 그거 외에 너무 위험해서 못 걷겠다고 한다면 그건 엄살이었어요. 사람들이 무리지어서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었지만 한 명이 걸어간다면 걸어갈 수 있는 길이었어요. 그러나 신기역을 보고 입에서 나온 소리는 '다행이다'가 아니었어요. '살았다'였어요.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비 때문에 중간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 걸었어요. 마지막에는 두 발을 질질 끌면서 ..

석탄의 길 1부 27 - 강원도 남부 도보 여행 트래킹 코스 운탄고도 8길 삼척시 신기면 대평리, 한라시멘트 삼척 신기공장, 신기역

"진짜 끝이 보인다!" 흥분이 가라앉았어요. 발에 누적된 고통과 다리에 누적된 피로가 주는 고통이 갑자기 폭풍처럼 확 몰려왔어요. 갑자기 발이 아프고 다리가 피곤해진 것은 아니었어요. 꽤 먼 곳부터 고통이 계속 강해지고 있었어요. 그것을 흥분한 상태라 못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어요. 흥분이 가라앉자 못 느끼고 있었던 고통이 본격적으로 제대로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옛날 옛적, 빨간 구두를 너무 좋아한 한 소녀가 있었어. 그 소녀는 장례식장에 빨간 구두를 신고 갔어. 소녀는 저주받았고, 두 발은 죽을 때까지 춤을 추었대. 왜 제가 지금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 속 주인공 소녀의 고통에 공감해야 합니까?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 속 주인공과 저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었어요. 바로 새 신을 신었다는 점이었어요. 안데르..

석탄의 길 1부 26 - 운탄고도1330 8길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구간 경주 김씨 열녀각

망설임 없이 마차리 마을 진입로를 선택했어요. 긴장감 넘치는 길도 좋았지만 너무 자극적인 것만 먹으면 속 다 버려요. 대형 차량이 질주하는 강원남부로는 너무 자극적인 길이라 잠시 순한 맛 길도 걸으며 정신적 휴식을 취하기로 했어요. 육체적 휴식을 취할 만한 곳도 있다면 더욱 좋을 거였어요. 육체적 휴식을 취할 만한 곳이 보이면 바로 앉아서 조금 쉬었다 가기로 했어요. "날 따스하네?" 태백시 찜질방에서 출발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온이 많이 상승했어요. 태백시야 원래 추운 동네니까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어요. 기온이 아침에 도계에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따스해졌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버스터미널에서 버스 내렸을 때만 해도 살짝 쌀쌀한 기운이 있었는데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석탄의 길 1부 25 - 강원도 삼척 도보 여행 신기면 영동선 폐역 마차리역

"여기 차 꽤 다니네?" 왕복 2차선 도로에 버스와 트럭이 계속 달리고 있었어요. 줄줄이 비엔나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대 지나가고 조금 가면 또 한 대 달려와서 지나갔어요. 지도만 보면 차량 대부분은 38번 국도를 타고 가고 이쪽 강원남부로로는 차량이 별로 안 다니게 생겼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대형 덤프트럭과 버스가 끊임없이 등장헀다 사라졌다 하고 있었어요. '긴장 풀면 안 되겠다.' 위험한 길은 아니었지만 안전한 길도 아니었어요. 차도 옆에 사람이 걸어갈 만한 공간이 있었어요. 최대한 차도에서 멀리 떨어져서 가에로 걷는다면 걸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흰색 차선 안쪽으로 들어가면 진짜 위험한 길이었어요. 차선 폭은 좁았고, 다니는 차량은 대형 덤프트럭과 버스였어요. 길 똑바로..

석탄의 길 1부 24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하고사리역 - 기차 사진 인스타그램 감성 풍경 사진 삼척 여행 아름다운 기차역 폐역 추천 출사지

얼굴에 묻은 빗물을 손으로 닦아내었어요. 빗방울이 갈 수록 굵어지고 있었어요. 우산 안 쓸 거야? 우산 안 쓰고 배기겠어? 하늘이 제게 계속 어서 빨리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서 쓰라고 재촉했어요.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고 있었어요. 이거 조금이라도 늦게 우산 꺼내었다가는 비가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해서 옷이고 가방이고 다 쫄딱 젖게 생겼어요. 무슨 영화 속 시한폭탄 타이머 5초 남았다 4초 남았다 하는 것처럼 갈수록 굵어지는 빗방울이 어서 포기하고 우산을 쓰고 다니라고 하고 있었어요. "내가 우산 쓰나 봐라." 우산을 꺼내서 쓰는 건 문제가 아니었어요. 가방 속에 우산이 있기 때문에 우산만 꺼내서 펼치면 그것으로 끝. 하지만 우산을 꺼내서 펼치는 순간 불편함은 남은 구간 내내 지속될 거였어요. 젖은 우산을 ..

