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게 분노해서 강릉을 떠나기로는 했는데 어디 갈 지 결정은 못했어요.

"서울을 그냥 일찍 들어가 버릴까?"

"거기 일찍 가봐야 할 거 없어."

가뜩이나 서울에서 5년간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불필요하게 오래 머무는 것은 내키지 않았어요.

"어디 가지?"


일단 술값을 계산한 후 밖으로 나왔어요.

"PC방가서 한 번 찾아보자."

PC방에 들어갔어요. 그래도 일단 강원도에서 하나라도 더 보고 가고 싶었기 때문에 강원도 전 지역을 찾아보았어요.

"동해 어때?"

지도를 보았어요. 강릉처럼 차 없이 돌아다니기에는 최악의 조건.

"영월 어때? 동강 있잖아."

영월도 마찬가지.

"춘천 어때?"

춘천도 마찬가지.


"아...진짜 어디 가지?"

어디를 가든 차 없이 돌아다니기에는 다 최악. 아무리 검색해도 답이 없었어요.

"야, 속초 가자."

친구가 갑자기 속초를 가자고 했어요.

"속초?"

"응! 가서 설악산 올라가게. 그래도 설악산 한 번 올라가 봐야지!"

속초는 강릉에서 가까운데다 서울까지 버스로 갈 수 있었어요. 이동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이 일단 마음에 들었어요.

"야, 속초 가자. 가서 설악산이나 올라갔다 오자."

그렇게 정해진 일정이 바로 속초에 가서 설악산 울산바위 정상을 올라가는 것. 첫차로 속초에 가야했기 때문에 바로 모텔에 들어가 짐을 꾸리고 잠을 잤어요.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버스를 타고 속초에 갔어요.

버스터미널에서부터 관광객으로 득시글 득시글.


짜장면을 한 그릇씩 사 먹었어요. 맛은...


전날 강릉에서의 충격으로 여행 계획이 통째로 바뀌었어요. 올챙이 국수, 감자떡 등 강원도 음식은 하나도 안 먹었어요. 원래 그 지역의 음식을 먹으며 다니기로 한 여행이었지만 강릉 사건의 충격으로 강원도에서 무언가 사 먹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져 버렸어요.


헉...오징어를 널어놓았네! 역시 여기는 강원도 동해안!


버스를 타고 설악동으로 가는데 시내를 벗어나서 산길로 들어가자 차가 엄청나게 밀리기 시작했어요.


"여기 사람들은 다 산에 있는 계곡으로 놀러가요. 다른 지역 사람들이랑 거기서 여자들 꼬셔보려는 애들이나 바다 가지."

강릉에서 택시기사 아저씨가 해주신 말이 떠올랐어요. 무슨 속초 시민 전부 여기로 온 것도 아닐텐데 앞에 서 있는 차나 길 옆에 주차된 차나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설악동의 상징, 곰 동상. 지리산도 곰이 상징, 설악산도 곰이 상징.


설악동에는 코스가 3개 있어요.

1. 권금성 - 케이블카 타고 가서 구경하다 내려옴.

2. 흔들바위 - 울산바위

3. 비선대 - 천불동계곡 - 대청봉 (정상가는 길)


권금성 쪽을 보니 줄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느긋하게 케이블카 타고 권금성 갔다가 울산바위 올라가려고 했지만 줄을 보자 바로 포기.


절을 지나서 흔들바위-울산바위 코스로 들어갔어요.


"왜 이렇게 힘들지?"

"아...진짜 힘드네."


흔들바위까지 왔는데 무슨 한라산 백록담까지 올라간 것처럼 힘들었어요. 일단 음료수를 하나씩 사서 마시고 숨을 돌렸어요. 숨을 돌리고 바위를 밀어 보았어요. 밀리는 느낌도 없었어요. 바위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제가 밀렸어요. 흔들바위가 참 예쁘게 생기기는 했는데 크기가 집채만 했어요. 이게 흔들리는 게 더 이상한 거지...


"야,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울산바위래!"

흔들바위에서 쉴 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울산바위로 가는 길에 세워진 표지판을 보았어요.

- 조금만 힘내세요. 300계단 남았음.

계단 숫자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하여간 계단을 조금만 올라가면 울산바위라고 했어요.

"야, 빨리 가자!"

