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월요일에 가자 (2012)

월요일에 가자 - 14 타지키스탄 월요일 두샨베 샤 만수르 시장

좀좀이 2012. 5. 24.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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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4일 월요일


오늘은 제게 개인적으로 너무나 의미있는 날이에요.


월요일에 월요일!


타지키스탄 수도인 두샨베 Душанбе 자체가 월요일이라는 뜻. 그리고 오늘은 월요일. 그러므로 저는 월요일에 월요일에 있는 거에요. 이러면 월요병이 두 배로 느껴질까요? 사실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데 '월요일에 월요일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왠지 가슴이 떨렸어요.


잠에서 깨어나 한 가지 결정을 내려야하는 고민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곰곰이 생각했어요.


'영어-타지크어 사전은 분명 가지고 다니기에는 너무 크고, 커다란 크기에 비해 너무 부실하고 없는 단어가 많아. 과연 사야 할까?'


러시아어를 안다면 당연히 러시아어-타지크어 사전을 구하면 되요. 이건 구하는 것이 생각만큼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아무리 영어를 잘 못해도 대한민국에서 대학교까지 정상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영어가 편한 것은 어쩔 수 없어요. 러시아어는 아직도 명사와 형용사의 격변화 암기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어요. 실제 알고 있는 러시아어 단어는 100개 조차 안 되요. 이 상황에서 러시아어-타지크어 사전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사전이 좋다고 해도 어차피 러시아어 모르면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사전인데 제가 러시아어를 아주 유창하게 잘 구사하고 잘 아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아주 못하고 아주 잘 몰라요. 타지크어-러시아어 사전이라면 어떻게 러시아어-한국어 사전을 뒤져가며 보겠지만, 러시아어-타지크어 사전은 사용 목적 자체가 타지크어-러시아어 사전과는 다르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잘 알지 못하면 무용지물.


'그래. 사자. 아무리 조잡하고 부실해도 이곳에서 벗어나면 그것조차 구할 수 없다.'


올라미 키톱에서 영어-타지크어 사전을 사기로 결심하고 전날 본 시장이 무슨 시장인가 론니플래닛을 찾아보았어요.


"여기 중요한 시장이었잖아!"


전날 아무 것도 모르고 간 시장은 샤 만수르 시장. 론니플래닛에서 반드시 가라고 추천한 시장이었어요.


"그 별 볼 일 없는 시장이 론니플래닛에서 추천하는 시장이었다구!"


믿을 수 없었어요. 시장은 매우 작았어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있는 초르수 바자르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크기. 초르수 바자르보다는 훨씬 작고 올로이 바자르보다는 조금 크고 복잡한 정도였어요.


타슈켄트에 있다 와서 별 볼 일 없는 시장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꼭 가 보라고 추천한 곳이었기 때문에 을을 데리고 다시 한 번 가기로 했어요.


일단 올라미 키톱에 가서 우즈벡어를 아는 주인이 있는 가게에 갔어요.


"영어-타지크어 사전 있어요?"
"전에 타지크어-영어 사전 사갔잖아."


영어-타지크어 사전을 45소모니에 구입하고 봉지에 집어넣은 후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여쭈어보았어요.


"찍어. 여기 전부 찍어도 돼."


올라미 키톱 안에 있는 이 가게가 바로 제가 타지크어-영어 사전과 영어-타지크어 사전을 산 가게에요. 사진 속 아저씨가 우즈벡어를 아세요.



올라미 키톱 내부에요. 문방구도 팔고 책도 팔아요. 문방구의 종류와 가격은 우즈베키스탄보다 훨씬 나아요. 우즈베키스탄에 비해 종류도 훨씬 많고 가격도 저렴해요.


서점을 나와 시장으로 가는 길.


"저! 저 환전소는 1달러에 4.86소모니네?"


소모니가 100소모니 조금 넘게 남아 있었어요. 앞으로 최소 3일 일정이 남아 있었어요. 최소 3일은 타지키스탄에 머물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어요. 빠르면 금요일에 우즈베키스탄에 들어가고 늦으면 일요일에 들어갈 생각이었어요. 100소모니가 이 나라에서 작은 돈은 아니지만 최소 3일간 100소모니로 버티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의 여행 경험상 수도의 환율이 제일 좋았어요. 다른 지역으로 가면 환율이 수도보다 안 좋았어요. 우즈베키스탄도 마찬가지에요. 타슈켄트는 현재 암시장에서 1달러가 2700~2850숨인데 사마르칸트는 2500숨 정도에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이렇게 많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암시장이라고 다 같은 가격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잘 쳐주는 가게 또는 암달러상에게 가야 2850숨, 보통 거리에서는 2700대에요.


하여간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수도가 달러 가치가 제일 좋은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각자 50불을 더 환전하기로 했어요.


"1달러 얼마에요?"
환전소 주인 아저씨께서는 계산기로 숫자를 찍어 보여주셨어요. 4.86소모니. 그래서 이 가게에서 모두 50불씩 환전했어요.


