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2부 11 -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운탄고도1330 3길 코스 석항삼거리, 태백선 간이역 석항역, 석항 트레인 스테이

좀좀이 2023. 3. 1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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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해발 400m입니다'라는 문구가 있는 초록색 표지판이 나왔어요.

 

강원도 영월 해발 400m 표지판

 

"여기 아직 영월 아니야?"

 

제가 걷고 있는 길은 아직 영월군이었어요. 석항역은 영월군에 있는 기차역이에요. 예미역은 정선군에 있는 기차역이에요. 아직 석항역까지 가지 못했어요. 그런데 해발 400m 안내 표지판 맨 아래에는 '정선국토관리사무소장'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진짜 앉아서 조금만 쉬고 싶다.'

 

벌써 다리와 발이 참기 힘들게 아팠어요. 신발이 문제였어요. 신발이 여전히 길들지 않아서 발 볼이 너무 조였어요. 끈을 많이 풀어서 신어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신발 때문에 발이 아프니 걸음걸이가 이상해져서 다리도 무리가 많이 갔어요. 운탄고도1330 3길 망경대산 등산로 자체는 안 힘들었지만 중간에 급경사 샛길인 만경대 가는 길과 망경대산 정상 올라가는 길을 갔다 왔어요. 이 때문에 시간도 더 걸렸고 발의 통증이 매우 심해졌어요.

 

"조금만 참자."

 

조금만 더 참기로 했어요. 석항삼거리에는 슈퍼마켓이 있었어요. 지도를 보면 중동의용소방대 맞은편에 석항할인마트가 있었어요. 만약 석항할인마트가 문을 닫았다면 거기에서 조금 더 서쪽으로 걸어가면 세븐일레븐 편의점이 있었어요. 석항할인마트에서 세븐일레븐 편의점까지 거리는 200m 채 안 되었어요. 석항할인마트에서 서쪽 방향은 예미역 방향과 반대였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을 고려해서 2배로 계산해야 했어요. 그래도 400m 정도면 괜찮았어요. 정 안 되면 세븐일레븐 편의점 앞에 주저앉아서 음료수 마시며 신발 벗고 조금 쉬기로 했어요. 제일 좋은 것은 석항할인마트가 문을 열고 장사중이고 가게에 앉을 공간도 있는 거였구요.

 

발의 통증을 참아가며 걸어갔어요.

 

"저거 석항트레인스테이다!"

 

석항트레인스테이

 

앞쪽에 2층으로 쌓여 있는 파란색 열차가 보였어요. 석항역에 있는 이색 숙박시설인 석항트레인스테이였어요.

 

"힘내자!"

 

석항트레인스테이가 보인다는 것은 석항삼거리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석항삼거리에서 석항할인마트 가서 음료수 사서 마시며 쉬다가 태백선 간이역 석항역과 석항트레인스테이 구경하고 예미역으로 가면 되었어요.

 

석항역 철도 신호등

 

석항역 철도 건널목이 나왔어요. 철도 건널목 위로 올라갔어요.

 

석항역 철도 건널목

 

철도 건널목 건물에는 '상동가도'라고 적힌 문패가 붙어 있었어요. 철도 레일은 윗면이 반들반들했어요. 기차가 수시로 다니는 철도였어요. 기차가 계속 다니니까 녹이 슬어도 기차와의 마찰로 다 벗겨져서 녹이 슬어 있을 틈이 없었어요. 실제 이 철도는 아주 잘 사용되고 있는 철도에요. 태백선 철도로, 영월역을 지나 예미역을 거쳐 태백시 태백역, 동해시 동해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이 철도를 달려요.

 

"여기에서 석항역 어떻게 가야 하지?"

 

철로 한가운데에서 석항역과 석항트레인스테이가 있는 오른쪽을 바라봤어요. 길이 보이지 않았어요.

 

'돌아가라고 하나 보네.'

