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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영화 후기 - 타임슬립 특징 몰이해, 한국식 감성팔이 필요 (스포 있음)

좀좀이 2023. 7. 10.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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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친구를 만나서 모처럼 영화를 보러 갔어요. 친구는 인디아나 존스를 너무 좋아한다면서 내게 인디아나 존스 : 운명의 다이얼을 보자고 했어요. 극장 가서 영화를 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영화 관람 자체를 즐기지 않는 편이라 어떤 영화든 상관없었어요. 그래도 인디아나 존스는 예전에 좋아했던 영화였기 때문에 약간의 기대가 있었어요.

 

친구와 영화 시작 전에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서로 이야기를 하다가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이야기에서 둘 다 흥분해서 열심히 떠들었어요. 최후의 성전에서 성배를 고르는 장면은 잊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보면 문제가 너무 쉬운 뻔한 답지 같지만 서양에서 성물을 얼마나 화려하게 장식했는지를 떠올려보면 저 사람들이 왜 저런 선택을 하는지 이해가 되어서 재미있었어요. 긴장감도 있었구요.

 

"해리슨 포드는 안 늙나?"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다시 찍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웠어요. 정말 언젯적 해리슨 포드에요. 해리슨 포드는 1942년에 출생하신 분이세요. 최불암 선생님께서 1940년에 출생하셨으니 최불암 선생님과 연세가 몇 살 차이 안 나요. 최불암 선생님보다 해리슨 포드가 2살 어려요.

 

그러니까 해리슨 포드가 액션 영화인 인디아나 존스를 촬영했다는 것은 우리나라로 치면 최불암 선생님께서 액션 영화를 촬영한 것과 마찬가지에요. '해리슨 포드가 액션 영화 다시 찍었다!'라고 하면 감이 잘 안 올 거에요. 그러나 '최불암 선생님께서 총 쏘고 채찍 휘두르고 암벽을 기어올라가시며 거친 추격전을 찍으셨다!'라고 하면 확 와닿을 거에요.

 

톰 크루즈도 미션 임파서블 또 찍어서 상영중인데 해리슨 포드라고 못 할 거 뭐 있겠냐고 할 수도 있지만, 톰 크루즈는 1962년생이에요. 해리슨 포드가 2차 방정식 배우고 있을 때 톰 크루즈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어요. 액션 강도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새로 나온 것과 해리슨 포드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새로 나온 것은 차원이 달라요.

 

1942년생이신 해리슨 포드가 인디아나 존스 영화를 다시 찍었다는 데에 놀랐고, 어떤 노익장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되었어요. 스토리도 꽤 기대되었어요. 인디아나 존스의 최종장에 해당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인디아나 존스가 어떻게 끝날지도 매우 궁금했어요. 그래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어요. 영화가 시작되었어요. 영화를 집중해서 봤어요.

 

괜히 봤다.

 

매우 실망했어요. 간단히 한 줄 요약하면 이래요.

 

마동석의 범죄도시3 천만 흥행에 이유가 있었다.

 

마동석의 범죄도시3이 천만 흥행을 달성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요. 범죄도시3이 훨씬 더 재미있었어요. 웬만하면 그냥 재미있게 봤다고 넘기고 친구와 같이 봐서 그것만으로 즐겁게 시간 보냈다고 하는데 이건 아니었어요. 친구가 제게 미안해할 수도 있지만 영화가 재미없었던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아르키메데스가 발명한 타임슬립 포털 위치 계산 기계인 안티키테라 기계에 관한 모험이에요. 즉, 타임슬립 모험물이라고 볼 수 있어요.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1. 부실한 인물 설정 - 여주인공 헬리나 쇼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여주인공은 헬리나 쇼에요. 헬리나 쇼는 인디아나 존스와 더불어 이 영화의 주인공이에요. 헬리나 쇼는 인디아나 존스의 대녀로, 사고를 엄청나게 치고 유물 밀거래 및 도박판 보석금 등으로 돈을 벌고 있었어요. 아버지와 달리 오직 돈만 밝히는 인물이에요. 심지어 해리슨 포드가 대학교 수납고에 보관중인 안티키테라 기계 반쪽을 훔친 이유도 모로코 탕헤르의 유물 밀거래 경매장에 갖다 팔기 위해서였어요.

