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머물 숙소 위치가 매우 이상한 곳에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카라반사라이와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칸사라이부터 갈까?"
이미 4시였어요. 여기도 밤은 늦게 찾아올 거에요. 하지만 밤이 늦게 온다고 해서 가게와 박물관도 늦게 문을 닫는 것은 아니었어요.
큰 길로 걸어나가는 길. 이미 여기에서부터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라고 느끼고 있었어요.
칸사라이는 큰 길을 타고 쭉 올라가야 했어요. 칸사라이부터 신시가지까지 이어지는 길은 경사가 있는 길이었어요. 칸사라이쪽은 올라가는 쪽.
푸른 산과 고풍스러운 건물들. 중앙아시아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의 건물들이었어요.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산지라서 그런지 그렇게 많이 덥지는 않았어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계속 걸어올라갔어요.
셰키는 아제르바이잔에서 정말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데 사람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어요. 관광지보다는 예쁘고 한적한 마을 같았어요.
푸르른 배경과 고풍스러운 건물들 옆으로 걸어 올라가며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갔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과거로 돌아간 느낌 같은 것은 없었어요. 그냥 아름답고 예쁜 마을을 걷는 기분.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어요. 지금 이 시간 속에서 아름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에 왔다고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사실 알고 보면 셰키도 아제르바이잔에서 손꼽히게 큰 도시에요.
눈부시게 아름다워!
나는 지금 발칸 유럽에 와 있는 건가, 카프카스에 와 있는 건가?
주변 풍경이 발칸 유럽에서 보았던 예쁜 곳과 너무 비슷했어요. 이 정도면 적당히 알바니아나 불가리아 사진과 섞어놓고 '알바니아에서 찍은 사진이에요'라고 거짓말을 해도 눈치 못 챌 정도.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었어요. 발칸 유럽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 영토였기 때문에 서로 문화가 많이 섞였어요. 이쪽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영토는 아니지만 튀르크인들의 땅.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에 원래 살던 사람들은 알바니아인들이었어요. 그래서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바쿠에서 있다가 왔어요. 제가 지금까지 아제르바이잔에서 본 곳은 바쿠와 나흐치반 자치 공화국. 그곳과는 너무 다른 풍경이었어요. 정말 발칸 유럽의 어느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마을을 그대로 떼어와 여기에 붙인 거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볼 정도였어요.
이 건물은 은근히 사진 찍기 어려웠어요. 24미리 화각인 HS10 카메라 앞에 0.7배 광각 컨버터를 달았더니 이런 건물은 수평이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찍으면서 알 수가 없었어요.
셰키 성에 들어갔어요. 성 내부에는 박물관이 몇 개 있었어요. 일단 가장 독특하게 생긴 건물로 갔어요.
이것은 정말로 발칸 유럽 - 특히 남부 발칸 유럽에서 본 건물과 비슷했어요.
일단 입장료를 내야 했어요. 현재는 박물관이었어요. 내부에 크게 볼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직원이 직접 하나 하나 설명해 주어서 볼 만 했어요. 직원은 러시아어와 아제르바이잔어만 할 줄 알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제르바이잔어로 설명을 들었어요. 제가 아제르바이잔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 친구가 설명을 듣고 옆에서 다시 이야기해 주었어요.
그러면 그렇지...
이 건물은 5~6세기에 알바니아인들이 지은 건물이라고 했어요. 남부 발칸 유럽은 알바니아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에요. 알바니아, 코소보, 마케도니아는 알바니아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 거기에서 본 기억이 있어서 그때 본 건물과 유독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알바니아인들이 지은 건물이었어요.
칸사라이를 향해 가는데 박물관이 또 있었어요. 그래서 또 들어갔어요. 역시나 유료.
입구에는 옛날 바쿠 모습을 축소해 놓았어요. 이 도시 모형 옆에는
이건 아무리 책을 탐내는 나이기는 해도...
아제르바이잔어 셰키 방언 사전. 저건 제가 탐내기에는 너무나 큰 존재였어요. 설령 저것을 판다 해도 저것을 들고 가는 건 무리. 작은 판본이 있다면 구해서 돌아가고 싶기는 했어요. 하지만 저것은 아니었어요. 저거 들고 당장 바쿠 가는 것도 문제. 그래서 그냥 대충 구경만 했어요. 제가 책을 보고 있자 직원이 셰키 방언은 표준 아제르바이잔어와는 차이가 조금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이 박물관 역시 유료였지만 반드시 들어가 보아야 할 곳은 아니었어요. 만약 러시아어나 아제르바이잔어를 안다면 직원의 설명을 들으며 보면 되니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러시아어나 아제르바이잔어를 모른다면 제대로 된 설명은 못 들을테고, 그렇다면 당연한 결과이지만 입장료로 낸 돈이 아까울 거에요.
박물관 두 곳 모두 나갈 때 기념품 안 사가냐고 했어요. 출구에 기념품점이 있고 기념품을 사가라고 권했어요. 그러나 사지는 않았어요. 셰키에 비단 공장이 있어서 여기 비단이 유명하기는 해요. 하지만 제가 비단 제품을 쓸 일이 없었거든요. 한국 돌아갈 날은 멀었고, 제 주변에 비단으로 만든 스카프를 사용할 사람도 없었구요. 다른 기념품과 선물은 칸사라이까지 구경한 후 구시가지 가서 구입할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대충 어떤 기념품이 있나 훑어보고만 나왔어요.
