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심야시간 풍경을 찍으러 가야 했어요. 한라병원 근처까지 왔기 때문에 신광초등학교를 지나 제주서중학교쪽으로 가기로 했어요.
'오일장 심야시간 풍경은 어떨까?'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은 제주도에서 간단히 '오일장'이라고 줄여서 불러요. 제주도에 오일장이 제주시 민속오일시장만 있지는 않아요. 한림, 세화, 표선에도 오일장이 있어요. 그러나 누가 뭐래도 제주도에서 제일 크고 제일 유명한 오일장은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이에요. 제주도에서 '오일장'이라고 하면 보통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을 지칭해요. 한림 5일장, 세화 5일장, 표선 5일장은 '한림장, 세화장, 표선장' 정도로 불러요.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은 2,7일장이에요. 2와 7로 끝나는 날에 열리는 5일장이에요. 5일장이 열리면 이쪽은 차도 많고 사람도 붐벼요. 많은 대형 유통업체가 들어오면서 재래시장이 많이 쇠퇴했어요. 그러나 제주시 오일장만큼은 전혀 쇠퇴하지 않았어요. 전국적으로도 상당히 희귀한 경우에요. 아직까지도 상당히 큰 시장이거든요. 성격이 변질된 것도 아니에요. 동문시장은 관광시장화되어서 간신히 부활했지만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은 여전히 전형적인 재래시장이에요.
제주시 사람들에게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은 단순히 5일장이 아니에요. 5일마다 열리는 일종의 축제에 더 가까워요. 진짜 장 보러 가는 사람도 많지만 쓸 데 없이 그냥 놀러 가는 사람도 꽤 있어요. 딱히 살 것도 없는데 오일장이니까 오일장 간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사람 구경도 하고 적당히 먹을 거 있으면 먹고 간단한 거 몇 개 사서 집어오는 경우요.
이렇게 제주도의 많은 도민들이 찾아가는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제주시 오일장을 안 가본 제주도민은 없을 거에요. 진짜 장 보러 간 거든 놀러 간 거든 떠나서요.
'오일장 심야시간 풍경 촬영 될 건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심야시간에 오일장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오일장은 2,7일 장이에요. 가끔 다른 지역 5일장 보면 굳이 장날이 아니더라도 물건 팔고 있는 상인들이 조금 있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하지만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은 아니에요. 장날에는 사람이 정말 많지만 장날이 아닌 날에 가보면 그냥 휑해요. 장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아주 예전에 제주시 민속오일시장은 한라병원 근처에 있었어요. 이후 화북쪽으로 이동했다가 제주시에서 현재 위치인 도두동 넓은 공터에 장터를 조성했어요. 오일장이 규모가 큰 재래시장이다 보니 당시로는 개발이 전혀 되지 않은 곳에 공터를 마련해 이동시켰어요. 지금도 그쪽은 그렇게 크게 개발된 편이 아니에요.
심야시간에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가는 거 자체가 이상한 행동이었어요. 동문시장은 그래도 상설시장이고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심야시간에 가도 딱히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어요. 그러나 오일장 근처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장날이 아닌 때 백주대낮에 가도 매우 이상한데 장날도 아닌 날 심야시간에 가면 더 이상했어요.
장터 안을 돌아다니다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는 경우도 생각해봐야 했어요. 그래도 이건 괜찮았어요. 더 큰 문제가 있었어요.
거기 아무 것도 없을 건데 깜깜해서 뭐 찍히는 거나 있을 건가?
이것이 진짜 문제였어요. 오일장에 불이 켜져 있을 리 없었어요. 제주시에서 장터로 조성해놔서 시설 같은 것은 그대로 있어요. 그러나 그 시설도 시멘트로 바닥 매끄럽게 하고 장터 좌판 만들고 그 위에 지붕 쳐놓은 정도였어요. 제대로 된 건물이 있는 곳이 아니에요. 그러니 시장 내부에 밤새 조명을 환하게 켜놓을 일도 없었어요. 그럴 필요가 아예 없는 곳이니까요.
