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무계획이 계획 (2008)

무계획이 계획 - 프롤로그

좀좀이 2011. 10. 29.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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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여름.


회사를 그만두기로 작정했어요. 그러던 중 다니던 회사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 곳을 발견했어요. 근무는 열악하지만 일단 고향을 떠날 수 있고, 월급이 다니는 직장보다 괜찮았어요. 사실 집에서 출퇴근하며 부모님과의 다툼이 많았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일만 하고 오는 것은 힘들었어요. 더욱이 대학을 고향에서 나오지 않아 ‘동질성’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동기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느끼는 답답함은 친구들을 만나 푸는데, 집에서는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는다고 상당히 싫어했어요. 사실 집에서 그 회사 다니는 것 자체를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부모님과 수시로 다투었어요.

집에서조차 쉴 수 없으니 상당히 피곤했어요. 나름 전망이 있겠다고 생각해 들어간 회사에서 느낀 것은 전망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돈이 있어야죠. 돈이 없으니 다른 것을 할 생각도 할 수 없었어요. 그러던 중 다른 곳을 발견해서 지원했고, 합격했어요.

하지만 일단 회사에는 비밀로 하고, 사표를 제출하면서 일이 있어서 서울로 올라갈 일이 생겼다고만 말했어요. 회사 규정이 퇴직일로부터 한 달 전까지는 사표를 제출해야 하는데 저는 너무 일찍 제출해 버렸어요. 사표를 제출하고 한 달 보름정도 더 다니고 나왔으니까요. 문제는 사표를 제출하자 그때부터 진정한 회사에서의 서바이벌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어요. 예전에는 함께 담배를 태우며 불평 불만을 함께 토로할 수 있었는데, 점점 그런 것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회사에서 함께 불평 불만을 토로하면서 친해지는데, 저는 거기에 낄 자리가 없었어요. 사표를 내자 특별한 일도 주지 않았어요.

그러던 차에 하루는 친구들과 모여 바다에 고기를 구워 먹으러 갔어요. 친구들은 모두 자전거 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워낙 바빠서 같이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너무 피곤해서 여행을 혼자서라도 갈 생각이었는데 친구가 고민하는 것을 보고 정 고민되면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어요.

"여보세요?"
"여행가자!"
그 친구였어요. 솔직히 여행간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일단 숨 좀 쉬고 싶었어요.
"그래, 가자. 어디 갈까?"

그래서 친구와 본격적으로 여행 준비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만나서 매일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캔맥주만 마시고 잡담만 할 뿐, 여행 계획은 도무지 나오지 않았어요. 저는 강원도 내륙이 가고 싶었어요. 그러나 친구는 동해안을 돌고 싶어했어요. 사실 동해안을 돈 후에 내륙으로 가도 상관이 없었어요.

"누나 광복절 있는 주에 내려온단다."
"예?"
안 좋은 변수가 두 개 겹쳤어요. 원래는 광복절 있는 주에 적당히 핑계를 대서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누나가 그때 내려오고, 비행기표도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날짜를 옮겨야 했어요. 부득이하게 한 주를 앞당겨야 했고, 항상 지지부진하던 여행 계획도 보다 빨리 세워야 했어요. 금전적 부담이 커서 여행을 가지 말까 했지만, 친구가 정말 여행을 가고 싶어했고, 저도 그 친구와 반드시 한 번 함께 여행을 가보고 싶어서 그냥 한 주 앞당겨서 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일단 여행을 정상적으로 가려면 월차를 반드시 받아야했어요. 이미 월차 한 번을 지각 한 번 해서 잘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필사적으로 회사에 일찍 나갔어요. 잠을 자더라도 회사에서 잔다는 일념으로 밤을 새서라도 회사에 나갔어요. 그래서 드디어 8월 월차도 받아내었어요.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어요. 이제 남은 것은 여행 계획. 여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여행 계획이 없었어요. 그냥 부산으로 갔다가 서울에서 돌아온다는 것밖에 없었어요. 매일 진지하게 둘이 나름 준비를 했지만, 만나면 그냥 잡담만 하고 신세한탄하다가 돌아왔어요. 그러다 내린 결론은 일단 부산에서 무박으로 관광하고 바로 강릉으로 올라가서 강릉을 구경한 후 내륙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서울을 잠깐 보고 귀향하는 것이었어요.

"너가 일주일 앞당겨서 일정이 완전 촉박해졌잖아."
"그럼 무단결근해 버릴까? 어차피 나갈 날이 코앞인데..."
"야, 해버려!"

해버려...
해버려...

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었어요.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무단결근을 할 마음이 선뜻 서지는 않았어요. 계속 이 ‘하루’ 때문에 망설이고 여행 계획은 부산-동해안-서울이라는 막연한 계획만 남은 상태에서 8월 7일 목요일 아침이 밝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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