 

그러니까 오직 돈만 밝히는 인간이에요. 아버지와 달리 왜 돈만 밝히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었어요. 한자성어로 '호부견자'가 있어요. 아버지는 위대한데 자식은 개차반이라구요. 수많은 유물이 있을 건데 왜 하필 안티키테라를 노렸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어요. 그저 인디아나 존스 만나서 인디아나 존스가 안티키테라 보여주니까 그거 들고 도망쳐서 모로코 탕헤르에 있는 유물 밀거래 경매장에 팔아넘기려고 해요. 안티키테라 자체에 별 흥미 없고, 그저 돈 좀 만질 수 있겠다는 거에만 관심있어요.

 

영화에 나오는 헬리나 쇼를 보면 그저 유물 도둑에 불과해요. 왜 안티키테라를 노렸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 어째서 유물 도둑의 길로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어요. 그렇다고 또 영화 내내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헬리나 쇼는 무려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없애버리는 게 훨씬 더 나아요. 재미만 엄청 깎아먹어요. 차라리 헬리나 쇼가 없었다면 오히려 영화가 더 재미있었을 거에요. 몰입에 방해만 되요.

 

인디아나 존스가 이번이 마지막이고 후속 시리즈로 헬리나 쇼 시리즈를 만들고 싶었다면 헬리나 쇼를 영화 내내 돈에 환장한 인간으로 보여줘야 했어요. 돈에 환장한 인간 헬리나 쇼가 인디아나 존스와 모험을 하며 욕심이 돈이 아니라 명예로 바뀌는 스토리로 갔다면 인디아나 존스 후속 시리즈 헬리나 쇼를 기대해볼 만도 했을 거에요. 영화 내내 유물 및 비싼 물건 보며 '와, 저거 훔치면 얼마 벌겠다'라고 군침 질질 흘리며 보다 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인디아나 존스가 교육을 시켜서 인간을 조금 바꿔주는 전개였다면 좋았을 거에요. 그리고 이렇게 헬리나 쇼가 돈에 완전히 환장한 인간으로 나왔어야 결말부도 보다 재미있고 납득되는 시나리오로 나왔을 거에요.

 

그렇지 않다면 헬리나 쇼가 안티키테라를 훔치는 게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추억으로 한 번 보고 싶어했는데 나치 잔당이 훔쳐가는 사고가 발생해서 추격하는 내용으로 가든가요. 이렇게 해도 스토리는 얼마든지 재미있게 쓸 수 있어요. 이 영화는 단순 모험물이 아니라 타임루프물 성격이 상당히 강한 영화거든요. 헬리나 쇼가 안티키테라를 되찾고 싶어하는 이유에 대해 단순히 시간을 되돌리면 위험해진다는 정의의 사도부터 아버지의 연구 결과를 악당들이 나쁜 짓 하는 데에 사용되는 걸 죽어도 참을 수 없다는 감정적인 반응까지 여러 가지가 가능해요.

 

헬리나 쇼가 안티키테라를 훔친 순간 헬리나 쇼가 돈에 환장한 양아치가 되는 스토리 확정인데 영화에서는 또 그렇지 않으니 영화 스토리에서 쓸 데 없는 인물만 하나 억지로 낑겨넣은 꼴이 되었어요. 억지로 낑겨넣는 것도 모자라서 주인공으로 삼았으니 영화 스토리가 재미있을 리 없어요.

 

그런데 영화에서 헬리나 쇼는 돈에 환장한 거 같지도 않고 안티키테라에 왜 주목하는지도 잘 보이지 않아요. 헬리나 쇼가 없으면 차라리 '1969년 미국'을 지키기 위한 인디아나 존스와 1969년 미국을 파괴하고 싶어하는 나치 잔당의 대결로 깔끔히 스토리가 전개되어서 몰입이 되고 더 재미있었을 거에요.