석탄의 길 1부 23 - 강원도 삼척시 기차역 폐역 고사리역 폐교 소달중학교, 늑구리 성황당, 강원도 기념물 제59호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

"어? 비온다!" 빗방울이 투둑투둑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산 너머 남쪽 윗동네를 걸을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고사리역 도착하자 빗방울이 떨어졌어요. 그렇게 비가 오지 말라고 빌었는데 기어코 비가 쏟아질 모양이었어요. 하늘은 아까보다 더욱 우중충해졌어요. 하늘이 무거운 구름을 들고 흘리는 육수가 기분나쁘게 계속 떨어졌어요. 하늘을 올려보지 못했어요. 눈에 빗물 들어가면 눈 아파요. 비 한 방울에 짜증 한 방울 비 한 방울에 조급함 한 방울 비가 뚝뚝 떨어질 때마다 짜증과 조급함이 쌓여 갑니다. 빗방울이 제 머리와 스마트폰으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질 때마다 신경이 날카로워졌어요. 비가 내리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데 하필 걸어서 돌아다니려고 여행 온 날 날씨가 비였어요. 빗방울이 떨어질 수록 마음도 급해졌..

석탄의 길 1부 22 - 강원도 삼척시 운탄고도1330 8길 도계역 ~ 늑구리 고사리역 구간

"저거는 예쁜데 왜 도계역 앞 조형물은 곰팡이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도계역 앞 오십천을 건너는 다리 중앙에는 쇠로 만든 아치 조형물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고 그 위에는 알록달록한 유리가 매달려 있었어요. 이것은 매우 예뻤어요. 하지만 도계역 광장에 있는 조형물은 아무리 봐도 포자 달린 검은 곰팡이 모습이었어요. 정확히는 '유리로 만든 석탄 나무'에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은 탄광촌이자 석탄 채굴 중 나온 폐석을 활용해 유리를 만들고 있어요. 도계는 산과 나무가 많구요. 그래서 석탄, 유리, 나무를 합쳐서 그런 조형물을 만들어놨을 거에요. 하지만 아무리 머리로는 '유리로 만든 석탄 나무'라고 해석하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검은 곰팡이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저거 밤 되면 불 들어와서 초록색으로 빛나는데 그러..

석탄의 길 1부 21 - 강원도 삼척시 운탄고도 8길 도계읍 전두리 도계역 전두시장 까치발 건물

"와, 벌써 꽤 걸었네?" 최대한 덜 걸어야 하는데 꽤 걸었어요. 그렇게 엄청나게 많이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에 태백시 찜질방에서 나와서 24시간 카페와 24시간 식당 간다고 걸은 거리가 있었고, 삼척시 도계읍 와서는 흥전삭도마을을 돌아다니고 흥전항을 다녀왔어요. 이른 새벽부터 걸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앞으로 힘든 길을 걸을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걸은 거리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부담이었어요. 정말 하루 종일 걸어서 돌아다녀야 했거든요. 날이 아주 훤해졌어요. 누가 봐도 아침이었어요. 아까 도계 도착했을 때는 어스름한 기운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어스름한 기운이 싹 다 가셨어요. 몇 시인지 봤어요. 2023년 10월 6일 오전 8시 조금 넘었어요. 모두가 하루를 시작하고 학생들은 등교하고 직장인들..

석탄의 길 1부 20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탄광 폐갱구 흥전항 흥전갱

흥전1교를 통해 오십천을 건너갔어요. 오십천을 건넌 후 가던 방향으로 그대로 가며 흥전서로를 따라 산 속을 향해 걸어갔어요. 아저씨 한 분이 계셨어요.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이 길이 흥전갱 가는 길 맞냐고 여쭈어봤어요. 앞서 오십천 장수의 길 산책로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여쭈어봤지만 또 물어봤어요. 단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해서는 안 되었어요. 흥전갱을 가다가 헤메게 되면 아직 시작도 못한 운탄고도1330 8길 걷는 일정부터 시작해서 줄줄이 차질을 빚을 거였어요. 단 한 번에 제대로 정확히 찾아가야 했어요. 아저씨께서는 맞다고 하셨어요. 가깝냐고 여쭈어보자 이번에는 걸어가기에는 멀다고 대답하셨어요. 흥전갱이 여기에서 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가깝다고 했는데? 설마 그분들...전국 어느 산에 가도 ..

