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오늘은 쉬고 다음날 줄파에 갔다가 터키로 갈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론니플래닛에서 나온 Hotel Tehran을 보는 순간 인내심이 끊어졌어요.
"오늘 터키로 넘어가자!"
저와 친구의 의견이 한 번에 맞아떨어졌어요. 여기는 관광이 발달 안 한 정도가 아니라 개발 자체가 안 된 곳. 호텔이라고 나와 있는 곳이 우리나라 여인숙보다도 못하게 생겼어요. 온몸이 땀에 절어 있는데 제대로 샤워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꽤나 큰 문제. 더욱이 친구는 다리에 뭔가 이상한 것이 나서 계속 아프다고 하고 있었어요. 이러저러한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숙소 문제는 분명 큰 문제. 아무나 잡고 '재워주세요'라고 할 수는 없었어요. 더욱이 여기는 아제르바이잔. 1마나트가 1USD도 아니고 1유로에 맞먹는 동네. 아무리 못 사는 동네라 해도 여행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싸게 느껴질 수가 없었어요. 몇 마나트는 몇 유로를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친구나 저나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싫어하는데 당장 씻고 잘 곳이 마땅찮다는 것은 분명 큰 문제였어요. 다른 호텔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 가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어요. 제대로 된 호텔이라면 가격이 엄청나게 비쌀 테니까요.
게다가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나흐치반이 이 정도면 다른 도시들 - 줄파 Culfa, 오르두바드 Ordubad, 샤흐부즈 Şahbuz가 어떨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어요. 론니플래닛이 무조건 맞다는 것은 아니지만, 론니플래닛에서 나와 있는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의 도시들 가운데 볼 것이 가장 많은 곳은 바로 나흐치반. 그 외에 나와 있는 줄파와 오르두바드는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이 세 도시 외의 정보는 아예 없었어요. 단순히 론니플래닛에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인터넷을 뒤져 보았지만 영어로 된 자료조차 없었어요. 무작정 가 보는 것도 여행 중 필요한 자세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남을 때 이야기. 이미 바쿠에서 하루 까먹었어요. 원래는 전날 나흐치반에 와서 줄파에 들어가야 했어요. 원래 오늘 일정은 나흐치반 돌아와서 터키로 넘어가는 것. 뭐가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데 무작정 나흐치반에서 개척자가 되어 보겠다고 시간을 까먹으면 조지아 일정과 아르메니아 일정이 엉망이 되요. 게다가 굳이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서 개척자 놀이 안 해도 당장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서 터키로 넘어가는 방법과 터키에서 조지아로 넘어가는 방법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알려진 게 없어서 론내플래닛에 나와 있는 지도만 믿고 가야 했어요. 터키에서 버스를 타고 바투미로 넘어가는 방법이야 유명하지만 우리가 택한 경로는 '포소프' Posof 라는 곳. 게다가 아르메니아는 e-visa를 발급받아 넘을 계획이었기 때문에 변수가 많았어요. 괜히 나흐치반에서 모험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여행 일정에 영향을 줄만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벌써부터 쓰는 게 아니라 모아놓을 필요가 있었어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람들에게 줄파 가는 방법을 물어보았어요. 그러나 한결같이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터키행 확정.
가게에서 물을 한 통 산 후, 주변 사람들에게 버스 터미널 어디냐고 물어보았어요.
"저 사람에게 물어봐. 1마나트면 데려다 줄 걸?"
사람들이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는 것인지 진짜 진담으로 이야기하는지 분간이 안 갔어요. 사람들이 동양인이 자기들 말 한다고 깔깔 웃어대며 우리들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마땅히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물어보았어요.
"버스 터미널까지 1마나트에 되나요?"
"응. 타."
진담이었구나...
만약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장난친 것이었다면 매우 불쾌해했을 거에요. 그런데 별 반응이 없었어요. 1마나트에 태워준다는 것은 진짜였던 것 같아요.
차를 타고 버스 터미널 앞에 도착했어요.
"너희들 여기 왜 왔어?"
"관광하려구요."
우리들이 원래 어제 와서 줄파 갔다가 오늘 나흐치반 보고 터키 국경 넘으려고 했는데 어제 표가 없어서 오늘 넘어왔고, 줄파에 가려 했으나 어떻게 가는지 몰라서 그냥 터키로 가려고 한다고 하자 아저씨께서 자기 차를 타고 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저씨와 흥정을 했어요. 흥정 결과 버스터미널에서 국경까지는 10마나트, 버스터미널에서 줄파까지는 20마나트, 버스터미널에서 오르두바드까지는 40마나트였는데 아저씨께서 줄파는 나흐치반에서 금방 가는 곳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왕 이렇게 된 거 택시로 줄파까지 갔다가 아제르바이잔-터키 국경으로 가기로 하고 50마나트로 타협했어요. 원래는 위에 적은 가격들보다 조금씩 더 불렀고, 버스터미널까지 간 1마나트도 드려야 하는데 그냥 다 합쳐서 50마나트로 흥정을 마쳤어요.
