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래도 되는 거야? 경찰 있는데?'
오히려 보는 사람이 불안할 지경이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의 승용차는 뒷자리 유리창은 밖에서 잘 보이지 않게 선팅을 하는데 앞자리 유리창은 밖에서 보면 보여요. 택시 기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앞자리에 앉죠. 투르크메니스탄이 아무리 '이상한 나라'라고 알려졌다 해도 운전석이 뒷자리에 있는 차들이 굴러다니는 나라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뒤에 경찰이 있었어요. 하지만 택시 기사는 아무렇지 않게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담배를 뻑뻑 태워대었어요.
차에 올라타자마자 담배를 뻑뻑 태우는 택시 기사...정말 혼란스러웠어요. 그동안 인터넷에서 보아 온 '금연국가 투르크메니스탄'이라는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어요. '금연국가 투르크메니스탄'은 사파르므라트 니야조프의 악명을 드높이는 데에 일등공신이었어요. 우리나라도 금연 구역을 늘려가고 있기는 하지만, 자기 건강 지키려고 전국민에게 금연령을 내린 나라는 이 나라 밖에 없어요. 그리고 흡연자는 담배 못 태워서, 비흡연자는 담배 몰래 태우는 투르크멘 사람들 때문에 이 문제는 종종 짚고 넘어가는 문제였어요.
나는 이 문제를 반드시 밝혀내고야 말겠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어요. 처음 투르크메니스탄을 가기로 결심했을 때 제 이유와 목표는 다음과 같았어요.
1. 일단 가기 힘든 나라이기 때문
2. 투르크메니스탄만 가면 모로코에서부터 타지키스탄까지 유라시아 횡단이 완성
3. 투르크멘어 학습 자료가 너무 없음
투르크메니스탄에 입국을 잘 했으므로 1,2번 목표는 이미 달성했어요. 이제 남은 것은 오직 3번 뿐.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확실히 부족했어요. 여행 정보가 별로 없는 곳을 탐험하기? 그런 거라면 발칸 유럽 돌아다니며 충분히 했어요. 그 정도로 저를 짜릿하게 흥분시킬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차에 첫날부터 매우 재미있고 흥미로운 주제가 떠오른 것이었어요.
아랍, 튀르크, 구소련권은 골초 많기로 소문난 동네에요.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도 골초 많은 것은 이미 다른 여행자들이 진술했어요. 과연 대통령이 무시무시한 막장 독재자였다 해서 그 사람이 금연령을 내려서 전 국민이 금연을 했을까요?
말이 안 되지.
그렇게 쉽게 끊을 담배라면 왜 청소년 흡연이 문제겠어요. 징계와 비난을 먹을대로 먹어가면서도 끝끝내 담배를 끊지 않는 청소년들은 과연 의지의 한국인의 피가 혈관 속에 철철 흘러넘쳐서 담배를 계속 태워대는 걸까요? 천만의 말씀이에요. 담배 끊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어요.
게다가 투르크멘인이 담배를 태우고 있다는 것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담배가 팔리고 있다는 것. 수요가 있으니 공급은 당연히 있죠. 이건 사회의 상식.
지금까지 투르크메니스탄을 다녀와 여행기를 남긴 사람들의 글을 보면 니야조프의 '담배 끊어라' 명령은 분명히 '담배 태우는 거 눈에 띄지 마라'로 변질되어 버렸어요. 안 그러면 투르크메니스탄 사람들이 담배를 태울 수가 없죠. 담배를 구할 수가 없는데요. 하지만 담배를 잘 구해서 잘 태우고 있는데 '담배 끊어라' 명령이 과연 '담배 끊어라' 명령일까요?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의 흡연 방법을 관찰하기로 했어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이 나라의 문화 연구. 니야조프 사후의 투르크메니스탄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바라기씨도 거리에서 하는 것이 금지인데 이건 이 나라 사람들의 흡연 방법을 연구하면 그냥 답이 따라나오는 문제였어요. 담배보다 해바라기씨가 몰래 하기 더 좋으니까요. 해바라기씨 까먹는 것은 냄새도 없고 연기도 안 나요. 남는 것은 껍질인데 껍질이야 알아서 잘 처리하면 되죠. 주머니에 집어넣어서 숨겨버리면 되니까요.