 

 

2. 빈약한 액션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액선이 매우 빈약해요. 액션만 놓고 보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영화 맨 처음 인디아나 존스가 젊었을 때 롱기루스의 창을 찾기 위해 나치 독일 점령지와 나치 독일 기차에서 벌인 액션 장면이에요. 나머지는 이걸 액션이라고 해야할지 진지하게 고민되는 수준이에요.

 

그나마 액션이라고 부를 만한 장면이라고는 탕헤르 골목길 자동차, 삼륜차 추격전인데 이것도 매우 지루해요. 아무리 영화 배경이 1969년에 인디아나 존스가 정년퇴직한 대학교 교수라고 해도 심각한 수준이에요. 이걸 모험물이라고 봐야 할 지 의문이 들 정도에요.

 

물론 인디아나 존스가 늙었기 때문에 과거처럼 채찍 휘두르며 악당을 무찌를 수는 없지만, 빈약한 액션을 보완할 다른 게 있었어야 했어요. 격투씬, 추격전 같은 게 아니라 던전 내부를 복잡한 퍼즐로 만들어서 퍼즐을 풀어가도록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거에요. 그런데 정작 던전은 너무 단순해요.

 

액션이 빈약하니 유물 찾는 게 너무 쉬워보이고, 이는 저렇게 찾기 쉬운 걸 왜 여태 못 찾았는지 모두가 한심해보이도록 만들기까지 해요.

 

이런 문제가 발생한 근본 원인은 바로 첫 번째 - 헬리나 쇼 때문이에요. 헬리나 쇼가 안티키테라를 훔치는 바람에 헬리나 쇼를 설명해줘야 하는 시간이 필요해졌고, 쓸 데 없이 탕헤르 추격전으로 시간 엄청 잡아먹어요. 헬리나 쇼가 안티키테라를 보고만 싶어했는데 나치 잔당이 안티키테라 절반을 훔쳐갔다면 인디아나 존스와 헬리나 쇼가 나머지 안티키테라 절반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쪽으로 시나리오가 진행되었을 거고, 그러면 탕헤르 추격전으로 시간 낭비하지 않고 무슨 던전 들어가서 퍼즐 두세 개 더 푸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거에요. 1942년생 어르신에게 액션이란 거친 추격전보다 던전의 퍼즐을 푸는 게 더 어울리구요. 하지만 헬리나 쇼가 안티키테라 절반을 훔쳐서 탕헤르로 가는 바람에 헬리나 쇼가 돈이 필요하고 돈 때문에 모로코 건달과 약혼했다고 설명하는 시간으로 탕헤르 추격전이 들어갔어요.

 

 

3. 타임슬립 시나리오 특성에 대한 몰이해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이 재미없고 이런 건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에요. 첫 번째는 위에서 말한 헬리나 쇼 때문이고, 두 번째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인 타임슬립 시나리오 특성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에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얼핏 보면 지금까지 있었던 유물을 둘러싼 모험물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다를 게 없어 보여요. 그렇지만 실제로는 앞선 시리즈와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어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서 다루는 유물이 바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유물이라는 점이에요.

 

어떤 작품이든 시간 여행이 가능한 물건이 등장하면 기본적으로 타임슬립 시나리오의 특징이 중심이 되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서 다루는 유물은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안티키테라이고, 이 때문에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유물 차지를 위한 모험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시간여행물 스토리 라인을 따라갈 수 밖에 없어요. 단순히 '시간 여행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서사는 완전히 바뀌어요.

 

그렇지만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이러한 타임슬립 시나리오 특징을 완전히 놓쳐버렸어요. 헬리나 쇼가 전투에서 대차게 말아먹은 인물이라면, 타임슬립 시나리오의 특성을 완전히 놓쳐버린 점은 전쟁을 처참히 패전으로 이끈 원인이에요. 나치 독일은 그래도 프랑스 파리라도 점령해봤지,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뭐 해보지도 못 하고 재미 붕괴 수준이었어요.