조명이 없다면 영상은 그저 시커멓게 찍힐 뿐이었어요. 분간되는 것 없고 보이는 것도 없구요. 이게 진짜 문제였어요. 저는 영상을 후보정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전부 시꺼멓게 찍혀버리면 아무 의미없었어요. 뭐가 보여야 영상으로서 가치가 있죠.
"여기부터 찍을까?"
오일장 입구가 나왔어요.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어요.
"아...아니다. 여기는 진짜 못 찍겠다."
오일장 입구에서 오일장 장터까지 걸어가는 길은 짧지 않아요. 게다가 깜깜해서 시꺼먼 어둠 말고 찍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일단 오일장 장터 가서 봐봐야겠다.'
오일장 입구에서부터 오일장 장터까지 걸어가는 과정은 과감히 생략하기로 했어요. 너무 재미없었고 쓸 데 없이 길었어요. 게다가 뭐 보이는 것도 없었어요. 이건 그냥 날려버리는 게 맞았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화면을 몇 분이고 멍하니 바라볼 사람은 없으니까요.
오일장 장터 입구에 도착했어요.
'슬슬 촬영 시작해볼까?'
어느 정도 불빛이 있었어요. 일단 촬영하면서 돌아다닌 후에 영상을 살릴지 지워버릴지 결정하기로 했어요. 만약 영상을 지워버릴 거라면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몇 장 찍고 가기로 했어요.
어둠 속으로 들어갔어요.
'아놔, 이 분위기 뭐야?'
어둠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긴장되었어요. 아무 것도 없는 오일장. 으스스했어요. 장날 낮에 보던 풍경과 완벽히 반대였어요.
제 발자국 소리조차 매우 크게 들렸어요. 제 그림자가 저를 덮치려고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느껴졌어요. 제 그림자조차 저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고 있었어요. 귀신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여겨질 풍경이 계속 나왔어요.
오일장날 생선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어요.
'와...이거 무슨 공포 영화 아니야?'
보라색 조명. 스티로폼 상자가 놓여 있는 좌판. 아주 살짝 느껴지는 비린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했어요.
'이거 완전 연쇄살인마 나오는 영솨 속 장면이잖아!'
공포 영화나 스릴러 보면 불 꺼진 병원이 나올 때가 있어요. 딱 그 장면이었어요.
침침한 보라색 조명. 어디에선가 살인마가 날이 선 칼을 들고 발걸음 죽이고 한 걸음씩 다가와. 죽음의 냄새가 여기저기에서 살살 피어오른다. 출구를 찾아 걸어가는 주인공. 그 뒤에서 빛나는 칼날에 반사된 보라색 불빛. 여기저기 널려 있는 죽음의 상징.
시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미세하게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주인공의 발자국 소리가 여기에 새로운 제물이 있음을 사방으로 소리쳐. 뒤돌아보는 주인공. 아무 것도 없어. 모든 것은 정적인 상태. 기분나쁜 공기의 움직임이 주인공의 뺨을 스쳐가며 귓가에 속삭여. 너는 여기에서 못 나가. 너는 여기에서 쓰러져. 너는 여기에서 사라져.
너무나 자연스럽게 떠올라버린 스토리. 하필 여기는 생선 손질하고 판매하는 시장. 여기에 끌려온 생선은 죽음과 연관돼. 살아있는 것의 목을 향해 내리치는 칼날. 납치되어 얼어붙어 죽어버린 시체들. 배를 가르고 살점을 분리해. 슥삭슥삭. 공기 속으로 퍼져나가는 피냄새.
끝없이 떠오르는 생각들. 좋은 생각이라고는 전혀 없었어요. 졸지에 공포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버렸어요.
보라색 불빛으로 가득찬 공간에서 벗어났어요.
출구를 향해 걸어갔어요. 아무 일 없이 제주도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심야시간 촬영을 무사히 끝마쳤어요.
위 영상이 바로 이날 - 2020년 2월 11일 새벽 4시에 촬영한 기괴하고 괴이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제주도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심야시간 풍경 영상이에요.
'여기는 지금까지 심야시간 풍경 촬영하며 다녀본 곳 중 무서웠던 곳 3위다.'
제주도 제주시 민속오일시장 심야시간 촬영 경험은 아쉽게도 3위에 그쳤어요. 1위와 2위는 아예 차원이 달랐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