석탄의 길 1부 19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흥전삭도마을 기찻길옆 벽화마을

도계로 돌아왔다. '여기를 또 오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에 있는 도계버스터미널. 2022년 8월 30일에 왔었어요. 이날은 2022년 10월 6일. 30일하고 일주일만에 다시 왔어요. 2022년 8월 29일 밤에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도계역에서 내렸어요. 2022년 8월 30일 오후에 도계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도계를 떠났어요. 도계는 신기하고 특이한 매력이 있는 지역이라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나중에 한 번 또 가보고 싶었어요. '나중에 한 번'이란 막연한 미래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표현. '막연한 미래'란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라는 의미. 그래서 '막연한 미래 표현'은 부정의 의미로도 종종 사용한다. 나중에 한 번 또 가보고 싶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또 올 줄은 몰랐어요. 도계..

석탄의 길 1부 18 - 운탄고도 8길 강원도 태백시에서 출발하기 - 태백시에서 아침식사와 카페 즐기고 버스로 삼척시 도계 가는 방법

"태백은 확실히 추워." 새벽의 태백시. 공기가 차가웠어요. 온탕에 들어가서 몸을 뜨겁게 데우고 나와서 별로 춥지는 않았어요. 깜깜한 어둠 속 차가운 공기는 이제 곧 겨울이라고 제 귀에 속삭였어요. 월동준비를 해야 할 때였어요. 잠깐만, 지금 10월 이제야 시작되었는데? 이날은 2022년 10월 6일. 10월 시작된 지 엿새째였어요. 만추를 즐겨야할 때인데 벌써 겨울이라니 말도 안 되었어요. 그러나 강원도 태백시 새벽 공기는 너무 차가웠어요. 영하까지는 안 떨어졌지만 곧 영하로 떨어져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추위였어요. 제 고향 제주도 기준으로 보면 강원도 태백시 기온은 겨울 기온이었어요. 지금은 의정부에서 살고 있으니 태백이 추운 남쪽 지역이지만, 제 고향 기준으로 본다면 추운 북쪽 지역이었어요. 제 고..

석탄의 길 1부 17 -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24시간 찜질방에서의 하룻밤 숙박

"쌀쌀하네." 찜질방에서 자다가 살짝 추워서 잠에서 깨었어요. 몇 시인지 봤어요. 2022년 10월 6일 새벽 1시 반이었어요. 스마트폰 옆에서 자려고 하니 창가쪽에서 자야 했어요. 창가쪽은 조금 쌀쌀했어요. 스마트폰 옆에서 자는 것을 포기하면 따스한 안쪽에서 잘 수 있었어요. 스마트폰 옆에서 자는 것을 포기하자니 많이 신경쓰였어요. 스마트폰 도난당할 위험은 없었지만 진동 알람 못 듣고 완전히 골아떨어져버리면 하루 일정이 엉망이 될 거였어요. 운탄고도 8길만 걷는다면 급할 거 없이 느긋하게 자도 되었어요. 하지만 제 여행 일정은 운탄고도 8길을 다 걷고 동해시로 넘어가서 동해시에서 또 돌아다니는 일정이 있었어요. 이것까지도 어떻게 될 수 있었어요. 깜깜할 때 돌아다니면 어떻게 되기는 할 거였어요. 제 2..

석탄의 길 1부 16 -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중앙로 황지자유시장 야경

'기분 묘하네.' 어둠 속에서 강원도 태백시 상장동 벽화마을을 다 둘러보고 굴다리사거리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이었어요. 갑자기 아주 오래 전에 외국 여행 다니던 때가 떠올랐어요. 발칸유럽을 여행할 때 알바니아에 갔던 기억이 하나 둘 기억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었어요. 알바니아는 산이 매우 많은 국가에요. 국토 대부분이 산지에요. 그러나 알바니아와 태백시는 산지 지형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었어요. 별로 닮은 점이 없는데 알바니아 여행 갔을 때가 떠올라서 기분이 매우 묘해졌어요. 알바니아 티라나에 처음 도착해서 들어간 숙소가 맨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극단적인 부조화를 이루는 색채로 칠해놓은 방이라 돌아버릴 것 같았던 것도 떠올랐고, 나중에 지로카스트라를 갔을 때 추적..