 

 

3.1. 타임슬립 시나리오의 특징

 

어떤 콘텐츠이든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재를 사용하면 타임슬립 시나리오를 따라가버려요.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재'는 불과 같아요. 나무든 종이든 뭐든 닿으면 다 태워버리고 재만 남겨요. 장르를 구분하지 않아요.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재가 등장하기만 해도 장르 불문하고 타임슬립 시나리오로 가는 이유는 선택지 선택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으로 스토리는 시간의 경과를 따라 흘러가는 단선적인 진행이에요. 한 번의 선택은 절대 되돌릴 수 없어요. 매 순간이 되돌릴 수 없는 단 한 번의 선택이며, 이렇게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의 연속이 바로 인간의 인생이며 콘텐츠에서 일반적인 스토리의 진행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한 번의 선택은 매우 중요하고 무거워요. 되돌릴 수 없어요.

 

그렇지만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재가 등장하면 매 순간 등장하는 선택의 무게가 매우 가벼워져요. 왜냐하면 선택한 것이 마음에 안 들면 시간을 되돌려버리면 되니까요.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재가 등장하는 순간, 행위 자체에 대한 무게는 매우 가벼워져서 없어지다시피 하고 대신에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재의 획득 및 사용이 모든 중요도를 가져가요. 오직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지의 여부만이 중요해지고, 나머지 선택지는 있으나마나한 선택이에요. 왜냐하면 마음에 안 들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타임슬립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 패턴 중 하나를 따라가요.

 

첫 번째, 과거로 돌아가서 미래를 바꾸는 시나리오

두 번째, 타임슬립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재를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는 시나리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두 번째 패턴을 따라가도록 되어 있어요. 시간 이동 포털 위치 계산을 해주는 기계 안티키테라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경쟁과 모험이니까요.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시간 이동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요. 시간 이동을 할 수 있다면 시간이동 능력을 갖는 순간 현재와 미래는 무의미해져요. 지금 자동차를 훔치든 사람을 죽이든 다 무의미해요. 왜냐하면 과거로 돌아가면 모두 없는 일이 되니까요. 그래서 '현실'이 갖는 가치에 전혀 개의치 않고 오직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물건에만 집착하는 스토리로 흘러가야 자연스러워요.

 

 

3.2. 타임슬립 시나리오의 기본 구조 - 파괴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갈등

 

시간여행을 해서 과거로 돌아가면 미래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여러 시나리오와 논의가 있어요. 타임슬립 시나리오는 과거로 돌아가면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부터 설정해야 해요.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를 바꾸면 그 시점부터 시간의 흐름이 분화되는 다선적 시간 흐름 세계와 과거를 바꾸는 순간 그 시점부터 진행되어왔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새롭게 다시 시간이 흘러가는 단선적 시간 흐름 세계일지부터 선택해야 해요.

 

스토리만 놓고 보면 이 선택지가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스토리를 계획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에요. 하지만 머리 깨지는 과학, SF영화도 아니며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재' 정도 등장하는 영화라면 대체로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 사건에 개입하면 미래가 변한다' 정도로 넘어가는 편이에요. 과거 사건 결과를 완전히 뒤바꾸지 않는다면 현재에 별 영향 없다는 식이구요.

 

타임슬립 시나리오의 중심 갈등은 시간 이동을 통해 현재를 파괴하려는 자와 이를 막고 현재를 지키려는 자의 갈등이에요. 과거로 돌아가서 중요한 사건 결과를 뒤바꾸면 미래도 완전히 뒤바뀌게 되요. 현재에 불만족인 자는 세상을 파괴하는 방법으로 과거로 돌아가서 중요한 사건을 뒤바꾸려 해요. 이러면 현재의 세상은 완벽히 파괴되고, 본인이 원하는 미래 모습에 보다 가까워져요. 반대로 현재의 세상을 사랑하고 지키려 하는 자는 과거로 가서 중요한 사건 결과를 바꿔서 현실 세계을 파괴하려는 자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해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현실을 지키려는 무리인 인디아나 존스와 헬리나 쇼, 그리고 현실을 파괴하려는 나치 잔당의 대립과 경쟁이에요.

