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여행기를 드디어 다 썼어요. 하루에 한 편씩 올리니 아마 11월중에 다 올리지 않을까 하고 있어요. 5월부터 계속 해 온 밀린 여행기 쓰기를 다 끝냈다는 생각에 속이 후련하더라구요.
문제는 이게 끝나니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여행기 쓸 때에만 해도 '여행기 끝나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책도 읽고,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리고 해야지!'라고 결심했는데 웬 걸...여행기 다 쓰자마자 며칠째 잠이나 펑펑 자고 싶다는 생각 뿐이네요. 지금은 그냥 책장을 들추어보는 것 자체가 싫어요.
그래도 아무 것도 안 하고 빈들거리다가는 분명 귀국할 때 후회만 가득할 거 같아 어제부터 시작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키릴 문자 자판 외우기!
지금까지는 키릴 문자 자판을 쓸 일이 있으면 영어 알파벳과 똑같은 배열의 자판을 사용했어요. 문제는 흔히 '키릴 문자' 하면 러시아어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키릴 문자를 사용하는 언어들도 나름 다양하다는 거에요. 서쪽으로 발칸유럽, 남쪽으로는 중앙아시아까지 다양한 언어들이 문자로 키릴 문자를 사용하고 있어요. 동쪽과 북쪽은 의미가 없는 게 동쪽 끝과 북쪽 끝은 러시아...
이렇게 다양한 언어에서 키릴 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기들 언어에 맞게 어느 정도는 바꾸어 쓰고 있어요. 라틴 알파벳에 점도 찍고 꼬리도 달아주는 것처럼 키릴 문자도 그렇게 변형해서 써요. 중앙아시아에서는 공식적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사용하는 카자흐어, 키르기즈스탄에서 사용하는 키르기즈어, 타지키스탄에서 사용하는 타지크어,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사용하는 우즈벡어가 키릴 문자를 사용해요. 우즈벡어는 라틴 문자로 문자개혁하기는 했으나, 아직까지도 여전히 비공식적으로 키릴 문자를 쓰고 있어요.
우즈벡어를 타이핑할 때에도 키릴 문자 자판을 사용할 일이 있기는 했지만, 이때는 우즈벡어 키릴 문자에만 있는 특수 문자들을 따로 복사해놓은 다음, 필요할 때마다 붙여넣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어요.
하지만 드디어 시간제공자님께서 도와주셔서 구한 카자흐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키릴 문자 자판을 외워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책 한 자 안 들여다보고 잉여롭게 하루를 보낼 바에는 키릴 문자 자판이라도 외우는 것이 덜 잉여롭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러시아어, 카자흐어, 키르기즈어, 우즈베크어, 타지크어 자판을 비교해보면 기본적인 형태는 똑같아요. 단지 각 언어마다 자신들 언어에만 있는 고유의 발음을 표시하기 위한 변형된 키릴 문자가 몇 개 있을 뿐이죠. 변형된 키릴 문자의 위치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키릴 문자 자판을 외우기 시작했어요. 저 같은 경우 새로 자판을 외워야 할 경우 그림을 눈여겨 보며 순서를 외운 후, 그걸 기억해내며 자판을 입력하는 식이에요. 일단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카자흐어 자판이라 카자흐어 자판으로 외우고 있어요. 그런데 카자흐어 자판은 점이 7번에 가 있네요. 적응하면 금방 될 거 같기도 한데 아직은 손가락이 쉽게 안 움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