연구 결과는 뒷편에서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택시 기사는 담배를 뻑뻑 태우며 운전해 주유소로 갔어요. 그래도 상식은 있어서 주유소에서는 담배를 태우지 않았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의 휘발유 가격은
A-95 0.65마나트
A-92 0.58마나트
A-80 0.54마나트
디젤 0.58마나트
이러니 여기 사람들은 차에 휘발유를 넣는구나!
우즈베키스탄은 차를 개조해서 가스를 충전해요. '이 택시는 휘발유로 가는 택시야!'라고 자랑하고 가격을 더 세게 부르는 나라에요. 그런데 투르크메니스탄 오니 사람들이 차에 휘발유를 넣고 있었어요. 한국에 있었을 때 주변에서 사람들이 기름값 비싸다고 하는 이야기를 매우 많이 들었는데 이건 정말 부러웠어요.
기름을 채우고 달리기 시작했어요. 차는 금새 투르크메나바트를 벗어나 지루한 풍경 속으로 들어갔어요.
사람 보기 이렇게 어려울 수도 있구나.
정말 사람 보기가 어려웠어요. 더워서 없는 것인지 원래 없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아무리 척박해도 사람 보기가 힘들지는 않았던 우즈베키스탄과는 달랐어요. 하지만 사람이 없다고 인상적이지는 않았어요. 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5개월 머무르다 투르크메니스탄에 들어온 것이었거든요. 아제르바이잔에서 넘어오는 길에 투르크메니스탄을 거쳐가는 사람이라면 인상적일 수도 있겠지만, 여기까지 오며 글자와 언어, 국기와 대통령 사진을 제외하고 대체 뭐가 우즈베키스탄과 다른지 감이 오지 않았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은 지은 지 얼마 안 된 하얀 대리석 건물들이 유명해요. 그런데 그런 건물들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도 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처럼 많이 지어놓지 않아서 그렇지, 우즈베키스탄이라고 없는 것은 아니에요. 우즈베키스탄과 자꾸 비교하며 '투르크메니스탄 볼 거 없네'라고 생각하는 것이 여행자로서 거의 실격에 가까운 태도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과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비교가 되었어요. 왜냐하면 그만큼 보이는 풍경에서 차이를 찾기 어려웠으니까요.
나는 지금 우즈베키스탄을 벗어난 것이 맞는 것일까?
아침 7시경부터 정신없이 움직였고, 정말 다양한 일이 있었어요. 투르크메나바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지루한 적이 없었어요. 화가 나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고, 짜증이 나기도 했어요. 아침 7시경부터 아슈하바트로 가는 택시가 출발할 때까지 제 기분은 마구 신나게 널뛰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루함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뒤를 돌아보니 아침 6시경 기차에서 일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른 건지 내가 빨리 움직인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아침에 보았던 우즈베키스탄의 풍경과 거의 비슷했어요.
나는 지금 우즈베키스탄을 벗어난 것이 맞나?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머리로는 단 1초의 망설임도 필요 없었어요. 하지만 마음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어요. 게다가 택시 기사는 어설프게나마 우즈벡어를 할 줄 알았어요. 투르크멘어를 왕창 섞어 쓰는 택시 기사의 우즈벡어는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제가 우즈벡어를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닌데다, 우즈벡어도 방언이 있어서 상대가 방언으로 이야기하면 아직 잘 못 알아듣거든요. 제 주위의 모든 것으로부터 우즈베키스탄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있었어요.
규모가 큰 공장 앞을 지나갔어요.
길에 큰 화물 트럭이 종종 보였어요. 화물 트럭의 대부분은 이란 트럭이었어요.
길에 차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어색해 보인 문이었어요. 그리고 사진을 찍고, 여행에서 돌아와서야 알았어요. 아지랭이 때문에 상이 쭈글쭈글해 보이는 것이 사진으로 찍힐 수도 있다는 것을요.
