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부서진 기억이 있으신가요?
'캔모아에서 빙수 먹곤 했어요.'
어느 날, 블로그 이웃인 liontamer님께서 외대 근처에 있던 '캔모아' 라는 곳에서 빙수를 드시곤 했다는 댓글을 남기셨어요.
"캔모아? 그런 데가 있었나?"
외대 근처에서 몇 년 살기는 했지만 그런 곳은 처음 들었어요. 정확히는 '캔모아' 라는 것 자체를 처음 들었어요.
'외대 근처에 뭐 있었나보지.'
외대 근처에 2002년부터 자주 갔고, 심지어는 그 동네에서 몇 년간 살기는 했지만 거기에 무슨 가게가 있었는지 다 몰라요. 정확히는 잘 몰라요. 남자끼리 빙수 먹으러 갈 일도 없었고, 외대 근처에서 살 때는 외대 근처이기는 한데 회기역으로 가는 것이 더 편해서 외대 정문부터 외대로 이어지는 길로는 가본 적이 거의 없어요. 나중에 외대역에 더 가까운 곳으로 방을 옮기기는 했어요. 방을 옮겼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어요. 외대역은 스치듯 지나가는 곳이고 제 방은 잠자는 곳. 놀 거라면 종로로 나가버리곤 했어요.
외대 근처가 아무리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게 그거라 해도 거기 있는 가게들은 많이 바뀌었어요. 가장 혁명적인 변화는 지하차도 뚫린 것. 그거 빼고 크게 변한 것이 없어요. 하지만 가게들은 많이 바뀌었어요. 무려 '맥도날드'라는 선진문명의 패스트푸드점이라는 것도 생기고 했거든요.
그래서 뭐 그런 가게가 있었나보다 하면서 답글을 달았어요.
그리고 얼마 후.
'캔모아에서 빙수 먹곤 했어요.'
liontamer님께서 이런 내용이 포함된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캔모아에 대한 내용이 지난번보다 좀 더 구체적이었어요.
"캔모아? 캔모아가 뭐지?"
제 블로그를 종종 보는 친구에게 물어보았어요.
"너 캔모아 아냐?"
"응. 왜?"
"누가 캔모아에서 빙수 먹었다고 해서. 그거 유명했어?"
"너 진짜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와, 진짜 몰라?"
좀좀이 매니아인 친구는 좀좀이스럽게 글을 써서 메시지를 보냈어요.
- 어릴 적 읍내에 나가면 캔모아가 있었어요.
"아, 뭔 읍내야! 내가 군생활도 '동'에서 했구만."
- 너무나 세련되고 번화한 곳이라 늘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어요.
"뭘 또 멀리서 바라만 봐 ㅋㅋ 나 본 적도 없다니까."
- 친구들과 저기를 꼭 가보자면서 소주병 맥주병 빈깡통을 모았고 드디어 캔을 다 모아서 캔모아에 가볼 수가 있었어요.
"아놔 ㅋㅋ"
- 저런 고급진 곳을 간다는 생각에 가장 깨끗한 옷을 골라입고 십리를 걸어서 캔모아 입구에 도착했어요."
"뭔 또 가장 깨끗한 옷이야! 근데 10리 ㅋㅋㅋ 날 너무 잘 아네 ㅋㅋ"
- 캔모아 내부는 마치 천국 같았어요. 가게에서는 꽃향기마저 났어요.
<이하생략>
멘탈 붕괴하고 영혼 상실해서 배 잡고 깔깔 웃었어요. 친구는 진정한 좀좀이 매니아였어요. 제 문체를 저렇게 똑같이 따라할 줄 몰랐어요.
이쯤이면 좀좀이의 굴욕.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캔모아 때문에 친구가 쓴 좀좀체 소설에 웃다가 두개골 쪼개져야하는가! 좀좀 바이러스는 강력했어요. 페니실린 마구 뿌려서 박멸해버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당하니 영혼이 지구 멘틀을 뚫고 우루과이로 번지 다이빙하는 맛이었어요.
친구가 크리티컬을 날렸어요.
- 대망의 마지막 웨하스는 10조각으로 산산분해해서 가루로 나눠먹었어요
'아 진짜 할 말이 없다.'
진짜 왜 하고 많은 과자 중 하필 웨하스인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런 적 자체가 없는데 심금을 울리는 구절. 웨하스는 유독 가루가 잘 되어서 가루를 들이마시곤 했지. 그 기억 때문인건가. 나는 절대 저렇게 해본 적이 없는데 막 해본 것 같았다. 저 웨하스 드립에 웃다가 쓰러져버렸다. 좀좀이 좀좀바이러스에 1패.
드디어 궁금해졌어요. 인터넷으로 캔모아를 검색해봤어요. 글이 태어나서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들이었어요.
어떻게 생겼던 곳인지 사진을 봤어요.
"어? 여기 나 가봤는데?"
여기 가봤는데?
