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슈하바트에요."
담배를 신나게 태워대던 택시 기사는 이제부터 담배를 태워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드디어 아슈하바트인가...
멀리 '아슈하바트'라고 쓰인 문이 보였어요.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해가 져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어요. 어둠 속에서 본 아슈하바트는 큰 인상이 없었어요. 분명 그렇게 악명 높은 도시였는데, 기대와 달리 우리나라 분당이나 청주 들어가는 길 그 이상의 느낌은 없었어요.
택시 기사는 어두컴컴한 공원 근처에서 차를 세우고 제게 뒷자리로 가라고 한 후, 앞에 친구로 보이는 청년을 태웠어요.
'합승인가?'
그런데 아슈하바트 다 와서 합승을 시킬 리는 없었어요. 그리고 그 청년을 앞자리에 태운 이유는 금방 밝혀졌어요.
택시 기사도 아슈하바트 잘 몰라.
택시 기사는 아슈하바트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앞에 청년을 태운 이유는 자기도 아슈하바트 지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길 안내 좀 해 달라고 태운 것이었어요. 택시 기사와 청년은 우리에게 어디에 차를 세워주냐고 물어보았어요.
"가장 싼 호텔이요."
저렴한 아슈하바트 숙소 정보는 결국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택시 기사와 청년에게 돈을 지불할테니 당신 집에서 하루 신세져도 되냐고 물어보았어요. 관광 비자는 거주지 등록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경유 비자는 거주지 등록 의무가 없거든요. 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했어요. 그래서 그냥 아슈하바트에서 가장 싼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했어요.
청년이 길 안내를 하고 택시 기사는 청년이 이야기하는 대로 운전을 했어요. 두어 번 청년의 안내를 택시 기사가 놓쳐서 뱅글 뱅글 돌다 커다란 호텔 앞에 택시를 세웠어요.
Hotel Paýtagt
우리 말로 하면 '수도 호텔'. 그런데 외관부터 심상치 않았어요. 이건 분명 아무 호텔이나 데려다 준 거라는 생각이 확 들었어요. 제일 싼 호텔 데려다 달라고 하니까 엄청 큰 호텔로 데려다 주었어요. 이 호텔은 원래 이름이 '호텔 아슈하바트'에요. 아슈하바트가 투르크메니스탄 수도인 걸 생각하면 서울 호텔을 수도 호텔로 이름을 바꾼 셈.
"여기 싼 곳 맞아요?"
"여기 싸요. 1박 30마나트."
아무리 생각해도 저 호텔이 저렴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방 잡는 것 좀 도와달라고 했는데 계속 여기가 제일 싼 호텔이라고만 하며 어떻게든 빨리 보내려고 했어요.
둘이서 계속 '여기 제일 싼 호텔이야!'라고 외치며 들어가면 된다고 버텨서 알았다고 하고 돈을 주고 짐을 내렸어요. 돈을 받자마자 둘은 총알 같이 차를 몰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요.
그래. 너희 정보가 정확하기는 했어.
호텔은 정말 저렴했어요. 마치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머물렀던 호텔 포이타크트처럼 외관은 엄청 비싸 보였으나 실제로는 그다지 비싸지는 않은 그런 호텔이었어요. 게다가 내부는 호텔 포이타크트보다 훨씬 좋아 보였어요.
그런데 방이 없다.
그들의 정보가 맞기는 했지만, 문제는 방이 없다는 것. 리셉션에 방 있냐고 물어보자마자 단칼에 '방 없어!'라고 말을 잘라버렸어요. 뒤를 보니 열쇠는 하나도 없었고, 호텔 내부는 현지인들이 바글바글했어요. 하긴 내가 현지인이라도 여기서 머무르겠다. 낮에 왔다면 빈 방이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9시가 넘었어요. 이 시각에 제대로 된 방이 남아 있을 리가 없었어요. 게다가 가격도 2인실이 30 마나트였으니까요.
이제부터 고난의 길 시작 확정.
여기는 론니플래닛 정보도 믿을 게 못 되는 동네. 무작정 짐을 끌고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호텔이 보일 리 없었어요. 한참 돌아다니는데 그랜드 투르크멘 호텔이 나타났어요.
"저기서 자면 안 돼? 나 힘들어."
일단 외관은 호텔 포이타크트보다 별 볼 일 없었어요. 친구가 더 이상 걷는 것은 도저히 무리라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일단 짐 보고 있으라고 한 후, 가격을 물어보러 들어갔어요.
"1박 160달러."
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흐
"야, 가자."
"왜? 저기서 자면 안 돼?"
"1박 160달러라는데? 너가 낼래?"
친구는 160달러 어치 힘이 났어요.
호텔을 나오며 본 것은 호텔 입구 - 즉 외부에 재떨이가 있었고, 그 안에 담배 꽁초가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재떨이 근처에서 담배를 태우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어요.
이제 믿을 곳이라고는 오직 하나 뿐. 호텔 다이한 Myhmanhana Daýhan 이었어요. Myhmanhana는 미흐몬하나 아니에요. 므흐몬하나에요. Myhmanhana을 미흐몬하나든 므흐몬하나든 어떻게 읽든 간에 여기를 못 가면 방법이 없었어요. 론니플래닛에 나와 있는 저가 숙소들은 우리가 있는 쪽과 정반대쪽이었거든요.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이라면 아직은 짐이 별 거 없어서 짐이 부담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으...더워!"