석탄의 길 1부 15 - 강원도 태백시 상장동 벽화마을 - 구 함태탄광 광부사택촌

"벌써 깜깜해져?" 강원도 태백시 시내버스 4번 버스를 탄 지 얼마 안 되었어요. 벌써 깜깜해졌어요. 완전히 한밤중 칠흑같은 어둠이 태백시를 집어삼켰어요. 순식간에 햇볕이 하나도 없고 깜깜한 동네로 바뀌었어요. 시꺼먼 것은 하늘이고 더 시꺼먼 것은 땅이고 아주 새까만 것은 산이었어요. 어둡고, 더 어둡고, 아주 어두운 것만 보였어요. 버스 타기 전만 해도 달리는 버스 안에서 풍경 사진을 몇 장 찍으려고 했어요. 이 생각은 몇 분 채 안 되어서 좌절되었어요. 산골 지역은 해가 일찍 저뭅니다. 산골 지역은 해가 일찍 저문다는 말이 있어요. 실제로 산에 가보면 평지보다 해가 일찍 저물고 날이 더 빨리 어두워져요. 그래서 산행 갈 때는 평지 기준으로 해가 질 시간보다 더 이른 시간에 해가 질 거라 예상하고 산행..

석탄의 길 1부 14 - 강원도 태백시 천연기념물 417호 구문소 오르도비스기 지층과 제4기 하식지형

"오늘은 진짜 날이 아닌가?" 구문소에 와서 사람을 한 명도 못 봤어요. 아까 구문소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다시 돌아왔을 때도 사람이 없었어요. 태백시 와서 사람 많은 풍경을 한 번도 못 봤어요.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철암동 가는 버스 안에서 본 부부가 전부였어요. 아무래도 날씨가 매우 안 좋아서 관광객이 하나도 안 온 모양이었어요. 통리에 장이 열려서 거기 간 사람들도 있을 거구요. '구문소 완전 나 혼자 전세내서 놀겠네.' 사람이 하나도 없는 구문소였어요. 오직 저만 있었어요. 구문소 앞에는 가게들이 있었어요. 가게들도 모두 문을 닫았어요. 구문소는 그래도 유명한 관광지라서 사람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하나도 없어서 신기했어요. 교통이 불편해서 힘들게 와야 하는 곳도 아..

석탄의 길 1부 13 - 강원도 최남단 기차역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 태백로 2382 동점역

태백 버스 4번이 돌꾸지에 가까워졌어요. 돌꾸지는 철암동에서 할머니와 대화할 때 할머니께서 철암동으로 여행 온 사람들이 잘 가는 곳 중 하나라고 알려주신 곳이었어요. 집중해서 창밖을 바라봤어요. 창밖은 산산산이었어요.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진짜 온통 산투성이였어요. 앞산 뒷산 오른쪽산 왼쪽산 사방이 산이었어요. 평지라고는 버스가 달리고 있는 동태백로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여기 대체 왜 사람들이 많이 가지?' 태백시 4번 시내버스가 돌꾸지 소공원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창밖 풍경은 죄다 산이었어요. 산 말고 볼 게 없었어요. 정확히는 산 말고 있는 게 없었어요. 전부 다 산이었어요. 관광지처럼 생긴 곳이 아니었어요. 첩첩산중이었어요. 첩첩산중 풍경이 궁금해서 가본다고 하기에는 통리부터 시작해..

석탄의 길 1부 12 -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철암탄광역사촌, 철암 탄광문화장터 철암시장, 철암역

"아직 시간 있네." 몇 시인지 봤어요. 2022년 10월 5일 16시 13분이었어요. 동지는 12월 22일이니까 아직 한참 남았어요. 가을에 낮시간과 밤시간이 같아진다는 추분이 9월 22일이었어요. 추분 지나간지 얼마 안 되었어요. 한여름처럼 저녁 8시 즈음까지 훤하지는 않았지만 저녁 7시 즈음까지는 괜찮았어요. 의정부는 6시 넘어가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7시가 되어야 컴컴해졌어요. 6시를 넘어가면 침침해지기 시작하고 대략 6시 반쯤 되면 그때부터 빠르게 깜깜해졌어요. 여기는 의정부 기준으로 경도상으로 유의미하게 큰 시차가 있다고 할 곳이 전혀 아니었어요. 만약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면 손떨림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을 6시로 잡고 6시까지 일정을 다 끝내는 쪽으..