참고로 두샨베에서 대부분의 환전소는 4.85소모니인데 돌아다니다보면 가끔 4.86소모니에 해 주는 가게들이 있어요.


돈을 환전하고 샤 만수르 시장에 다시 가는 길. 을이 배고프다고 했어요. 마침 거리에 케밥을 파는 가게가 보였어요.


"케밥 먹어볼래요? 타지키스탄에서 맛보는 터키 음식 어때요? 도전?"
"도전!"


배고파하는 을을 저와 갑이 거리의 케밥을 먹어보라고 부추겼어요. 맛있다고 하면 우리들도 하나씩 사 먹을 생각이었어요. 을은 케밥을 사서 한 입 먹었어요.


"맛 어때?"


을이 인상을 찌푸렸어요.


"맛은 있는데...너무 짜!"


안 사먹기를 잘했다!


이제부터 샤 만수르 시장 구경.



'샤 만수르 시장 구경'이라고 시작은 거창했으나 그 끝은 미약했어요. 혹시나가 역시나였어요. 을 역시 매우 시큰둥해하며 시장을 휙휙 지나쳤어요.


거리에서 헌 책을 늘어놓고 파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런 헌 책 상인들은 H.Muhammad 거리에 주로 있어요.


오늘 목표는 크게 세 가지 있었어요.


1. 타지키스탄 우표 구입 및 친한 사람들에게 엽서 보내기
2. 후잔드행 택시 찾기
3. 빅토리 파크 가기


월요일이라 박물관은 전부 문을 닫았어요. 박물관을 하나도 못 보고 간다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하루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어차피 설명해주는 사람 없으면 정말 굉장한 것이 있지 않는 한 끝없이 지루한 것이 박물관이에요.


지도를 보니 중앙우체국을 갔다가 택시정거장을 갔다가 빅토리 파크를 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동선일 것 같았어요. 원래 아침에 잭키 할아버지를 만나 후잔드행 택시 수배를 도와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아침에 만나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직접 알아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오늘도 역시나 SFC에서 점심으로 햄버거를 사먹고 우체국으로 갔어요. 우체국은 소모니 1세 동상 옆에 있어요.


우체국으로 가는 길. 햇볕이 뜨거워 길 한가운데에 있는 인도로 걸었어요.


거리에 있는 모자이크.


매우 거대하고 외관이 화려한 아파트. 밤에 보니 빈 집이 꽤 많아 보였어요.


드디어 우체국에 도착했어요.


우체국 입구에요.


휑한 우체국 내부. 일단 우표를 사러 갔어요. 이 우체국에도 수집용 우표를 파는 창구가 따로 있었어요.


직원이 다른 곳에서 일한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러시아어를 아는 을이 직원과 이야기해 본 결과, 수집용 우표를 파는 창구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전화를 하면 아마 올 거라고 했어요. 우리에게는 당연히 전화가 없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타지키스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심카드'가 없었어요. 1주일, 길어야 열흘 여행할 건데 심카드를 사서 충전할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고 있었거든요. 일반 우편 접수 창구 직원이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다른 직원이 우리를 위해 전화를 걸어봐준 것 까지는 정말 고마웠어요. 하지만...직원이 일을 두 탕 뛴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 다른 곳으로 파견 근무 중인건가? 아니면 아르바이트라도 하러 나간 건가? 업무 시간에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리에 없다는 말이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수집용 우표 창구 직원이 없자 일반 우편 접수 창구 직원이 타지키스탄 우표를 보여주었어요. 다행히 보통 우표도 나름 예쁘게 생긴 우표들이 있었어요. 우표를 여러 장 구입하자 직원이 봉투에 담아주었어요.


1991년 발행된 소련 우편 봉투...내가 산 우표보다 이 봉투의 값어치가 더 나가겠다! 봉투 상태가 나쁜 것도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냥 방치해놓은 봉투도 아니었어요. 실제 어떻게 어떻게 우편 업무에서 사용되는 봉투에요. 소련의 흔적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아도 놀라지 않았어요. 히사르 성채에서 타지키스탄 SSR이 인쇄된 표를 받았을 때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어요. 올라미 키톱에서 구입한 타지크 민족 설화집이 1963년 타지키스탄 SSR에서 발행된 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어요. 우체국에서, 그리고 일반 우편 업무에서 사용되고 있는 봉투가 1991년에 발행된 소련 봉투라는 것은 정말 충격이었어요. 이건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들었어요. 사실 이 봉투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뿐.


우표를 구입하고 나서 엽서를 사러 갔어요.


이건 매우 어려운 문제네...