 

문제는 인디아나 존스와 헬리나 쇼가 대체 왜 현실 세계를 지키려고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어요. 납득이 안 가요. 현실 세계를 지켜야하는 이유가 있어야 대립 구도가 제대로 나오는데 현실 세계를 지켜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영화를 보면 인디아나 존스, 헬리나 쇼 모두 현실 상황이 영 안 좋아서 시간 이동하고 싶어해야 할 처지에요. 이러니 스토리가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지킬 이유가 없고 뭘 지키는지도 모르는데 하여튼 지키겠다고 허우적거리는 꼴로 밖에 안 보이거든요.

 

 

3.3. 타임슬립 시나리오 등장인물의 심리적 특성과 내면 갈등

 

타임슬립 시나리오에서 기본이 되는 스토리는 현실 세계를 파괴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갈등이에요. 파괴하려는 자는 과거 특정 사건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하며 현실을 지옥같이 느껴야 해요. 그리고 지키려는 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과 현실 세계를 뜨겁게 사랑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는 타임슬립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타임슬립 시나리오 특유의 등장인물의 심리적 특성과 내면 갈등을 잘 묘사해야 해요. 스토리가 아무리 재미없어도 이것만 잘 하면 매우 훌륭하고 재미있다는 소리를 들어요. 반대로 이걸 잘 해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굉장한 영상과 아름다운 묘사가 있다 해도 악평을 피하기 어려워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서 과거 사건의 결과를 바꾸려고 하는 자에게 현실은 무의미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보다 정신줄 놓은 것처럼 행동하고 더욱 과격하고 폭력적인 모습이 나와야 해요. 현실에서 사람을 죽이든 말든 과거 결과를 바꿔서 미래가 바뀌면 모든 게 없는 일이 되잖아요. 그리고 과거를 바꿔서 현실을 완전히 바꿔버리려고 마음먹고 행동한다면 그만큼 현실을 혐오하는 모습도 나와야 해요. 이런 부분이 너무 미흡해요. 없다고 해도 될 지경이에요. 과거 나치 독일의 학자였지만 잘 나가는 대학 교수가 된 나치 잔당이 왜 본인이 성공한 삶을 잘 살고 있는 1969년 미국을 증오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하나도 없어요. 그저 한다는 말이 고작 히틀러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소리 뿐이에요.

 

또한 인디아나 존스가 안티키테라의 답을 알고 안티키테라를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 악당은 인디아나 존스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게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가 악당의 만행에 괴로워하며 선택을 후회하는 모습이 나와야 더욱 몰입이 되고 재미있어지구요. 악당이 인디아나 존스가 근무하던 대학교 교직원을 살해하고, 과거부터 잘 알고 지내던 잠수부도 살해하기는 해요. 그런데 인디아나 존스가 괴로워하지를 않아요. 인디아나 존스가 통곡하고 괴로워해야 흥미진진해지는데 너무 덤덤하니까 스토리 재미가 확 줄어들어버려요.

 

타임슬립 시나리오 등장인물의 심리적 특성과 내면 갈등을 고려한다면 영화 처음부터 갈아엎어야 해요. 먼저 나치 잔당인 교수는 호텔에서 한가롭게 룸서비스 받으며 흑인 직원에게 쓸 데 없는 질문할 게 아니라 과거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예전 동료들 사진이나 자기 가족 사진 같은 거요. 아니면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을 상징하는 소지품 같은 거요.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는 그렇게 쓸쓸한 말년 모습을 보여줄 게 아니라 전쟁에 참전했다가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어요. 아내와 별거 상태라고 보여줄 게 아니라 전사한 아들의 사진을 보고 있는 아내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여줘야 했어요. 그리고 인디아나 존스가 전사한 아들 때문에 지금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있다고 말하며 아내를 위로해주고요.