 

철도 건널목을 건넜어요. 가던 방향으로 더 걸어갔어요. 2022년 10월 20일 12시 8분, 드디어 석항삼거리에 도착했어요.

 

운탄고도1330 3길 석항삼거리

 

 

길을 건넜어요. 운탄고도1330 3길을 가려면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했어요. 저는 당장 운탄고도1330 3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석항할인마트부터 가기로 했어요. 석항할인마트는 여기에서 왼쪽으로 가야 했어요.

 

강원도 고추

 

강원도 고추 건조

 

밖에서 풋고추를 말리고 있었어요.

 

"풋고추가 왜 이래?"

 

풋고추에 하얀 가루가 많이 붙어 있었어요. 고추 볶음을 말리는 줄 알았어요. 풋고추를 그대로 말리는 것이 아니라 뭔가 해서 말리고 있었어요.

 

석항할인마트로 갔어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어요.

 

의자가 있다.

의자가 있다.

의자가 있다!

 

테이블도 있다!

 

의자에 앉아서 쉴 수 있었어요. 살았어요. 의자에 앉아서 푹 쉬면서 발 통증을 가라앉힐 수 있는 곳이었어요. 석항할인마트 안으로 들어갔어요. 코카콜라 500mL 한 병을 사서 나왔어요. 의자에 앉자마자 신발을 벗었어요. 신발을 벗는 것만으로 통증이 푸른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이었어요. 코카콜라를 천천히 마셨어요. 깔깔한 탄산이 목구멍을 시원하게 긁어줬어요.

 

진짜 끝났습니다.

운탄고도 1330 3길, 90%는 끝났습니다.

예, 90% 끝났다고 해도 됩니다.

 

긴장이 풀어졌어요. 운탄고도1330 3길은 아직도 조금 남아 있었어요. 카카오맵으로 석항할인마트부터 예미역까지 도보 이동으로 검색해보면 3.7km 남아 있다고 나왔어요. 3.7km 정도는 아무리 지금 힘들어도 걷는 축에도 못 들어갔어요. 석항역과 석항트레인스테이 구경하는 데에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진짜 많이 잡아야 2시간이었어요. 초행길에 구경하면서 걸어갈 거니까 1시간 안에 끊기는 어려울 거였어요. 그래도 평지에 딱히 어려울 게 없는 길이라 많이 잡아야 2시간이었어요. 오직 완주에만 신경쓴다면 진짜로 1시간에 끊을 수 있는 거리였어요.

 

마음이 편했어요. 급하게 걷지 않아도 되었어요. 망경대산에서 벗어났고 평지만 남았어요. 이런 길이라면 지금 안 쉬고 걸어도 충분히 걸을 수 있었어요. 아직 길이 꽤 남아 있기는 했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이미 운탄고도1330 3길 완주했어요. 어떻게 해도 길은 다 걸을 거에요. 예미역에서 태백역 가는 기차는 어떻게든 탈 수 있어요. 설마 4km 남짓한 길을 못 걸어서 길거리에서 밤을 새고 다음날 일정도 망하는 대참사가 발생하겠어요. 그럴 일이 발생할 확률은 하나도 없었어요.

 

주변 풍경을 둘러봤어요.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석항리

 

"여기 사람 사는 동네 맞아?"

 

석항할인마트 앞 의자에 앉아서 콜라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차 몇 대 지나간 게 전부였어요.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였어요. 동네 자체가 아주 고요했어요. 제가 콜라 마시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릴 지경이었어요.

 

"여기에 밥 먹을 곳 있으면 먹고 가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카카오맵을 보니 석항역 근처에 식당이 몇 곳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식당 중 괜찮아보이는 곳 가서 점심을 먹고 예미역으로 가기로 했어요.

 

강원도 운탄고도1330 3길 석항역 식당가

 

응, 아직 고생 안 끝났어.

너는 더 고생해야 해.

그래야 좀좀이니까.

그래야 너의 여행기가 재미있으니까.

 

그딴 거 집어치우라고!

 

어째서 모든 식당이 오늘이 정기휴일이란 말인가!

