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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맛집 - 중앙아시아 고려인 식당 우갈록 (국시, 닭고기 해, 물만두)

좀좀이 2017. 3. 24.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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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우즈베키스탄에서 1년을 보내는 동안 이런저런 음식을 먹어보았어요.


때는 연일 40도를 훌쩍 뛰어넘어 50도를 찍던 여름. 집 근처 시장에서 кукси 라는 음식을 팔고 있었어요.


"저거 고려인 음식 국시 아냐?"


우즈베키스탄에는 고려인들이 매우 많아요. 타슈켄트에도 고려인들이 많은데, 저는 고려인들이 많이 몰려 사는 구역과는 많이 먼 곳에 살고 있었어요. 그래도 시장 가면 고려인들을 볼 수 있었어요. 반찬 가게 가면 고려인들이 이런 저런 샐러드를 만들어서 팔고 있었거든요. кукси 도 아마 고려인들이 만들어 파는 음식이었을 거에요.


하지만 저는 우즈베크어를 공부하러 우즈베키스탄에 간 것이었고, 고려인들 대부분이 우즈베크어를 몰랐어요. 게다가 '고려인의 문화'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삶에 큰 흥미를 갖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저건 나중에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차일피일 미루었어요.


"이제 кукси 좀 먹어봐야겠다."


하지만 국시는 없어졌어요. 나중에야 알았어요. 고려인 음식 '국시'는 여름에 먹는 음식이래요. 그래서 여름에 시장에 나왔던 거고, 날이 서늘해지자 시장에서 사라진 것이었어요.


그렇게 고려인 음식 국시는 못 먹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한국에 돌아온 후, 혹시 고려인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나 찾아보았어요.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파는 식당들은 있었지만, 이것은 우즈베크인들이 자신들의 음식을 파는 곳이었어요. 고려인 음식을 파는 식당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6년 5월 말.


"고려인 음식 파는 식당 있네?"


그곳은 우갈록 Уголок 이라는 식당이었어요. 경기도 안산에 있었어요. 여기는 인터넷 지도에 나오지 않는 식당이었어요. 한참 인터넷을 검색해서 간신히 가는 방법을 찾아내었어요.


안산시 고려인 식당 우갈록 가는 방법 : http://zomzom.tistory.com/1405


하지만 문을 닫았어요. 그리고 이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그 자리에서 중국 여행을 결정했어요. 바로 며칠 후 중국 여행을 떠났어요. 그 여행기가 바로 '복습의 시간 (2016)' 이에요. 그때 이야기가 바로 http://zomzom.tistory.com/1418 에요.


여행을 다녀온 후, '우갈록은 분명히 망했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다시 가지 않았어요.


그러다 올해 3월 18일 토요일. 갑자기 안산이 가고 싶어졌어요.


'우갈록 아직도 있을 건가? 거기 옆에 있는 빵집에서 파는 솜사 맛있었는데...'


우리나라 유일한 고려인 식당인 우갈록,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빵집이 궁금해서 안산으로 갔어요.


"우갈록 문 열었다!"


기쁜 마음에 안으로 들어갔어요.


"오늘 안 해요."

"오늘 안 해요?"


뭐라고 러시아어로 이야기하더니 번역기를 돌려서 제게 보여주었어요. 누가 오늘 식당 홀 전체를 예약해서 오늘은 장사를 안 한다는 것이었어요.


"내일 와요."

"내일 해요?"

"예. 해요."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셔서 둘 다 말이 짧아졌어요. 가게 아주머니는 매일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장사를 하는데 오늘만 안 된다고 이야기했어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 분은 카자흐스탄에서 오셨다고 했어요.


"자브뜨라, 모즈노?"

"모즈노."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며 몇 마디 익힌 엉터리 러시아어로 다시 확인했어요. 내일 되냐고 물어보자 내일 된다고 했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의정부에서 안산은 해도해도 너무 멀었어요. 같은 경기도라지만 안산은 경기도 남서부고 의정부는 경기도 북동부. 일단 가려면 전철로 서울을 대각선으로 관통해야 했어요. 이건 왕복하면 대장정이었어요.


'내일 된다고 했는데 가야하나?'


정말 고민했어요.


다음날 아침.


'오늘은 분명히 연다고 했지? 가봐야겠다. 이건 삼고초려에서 끝나겠지.'


유비가 제갈량을 얻으러 삼고초려하는 것도 아니고 중앙아시아 고려인 음식인 국시를 먹기 위해 삼고초려하는 길. 정말 멀고도 멀었어요.


안산역에서 내린 후, 버스를 타고 땟골삼거리에서 내린 후 우갈록 уголок 으로 갔어요.


경기도 안산시 맛집 - 중앙아시아 고려인 식당 우갈록 (국시, 닭고기해, 물만두)


입구에는 메뉴가 있었어요.


