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제주도

제주시 제주목관아 - 탐라 고난의 근원이자 수탈의 중심

좀좀이 2014. 8. 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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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 옆에는 제주목관아가 있어요.


예. 있어요.



제주목관아가 복원된 지는 꽤 외었어요. 하지만 여기는 이번에야 가 보았어요.


여기는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아요. 하지만 정말 존재감 없는 곳이었어요. 관덕정은 제가 어렸을 때 제주도에 있는 유일한 보물인데다 중요한 버스정거장이었기 때문에 존재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제주목관아'라는 것 자체가 어렸을 때 없었던 데다 관덕정을 가도 제주목관아를 들어가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관덕정에 가는 이유는 관덕정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친구를 만나 탑동으로 빠지거나 동문로터리 근처에서 놀기 위해서였거든요.


제주목관아지 발굴작업 및 복원작업은 제주도 지방뉴스에도 간간이 보도되었어요. 발굴했는데 유물들이 나왔다고 엽전과 도자기 조각을 보여주기도 했고, 발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요. 하지만 역시나 별 관심 없었어요. 워낙 여기저기 사방팔방 관광지가 많이 개발되던 시기라서 이것도 그냥 그런 관광지 개발의 한 종류처럼 느껴졌거든요. 오히려 이 즈음에 실시된 관덕정 복원사업이 더 관심있었어요. 관덕정 내부에 벽화가 있다고 하는데 제가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는 벽화가 다 훼손되어서 벽돌 그림 자국 정도 남아 있었거든요.


그래서 복원된 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어요. 그 앞만 많이 지나다녔지요. 친구들을 만나는 곳이 대체로 제주시청이다보니 시청 근처에서 놀고 버스 타고 집에 갈 때 관덕정 앞을 지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거든요.


그러다 이번에 여기도 한 번은 가 보아야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가 보았어요. 참고로 제주도민은 입장료가 없답니다.




내부에는 연못이 있었어요.


이곳 자체가 인상깊다기보다는 여기에 전시된 사람 모형들과 설명이 더 인상깊었어요.









이런 모형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어요.



바로 진상품을 다루던 곳이었죠. 진상품 모형을 만들어놓은 것도 인상적이었고, 제주도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여기야말로 조선시대 제주도민들이 느낀 고통의 만악의 근원 같은 곳이기도 하거든요.


구역마다 말 목장을 설치해 말을 기르게 했고, 이렇게 기른 말들은 제주 목사가 직접 관리 및 감독해서 임금이 탈 말로 분류한 뒤 배로 한양까지 운반시켰어요. 문제는 말을 키우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닐 뿐더러 말이 죽으면 자비로 새로운 말을 채워넣어야 했어요. 흑우도 이런 식이었지요.


감귤이야 유명한 진상품인데, 이게 제주도에서만 나는 특산품이라 왕실의 집중적인 요구 품목이었어요. 문제는 낙후된 조선의 기술로는 한양까지 올라가는 동안 많은 양이 썩어서 없어져버린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덜 썩게 하려고 댓잎을 깔아보기도 하고 했지만, 위에서 정해진 양은 제주에서 보내는 양이 아니라 도착해야 하는 양이었기 때문에 항상 정해진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을 올려보내야 했어요. 감귤 역시 제주 목사가 직접 관리했지요. 나무에 과실이 몇 개 열렸는지까지 전부 조사했기 때문에 태풍이 와서 낙과가 많이 발생하면 그야말로 최악의 참사가 발생하는 것이었지요.


사슴은 일 년에 수백 마리를 사냥해야 할당된 양을 채울 수 있었는데, 문제는 한라산이 눈이 많이 내리고 늦게 녹기 때문에 사냥이 가능한 시기는 농번기 밖에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여기에 제주도만은 대동법 시행 예외지역으로 분류되었어요. 쌀이 나지 않아서 대동미를 낼 수 없었다는 이유였는데, 이 보다는 저런 특산품을 쉽게 얻으려는 왕실의 욕심이 더 컸다고 봐야할 거에요.


이렇게 중앙 정부에서도 열심히 등골을 빨아먹는데 탐관오리들이 활약하기도 매우 좋은 곳이었어요.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다보니 뭔 짓을 해도 이게 중앙정부의 귀에 들어갈 일이 없었으니까요.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살기 힘든 땅이었지만 털어먹는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도 없는 땅이었던 것이었지요.


그렇다고 평화롭기나 했냐면 그것도 아니었어요. 왜구들이 툭하면 쳐들어오는 곳이다보니 조선시대에 제주도에서는 여성들도 예청 (女丁) 이라고 군역을 져야 했어요.




망경루에서 본 제주목관아와 제주시에요.



한쪽에는 비석들이 이렇게 늘어서 있었어요.


내부를 둘러보니 복원을 잘 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조선시대때 제주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수탈을 당하고 힘든 삶을 살아야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타지역 사람들을 만나보면 제주도가 옛날에 쌀이 생산되지 않아서 살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육지 기준으로는 '쌀이 없다 = 먹고 살 것이 없다' 가 대체로 맞으니까요. 하지만 제주도는 조선 시대때 쌀이 없어서 힘든 것보다 저런 수탈이 더 큰 문제였다는 것을 알려주어서 잘못된 제주도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주는 공간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여기는 타지역 사람들은 유료입장인데, 그렇다면 여기 들어오는 타지역 사람들은 어느 정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일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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