박물관 앞에 있는 대포.
그냥 설명을 들으며 재미있게 보았다고 생각하며 칸사라이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다시 알바니아인들이 지은 건물을 지나 위로 올라갔어요.
무엇을 위해 만든 것인지는 알 수 없었어요.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물어볼까 했지만 사람도 없었어요.
또 위로 걸어 올라갔어요.
풍경을 감상하며 걸어갔어요. 급히 걸을 필요도 없고, 풍경도 아름다웠어요.
그렇게 계속 걸어 올라가서 칸사라이에 도착했어요.
칸사라이에 도착해 표를 사기 위해 입구 맞은편에 있는 조그만 매표소로 갔어요.
"학생 할인 되나요?"
"안 되요."
여기에 온 이유는 칸사라이를 보기 위해서였어요. 박물관을 보고 칸사라이 안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고깃집 가서 생마늘과 상추만 먹고 고기는 안 먹고 나오는 것. 그래서 표를 끊었어요. 표는 2 마나트였어요.
직원이 표를 끊어주며 안에 바로 들어가지 말고 건물 앞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사람이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가라고 했어요.
안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칸사라이 건물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었어요.
이 플라타너스는 1530년에 심은 나무로, 둘레 11.5 미터, 높이 34미터래요. 이 나무가 얼마나 큰 지는 이 사진을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어요.
24mm에 0.7배 컨버터 렌즈를 끼우고 찍은 사진이에요. 그런데도 나무를 사진 안에 우겨넣기가 힘들었어요.
상식적으로 사진 안에 다 넣을 수 없다면 뒤로 가서 찍으면 되요.
문제는 이곳은 출입 금지. 칸사라이 앞 공간의 절반 정도는 이 정원이 차지하고 있었어요. 여기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칸사라이 건물을 찍든 거대한 플라타너스를 찍든 코 앞에 들이대고 찍는 기분으로 사진을 찍어야 했어요.
24미리로 찍어도 사진에 다 들어가지 않고
컨버터 렌지 끼워서 17미리로 찍으면 주변부 화질 저하 및 색수차가 너무 티가 났어요.
에라, 모르겠다.
그냥 적당히 잘라서 사진에 집어넣고, 다가가서 찍어 버렸어요. 뭔가 자세히 찍고 분위기를 살려보기 위해 이렇게 두 장을 찍은 게 아니라 그냥 사진 한 장에 다 집어넣기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이렇게 찍은 거에요.
앞에서 사진 찍으며 놀다 나무 아래 앉아서 쉬는데 여직원이 나와서 우리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오라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러시아에서 온 듯 싶었어요.
"신발에 이거 끼우세요."
가이드는 신발에 비닐 덮개를 씌우라고 했어요.
"러시아어 알아요?"
"몰라요."
"음...영어 알아요?"
"예. 아제르바이잔어도 알아요."
그때부터 직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러시아어로 설명해준 후, 우리들에게는 아제르바이잔어로 설명해 주었어요. 물론 영어로 설명해 주었다면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들어야 하는 아제르바이잔어 설명보다 편하게 들었을 거에요. 문제는 직원이 영어를 잘 못 한다는 것. 그래서 일단 제가 적당히 알아듣고, 친구가 나중에 다시 설명해주는 방법으로 설명을 들었어요.
칸사라이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 전체적 감상은 아기자기하고 화려했다는 것이었어요. 벽화 중 회의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었어요. 그 그림에 1000명이 그려져 있다는 설명이 가장 기억에 남았어요. 칸사라이는 칸의 여름 궁전이자 집무실. 칸이 잠을 자는 곳은 아니었어요. 목조 건물이고, 내부에 벽난로처럼 생긴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환기 시설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내부는 매우 시원했어요.
여기도 마지막 출구쪽은 기념품 가게. 모두 대충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어요.
칸사라이를 둘러보며 아쉬웠던 점은 출구에 기념품점을 설치해놓고 직원들이 거기에서 무언가 사기를 바라는 모습이었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출구에 기념품점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진짜 아쉬웠던 것은 아직 이곳은 관광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와 개발이 덜 되었는지 '칸사라이에 왔기 때문에 사고 싶은 것'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기념품점에 있는 것은 전부 '셰키에 왔기 때문에 사고 싶은 것'이었지 '칸사라이에 왔기 때문에 사고 싶은 것'은 아니었어요. 이러면 다 나가서 사죠. 나가서 가격도 비교해보고, 품질도 비교해보며 사는 게 당연한 생각. 이 점은 앞으로 조금 더 신경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거 정말 우리나라 생각나게 하네.
칸사라이에서 나오며 웃었어요. 절반은 아름다움을 느긋하고 평화롭게 즐길 수 있어서였어요.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이게 아제르바이잔만 부족하다고 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사실 우리나라도 관광지 기념품점에서 파는 기념품은 정말 그놈이 그놈이에요. 여기만 바쿠에서 파는 거랑 큰 차이 없는 것을 가져다 놓은 게 아니라 우리나라도 그러니까요.
칸사라이는 큰 건물이 아니라 둘러보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이제 구시가지로 갈 차례.
성에서 나왔어요. 아무리 보아도 정말 한산했어요. 이런 성수기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어요. 정말 옛날에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여기를 돌아다녔을 때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런 그림을 그린 엽서라도 한 장 있었다면 아마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몇 장 구입했을 거에요. 한 장은 제가 가지고, 나머지는 친한 사람들에게 보내주게요.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