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2006)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 03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

좀좀이 2011. 11. 15.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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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상황이란 다름아닌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시간이 많이 남았는지 벌써부터 시간을 보낼 생각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불과 30분만에 시장을 거진 다 둘러볼 수 있었다.  골목골목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그 '풍기 인삼시장'이라는 곳만은 얼추 본 셈이었다.  이제 무엇을 하지?  무엇을 하지?


돈만 있다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내게 돈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내 수중에 있는 돈은 아무리 탈탈 털어보아야 H군에게서 빌린 3만원 가운데 차비를 제하고 받은 7천원과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2천원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벌써 약간 써서 슬슬 위기가 몰려오고 있었다.  나 혼자라면 왕복 차비가 있고, 돈 7천원 정도 있으면 최소 이틀간은 실컷 놀 수 있다.  나는 먹는 것을 즐기는 체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끽해야 음료수 하나 사서 마시는 정도?  음료수도 한 번이다.  그 다음부터는 물을 받아서 돌아다닌다.  그러나 문제는 H군이었다.  분명히 H군은 최소한 뭔가 점심 겸 저녁으로 먹자고 할 것이었다.  그것도 지역색이 느껴지는 비싼 것으로 먹자고 할 것이었다.  점심 겸 저녁을 먹는 것은 솔직히 2천원 정도로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역색이 느껴지는 것은 그 가격이 만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금전적 위기감이 슬슬 몰려오고 있었다.


일단 다행히도 H군은 점심을 먹자고는 말하지 않았다.  H군이 내게 점심을 먹자고 말하는 것은 H군이 내게 점심을 사주겠다는 말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말이 7천원이지, 애초에 '이왕 내려온 김에'노래를 부르던 H군이 얌전히 풍기에만 있을 리는 만무했다.  더욱이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H군이...솔직히 나도 이제 풍기에서 볼 것을 다 보았기 때문에 걸어서 적당히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문제는 바로 다음날이 시험이라는 점이었다.  다음날 시험을 볼 체력은 남겨두어야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적당히 풍기 안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우고 싶었다.  일하는 사람들 좀 거들어주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과 잡담도 나누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별 수 있나...돈은 H군에게 있었다.  내 주머니에는 찬바람이 아주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에 부석사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H군은 정말 부석사까지 걸어갈 생각이었다.  이제 다시 백수로 돌아갔으니 하루를 놀든 이틀을 놀든 별 차이 없으니 그런 행동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음날 시험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새벽 2시 20분에 있는 열차를 타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버스를 탔다.  차비가 참 아름답게 비쌌다.  풍기에서 부석사까지 2천원이 넘었다!  가격이 이렇게 이쁠 수가 있나...아주 그냥 따귀를 열 번 날려주고 싶은 가격이었다.  그러나 일단 버스를 탔다.  요금이 그렇게 매겨져 있다는데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나는 버스를 타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드디어 부석사에 도착했다.  부석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정말 교과서적인 풍경인 '돌탑'이었다.  산에만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돌탑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이 돌탑을 지나서부터였다.  빗방울이 한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쏴아아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난감한 상황 발생이었다.  하늘은 어둡고 비는 내리고, 돌아갈 수도 계속 구경하기도 참 좋지 않게 되어 버렸다.  하필이면 수학여행을 왔는지 학생들이 떼거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가 일편단심 대량 폭격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잠깐 많이 내리다가 잠깐 그치려고 하다가 하는 식으로 비가 내렸다.  스님께서 다른 분께 우리가 오기 전날에 비가 엄청나게 많이 내렸다고 말하시는 것을 얼핏 들었다.  비가 오니 정말 안 좋은 점은 바로 셔터스피드가 죽어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내가 삼각대 대신 쓰던 H군의 대형우산까지 없어져서 사진을 찍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이 문, 그리고 도랑.  이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비켜주었다.  정말 고마웠다.


-불상들.  이 무렵부터 내 카메라의 배터리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셔터스피드 확보가 안 되다보니 찍은 사진을 또 찍어야만 하는 일이 보통이 되었고, 같은 피사체에 같은 광량, 같은 조리개, 같은 셔터스피드, 같은 구도라도 몇 번씩 찍어서 메모리 카드에 저장해야만 했다.


-돌탑.  이것을 찍기 위해 거의 10분동안 카메라와 씨름했다.  셔터스피드 확보가 되지 않아서 계속 흔들렸다.  그런다고 마땅히 고정을 시킬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사진을 찍을 즈음에는 비가 그쳤지만, 비로 인해 땅은 엉망이었다.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면 지금쯤 내 카메라는 저 세상으로 떠났을 것이다.  그런다고 내가 바닥에 주저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행갈 때 입은 옷을 입고 학교에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비가 오고 나니 두꺼비가 한 마리 나왔다.  이 녀석을 보자 군대 있을 때가 생각났다.  내가 일,이병때 군복무를 했던 대구에는 두꺼비가 유독 많았다.  밤에 이놈들을 밟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만 했다.  나는 군에 있을 때 질리도록 보았지만, H군은 두꺼비를 처음 보게 되어서 매우 신기해했다.  이 두꺼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뭇가지로 툭툭 건드리자 몸이 부풀어오르며 도망가 버렸다.

이것 둘 다 국보이다.  이 절당이 바로 고등학교때 머리 터지게 외워야만 했던 것들 가운데 하나인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저 무량수전 안에서 한 스님이 불경을 외우며 계속 절을 하고 계셨다.  여기에서 H군의 무식하게 큰 카메라가 다시 한 번 단점을 보여주었다.  H군은 아무 생각없이 절을 하고 계신 스님을 촬영하기 위해 망원렌즈로 스님을 조준했다.  그러자 스님께서 절을 멈추시고 H군을 계속 쳐다보는 것이었다.  내가 H군을 말리지 않았으면 스님께서 한 마디 하셨을 것이다.  그 일로 인해 무량수전에서 사진을 많이 찍을 수가 없었다.  스님께서는 계속 H군이 자신을 찍는지 살피셨고, 덩달아 H군과 같이 다니던 나까지 스님의 감시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알고 있었지만, 정말 중요한 것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어떤 동기에서든, 피사체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을 찍으려고 하는 것은 천하에 악독한 짓이다.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솔직히 교과서에서도, 또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에서도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이 나온다.  정말 학교에서 배흘림 양식, 배흘림 기둥, 부석사 무량수전이라는 말을 끔찍할 정도로 많이 들었다.  그러나 표지판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이것이 부석사 무량수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진으로 보면 그나마 그 곡선이 살아나지만, 실제로 보았을 때는 곡선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찬양할 대상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기둥이 어디가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이지?  내 눈이 막눈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 약간의 곡선이 그렇게 찬양할 만한 것일까?  이것보다 훨씬 곡선의 미를 살린 고유건축양식들도 많다.  굽은 나무를 깎지 않고 다듬어서 집의 재료로 사용한 집도 몇 번 보았고, 둥그스런 초가집 지붕이 주는 아름다움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얼핏 보면 평범한 직선기둥에 가까운 이 평범한 건축물이 국보에 교과서에서까지 찬양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지금 사진을 보면 확실히 그 곡선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 가서 보면 거의 느낄 수 없다.  차라리 위의 석불 사진 가운데 가운데 석불이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어쨌든, 부석사에 가서 사진 찍느라 고생했고, 기대했던 산사의 조용함은 전혀 맛볼 수 없었고, 게다가 그렇게 기대했던 무량수전에서 실망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거진 3시간동안 부석사를 돌아다녔다.  그만큼 큰 절이었고, 이것저것 볼 것이 많은 절이었다.  이제 풍기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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