길 옆은 사막이었어요.
왠지 투르크메니스탄다운 사진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진이에요. 멀리서 아지랭이, 그리고 얼마 없는 차. 차가 얼마 없었기 때문에 차는 당연히 고속으로 달리고 있었어요. 도로 상태도 괜찮은 편이었어요. 하지만 창문을 닫았기 때문에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는지 온몸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예전에 차를 타고 돌아다닐 때에는 항상 창문을 열고 탔지만 지금은 감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도 차 안은 더웠거든요.
'복사열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았는데 햇볕이 비치는 쪽은 뜨거웠어요. 에어컨 근처는 시원한데 그 외 앞자리는 더웠어요. 하지만 뒤에 앉아 있던 친구는 에어컨을 너무 세게 튼다고 불만이었어요. 친구 자리는 진하게 선팅을 해서 햇볕이 잘 차단되고 있었거든요.
사막이 펼쳐졌어요.
푸른 빛을 보자 너무 반가웠어요. 황량한 벌판을 보는 건 너무나 지루했거든요.
"강이다!"
아까 아무다리오를 보았지만 강을 보니 너무나 반가웠어요. 물이 더럽기는 했지만 풍덩 뛰어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황량함 속에서 만난 강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지루함의 연속에서 작은 변화였어요. 비록 차가 빠르게 달려 오래 감상할 수는 없었지만 강을 본 것 만으로도 만족스러울 정도였어요.
"트랙터가 밭을 간다!"
이런 게 반가울 줄은 정말 몰랐어요.
"마을이다! 여기도 사람이 살기는 사는구나!"
투르크메니스탄 비자를 받은 날, 저는 한 가지 결심을 했어요. 그 결심은 바로 투르크메니스탄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는 것! 비자 받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은 물론이고, 이 비자를 다시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어요. 이번은 어떻게 일이 잘 풀려서 비자를 받기는 했지만 다음번에 또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에 갈 수 있을지도 불투명했어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타슈켄트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에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원래 어려웠는데 이제는 더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쓸모없는 풍경이라도 찍고 볼 생각이었어요. 길 위에서는 왜 찍어야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는 사진이겠지만, 다시는 못 찍을 수도 있는 사진이자 구하기 어려운 귀중한 자료가 될 테니까요.
하지만 막상 투르크메니스탄에 들어와서 보니 사진을 찍을 것이 없었어요. 그저 사막, 들판이 전부였어요. 지금까지 나온 사진은 그나마 괜찮은 사진들이에요. 여기 나오지 않은 사진들은 정말 '가기 어려운 나라이기 때문'과 '비자 받기 위해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 찍은 사진들이고, 그나마도 많지도 않아요. 풍경들이 대체 무엇을 중점으로 삼아 찍어야할지 감조차 안 오고, 아까 본 풍경이 또 펼쳐지는 듯한 풍경의 연속이었거든요.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기를 잡고 검지 손가락은 셔터 위에 올리고 창 밖을 보고는 있는데 대체 무엇을 찍어야할지 조차 감도 안 잡히는 찍을 것 없는 황량한 풍경이 투르크메니스탄의 풍경이었어요.
차는 계속 신나게 달렸어요. 처음에는 창밖을 집중해서 보았지만 이제는 제발 메르브에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이었어요. 이제 흥미도 많이 떨어졌어요. 그저 지루함만 느낄 뿐이었어요. 풍경의 변화라고 할 만한 것조차 별로 보이지 않았어요. 게임으로 비유하자면 정말 맵 만들기 귀찮아한 티가 팍팍 나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아주 데자뷰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지경이었어요.
황량한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꽤 좋은 도로와 그 위의 아지랭이.
버스는 예쁜데?
먼지가 분명 많이 날릴텐데 버스는 깨끗해 보였어요. 진한 초록과 하얀색의 조화가 풍경과 참 잘 어울려 보였어요. 외관이 깨끗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다니...저도 우즈베키스탄 5개월 머무르며 중앙아시아의 풍경에 많이 적응한 거 아닌가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