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3일 아침이 밝았어요. 아침이 밝든 말든 신경 끄고 마음껏 늦잠을 잤어요. 오늘은 급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거든요. B가 선물 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어요. 선물은 서원문 거리로 가서 둘러보면서 구입하면 될 거고, 그 이후에는 택시 타고 대안탑 다녀오면 오늘 일정이 끝. 밤에 술집 가서 축구를 보든 방에 모여서 축구를 보든 하면서 짐을 정리하면 오늘 하루도 즐겁고 보람차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였어요.
"아침 먹자."
"아침?"
"응. 아침 먹고 돌아와서 또 쉬든가 하게."
아침 10시. 셋이 숙소를 나왔어요.
거리는 이 한적해야할 시간에도 차가 많이 다니고 있었어요.
중국인들이 아침에 많이 먹는다는 또우장을 파는 것이 보였어요.
"저거 하나씩 먹자."
"저거 뭔데?"
"또우장. 중국인들이 아침으로 많이 먹는 거래. 두유 같은 거래."
B도 중국에 왔으니 또우장을 한 번은 먹여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셋 다 또우장을 하나씩 구입해서 쪽쪽 빨며 숙소 근처 식당으로 갔어요.
음식을 대충 시켜서 먹은 후 다시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어요.
"오늘 유로2016 경기 뭐 있지?"
"스페인 대 체코, 스웨덴 대 아일랜드."
"이건 스페인이랑 스웨덴이 무조건 이기겠다."
"혹시 다 비기는 거 아니야? 스페인, 스웨덴 다 좀 별로인 거 같던데."
유로 2016 축구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쉬었어요.
'오늘 환전 해야할 건가?'
침대에 드러누워서 친구들과 잡담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오늘 환전을 해야할지 고민했어요. 장담컨데 공금은 애초에 다 떨어졌어요. 친구가 위안화가 부족하면 자기가 일단 내고 나중에 원화로 송금해주면 된다고 했지만 공금이 한두푼 비는 것이 아니었어요. 당장 병마용과 화청지 입장료가 300위안이었어요. 여기 숙소 숙박비도 있고, 모든 식사를 전부 공금으로 해결하고 있었어요. B야 내일 간다고 하지만, 저는 일정이 내일, 모레, 글피 - 무려 3일이나 더 남아 있었어요. 당장 모레 상하이 숙박비가 있었어요. 밥도 먹어야 했구요. 이미 수중에는 위안화가 거의 다 떨어졌어요. 지금 돈계산도 2인 일정과 3인 일정을 나누어서 계산해야 해서 복잡한데, 여기에 제가 친구에게 위안화까지 빌려쓰기 시작하면 계산이 매우 복잡해질 것이었어요. 그렇잖아도 B는 위안화를 하나도 안 들고 왔거든요. B의 모든 경비는 일단 친구가 내주고, 나중에 한국 가서 B가 그만큼 원화로 송금해주기로 했어요. 돈계산이 섞이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데다, 제가 돈 쓰고 싶을 때 친구에게 계속 빌려달라고 하기도 번거로워서 어떻게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일단 확실한 것은 내일 B를 공항에 바래다주어야 하기 때문에 50위안은 무조건 나간다는 것이었어요. 환전을 한다면 100달러를 환전해야 하는데, 이 100달러를 환전한 위안화를 다 쓸 수 있을까?
위안화는 분명히 올라간다. 그런데 대체 언제 오를까?
중국 물가를 접해보니 중국은 환율 조작국 맞았어요. 분명히 위안화는 한 차례 폭등할 거에요. 문제는 이게 언제냐는 것. 달러는 남으면 언젠가 떠날 다음 여행에서 써먹을 수 있지만, 위안화는 남으면 골칫덩어리였어요. 남아프리카에 위치한 짐바브웨에서는 위안화도 통용된다는데 제가 다음 여행으로 짐바브웨를 갈 것도 아니구요. 위안화 남으면 환전 수수료만 두 번 물어야 했어요. 게다가 위안화는 냄새도 고약했어요.
환전을 해야할지 고민하면서 한참 쉬다가 12시 30분에야 숙소에서 나왔어요.