줄파로 가는 길은 공사중. 도로 포장이 잘 된 구간도 있고, 포장 작업을 하는 구간도 있었어요.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은 편이었어요.
풍경이 아름다웠으나 달리는 차 안에서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어요. 결정적으로 제 카메라에 배터리가 거의 없어서 달리는 차 안에서 풍경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어요.
아저씨께서는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의 상징인 산에 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어요. 산 바로 아래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20마나트. 당연히 안 간다고 했어요. 저 산을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풍경은 매우 신기했어요. 조지아-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이 계속 나타났어요.
그리고 오후 7시 30분 줄파 도착.
줄파에서 찍은 사진은 오직 이거 세 개 밖에 없어요. 줄파는 그냥 산이 많이 보이는 작고 예쁜 도시. 그러나 특별히 볼 것이 있는 도시는 아니었어요. 차로 도시를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내려야할 곳을 찾을 수 없었어요. 정말로 나흐치반보다 더 밋밋한 도시.
기념품을 사고 싶었지만 줄파는 당연하고, '나흐치반 자치공화국' 자체에 기념품이 없었어요. 정말로 슬픈 일. 그 어떤 것도 구할 수 없었어요. 말 그대로 지나가는 도시. 그리고 반드시 머리 속에 있는 기억과 사진만이 남는 도시.
아저씨께서는 우리를 위해 기념품 파는 가게를 찾아 돌아다니셨지만 기념품을 파는 가게는 없었어요. 그래서 줄파에서 나왔어요.
아저씨께서는 차를 이상한 방향으로 돌려 달리시기 시작하셨어요.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갈래?"
아저씨께서는 이상한 방향으로 차를 몰며 우리들에게 자기 집에 와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둘 다 현지인 집에 신세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했어요. 아저씨께서는 재차 몇 번 권유하셨으나, 우리들은 비자 만료일 때문에 빨리 국경을 넘어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며 거절했어요. 비자 만료일 때문이라고 하자 더 이상 우리들을 자기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갑자기 길이 매우 좋아지고 풍경도 신경쓴 흔적이 보이는 곳이 나타났어요.
"저거, 이란 국경."
이 아저씨, 센스 있으시군요!
줄파는 아제리인들에게 분단의 상징. '아제르바이잔'이라는 나라에 사는 아제리인들보다 이란에 사는 아제리인이 훨씬 더 많아요. 그러나 국경선이 이상하게 그어져 있어서 많은 아제리인들이 사는 남아제르바이잔 지역은 현재 이란 북부이고, 아제르바이잔은 아제르바이잔 본토와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으로 분단되어 있어요. 줄파는 원래 한 개의 도시였지만 국경선이 이상하게 그어지면서 아제르바이잔쪽은 줄파, 이란쪽은 졸파로 갈라졌어요. 국경을 넘어가면 바로 이란의 국경도시인 졸파.
"저거, 호메이니!"
이란 국경이 매우 잘 보였어요. 정말로 아야톨라 호메이니 사진도 잘 보였어요. 참고로 저 국경 - 아제르바이잔 나흐치반 자치공화국 줄파 국경은 국경 넘어가는데 엄청 오래 걸린다고 악명이 자자한 국경이에요. 절대 차로 넘어가지 말라고 하는 국경이에요. 국경 심사를 까다롭게 해서 넘어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차로 넘어가면 그냥 시간이 몇 시간 걸리는 국경이래요. 어느 쪽에서 질질 끄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아제르바이잔 들어왔을 때 조지아 쪽으로 나가려는 트럭 행렬을 보았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 쪽에서도 분명히 시간을 질질 끌 거에요.
아저씨께서는 자기 아내가 아파서 병원에 가기 위해 이란에 종종 간다고 하셨어요. 마음 같아서는 터키 대신 이란에 가고 싶었어요. 비자 문제만 아니었다면 이란 국경 코앞까지 왔는데 그냥 국경으로 가자고 했을 거에요. 하지만 이란은 엄연히 비자가 필요한 나라. 초청장이 있어야한다고도 하고 없어도 된다고도 하는데 비자 받기 쉬운 나라는 아니라서 그냥 터키로 넘어가기로 했는데 막상 이란 국경 앞에 오니 꽤 아쉬웠어요. 사실 이란 비자만 있었다면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에서 이란을 경유해 아르메니아로 바로 들어갈 수도 있었거든요. 이란 비자가 없었기 때문에 동선이 지저분해지고 조지아를 무려 세 번이나 들어가야 했어요. 여권 페이지에 도장이 많이 찍혀서 좋기는 한데 동선이 엉망진창인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이란 국경을 보고 돌아가는 길.
트럭 한 대가 우리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어요. 왠지 KBS의 옛날 '아시안 하이웨이'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았어요.
아저씨께서는 일란다그 İlandağ (뱀 산)가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워주셨어요.
굉장한 풍경에 깜짝 놀라며 사진을 열심히 찍는데 친구가 저를 불렀어요.