석탄의 길 1부 11 -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철암동주민센터 정류장 영동선 철도 철암 제1건널목 피내골 마을

철암천을 향해 내려가는데 계속 함박웃음이 터져나왔어요. 너무 기뻐! 너무 재미있어! "태백 만세!"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어요. 너무 신나고 흥분되었어요. 이런 여행을 대체 얼마만에 하는 건지 몰랐어요.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동네 주민분들과 이야기도 나누며 노는 여행. 진정한 국내 여행의 맛이었어요. 너무 오랫동안 느끼지 못해 잊어버리고 있었던 여행의 재미였어요. 서울에서 달동네 찾아 돌아다닐 때 이후로 이런 재미를 못 느꼈어요. 그게 2019년 봄이었으니 무려 얼추 3년 반이나 지났어요. 강원도 태백시에서 매우 외진 산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게 아니라 4번 버스 노선 주변을 다니는 거라 위험하거나 어려울 것은 없었어요. 그렇지만 새롭고 낯선 동네에서 모르던 이야기를 듣고 모르던 동네를 찾아가고 숨겨져 ..

석탄의 길 1부 10 -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삼방동 미로마을 가톨릭 장성성당 철암공소

보다 더 윗쪽으로 올라가자 낡은 단층 가옥들이 몰려 있는 동네가 나왔어요.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삼방마을이었어요. 여기는 삼방동 미로마을이라고도 하고, 삼방동 벽화마을이라고도 하는 곳이었어요. "여기 조금 둘러보고 철암탄광역사촌 갔다가 구문소로 넘어가야겠다." 삼방동 벽화마을을 조금 둘러보고 내려가서 구문소로 넘어가기로 했어요. 여기는 경사가 조금 있었어요. 평소라면 온 김에 아주 싹싹 다 보고 가겠다고 덤벼들었을 거에요. 이런 동네 다닐 때는 한 사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까지 다 들어가보고 구경해야 직성이 풀려요. 그렇지만 이날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다음날 엄청 걸어야하는데 첫날부터 무리하면 안 되었어요. '태백이야 나중에 오고 싶으면 또 오면 되니까.' 진짜 오기 힘든 지역이었다면 ..

석탄의 길 1부 09 -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국가등록문화재 제21호 철암역두 선탄시설

"저쪽에 관광안내소 있네?" 철암역쪽 길에서 버스에서 내려서 길을 건너왔어요. 그런데 철암역 옆쪽에 관광안내소가 있었어요. "저기 가볼까?" 태백시 와서 궁금한 것이 있었어요. 태백시에는 관광기념품이 있겠지? 태백시 사진 엽서는 있을까? 태백시 마그네틱은 있을까? 있다면 어디에서 구입할 수 있을까? 강원도 태백시는 석탄 도시였어요. 지금도 태백시에는 장성동에 탄광이 있어요.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태백시의 탄광이에요. 민영탄광인 경동탄광이 통리쪽에 있는데 여기는 정확히 태백시 탄광인지 삼척시 탄광인지 잘 모르겠어요. 삼척시 도계읍에도 경동탄광 사택 아파트가 있어요. 태백시 자체가 석탄 산업으로 인구가 급증하며 삼척군에서 분리되어 시로 승격된 지역이에요. 그러나 석탄산업은 사양산업이 되었고, 태백시에 있..

석탄의 길 1부 08 - 강원도 태백시 통동 오로라파크 통리역

"비가 오는 거야, 안 오는 거야?" 빗방울이 어쩌다 한 두 방울 떨어졌어요. 여전히 우산을 꺼내서 쓸 정도는 아니었어요. 아주 가끔 스마트폰 화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어요. 다행히 통리장은 구경을 잘 했지만, 이제 통리장 하나 봤어요. 앞으로 가야 할 곳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비는 계속 내릴 것 같고, 일정은 예상보다 늦어졌어요. 이대로 잔뜩 흐린 상태로 비가 안 내린다면 너무나 고마운 하늘이었고, 비가 쏟아진다면 야속한 하늘이었어요. 나는 지금 구름 속에 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비행기가 구름 속을 날아갈 때가 있어요. 비행기가 구름 속을 날아갈 때 창밖을 보면 모든 세상이 뿌옇게 보여요. 창밖에는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데 계속 물방울이 맺히고 날아가요. 태백시 통동..