오늘 목요일인데!

 

서울에서 연남동, 문래동 같은 곳은 식당과 카페가 월요일에 휴업해요. 최근 들어서 바뀐 문화 중 하나가 식당에 브레이크 타임이 생겼고, 번화가에 따라 일요일에 쉬지 않고 영업하는 대신 월요일에 쉬는 식당과 카페가 많아졌어요. 이건 이해해요. 일요일에 놀러 나오는 사람 많으니까 일요일에는 장사하고, 대신 놀러나오는 사람 별로 없는 월요일에는 정기휴일로 쉬는 거니까요. 사람 많은 일요일에 놀고 사람 없는 월요일에 영업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에요.

 

2022년 10월 20일은 목요일이었어요. 목요일에 왜 식당이 전부 정기휴일이라고 쉬고 있는지 이해불가였어요.

 

'그냥 다 닫은 거 아냐?'

 

불현듯 떠오른 생각. '정기휴일'이라고 팻말을 붙여놨지만 정기휴일이 아니라 주구장창 쉬고 있는 식당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어요. 문 닫고 영업 안 하니까 '금일휴일' 대신 '정기휴일'이라는 팻말을 붙여놨을 뿐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었어요. 여기 와서 사람 한 명 못 봤으니까요. 어쩌면 이쪽으로 놀러오는 사람들이 있을 주말에만 잠깐 영업하거나 관광객이 많이 오는 시즌에만 잠시 영업하는 식당들일 수도 있어요.

 

석항역 주변 식당들이 왜 목요일에 전부 정기휴일이라고 붙여놓고 영업을 안 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몰랐어요. 사람이 있어야 물어볼 텐데 사람이 없었어요. 중요한 것은 뭐가 어쨌든 2022년 10월 20일 목요일에 문 열고 장사하는 식당이 단 한 곳도 없었다는 사실이었어요.

 

'밥은 태백 가서 먹어야겠네.'

 

아침 굶었어요. 점심도 굶는 거 확정되었어요. 석항역 식당이 다 닫았으니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곳은 제일 가까운 곳이 예미역 식당가였어요. 그런데 예미역 식당가는 예미역과 거리가 있어요. 예미역 역전은 다 망했고, 예미역과 다른 쪽으로 조금 많이 걸어가야 식당가가 나와요. 예미역 식당가는 지난 여름에 예미역 근처 갔을 때 못 가본 곳이기는 했지만 점심 먹으러 거기까지 걸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태백 물닭갈비로 가겠습니다.

 

예미역에서 거리가 먼 예미 식당가를 찾아가느니 차라리 예미역 가서 쉬다가 태백으로 넘어가서 태백시에서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으로 태백 물닭갈비를 먹기로 했어요. 식당이 문 다 닫았는데 어쩌겠어요. 예미까지 가서 한참 걸어가서 밥 먹고 예미역 가면 기차 시간까지 예미역 가기 애매해질 위험이 있었어요. 그럴 바에는 속 편하게 태백시 넘어가서 태백시 명물 물닭갈비를 먹는 게 나은 선택이었어요.

 

영월 운탄고도 이정표

 

"이건 쓸 데 없이 여기 있네."

 

운탄고도1330 이정표를 보자 망경대산에서 겪은 일이 떠오르며 짜증이 다시 올라왔어요. 있어야할 망경대산에는 없고 이런 거 없어도 카카오맵 보고 길 찾아가도 되는 석항리에 있었어요.

 

"이 텃밭에도 배추를 키워?"

 

강원도 영월 배추 텃밭 농사

 

조그만 텃밭에서 배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어요.

 

'강원도 남부는 배추에 진심인 동네구나.'