우편 엽서라고는 딱 두 종류 있었어요. 둘 다 아주 오래된 사진. 그리고 그냥 건물 사진이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이걸 왜 사진엽서에 사용할 사진으로 골랐을지 그 자체가 의문이었어요. 즉 존재 자체가 의문인 엽서. 그만큼 최악으로도 표현이 부족한 극악의 사진 엽서. 어떻게 봐도 타지키스탄스럽지 않았고 어떻게 봐도 예쁘거나 독특하지 않았어요. 우편 엽서가 정말 극악으로 안 예쁘고 정말 사고 싶은 마음을 싹 사라지게 만든다는 점에서 타지키스탄이 얼마나 관광이 발전하지 않은 나라인지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엽서였어요. 그렇게 좀 더 깊게 생각한다면 아주 부정적인 의미로 타지키스탄스러운 엽서. 정말 엽서를 쓸 마음이 싹 사라져 버리게 하는 엽서였어요.


하지만 극악의 엽서 중 차악을 골라야 한다.


이건 둘 다 최악. 아니, 최악 정도가 아니라 극악. 둘 다 보는 사람 어이없게 만들기는 똑같았어요. 별 특징 없는 오래된 건물 사진 두 장 놓고 뭐가 더 예쁘고 괜찮은지 골라야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고약한 문제였어요.


한참 고민하다 그나마 아주 아주 미세하게 괜찮아 보이는 것으로 고른 후 친한 사람들에게 후딱 엽서를 써서 부쳤어요.


우체국에서 볼 일을 다 마친 후 거리를 잠시 걸었어요.



월요일도 아름다운 루다키 공원.



월요일 낮 두샨베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어요.


택시 정거장으로 가기 위해 트롤리 버스에 올라탔어요. 5소모니를 내자 세 명 것을 내었냐고 했어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손가락으로 세 명을 찍은 것으로 보아 그런 거 같았어요. 그래서 끄덕이자 갑과 을에게는 버스비를 받지 않았어요. 버스비가 얼마라는 표시는 그 어디에도 없었어요. 더 이상한 것은 왜 3명인데 5소모니? 한 사람당 1.6666666666...소모니?


우리가 내린 곳은 바르조브 시장. 어디에도 택시 정거장이 보이지 않아서 시장을 둘러보았어요.





우즈베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이나 시장에서 빵은 꼭 팔아요. 그리고 정말 이 나라들에 감자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다시 한 번 생각을 했어요. 감자 가격은 엄청나게 싸요. 그리고 감자가 들어가는 요리 또한 많아요. 하지만 감자는 이 지역에서 원래 살던 채소가 아니에요. 만약 이 지역에 감자가 없었다면 지금 사람들의 생활은 어땠을까요?


시장을 돌아다니다 시멘트 공장 쪽으로 더 올라갔어요. 하지만 택시 정거장은 나오지 않았어요.


"시멘트 공장 넘어서 있었던가?"
"몰라."
"몰라."


어제 잭키 할아버지 옆 조수석에 앉아서 택시 정거장을 보았어요. 잭키 할아버지께서 '저게 택시 정거장이에요. 후잔드 가는 차는 여기에서 타요.'라고 알려주셨어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택시 정거장을 제대로 본 사람은 오직 저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저도 그게 바르조브 시장에서 가까웠는지 멀었는지 햇갈렸어요. 결정적으로 걸어서 간 게 아니라 승용차를 타고 간 것이라 더 햇갈렸어요.


"그냥 잭키 할아버지께 도와달라고 하자. 날이 왠지 비올 거 같다."


갑과 을 모두 좋다고 했어요. 그래서 트롤리 버스를 탔어요.


트롤리 버스에서 잠시 눈을 붙였어요. 갑자기 미친듯 졸음이 몰려왔거든요. 잠시 후. 제 뒤에 앉아 있던 갑이 저를 깨웠어요.


"우리 이제 어디 가?"


창밖을 보았어요.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어요.


"호텔로 갈까? 아니면 카페 세가프레도로 가?"
"글쎄? 너는?"
"카페 세가프레도 가서 커피나 한 잔 할까? 지금 호텔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도 그렇잖아. 을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봐줄래?"


버스에서 제가 제일 앞에 앉고, 제 뒤에 갑이, 갑 뒤에 을이 앉아 있었어요. 저는 호텔에 들어가는 것보다 카페 세가프레도 가서 적당히 커피를 마시고 쉬다가 빅토리 파크에 다녀오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갑이 을에게 물어보더니 카페 세가프레도로 가자고 했어요.


버스에서 내리는데 씨알이 굵은 빗방울이 투둑 투둑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뛰자!"


급히 지하도로 들어가서 길을 건넌 후 카페 세가프레도 야외 테이블에 앉았어요. 우리가 앉자마자 비가 무섭게 퍼붓기 시작했어요. 직원들이 우리 탁자를 비가 안 맞는 곳으로 옮겨 주었어요.


"숙소에 어떻게 가지?"


갑과 을이 걱정했어요. 하늘을 보았어요.


"곧 그칠 거야. 이거 소나기인 거 같은데? 비 그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자. 안 그치면 그냥 비 맞고 가야지..."


커피가 나왔어요. 밖에서 비가 내리는 거리를 보며 커피를 마셨어요. 비를 피해 달리는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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