둘이 신나게 올라갔어요. 계단을 하나하나 세어가며 올라갔어요.

"어...300개 넘었는데?"

표자판의 계단 숫자는 대체 어떻게 센 거지?

"이거 완전 인체 비공학적 계단인데?"

도저히 계단 1개로 셀 수 없는 것을 계단 1개로 세어도 이미 300개 훨씬 넘었어요.

"아놔...표지판이 뻥쳤네..."


진짜 한참 올라갔어요. 날은 싹싹 덥고 옷은 짜면 땀이 나올 정도였어요. 삼각대 때문에 걷는 게 더욱 불편했어요. 진짜 던져버리고 싶었어요. 계속 올라가다 바위에 걸터 앉아 쉬기로 했어요. 둘 다 체력이 완전 저질이 되어버려서 도저히 많이 올라갈 수 없었어요.

"어...어...어!"

둘이 바위에 걸터 앉아 있는데 하필 제 가방이 아레로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어요. 길 밖으로 나가지 않아서 다시 주워오기는 했지만 꽤 아래로 굴러떨어져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했어요.


이제부터 시작이다


둘이 백록담 정상에 오른 것처럼 가쁜 숨을 내쉬며 울산바위 앞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드디어 울산바위를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이거 장난 아닌데?"

일단 경사 하나는 끝내주는데 철제 난간이 썩 믿음직스럽지 못했어요. 아래를 보니 아래가 훤히 비쳤어요. 까마득한 낭떠러지. 그리고 위에서 내려오면 가파르고 좁은 난간에서 옆으로 비켜줘야 했어요.


난간을 올라갔다고 끝이 아니었어요. 이번에는 산길. 정상에 도착했는데 하필 구름이 자욱하게 껴서 아무 것도 안 보였어요.

"내려가자."

힘겹게 올라왔는데 본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냥 정상에 갔다가 바로 내려갔어요. 보이는 게 있어야 사진도 찍을텐데 보이는 게 없어서 사진도 못 찍었어요.

내려오는데 날이 좋아졌어요.

"야, 다시 정상 가서 사진 찍고 올까?"

"그냥 가자."


완전 거지꼴로 내려왔어요.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어떤 커플은 우리보다 먼저 정상에 도착했고, 우리보다 먼저 내려오기 시작했지만 역전당했어요. 완벽한 굴욕. 더욱이 여자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요. 저질 체력이 인증되었어요.


내려와서 속초 시내를 돌아다녔어요.

식당에 가서 냉면을 먹었어요. 친구는 비빔냉면에 육수 조금만 부으라고 했는데 왕창 부어서 망했어요...


"나 정말 부탁 하나만 있는데..."

"뭔데?"

"우리 등대공원 가서 속초 야경 한 장만 찍고 오자. 내가 삼각대 들고 온 것이 억울해서라도 야경 한 장만은 찍어야겠다."

아까 울산바위 올라갈 때 삼각대를 버려버리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어요. 이럴 줄 알았다면 삼각대를 가져오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이미 가져와버린 삼각대. 야경 사진 하나를 꼭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다음 목적지는 서울이므로 삼각대를 쓸 일이 없었어요. 여기 아니면 그냥 멍청하게 들고 와서 단 한 번도 안 쓰고 고생만 진탕하고 가는 것이 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등대공원에 갔어요.

야경 사진도 찍고 같이 사진 찍는 것 까지는 좋았어요.


"여기 시간 다 되어서 문 닫았거든요. 다른 길로 내려가세요."

우리가 올라간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내려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다른 길로 내려갔는데...길을 잃어버려서 또 한참 걸었어요.


그래도 속초는 갈만한 곳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고, 시내버스로 가기 편해서 꽤 괜찮았어요.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버스표를 사려는데 막차까지 표가 거의 매진이었어요. 그래서 썩 좋지 않은 좌석에 불편하게 앉아 또 서로의 땀냄새를 맡게 되었어요.


"멀~어지는~"

친구의 MP3를 같이 듣는데 박진영의 '날 떠나지 마' 노래가 나왔어요. 버스에서 둘이 립싱크를 하며 춤을 추며 놀았어요. 버스는 계속 서울을 향해 달렸고, 우리는 자리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립싱크하고 춤을 추며 놀다가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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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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