우갈록 메뉴


1번은 국시. 그 다음 것들은 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식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산시 맛집 - 중앙아시아 고려인 식당 우갈록


음식을 주문해야 하는데 뭐가 고려인 음식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일단 확실한 것은 '국시'가 고려인 음식이라는 것. 비록 혼자 왔지만 국시만 먹고 갈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러기에는 차비와 시간이 너무 아까웠으니까요. 음식 3개를 시켜서 혼자 다 먹기로 했어요.


"국시?"

"고려인 음식 뭐 있어요?"

"국시."


전날 국시 먹으러 왔다가 허탕치고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아주머니께서 바로 국시를 먹을 거냐고 물어보았어요. 국시야 당연히 먹는 거고, 국시 말고 다른 고려인 음식도 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고려인 음식이 뭐가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의사소통이 어려웠어요. 둘 다 또 말이 짧아졌어요. 식당 주방 위에 붙어 있는 '가지해 (가지무침)'은 안 된다고 했어요. 모즈노와 녯이 왔다갔다 하다가 제가 간 날 일단 되는 것은 국시와 만두, 닭똥집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국시, 만두, 닭똥집해를 시켰어요.


먼저 닭똥집해가 나왔어요.


중앙아시아 고려인 음식 - 닭똥집해 Кя хе


이것이 메뉴판 6번 음식인 닭똥집해 Кя хе 였어요. 가격은 6천원이었어요.


고려인 말로 닭을 '갸' 정도로 하는 것 같았어요. '해'는 '무침'을 의미하는 것 같았어요.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 고려인 반찬 가게에 가면 이런 저런 '해'를 많이 팔았어요. 그때는 '해'를 우리가 아는 그 삭힌 '해'인 줄 알았는데 여기에서 닭똥집해를 주문해 먹어보며 생각해보니 초무침을 '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고려인 음식을 보면 원래 발효시켜서 먹던 음식을 발효시키지 못하니까 대신 식초를 넣어서 신맛을 내는 경우가 좀 있거든요. 대표적인 것이 당근 김치구요.


닭똥집해는 골뱅이 무침 같았어요. 매콤하고 새콤했어요. 닭똥집에서는 닭냄새가 살짝 났어요. 이 음식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즐겨 먹었던 당근 김치에서 나는 그 특유의 식초와 향이 느껴졌어요. 우리나라 식초 향과 중앙아시아에서 사용하는 식초는 향이 달라요. 딱히 어떻게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맡아보면 차이가 확 느껴져요.


중앙아시아 고려인 음식 - 국시 кукси


이것이 바로 그렇게 먹어보고 싶었던 고려인 음식의 대표 국시 кукси 에요. 가격은 7천원이었어요.


"이거 맛있다!"


간단히 맛을 설명하면, 비빔국수에 찬 육수 부어먹는 맛이었어요. 국시의 특징은 바로 국물이 차다는 점이에요. 국시는 찬물에 말아먹는 면요리로, 여름 음식이에요. 우리나라에서 국수는 대부분 뜨거운 물에 말아 먹는데, 이것은 찬물에 말아먹는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에요. 비빔국수에 차가운 육수를 흥건하게 부어 먹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매우 독특하기는 한데, 맛 자체는 또 상당히 익숙한 맛이었어요. 비빔냉면에 육수 부어먹는 것과는 맛이 많이 달라요. 삼고초려한 보람이 있는 맛이었어요. 익숙하면서 독특하고, 이질적이면서 동질적인 맛이었어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맛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양이 꽤 많았어요. 국물까지 싹 다 마시니 배가 든든했어요.


러시아 음식 - 뻴메니 пельмени


"이거 고려인 음식이에요?"

"러시아 음식."


물만두와 같이 먹으라고 무채를 주었어요.


무채


물만두 가격은 6천원이었어요. 한국의 물만두와는 달랐고, 러시아 음식 뻴메니 맛이었어요. 고기맛과 양고기 비슷한 냄새가 났어요. 무채 무침과 같이 먹으니 고기 냄새도 잡히고 맛이 괜찮았어요. 충무김밥처럼 이렇게 애기 만두 만들고 무채 주어서 같이 먹으라고 하면 나름 팔리지 않을까 싶었어요.


정말 힘들었지만 싹 다 먹었어요. 단 하나도 남기지 않았어요.


"다 먹었네요!"


아주머니가 놀라며 웃으며 말했어요.


"여기 맛있네요!"

"다음에 또 와요!"


안산이 매우 멀기는 하지만 기회 되면 또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음식이 괜찮았거든요. 특히 국시요. 이제 날이 나날이 더워져갈테니 시원한 국시 먹기 좋아질 때가 되어가고 있기도 하구요. 세 번 찾아가서 겨우 먹은 보람이 있었어요.


저는 매우 맛있게 먹었지만 사람 입맛이 제각각이니 어떤 사람들은 맛이 별로라 느낄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중앙아시아 음식을 파는 식당은 여러 곳이지만, 중앙아시아 고려인 음식을 파는 가게는 여기 밖에 없어요. 중앙아시아 고려인 음식은 우리들이 먹는 음식과도 다르고, 중앙아시아 음식과는 정말 많이 달라요. 고려인 음식을 맛보는 경험을 하기 위해 가는 것도 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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