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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인들은 거짓말쟁이? - 터키어의 미래 표현

좀좀이 2013. 9. 2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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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공부할 때 당해봐야 배우는 것들이 있어요. 골탕 몇 번 먹어보아야 '아...그게 그런 의미구나'라고 깨우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죠. 즉 절대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몇 번 현지인들에게 속고 당했다고 생각해야 깨우치게 되는 표현들이 있기 마련이에요. 문제는 이게 현지인들이 진짜 속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쓰는 용법인데 그걸 몰라서 오해한다는 점이죠.


예를 들면 우리말에서 '언제 한 번 만나자' 라는 말이 있어요. 우리말에서는 시간을 매우 부정확하게 말해서 '되면 하고 아니면 말고'를 표현해요. 그래서 '0월 0일에 만나자'와 '한 번 만나자' 는 내포하는 의미가 매우 다르죠. 그냥 '한 번 만나자'라고 말하고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었는데 먼저 연락 안 한다고 무책임한 인간이라고 비방한다면 오히려 고지식하고 답답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어요.


아랍어에는 그 유명한 '인샬라'와 '부크라'가 있지요. 자기들 급하면 절대 저 말 안 해요. 월급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는 아랍인한테 '내일 나와, 인샬라' 이러면 얼굴 확 굳습니다. 아니면 '저놈이 아랍어 못 하니까 뭔 뜻인지도 모르고 말하는구나'라고 생각하거나요. '10시 도착해' 라고 하면 10시에 도착하겠지만 '10시 도착해, 인샬라'라고 하면 10시에 도착할 거 같지만 (노력은 해 보겠지만) 나도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라는 말이에요. '인샬라'는 간단히 말해서 '장담은 못한다'라고 이해하시면 되요. 의지 여부는 그 사람 태도 보며 파악하면 되구요. '부크라'는 직역하면 '내일'이지만 보통 '나중에' 라는 의미로 많이 쓰구요. 우리말에서도 '나중에'라고 했는데 분명 할 거라고 믿었다가는 얼굴 붉히기 딱 좋죠.


그래서 말하고 읽고 쓸 때에는 현재와 과거를 많이 쓰지만 열받지 않으려면 미래를 잘 알아야 하는 법이죠. 지금 하는 거야 즉시 확인해 보면 되는 일이고, 과거 일을 엉터리로 말하면 거짓말하는 것이므로 별 문제가 없지만, 미래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아수라장 그 자체이기 때문이죠. 과거와 현재는 o.x 의 문제이지만 미래는 0%~100%의 문제입니다. 당연히 저 구간 안에는 무지막지하게 많은 수가 존재하지요.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터키어에 있는 미래 표현 때문이에요. 이것을 잘못 이해해서 터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제멋대로 약속을 취소하는 나쁜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터키어에서 미래를 표현하는 방법은 세 가지 있어요.


1. 동사 어간 + yor + 인칭접사

2. 동사 어간 + AcAk + 인칭접사

3. 동사 어간 + Ar + 인칭접사


이 세 가지의 뉘앙스 차이는 매우 크답니다.


먼저 '동사 어간 + yor + 인칭접사' 형태. 이것은 미래의 일이지만 모든 게 완벽히 확정되어서 현재나 다름 없는 경우 - 즉 기정 사실이 된 미래를 나타낼 때 사용해요. 미래 일이지만 꼬치꼬치 캐물으면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할 것인지 죄다 아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지요.


두 번째로 '동사 어간 + AcAk + 인칭어미' 형태는 미래의 일이기는 한데, yor 처럼 기정 사실이 되고 계획도 구체적이지는 않아요. 어쨌든 이것도 그렇게 큰 문제를 만들지는 않아요. 일단 '아...하긴 할 거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면 별 문제 없어요.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마지막 '동사 어간 + Ar + 인칭접사' 형태에요. 이 접사 Ar 가 아주 오묘한 접사거든요. 첫 번째는 습관적, 또는 계속 반복 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해요. 예를 들어 학생은 매일 학교에 가니 '나는 매일 학교에 갑니다'를 이 형태를 이용해 말할 수 있지요. 그래서 미래를 표현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 형태가 미래를 표현할 때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게 진짜 엉뚱한 뜻이랍니다. 바로 '되면 하고 아니면 말고' - 라는 아주 불확실한 미래를 표현하기 때문이죠. '되면' 이라고 했지만 '상황 봐서', '내키면', '마음 바뀌면' 등등 다양한 의미가 '되면'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답니다. 대체로 완곡한 거절의 표현이라고 보면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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