 

강원도 남부 여행에서 배추는 진짜 많이 봤어요. 정선군 함백에 갔을 때 멀리 산꼭대기에 있는 드넓은 배추밭을 봤어요. 태백에서도 드넓은 배추밭을 봤어요. 강원도 남부 도처에서 배추는 아주 많이 보였어요. 과장 조금 보태면 지난 여름부터 강원도 남부 여행 몇 번 오면서 배추만큼은 제가 평생동안 본 배추만큼 봤어요. 강원도 남부는 배추에 진심인 지역이었어요.

 

석항역 입구

 

 

석항역 표지판이 나왔어요.

 

석항역

 

석항역에 도착했어요.

 

"여기는 역전 건물이 특이하네?"

 

석항역 역전

 

석항역 역전 건물을 특이하게 생겼어요. 과거에는 모두 가게였을 거에요. 지금은 민가로 사용되고 있었어요. 가게에서 민가로 바뀐 건물이라 그런지 일반적인 가옥과는 살짝 다르게 생겼어요.

 

석항역 조형물

 

석항역 앞 풀밭에는 초승달 조형물이 있었어요. 석항역 초승달 조형물에는 커다란 거미줄이 있었어요. 거미줄이 저렇게 크게 쳐질 때까지 가만히 놔뒀어요. 그래도 다행히 녹슬거나 먼지가 뿌옇게 뒤덮고 있지는 않았어요.

 

"석항트레인스테이 가봐야지."

 

석항트레인스테이 입구

 

 

석항트레인스테이 입구에는 안내문이 있었어요. 안내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어요.

 

Nostalgia 석항 간이역 체험시설

 

Nostalgia 석항 간이역 체험시설은 영월읍에서 국도 38호선으로 10분 거리에 [추억의 간이역] 테마로 석항역에 조성된 열차체험시설이다. 국내 최대 저탄장이었던 석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숙박체험과 체험시설에 조성된 간이역 식당에서 탄부들이 즐겨먹던 고추장 연탄삼겹살을 즐길 수 있다.

일상의 편안하고 아늑한 잠자리를 벗어나, 좁지만 아기자기한 2층 침대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모르는 이들과 알 수 없는 행선지를 향하는 유랑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석항역을 비롯한 인근 거리와 골목에는 과거의 향소를 불러일으키는 재미있는 간판과 벽화가 조성되어, 늦은 걸음으로 30분정도 거닐면 과거 우리경제의 한 축을 이루던 서민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다.

 

석항 트레인 스테이로 갔어요.

 

석항 트레인 스테이

 

"아무도 없나?"

 

너무 조용했어요.

 

'하긴, 지금은 체크인 시간 아니니까.'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로 미루어보면 지금은 어느 게스트하우스를 가도 조용할 시간이었어요. 게스트하우스는 보통 10시~11시가 체크아웃 시간이고 오후 3시부터 체크인 시간이에요. 손님들이 체크아웃하면 빨리 청소하고 12시에서 1시에 점심을 먹고 쉬어요. 그러다 3시부터 슬슬 체크인을 받기 시작해요.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3시에 칼 같이 오는 손님은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에요. 손님 오는 거야 두서없이 오지만 대부분은 짐을 숙소에 맡기고 놀러나가서 저녁때 들어와서 체크인하거든요. 호텔은 잘 모르겠지만 게스트하우스는 대체로 이래요. 호텔도 점심에 체크인은 받아주는 곳도 있지만 안 받아주는 곳도 있을 거에요. 점심시간은 직원들이 객실 정리하고 쉬는 시간이에요.

 

이제 12시 반이 되어 가고 있었어요. 어디를 가도 사람 없을 시간 맞았어요. 동네에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여서 왠지 문 닫은 거 같기는 했지만 섣부른 판단을 내릴 시점은 아니었어요.

 

석항역 숙소

 

석항 트레인 스테이는 열차를 2층으로 쌓아놓은 구조였어요. 1층은 한반도행, 2층은 별마로행이라고 되어 있었어요.

 

석항리 역사

 

석항 트레인 스테이에는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석항역과 석항리 역사 안내판이 있었어요. 안내판에 적혀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어요.