여기 가봤는데!
갔던 곳인데?
여기에서 다시 물어볼께요.
여러분은 부서진 기억이 있으신가요?
오직 흐릿한 장면만 몇 조각 떠오르는 기억이 있으신가요?
그 어떤 것도 기억 안 나고 사진처럼 딱 몇 가지 사물만 떠오르는 기억이 있으신가요?
"아, 여기 내가 대체 왜 갔지?"
내가 이런 곳은 죽어도 갔을 리가 없는데? 두 눈을 의심했어요. 분명 갔던 적이 있었어요.
나도 캔모아 가본 적 있는 인간이다!
그래요. 그것도 제가 절대 갔을 리가 없었을 때 갔어요. 이건 기적. 브레인 싸이언스 테크놀로지의 기적이라 믿고 싶을 정도로,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자파가 두뇌에 가상현실을 만들어낸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적이었어요.
그런데 나 대체 거기 왜 갔지?
그리고 누구와 갔지?
정확히 언제 무엇 때문에 누구와 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어요. 그네 의자와 토스트 무제한은 기억났어요. 보자마자 갔던 적이 있다는 사실이 확 떠오르는 저 샤랄라 분위기. 딱 거기까지. 그 이상 그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았어요. 일단 남자들끼리 갔을 확률은 0. 제가 가고 싶어서 갔을 확률 또한 0.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기를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다는 것이었어요. 그 당시 제가 캔모아 갔다면 그것은 거기서 조별과제 모임이 있었다든가 여자가 포함된 대학교 동기 무리가 거기로 오라고 했든가 했을 거에요.
"내가 저기 대체 왜 갔지? 가기는 갔는데..."
부서진 기억의 파편들을 잡고 맞추어보려 했지만 토스트 무제한, 그네 의자, 샤랄라 분위기 빼고 그 어떤 것도 기억나지 않았어요.
저 당시라면 나는 여자친구가 없었고, 돈도 없었고, 저런 곳 혼자 갈 생각은 머리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들이 카페 간다고 하면 맥스웰 커피믹스나 타먹으라고 하곤 했다. 소개팅, 미팅 같은 건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그렇다고 복학후 후배들과 어울렸던 것도 아니구. 후배들은 볼 일 자체가 없었으니까.
저 당시를 떠올려보면
1. 여자가 포함된
2. 여러 명의 사람들과
3. 뭔가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갔다
라는 것이었어요.
내가 거기를 대체 왜 갔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어요. 공룡 뼈다귀 보면서 이것 피부는 무슨 색이었을지 추측해보는 기분이었어요.
"캔모아 가보면 기억이 날 건가?"
이런 것이 바로 기억상실증의 느낌인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오직 토스트 무한리필, 그네 의자, 샤랄라 분위기만 떠오를 뿐이었어요. 기억이 나지 않으니 더 기억해나고 싶어지는데 기억은 저 세 가지가 끝이었어요. 나는 거기를 왜 갔는가?
그래서 캔모아에 가보기로 했어요. 어디에 있나 찾아봤어요. 외대쪽에 있는 것은 진즉에 없어졌어요. 인천 부평에 있다고 나왔어요.
인천? 아, 이제 안 궁금해요.
인천 갈 만큼 궁금하지 않아요. 인천 갈 바에는 그냥 궁금해할래요. 인천 보는 순간 머리 속에 해바라기 방긋방긋 꽃밭 삼천리 금수강산 뷰티풀 월드. 안 가요.
의정부에서 인천을 빙수 하나 먹자고 가? 그건 아니야.
대학생 좀좀이로 마인드 회로 변경. 안 가요. 라면 먹을 거에요. 담배 살 거에요. 오오, 손이 떨린다 참치캔!
그러다 친구가 인천 같이 갔다오자고 했어요.
'어? 이번에 다녀와야지!'
친구에게 조건을 걸었어요.
"부평에 캔모아 있다던데 거기 같이 가주면 간다."
"그래? 그러자."
그래서 부평역으로 갔어요. 부평역에서 빠져나와야하는데 지하 상가가 아주 미로였어요. 다행히 친구와 제가 눈과 머리를 합쳐 던전을 슬기롭게 잘 헤쳐나왔어요. 던전을 빠져나온 순간.
"야, 부평은 지하도시냐? 지하는 삐까뻔쩍하던데 지상은 왜 이러지?"
"글쎄? 나도 부평은 딱히 와본 적이 없어서..."
둘이 사이좋게 부평 문화의 거리로 갔어요. 부평 문화의 거리는 2000년대 초반 신촌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저기 캔모아다!"
설마 없어진 것 아닌가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가는데 캔모아가 보였어요.
캔모아 부평문화의거리점 주소는 인천 부평구 부평문화로 74 에요. 지번 주소는 부평동 201-37 2층 이에요.
캔모아 부평 문화의 거리점 입구는 이렇게 생겼어요.