목은 마르고 슬슬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숙소가 보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아슈하바트 도로명은 변화 중. 이제는 일괄적으로 숫자로 바꾸고 있었기 때문에 지도에 나와 있는 도로명과 표지판에 적힌 도로명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어요. 도로명이 지도와 맞지 않는 곳이 종종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론니플래닛에 나온 민박집은 포기하고 무조건 다이한 호텔로 가기로 했어요. 이제 시간도 너무 늦어서 이러다가 밤새 짐 끌고 걸어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는 상황.
지도를 보며 다이한 호텔을 찾아가는데 공원이 하나 나왔어요.
"일단은 맞게 찾아 왔어."
친구가 론니플래닛에 수록된 지도를 보며 다행히 맞게 잘 왔다고 했어요.
"더우니까 조금 쉬었다 가자."
어차피 다 망했어요. 아주 시원하게 망했어요. 이제 선택지 따위는 없어요. 무조건 다이한 호텔로 가야 해요. 10분 정도 쉬었다 가나 안 쉬었다 가나 이 야심한 시각에 달라질 건 없겠지. 친구랑 앉아서 둘이 아무 말 없이 쉬었어요.
"여기 아슈하바트 맞아?"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그 악명 높은 아슈하바트. 그런데 길가는 담배 꽁초와 해바라기씨 껍질 천지. 공원에는 없었지만 길가에는 많이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타슈켄트에서 보이는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이 보이는 거 같았어요. 그리고 우리가 사진으로 보며 기대했던 하얀 건물들의 연속도 없었어요. 그냥 딱 분당이나 청주에 간 기분이었어요.
쉬다가 일어나 공원을 따라 걸어갔어요. 지도를 보니 공원을 따라 걸어가다보면 다이한 호텔이 있다고 했어요.
공원 길을 따라 걷는데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어요. 산책도 하고, 앉아서 떠들기도 하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놀고 있는 아이들도 보였어요. 그리고 공원 끝에 있는 조형물로 가자 커플 세 쌍이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한밤중에 찍으면 사진이 잘 나올 건가?"
"낮에는 덥잖아."
깜깜한 한밤중에 웨딩 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다시 호텔을 찾아 걸으려는데...
잠깐...호텔 어디야?
분명 공원을 따라가다보면 호텔이 보여야 했어요. 그런데 호텔 끝까지 오는데 호텔을 보지 못했어요.
아...망했다.
뭐 특별히 욕이 나오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그냥 이제는 거의 체념 수준. 공원에서 노숙을 해야 하나, 아무나 잡고 돈 드릴테니 하룻밤만 재워주세요 빌어야 하나, 이빨을 꽉 깨물고 그랜드 투르크멘 호텔에서 1박 해야 하나 등등의 생각이 가슴에서 머리로 올라왔어요. 땅을 팠는데 똥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듯 오늘 밤을 어떻게 넘길지에 대한 다양하고 매우 못마땅한 생각들이 머리 속에 흘러 넘치는 듯 했어요.
목이 말라서 음료수를 하나 사며 다이한 호텔이 어디냐고 물어보았어요.
"저기."
응?
분명 다이한 호텔이 이 근처에 있는 것은 맞았어요. 왜 못 봤지?
당연했어요. 제가 멍청했으니까요.
뭐 이랬던 거에요. 이러니 당연히 못 찾죠.
호텔에 들어갔어요.
"방 있나요?"
"어떤 방?"
"2인 1실이요."
"50달러. 비자는?"
"경유 비자요."
2인 1실이 1박에 50달러였어요. 다음날 저렴한 호텔 찾아 돌아다니느니 차라리 여기서 그냥 2박 하고 내일은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2박 하기로 했어요. 호텔에서는 우리의 비자가 경유 비자라는 것을 확인하고나서 방을 내주었어요.
입구에 붙어 있는 금연 표지.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자 역시나 금연 표지가 붙어 있었어요.
냄새가 난다.
복도에 무언가 태우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어요. 대체 뭘 태워댔길래 복도에서 탄 내가 진동하는 거야? 물론 잘 알고 있었어요. 실내에서 쓰레기 소각하는 것도 아닐텐데 당연히 태울 거라면 하나 밖에 더 있겠어요.
방에 들어가보니 방은 꽤 괜찮았어요. 깨끗하고 텔레비전, 냉장고도 있었고,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왔어요. 물은 졸졸 나온다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잘 나오는 편이었어요. 그리고 온수도 잘 나왔구요. 하지만 방에서도 저는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 냉장고 위 수납장 문을 열어 보았어요.
내 이럴 줄 알았다.
수납장 안에는 재떨이가 하나 있었어요. 제대로 치우지 않은 재떨이라 꽁초는 없었지만 재가 뭍어 있었어요. 뭍어 있는 재의 상태를 보니 오랫동안 방치된 재는 아니었어요. 이건 누가 보아도 태운지 얼마 되지 않은 담뱃재 가루였어요. 재떨이에 찌들어 있는 담뱃재 가루가 아니라 후 불면 다 날아갈 것 같은 자유로운 영혼의 담뱃재 가루였거든요. 즉, 우리 이전에 이 방에서 잔 사람은 분명 방 안에서 담배를 태웠다는 이야기.
들어오자마자 쉴까 하다가 마실 것이 없다는 게 생각났어요. 그래서 호텔 밖으로 나갔어요.
가게 문이 닫혔어요.
그래서 그냥 돌아와 씻고 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