 

1923 상동광업소 개광

1935 영월광업소 개광

1950.02.08 연상국민학교 1회 졸업생 배출

1957 함백광업소 개광

1957.03.01 석항역 보통역 개설

1966 연탄파동

1970 옥동광업소 개광

1972 영월광업소 폐광

1973 연상초등학교 23회 최다 졸업생 배출 92명

1974 석항출장소 설치

1975 석항역 이용객 폭증, 연 최대 강차인원 139,241명 기록

1980 영월광업소 재개발

1981 석항역 이용객 폭증, 연 최대 승차인원 153,562명

1983.06 대한석탄공사 석항비축장 개설

1986 상동면 석항리에서 중동면 석항리로 행정구역 변경

1987.10.13 석탄산업 합리화 시행

1989 옥동광업소 폐광, 영월광업소 폐광 기록

1991.01.01 석항역 소화물 취급 중단

1992 상동광업소 채굴 중단

1995.10.29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1998 석항출장소 폐지

2014 석항 트레인 스테이 1기 운영

2018 석항 트레인 스테이 재개장 2기 운영

 

1983년에는 정부종합저탄장 조성으로 탄광산업과 관련한 많은 노동자가 발을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몰려들어 70~80년대 석항은 최고의 호황기를 누렸다. 1980년대에는 연간 유동 인구가 29만명을 넘었다. 그러다 보니 석항 연상국민학교나 화원국민학교의 학생 수가 700명이 넘어 산골의 조그마한 학교 교실은 콩나물 시루를 연상할 정도로 비좁았다.

 

강원도 남부 광산지역에서 채탄된 연 200만톤의 석탄이 석항으로 모였다. 석탄을 한곳으로 모으는 곳을 저탄장이라고 하는데, 석항의 저탄장은 전국 최대의 규모를 자랑했었다. 1923년 상동광업소가 문을 열었고, 1957년 석항역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청량리역에서 태백선 열차를 타고 밤늦게 도착한 광부들이 석항역을 가득 메웠으며 이 시기에 평화여관, 유풍여관, 삼흥하숙, 강원여인숙, 산천하숙 등 총 7개의 숙박시설이 생기고 현재까지도 석항역 앞에서 영업 중인 역전미담을 비롯한 삼진다방 등 5개의 다방과 요식업소들이 성황을 이루었다.

 

1980년 이후 중국산 중석의 대량수입과 정부의 석탄합리화 사업으로 1990년대 들어서며 상동광업소를 시작으로 대부분의 탄광들이 문을 닫게 되었고 많은 광부들이 석항을 떠났다. 이후 급격한 인구 감소, 행정구역 변경, 공공기관 이전으로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이제 석항 트레인 스테이가 있는 마을로 새롭게 태어나 과거에도 그랬듯이 새로운 사람과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안내문을 읽으며 씁쓸해졌어요.

 

석항 트레인 스테이 안내

 

윗층에는 카페로 가는 계단이 있었어요.

 

"카페 영업중이면 커피 한 잔 마시고 가야지."

 

2층으로 올라갔어요.

 

"뭐야?"

 

카페도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어요. 카페는 아무리 봐도 하루 이틀 영업을 안 한 모습이 아니었어요.

 

강원도 운탄고도1330 3길 숙소 석항 트레인 스테이

 

석탄의 길 2부 11 -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운탄고도1330 3길 코스 석항삼거리, 태백선 간이역 석항역, 석항트레인스테이

 

석항 트레이 스테이 2층에 있는 석항 트레인 스테이 카페에서 주변을 둘러봤어요. 경치는 매우 좋았어요. 카페가 문을 열었다면 이 좋은 경치 감상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했을 거에요. 그러나 카페가 문을 열고 영업해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구입해서 마시죠. 카페는 영업하고 있지 않았어요.

 

한국 철도 노선 태백선

 

예미역으로 이어지는 태백선을 바라봤어요. 기차가 다니지 않고 있었어요. 기차 없는 철길은 조용했어요.

 

1층으로 아래로 내려왔어요.