석탄의 길 1부 07 - 강원도 태백시 전통시장 통리5일장 - 강원도에서 2번째로 큰 재래시장 오일장

여전히 하늘은 흐렸어요. 비가 곧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었어요. 강원도 태백시 통동 주변 산머리는 하얀 비구름이 덮고 있었어요. "빨리 통리5일장 구경해야겠다." 날씨가 안 좋아도 일정을 강행한 이유. 그러니까 오늘 와야만 했던 이유. 통리장 안 보고 가면 억울해서 어떻게 해? 이거 때문에 내가 이 날씨에 태백까지 왔는데! 일기예보를 보면 이날 2022년 10월 5일 목요일부터 10월 7일 토요일까지 강원도 남부 날씨는 계속 매우 나빴어요. 원래대로라면 절대 여행을 안 갈 일기예보였어요. 아무리 한국 기상청이 맨날 틀리고 심지어 날씨 중계조차도 못한다고 기상청이 아니라 구라청 소리 듣는다고 해도 이때 일기예보를 보면 강원도 남부 지역으로 여행을 갈 때가 아니었어요. 특히 이 여행 종착지가 될 동해시는 며..

석탄의 길 1부 06 - 강원도 태백시 통동 한보광업소 한보탄광 광산사택 한보1단지 아파트

아주 멀리 매우 낡은 건물이 보였어요. 단순히 낡은 건물이 아니었어요. 오래된 아파트 같은 건물이 여러 채 있었어요. 딱 봐도 버려진 건물이 많이 있었어요. '저거 광산사택 아파트 아냐?' 전에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중석마을에 갔을 때였어요. 중석마을에는 버려지고 방치되어서 완전히 폐허가 된 대한중석 광산사택 아파트가 있었어요. 그때 봤던 폐허가 된 광산사택 아파트와 매우 비슷해보였어요. 저기는 분명히 사연이 있는 곳이었어요. 멀리 보이는 버려진 광산사택 아파트로 추정되는 건물을 사진으로 찍어서 확대해서 봤어요. 저곳은 무조건 사연이 있는 곳이야. 글자가 말해주고 있어. 외벽에는 검은 글자로 '태안'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태안'이라는 글자 뒤에는 원래 적혀 있던 글자가 있었어요. 바로 '한보'였어요. ..

석탄의 길 1부 05 -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물닭갈비 맛집 김씨네 닭갈비, 천주교 원주교구 가톨릭 황지성당

"이제 어디 가지?" 황지연못이 있는 황지공원을 다 봤어요. 날이 맑았다면 황지공원 안에서 시간을 때우며 물닭갈비 식당이 주문을 받기 시작하는 11시까지 버텼을 거였어요. 황지공원 안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벤치는 모두 텅 비어 있었어요. 다른 곳을 새롭게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했어요.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있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분명히 방법이었어요. 날이 맑았다면요. 엉덩이로 벤치 물기 다 닦아주게? 벤치에 앉아서 시간 보내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벤치가 다 젖어 있었어요. 날이 안 좋았어요. 태백도 새벽에 비가 내렸고, 이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맞고 다녀도 되는 안개비 수준으로 내리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했어요. 우산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은 가능했지만 벤치는 바지로 벤치 물기 닦아줄 생..

석탄의 길 1부 04 -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황지연못, 황지공원

다섯 걸음. 버스에서 내려서 다섯 걸음. 버스에서 내려서 다섯 걸음을 걸었을 때였어요. "어우, 쌀쌀해!" 싸늘한 공기가 '잡았다, 요놈!'이라고 외치며 저를 확 끌어안았어요. 여름에 태백시에 도착했을 때와 똑같이 버스에서 내려서 다섯 걸음 걷자 훅 떨어진 기온이 온몸을 덮쳤어요. 처음 당했을 때는 놀랐지만, 이번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태백이 다른 지역에 비해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더 추운 곳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한 번 경험해봤어요. 그래서 일부러 옷도 잘 챙겨서 왔고, 보다 따뜻하게 입고 왔어요. 태백버스터미널에서 나왔어요. 전에 한 번 와봤기 때문에 태백시 번화가로 가는 길은 대충 알고 있었어요. 풍경도 매우 낯익었어요. 전에 태백시 왔었을 때로부터 한 달 ..