 

이래야 현실 세계를 지키려는 인디아나 존스와 현실 세계를 증오하는 나치 잔당 학자의 대립 구도가 이뤄져서 스토리가 흥미로워지죠. 인디아나 존스의 쓸쓸한 노년으로 영화가 시작해버리니까 영화 내내 인디아나 존스는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그저 허공에서 팔을 허우적거리는 모습으로 밖에 안 보여요. 내가 한 대 맞았으니까 한 대 때려줘야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안티키테라를 획득해 1939년으로 돌아가려는 나치 잔당이 인디아나 존스에게 우리가 마주쳤던 그 기차에서 자신의 아들이 죽었고 이후 폭격으로 자신의 나머지 가족도 모두 몰살당했다고 말하고, 1939년으로 돌아가서 히틀러를 죽이면 모든 게 없는 일이 되어 너나 나나 행복해질 거라고 이야기하며 그러면 너의 죽은 친구들도 안 죽은 게 된다고 말했다면 영화가 마지막에라도 살아났을 거에요. 이에 인디아나 존스가 우리는 안 슬퍼지겠지만 대신 다른 사람들이 불행해질 거라고 응수하구요. 이렇게 갔다면 늙어버린 영웅의 마지막 모습에 걸맞는 영화가 되었을 거에요.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기가 짊어지고 가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영웅의 마지막 영웅다운 모습을 보여줬을 거에요.

 

그러나 그런 거 없었어요. 진짜 영화 보면 인디아나 존스가 안티키테라를 찾으려고 하는 이유는 안티키테라 절반을 도둑맞았기 때문에 열받았다고 밖에 설명이 안 되요.

 

 

4. 시나리오상 부실한 점

 

먼저 모든 것을 찾아도 너무 쉽게 찾아요. 이걸 여태 왜 못 찾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요.

 

두 번째로 마지막에 인디아나 존스가 아르키메데스를 만나고 아르키메데스 생존 시대에서 죽고 싶다고 해요. 무슨 비행기까지 걸어갈 힘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로 거기에서 인생을 끝내고 싶어해요. 이에 대한 설명도 없어요. 뜬금없이 아르키메데스 생존 시대에서 죽고 싶대요. 이 또한 헬리나 쇼를 억지로 우겨넣은 영향이라고 봐야 해요. 만약 헬리나 쇼가 없었다면 과거로 돌아간 인디아나 존스가 뭔 짓을 해서라도 현실로 돌아가려고 했을 거고, 이렇게 스토리가 흘러갔다면 아르키메데스에게 인사하고 미래를 바꾸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급히 떠나는 걸로 마무리해도 되었어요.

 

세 번째로 나치 잔당이 1939년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유가 히틀러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했다면서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해서라고 해요. 이건 말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는 소리에요. 히틀러 없는 나치당은 앙꼬 없는 찐빵이고, 2차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의 전쟁인 독소전쟁은 1941년에 발발했어요. 1939년으로 돌아가서 히틀러를 제거한다는 것은 2차세계대전 발발을 막겠다는 거나 똑같아요. 나치 독일의 2차세계대전 패배를 되돌릴 거라면 굳이 1939년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없구요.

 

 

5. 총평

 

한국 영화의 감성팔이 수출이 시급하다?

 

마동석씨의 범죄도시 시리즈가 인기 있는 이유는 마동석씨의 시원한 액션 때문이에요. 그리고 스토리가 단순해요. 악당은 진짜로 나쁜 놈이에요. 영화를 보면 마동석씨가 제발 악당 좀 시원하게 두들겨패기를 바라게 되요. 한국 영화에 망조가 든 이유 중 하나가 툭하면 악당에 감성팔이 스토리를 우겨넣어서 영화를 지루하고 답답하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억지로 이놈은 이러한 사정이 있어서 불쌍한 놈이라고 우겨대니까 영화가 매우 답답해요.