 

"에휴..."

 

석항 트레인 스테이 영업 중단

 

유리창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어요.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석항트레인스테이입니다.

2021년 11월 21일~2022년 3월까지 겨울철 시설 동파 문제로 운영이 중단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2022년 더 나은 서비스로 찾아뵙겠습니다.

2021년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며칠?

2022년 10월 20일!

 

저기 나와 있는 운영 중단은 언제까지?

2022년 3월!

 

쓴웃음이 나왔어요. 2022년 3월까지 운영 중단한다는 안내문은 2022년 10월 20일까지도 붙어 있었어요. 2021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계속 영업 안 하고 있었어요. 완전히 폐업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완전히 폐업해서 버려졌다고 보기에는 깔끔했어요. 그러나 잘 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었어요.

 

석항리 풍경

 

운탄고도 운영진들은 이런 걸 원하지 않았겠지.

그러나 맞아.

운탄고도1330 3길이 최고야

 

아주 종합선물세트잖아.

영월의 현실 종합선물세트.

이 길만 걸으면 영월의 현실을 그대로 다 알겠다.

 

석탄 산업은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무너졌어요. 그나마 영월을 먹여살리는 것은 관광업이에요. 관광업도 몇 곳만 잘 되고 나머지는 영 시원찮은 편이에요. 새로 개발해서 잘 되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좀좀이의 여행 블로그를 10년 넘게 운영하고 있어요. 블로그를 10년 넘게 운영하면서 매우 많은 국내여행글을 봤어요. 그 중 영월 여행은 항상 여행지가 거기서 거기였어요.

 

강원도 영월군에는 매우 많은 탄광촌이 있었어요. 이 중 사라져버린 곳은 제쳐놓고 사라져가는 곳만이라도 관광산업으로 받쳐보려고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아요. 산꼬라데이길 잘 되지 않았고, 석항역 트레인 스테이 역시 잘 되지 않았어요. 탄광은 한 번 크게 빛나보기라도 했지, 영월의 몰락한 탄광지역 회생을 위한 새로운 관광자원 개발 투자는 제대로 빛을 보지도 못하고 근근이 연명하나 싶더니 역병 사태로 완전히 붕괴했어요. '영월의 과거 탄광지역은 뭘 해도 밑빠진 독 물붓기'라는 영월의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나봐요.

 

강원도 영월군 관광산업

 

볼 빨간 사춘기가 불렀습니다. 나만 안 되는 연애.

좀좀이가 불렀습니다. 나만 안 되는 영월.

영월군이 불렀습니다. 나만 안 되는 관광자원 개발.

 

단양도 되고 의림지 원툴 제천도 되고 천하에 볼 거 없는 원주도 되는데 왜 나 영월만 안 되는데!

영월의 절규.

 

이런 건가...볼 빨간 사춘기의 나만 안 되는 연애 노래라도 들으면서 돌아다녀야 할까?

 

석항역과 석항 트레인 스테이를 보며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어요. 이렇게 노력해도 안 되고, 극복 불가능한 거대한 사태도 덮치니 답이 없고 체념해버렸다고 해도 이해할 만 했어요.

 

운탄고도1330이 잘 된다면 영월 동부 몰락한 탄광지역도 살아나...

 

그 전에 저 이정표부터 어떻게 좀 하지?

 

운탄고도1330을 응원하고 영월군 동부 몰락한 탄광 지역도 살아나기를 바란다고 속으로 생각하려다 바로 조금 전까지 걸었던 운탄고도1330 3길 망경대산 등산로 이정표가 떠오르자 또 인내심이 우지끈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운탄고도1330 3길 망경대산 등산로 이정표는 용서가 안 되었어요.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이 따위로 해놨는데도 올래?'하고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는 줄 알았어요.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석항리 산책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석항리 마을 사진

 

다리를 건넜어요.

 

강원도 여행 사진

 

운탄고도1330 3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석항리 운탄고도1330 3길 여행

 

배추밭이 보였어요.