석탄의 길 1부 03 - 경기도 의정부에서 시외버스 첫 차 타고 강원도 태백시 가기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2022년 10월 4일 저녁. 깊은 고민에 빠졌어요. 석탄의 길을 찾아서 강원도 삼척시 도계부터 신기까지 운탄고도 8길을 따라 걷고 신기역에서 기차로 동해시로 가기로 결정했어요. 운탄고도1330이 아니라 진정한 석탄의 길을 찾아가는 여행이었어요. 계획은 다 짰어요. 심지어 태백시 가서 할 것도 다 정했어요. 일정 다 짰으면 그 다음에 남는 것이라고는 출발 준비만 하면 되었어요. 출발 준비라고 해봐야 짐 싸고 일찍 자는 것 뿐이었어요. 일정도 고작 2박3일 일정이었어요. 이 정도면 혹시 모르니 여벌의 옷을 챙기고 양말이나 세 켤레 쯤 챙기면 끝이었어요. 세면도구는 새벽에 집에서 나갈 때 샤워하고 화장실에서 챙겨 나와서 비닐봉지에 넣어서 가방에 쑤셔넣으면 되었어요. ..

석탄의 길 1부 02 - 강원도 남부 석탄의 길 발굴 개척 조사

심장이 다시 뛴다 피가 다시 흐른다 두근두근 운탄고도 8길 코스를 보는 순간 느낌이 왔어요. 이 여행은 저 혼자 가야 했어요. 서울 달동네를 찾아다닐 때 느꼈던 그 설렘과 흥분이 다시 찾아왔어요. 멎어 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어요. 꺼져버렸던 여행에 대한 의지가 다시 살아났어요. 2019년 서울 달동네 찾아다닐 때 이후로 몇 년만에 다시 찾아온 신나는 감각이었어요. 정말 진심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졌어요. 그동안 목적지가 없어서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여행의 감도 여행기 쓰는 감도 무디어져 있었어요. 신기하게 진심으로 가고 싶은 곳이 생기고 너무 궁금한 곳이 생기자 옛날 그 감이 다시 살아났어요. 무디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억지로 끄집어내고 살리려고 하니 안 되었던 거였어요. 가고 싶은 곳..

석탄의 길 1부 01 - 그곳이 나를 다시 불렀다

강원도 남부 탄광지역 여행기를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었어요. 여행 가기 전에 강원도 남부 탄광지역에 대해 공부를 하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많이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대충 제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이고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정도만 봤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이 탄광지역이고, 탄광지역의 특색을 보기 위해서는 무엇을 봐야하는지 찾아보고 그에 대한 정보와 자료만 간략히 보는 수준이었어요. 완전히 백지 상태에서 시작이다. 여행기를 쓸 때는 순수하게 여행에서 겪었던 것과 생각한 것만 쓰지 않아요. 여행 돌아와서 공부하고 알게 된 것도 여행기 내용에 추가되요. 여행기를 쓰려면 여행 중 촬영한 사진과 기록해놓은 것을 정리하고 추가로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수집해요. 모든 것을 다 완벽히 알고 떠나는..

석탄의 길 - 프롤로그

꺼져가는 불씨가 남기는 마지막 빛.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것이 매우 많아요. 작게는 특정 물건, 상품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어떤 특정 동네, 산업까지 있어요. 오늘도 많은 것들과 많은 사람들이 잊혀져가고 있고 사라져가고 있어요. 사라져가고 잊혀져간다는 것은 즐겁지 않아요.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모든 것에게 한때 밝고 빛나던 시절이 있었어요. 즐거운 축제가 끝나고 조명이 하나씩 꺼지기 시작하면 어둠과 공허함이 공간을 집어삼키고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요. 여운조차 사라지고 아무 것도 안 남은 어둠과 공허함만이 남을 때, 희미하게 흔들리던 불빛 하나마저도 꺼지며 모두에게서 잊혀진 존재가 되요.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것들은 마음을 파르르 떨리게 하는 잔잔한 파동을 뿜어내요. 잔잔한 파동은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