"어디 가지?"
"서원문 거리로 가자."
"어떻게?"
"그냥 버스 타게. 급할 거 없잖아."
시원한 객실에서 뒹굴거리다 밖에 나오니 달구어진 맥반석 위에 올라간 마른 오징어처럼 몸이 오그라들었어요. 바퀴벌레가 전깃불이 켜지자 어둠을 찾아 뽈뽈뽈 기어가듯 그늘로 기어들어갔어요.
"시안 공기 진짜 썩었네."
밖에 나오자마자 콧물이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어요. 감기걸려서 나오는 콧물이 아니었어요. 그냥 콧물이 줄줄 흘러나왔어요. 감기가 아니라 걱정은 별로 안 되지만 자꾸 코를 훌쩍이니 머리가 무거워졌어요. 왠지 알레르기 같았어요. 공기 중에 털이 많은 씨앗이 많이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콧물이 자꾸 나오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계속 멀쩡했는데 갑자기 시안 와서 콧물이 줄줄 흘러내릴 리도 없고, 감기 걸린 것도 아닌데 콧물이 계속 나올 리도 없었어요. 결정적으로 실내로 들어가면 콧물이 멈추었어요.
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오지 않았어요. 자동차가 뿜뿜 뿜어내는 매연과 솨솨솨 쏟아지는 햇볕으로 인해 나온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땀이 나고 진이 빠졌어요. B가 택시 타고 남문으로 가자고 했어요. B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세 명이기 때문에 택시를 타도 한 사람당 지불해야할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괜히 쓸 데 없이 힘 빼고 있었어요. 세 명이니 택시비도 각자 1/3씩 부담하면 되거든요.
"우리 그냥 택시 타고 갈까?"
"그러게. 어차피 셋이니까 버스랑 별 차이도 안 나."
택시를 타고 서안성 남문으로 갔어요. 택시 요금은 9위안 나왔어요.
"나 오늘 환전해야 해."
"얼마나 할 건데? 내가 빌려줄께."
"100달러."
100달러면 600위안이 넘는 돈. 택시 안에서 계속 생각하며 결정을 내렸어요. 대충 계산해보니 적어도 200위안은 친구에게 더 주어야 했어요. 그러면 몇백 위안 남을텐데, 남은 돈으로 상하이 가서 과자와 음료수 이것저것 구입하면 알차게 위안화를 다 떨어버릴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섰어요. 원래 계획보다 돈을 훨씬 많이 쓰게 된 셈이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환전하려면 은행 가야되지?"
"응. 이따 밥 먹고 가게. 아무 은행이나 가면 돼."
친구에게 오늘 100달러 환전해야 한다고 말하자 친구는 점심 먹고 돌아다니다 은행 보이면 그때 환전하자고 했어요.
길에는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어요.
"저거도 씨앗 열리면 여기 사람들 그 씨앗 까먹을 건가?"
"아마 그러겠지?"
"그나저나 점심 뭐 먹지?"
"이 근처에 식당 괜찮은 거 있나?"
친구가 지도를 보며 식당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어요. 면요리를 파는 가게가 나왔어요.
"너 면요리인데 괜찮아?"
"어. 이제는 괜찮아. 란저우 라면만 아니면."
"그러면 여기에서 먹게. 여기 왠지 괜찮아 보인다."
식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런 면요리를 시켰어요.
"오늘 이따가 술집 가서 축구 볼까?"
"괜찮은 곳 있으면."
친구들과 잡담을 하는데 음식이 나왔어요.
"여기 맛있네!"
"그러게. 여기 음식 잘하는 집이다."
"여기 깨끗해서 어른들 오셔도 좋아하겠다."
셋이 열심히 면요리를 먹고 밖으로 나왔어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또 콧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어요. 코를 훌쩍이며 서원문 거리를 향해 갔어요.
서원문에 도착하니 오후 2시였어요.
날이 너무 더워서인지 길은 매우 한적했어요.
"야, 저거 봐라."
"왜?"
"저거! 한글!"
친구가 가게 차양을 가리키며 웃었어요. 그래서 왜 웃나 바라보았어요.