 

강원도 배추밭

 

'상동은 진짜 불쌍하네.'

 

예전에 사회 시간에 태백산공업지역 배우면서 '상동 중석'이라고 배웠었어요. 이후 '상동 텅스텐'으로 바뀌었어요. 강원도 영월읍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상동읍은 한때 텅스텐 광산으로 매우 잘 나가던 지역이었어요. 그러나 중국산 텅스텐이 수입되면서 상동읍 중석리에 있던 텅스텐 광산이 폐광했고, 상동읍은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읍으로 몰락했어요.

 

2022년 초가을에 상동읍이 너무 궁금해서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으로 직접 가봤어요. 충격적이었어요. 먼저 상동읍은 영월군이지만 영월읍내와 멀어도 너무 멀고 교통도 매우 나빴어요. 오히려 태백시에서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고, 태백시 생활권이었어요. 그리고 상동읍은 지역 전체가 폐가, 폐건물이었어요. 인류 멸망 다음날을 보는 줄 알았어요. 게다가 상동읍은 영월군의 관심 밖 소외지역 같아보였어요. 그렇다고 해서 태백시가 상동읍 챙길 리 없었어요. 행정구역도 다르지만 태백시도 철암, 함태 등 소멸 위기 지역에 챙겨야할 지역이 수두룩하거든요.

 

석항역 역사에 나온 상동광업소는 탄광이 아니에요. 텅스텐 광산이에요. 한때 사회 시간때 '상동 텅스텐'으로 배웠던 바로 그 상동이에요. 그러나 지금은 철저히 소외되고 사라져가는 지역이었어요. 영월도 상동읍이 사라져가는 것을 막고 싶기는 할 거에요. 하지만 당장 상동읍은 고사하고 산솔면 석항역 하나 못 살리고 있는 게 영월의 현실이었어요. 망경대산 기준으로 영월읍내 방향인 모운동 붕괴도 간신히 막고 있는 영월인데 완전히 태백시 옆동네나 마찬가지인 상동읍을 무슨 여력이 있다고 챙겨요.

 

석항천

 

석항천은 메말라 있었어요.

 

한국 여행

 

한국 걷기 여행

 

'잠깐, 석항 우체국 있으면 가서 나한테 엽서 한 통 부칠까?'

 

석항우체국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영월군이 석항역 일대를 살려보려고 노력했지만 매우 잘 안 된 이유는 너무 간단했어요. 석항역은 무배치 간이역이에요. 간이역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폐역이에요. 접근성이 안 좋은데 사람들이 와봐야 얼마나 오겠어요. 석항역으로 오려면 영월읍내에서 아주 드물게 있는 버스 타고 오거나 예미역에서 오는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예미역에서 내려서 4km만 걸으면 올 수 있어요. 그런데 4km 걸어와야 한다고 하면 보통은 잘 안 가죠.

 

예미역은 또 갈 지도 몰랐어요. 이번에 가면 아주 오랫동안 다시 갈 일이 없겠지만요. 그래도 여객업무를 하는 기차역이기 때문에 가려고 하면 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반면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석항리는 갈 일이 앞으로 또 있을지 모를 예미역에서 다시 4km 남짓 되는 길을 걸어와야 했어요. 이 정도면 다시 올 확률이 거의 없을 거였어요. 운탄고도1330 3길을 다시 걸으러 오지나 않으면 올 일이 없어보였어요.

 

그래서 석항우체국이 있으면 가서 제게 엽서 한 통을 부치기로 했어요. 석항 소인이 찍힌 엽서라면 나름 진귀한 엽서가 될 거였어요.

 

"여기 우체국 있나?"