 

반면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범죄도시 시리즈처럼 선과 악 구분이 아주 확실해요. '인디아나 존스=선, 나치 잔당=악'이에요. 과거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는 이래도 되었어요. 배경이 인디아나 존스가 젊었을 때였고, 전쟁중이었을 때니까요. 문제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배경은 이런 선악 개념이 이미 깨져버린 시대라는 점이에요. 1945년도 아니고 무려 1969년이 배경이에요. 악당이 왜 악당인지 반드시 납득시켜줘야 하는데 이런 게 전혀 없어요. 고작 한다는 게 1939년으로 돌아가서 히틀러를 제거하면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할 거라는 소리에요.

 

진심으로 차라리 한국 영화의 고질병인 감성팔이가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에 팍팍 들어갔다면 오히려 더 재미있어졌을 거에요. 악당에게도 과거 사연이 있다고 설정하고, 악당과 인디아나 존스가 같은 종류의 아픔을 공유하지만 선택에서 달라지며 이것이 영웅과 악당의 차이라고 보여줬다면 스토리적으로 괜찮았을 거에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최종장이고, 인디아나 존스는 정년퇴직한 늙은 교수에요. 과거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화려한 맛은 아예 기대할 수 없어요. 과거에는 경쟁하고 싸우고 이겨서 쟁취하는 영웅의 모습이었겠지만, 정년퇴직한 늙은 교수에게 기차 위를 뛰어다니고 채찍으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고 절벽에 매달리며 온갖 위험한 상황을 겪으라고 하는 건 무리에요.

 

늙은 영웅의 퇴장을 위한 장면은 대체로 고통을 자신이 짊어지고 사라지는 장면으로 끝나요. 화려한 액션 대신 숭고한 희생을 보여주고, 숭고한 희생을 빛나게 하는 스토리로 승부봐요. 숭고한 희생이란 반드시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용광로에 뛰어들거나 폭탄을 껴안고 자폭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기본 스토리와 설정을 보면 여기에서 인디아나 존스의 숭고한 희생이란 아들을 잃은 아픔을 끝까지 감내하는 것이에요. 만약 역사가 바뀐다면 인디아나 존스의 아들은 전사하지 않았겠지만, 누군가가 대신에 불행해질 거라고 하구요. 그리고 오늘을 사랑하는 사람 또한 무수히 많고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소중한 바로 지금을 지켜주겠다고 하구요.

 

만약 한국 영화의 감성팔이가 인디아나 존스에 도입되었다면 나치 잔당의 가족을 전쟁으로 잃은 슬픔이 반드시 나왔을 거에요. 그런데 그게 있어야 이 영화 재미가 살아나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영화가 엄청 재미없어져 버렸어요.

 

선악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감성팔이도 잘 쓰면 매우 좋은 기술이에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늙은 인디아나 존스'가 주인공인 이상 애초에 화려한 액션을 기대할 수 없는 영화에요.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로 승부봐야 했어요. 노인이 주인공이라면 과거를 그리워하는 장면 및 과거를 후회하는 장면이 나오는 게 하나도 안 이상해요. 단순 선악구도로 가기에는 주인공도 악당도 늙어버렸고 둘 다 거대 조직의 보스라서 조직 대 조직으로 맞붙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액션보다는 스토리, 특히 후회되는 과거의 선택에 대한 심리 묘사와 내적 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뤄야 했어요. 이럴 때는 선악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감성팔이가 매우 잘 어울려요.

 

현실을 파괴하려는 성공한 나치 잔당 vs 현실을 지키려는 쓸쓸한 노년의 인디아나 존스

 

성공한 자가 현실을 지키고 성공하지 못한 자가 현실을 파괴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반대 상황이에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워요. 이럴 때 바로 감성팔이를 쓰는 거에요.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솔직히 안 만들었으면 더 나았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고 나면 참 씁쓸해요. 인디아나 존스를 꼭 저렇게 보내주도록 해야 했는지 많이 아쉬웠어요. 그리고 마동석씨의 범죄도시 시리즈가 왜 인기 좋고 천만 관객을 찍었는지 다시 한 번 이해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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