HERO 를 '히이로'라고 적어놓았어요. 게다가 food 는 '과자'라고 적혀 있었어요. 이것은 조선족의 언어 습관과 관계없이 그냥 잘못된 표기였어요. 잘못된 한국어로 적혀 있는 것을 보고는 저와 B도 깔깔 웃었어요.
서원문 거리로 들어갔어요.
첫날 슥 훑어볼 때와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 보았어요. 확실히 중국 전통 느낌이 있었어요.
여기에서는 문방사우를 많이 팔고 있었어요.
벽에는 이렇게 중국 전통 문화가 물씬 풍기는 부조도 있었어요.
정말로 거리는 한산했어요. 여기가 항상 사람 미어터지는 중국이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길에는 마오쩌둥 그림도 있었어요. 전통 문화를 엄청나게 파괴해댄 저 사람 그림이 전통적인 느낌이 나는 이 거리에 있다는 것이 매우 재미있었어요. 뭔가 있으면 안 될 자리에 와 있는 사람 같달까요? 저 사람이 아니었다면 중국 곳곳에 볼 만한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고 중국인들이 자기 전통을 많이 유지하고 있었을 거에요. 저 사람이 중국의 문화, 예술, 전통을 심각하게 파괴한 덕택에 중국 문화 산업은 지금도 형편없는 수준이지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사진 찍기는 좋은데, 대신 햇볕이 너무 강해서 사진 찍기 매우 어려웠어요. 밝은 곳은 하얗게 날아가고 어두운 곳은 까맣게 나오고 있었거든요. 그늘로만 다니려 했지만 그늘도 덥기는 매한가지였어요.
분위기도 서울 종로 인사동과 비슷했지만 파는 것도 인사동과 비슷했어요. 진짜 우리나라는 이런 점을 제대로 반성하고 개선해나가야 해요. 가뜩이나 외국인들 눈에는 중국 문화나 일본 문화나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우리나라는 관광지마다 중국, 베트남 관광 기념품을 가져다 팔고 있으니까요.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동아시아 사람들 구분 정말 못하는 것처럼 동아시아 3국의 문화적 특징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데, 관광지마다 중국, 베트남 관광 기념품까지 가져다 팔고 있으니 우리나라 전통과 문화가 중국, 일본 것의 짝퉁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거에요.
가게 주인은 대놓고 간이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어요.
B는 선물로 무엇을 살까 구경하고, 저도 혹시 기념품으로 살 것이 있나 구경했어요. 웬만한 것은 우리나라 관광지에서 비슷한 것을 팔고 있었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우리나라 관광지 가면 '이것은 다 중국제'라고 시큰둥해지고, 중국 관광지 와보니 '이것은 다 한국에서 많이 본 것들'이라 시큰둥해졌어요. 이러니 무언가 확 끌리는 것이 없었어요.
딱히 사고 싶은 것이 안 보여서 B가 고르는 것을 보며 돌아다녔어요. B도 웬만한 것은 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과 너무 닮아서 무엇을 사서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바로 이거다'라고 외칠 만한 것이 전혀 안 보였어요.
"이게 제일 낫다."
B가 선물로 줄 기념품을 고르는 것을 옆에서 보며 걷다 내린 결론이었어요. 저와 친구는 B에게 이 액자를 추천했어요. 이것이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안 보이는 것이었거든요.
가게를 돌아다니는데 순간 눈에 딱 들어온 것이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냉장고 자석. 중국인들의 생활을 다룬 것으로 총 8종이었어요. 가격을 물어보니 하나에 10위안이었어요. 이것은 정말 구입하고 싶었어요. 크기가 큰 것도 아니고, 개당 10위안이라면 그렇게 나쁜 가격도 아니었어요. 관광지에서는 냉장고 자석을 하나에 얼추 8~10위안 정도에 팔고 있었거든요.
8개를 다 사려면 80위안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지갑에 위안화가 80위안이 안 되었어요. 20위안 채 남아 있지 않았어요.
"우리 은행 언제 갈 거?"
"은행?"
"나 환전해야 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나 이거 사게."
"뭐? 냉장고 자석?"
"어. 이거 80위안."
친구는 근처에 은행이 어디 있나 검색해보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