 

카카오맵으로 석항역 근처 우체국을 찾아봤어요. 석항우편취급국이 있었어요. 뒤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어요. 석항우편취급국으로 갔어요.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석항우편취급국

 

 

셔터가 내려가 있었어요. 안에 직원분이 계셨어요. 직원분께 인사드린 후, 죄송하지만 운탄고도1330 3길 걷는 중에 엽서 한 통 부치고 싶어서 왔다고 말씀드렸어요. 혹시 우편엽서 있냐고 여쭈어봤어요. 직원분께서 우편엽서는 이곳에 없다고 대답하셨어요.

 

우체국에 우편엽서가 없다.

 

처음 알았어요. 우편엽서 구입할 일이 없어서 우체국에 가서 우편엽서 있는지 알아볼 생각조차 안 한 지 오래되었어요. 예전에는 어느 우체국, 우편취급국 가도 우편엽서를 다 판매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어요. 우편엽서가 없는 우체국, 우편취급국도 여러 곳이었어요. 이상하지 않았어요. 당장 저도 우체국 가서 우편엽서를 구입해서 남에게 보내는 일이 없는데요.

 

다시 운탄고도1330 3길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멍멍멍!

 

개가 저를 보며 사납게 짖어대었어요. 개를 봤어요.

 

강원도 개줄

 

이것이 바로 강원도의 혁신

강원도의 개줄!

 

개 목에는 개줄이 묶여 있었어요. 개줄은 위쪽에 길게 묶여 있는 철사줄에 매여 있었어요. 개는 철사줄을 따라 왔다갔다 하며 저를 보고 짖어대었어요.

 

"견성교육에 매우 좋겠는데?"

 

개를 가만히 가둬놓거나 묶어놓으면 개 성격이 완전히 파탄나요. 저렇게 개가 알아서 왔다갔다하면서 움직일 수 있게 해주면 개의 성격 교육에 매우 좋을 거에요. 멀리 뛰어가고 도망가지는 못 해도 개가 운동하고 적당히 달릴 만큼의 거리는 되었어요. 아주 예전에 '강원도의 개줄'이라고 사진으로만 봤는데 영월 와서 실제로 봤어요.

 

운탄고도1330 3길로 되돌아왔어요. 석항천을 따라 걸어갔어요.

 

강원도 영월군 석항천 운탄고도1330 3길

 

징검다리 2개가 나왔어요.

 

강원도 석항천 징검다리

 

이 다리는 1개만 건너야합니까, 2개 다 건너야합니까?

 

저는 이미 답을 알고 왔어요. 어떤 사람이 운탄고도 3길을 다 걷고 나서 쓴 글에 이 징검다리 2개가 나왔어요. 아무 이정표나 표시가 없기 때문에 알아서 선택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고, 답도 나와 있었어요. 정답은 맨 앞에 있는 것만 건너고 두 번째 긴 징검다리는 건너면 안 되었어요.

 

답지를 보고 왔지만 굳이 답지를 안 보고 와도 대충 눈치껏 풀 수 있는 문제였어요. 먼저 징검다리 1개를 건너면 야자 매트가 깔려 있었어요. 야자 매트가 깔린 산책길이 운탄고도1330 3길일 확률이 높았어요. 두 번째로 긴 징검다리 건너가면 저탄장 바로 옆으로 가요. 운탄고도1330 측에서 아무리 사람들 모두 쌍욕을 퍼붓는 두릅산 하산로로 내려가도록 운탄고도1330 3길을 설정했다 하더라도 저탄장 바로 옆을 걷게 만들지는 않았을 거였어요. 저탄장은 넘어갈 방법도 없고 저탄장 옆으로 길이 계속 이어지지도 않았거든요.

 

결정적으로 여기는 카카오맵, 네이버지도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정말 모르겠으면 카카오맵 로드뷰 한 번 켜보면 끝이었어요.

 

징검다리 1개를 건넜어요.

 

강원도 영월 석항 징검다리

 

건너야 하는 작은 징검다리는 징검다리보다는 돌무더기에 가까웠어요.

 

"정선이다."

 

운탄고도1330 3길 영월군 정선군 경계

 

2022년 10월 20일 12시 58분, 운탄고도1330 3길 영월군 - 정선군 경계까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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