"왜?"
"여기 두드려봐."
친구가 킥킥킥 웃으며 제게 흙벽을 손으로 두드려보라고 했어요.
"그걸 왜 두드려? 손만 더러워지게."
"두드려 보라니까!"
그래서 손으로 두드려 보았어요.
"이거 뭐야?"
저절로 웃음이 나왔어요. 손으로 치자 흙벽이 퉁퉁 울렸어요. 속까지 흙으로 알차게 꽉 차 있는 게 아니라 속은 부실 덩어리. 혹시 저 멋있는 산도 쳐보면 이렇게 퉁퉁 울리면 부실 덩어리 흙 무더기인가?
사진을 찍고 다시 차에 탔는데 아저씨께서 우리들에게 근처에 누나 집이 있는데 가서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는 것은 어떻겠냐고 물어보셨어요. 하룻밤 신세지는 것은 부담스러웠지만 간단히 차 한 잔 마시는 것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아서 가겠다고 했어요. 아저씨께서는 정말 평범하고 한적한 마을로 차를 모셨어요.
아저씨를 따라 집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우리들을 보고 신기해서 다 달려왔어요. 게다가 아제르바이잔어를 하자 매우 좋아했어요. 확실히 나흐치반 자치공화국의 아제르바이잔어는 바쿠의 아제르바이잔어보다 훨씬 투박했어요.
집에 들어가자 아저씨께서 우리들을 뒷뜰로 데려갔어요. 뒷뜰에는 살구 나무가 있었어요. 아저씨께서는 마음껏 따 먹으라고 하셨어요.
"이거 뭔가 쫀득쫀득하고 엄청 달콤한 것도 있는데?"
살구를 입에 넣고 씹어 먹는데 뭔가 쫀득쫀득하고 엄청 달콤한 무언가가 있었어요. 이 쫀득쫀득 달콤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먹어왔던 살구와는 비교할 수 없었어요. 이것은 식감도 최고. 게다가 쫀득쫀득한 것이 다른 평범한 과육보다 훨씬 달콤했어요.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것은 얼마 없었어요. 정말 환상적인 이 맛을 찾아 살구를 따서 계속 입에 집어넣어 보는데 친구가 제게 말했어요.
"야, 벌레 있는 거 많으니까 잘 골라서 먹어!"
아놔...아까 그 맛난 게 벌레였어.
친구가 살구를 반으로 쪼개 속을 보여주었어요. 애벌레가 꿈틀대고 있었어요. 모르고 먹었을 때는 참 쫀득쫀득하고 달콤한 것이 그야말로 별미였는데 알고 나니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어요. 일단 무슨 벌레인지 알아야 먹든 말든 하죠. 하지만 이미 먹은 놈을 다시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어요. 그냥 입을 물로 한 번 헹구고 끝냈어요.
자리에 앉자 빵과 차를 주셨어요. 역시나 티스푼은 주지 않으셨어요. 아저씨께서는 '얘네 외국인'이라고 하시며 티스푼을 가져오라고 하셨어요.
여기에서 아제리인들이 어떻게 차를 마시나 아주 잘 볼 수 있었어요. 일단 차를 찻잔에 받아요. 그 다음 차를 찻잔 받침에 부어요. 이렇게 식힌 후 다시 찻잔에 차를 부어요. 식은 차를 다시 찻잔에 붓고 이빨로 각설탕이나 사탕을 물고 차를 조금씩 마셔요. 차로 각설탕이나 사탕을 조금씩 녹여가며 마시더라구요. 저도 흉내를 내 보기는 했는데 이에 각설탕을 물고 차를 마시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이로 가만히 물고 있어야 하는데 와그작 와그작 씹고 싶은 욕구가 마구 치솟아올랐거든요.
가족들은 우리들에게 하룻밤 자고 가라고 하셨어요.
"우리들 오늘 터키 가야 해요."
"여기서 자면 닭 잡아줄게. 닭 먹고 자고 내일 가."
우리가 자면 마당에 돌아다니는 닭을 잡아주겠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우리가 아저씨께 이미 '비자 만료일 때문에 나가야한다'고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아저씨께서 가족들에게 잘 설명해 주셨어요.
차를 마시고 나가려는데 할머니께서 살구 한 봉지와 빵을 주셨어요. 저녁도 먹지 못하고 국경을 넘어야할 텐데 저녁으로 먹으라고 하셨어요. 괜찮다고 할수록 봉지에 더 집어넣어주셨어요. 정말 엄청나게 많이 싸 주셔서 둘이 도저히 다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어요.
국경으로 가는 길. 아저씨께서는 제게 군대를 다녀왔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2년 다녀왔다고 했어요. 아저씨께서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때문에 7년간 군대에 있었는데, 전역때 받은 것이라고는 아저씨가 몰고 있는 구식 소련 승용차가 전부라고 하셨어요.
어느덧 밤이 되었고, 아저씨께서는 계속 운전을 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