계단을 올라갔어요.
"여기 그 캔모아 맞아!"
입구를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제 기억이 허상이 아님을 확인했어요.
무엇을 주문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그 당시 제가 무엇을 먹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친구는 파르페, 저는 눈꽃빙수를 주문했어요. 친구는 '캔모아'라는 곳을 가본 문명사회의 선진시민, 저는 원시인. 친구에게 '나는 뭘 먹어야하지?'라고 물어보았는데, 친구도 자기는 파르페만 기억난다고 할 뿐이라 대충 눈꽃빙수를 주문했어요.
그래, 이 흔들의자 기억나!
그네 의자, 토스트 무한 리필, 그리고 샤랄라 분위기. 여기에 흔들의자! 기억이 하나 더 났어요.
나는 이제 빙수만 먹으면 캔모아를 누구와 왜 갔는지 떠올릴 수 있을까?
그래요. 이 창가의 그네 의자! 저기는 커플이나 여자들이 앉아 있었어.
이 샤랄라 분위기!
그래, 이 분위기 보고 여기는 내가 절대 올 곳이 아니라 생각했었어! 여기는 커플들이나 여자들만 올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지. 여기에 왜 왔는지 더 궁금해졌어요. 여기는 그 당시 제가 맨정신으로 혼자, 또는 남자들과 올 곳이 절대 아니었거든요. 그렇다고 그 당시 여자 한 명과 만나서 여기 올 일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왜 왔는지, 누구와 왔는지 더욱 궁금해졌어요.
얌전히 흔들의자에 앉았어요.
주문한 파르페와 눈꽃빙수가 나왔어요.
이 토스트! 이 생크림! 이건 내가 확실히 기억해!
예전에는 무한 리필이었는데 지금은 8000원 이상 주문해야 1회 리필 가능이었어요. 이건 예전과 달라진 점이었어요. 왜 무한 리필을 기억하냐구요? 비유법이 아니라 정말로 배고팠던 시절이었거든요. 그래서 무한 리필이라고 하면 꾸역꾸역 목젖까지 음식물을 채워넣곤 하던 때였어요. 또 그렇게 배부르게 먹을 날이 언제 올 지 몰라서요.
이것이 눈꽃빙수. 그런데 제가 먹어본 것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이상하게 그때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나 하나 더 기억났어! 매우 중요한 것 기억났어!
왜 그랬는지 모른다. 하여간 조금 어두울 때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날 토스트 무한리필이라고 하는데 리필 한 번 밖에 못 받아먹었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토스트를 별로 못 먹었다. 생크림을 발라 맛본 후 그렇게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바삭하게 구워주지 않아서 그랬을 거다. 무한 리필이라면 3일치 9끼 식사를 한 자리에서 다 먹어치우고 3일간 굶으며 생활비 아낀다고 좋아하던 시절인데 무한 리필임에도 몇 조각 안 먹어서 그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토스트 리필을 받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머리에서 220V 전기가 쫘르르 흘러 정수리를 뚫어버리듯 이것이 생각났어요. 그때도 나는 토스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리필을 받지 않았어!
그러나 거기에서 끝이었어요. 더 생각나는 것이 없었어요.
물 한 잔 마시려고 카운터쪽으로 갔어요. 책장이 있었어요. 어떤 책이 꽂혀있나 봤어요.
YS는 못말려!
이 책 대체 언제적 책이야!
결국 캔모아에 대체 누구와 왜 갔는지 전혀 기억해내지 못했어요. 그래도 괜찮지 않아요. 계속 궁금할 거에요. liontamer님의 댓글과 친구의 좀좀체 동화로 인해 이제 이것은 계속 떠오를 거에요.
- 좀좀바이러스에 오염된 이 친구는 나의 외국어 방랑기와 체크체크 중학교 사회로 퇴마 의식 함 해줘야겠어요. 좀좀바이러스 오염도 중증.
좀좀체 동화는 이제 박멸 대상. 진짜 저 웨하스 드립 보고 오장육부가 웃다가 대기권 돌파하는 줄 알았어요. 정말 어이 상실 그 자체.
하지만 나는 이제 캔모아 가본 사람.
2017년 6월 30일에 가기는 했지만요...어쨌든 나도 가 봤어요. 남들이 10년도 전에 가본 추억을 이야기할 때, 이제 저는 1년도 안 된 기억을 이야기하겠죠. 몇 장면의 부서진 기억과 이번에 간 기억을 이야기할 거에요.
결국 부서진 기억은 부서진 기억인 채로 남았어요. 여러 조각 잃어버린 퍼즐이 보기 싫어서 똑같은 퍼즐을 새로 구입한 것이었어요.
여러분은 부서진 기억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어요. 복학 후 학교를 다니는 동안 캔모아를 갔던 기억요.
캔모아 부평문화의거리점은 지금도 영업중이에요. 캔모아 추억을 떠올리고 싶으신 분은 한 번 가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