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에 내려와서 보니 강변으로 넘실거리며 흘러들어오는 물도 붉은 빛을 띄고 있었어요. 정말로 물에 흙이 많이 섞여 있었어요. 그냥 황하를 보아도 붉은데 물 자체가 흙이 섞여서 붉은 빛을 띄는 것을 보니 더 신기했어요.
강변에서는 사람들이 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어요. 한쪽에서는 연을 날리는 사람도 있었어요.
강 너머로 수상 모스크가 보였어요.
"이제 수상 모스크 가자."
"나 모스크 가기 싫어! 여기서 쉬게."
친구가 모스크 가기 싫다고 떼를 썼어요. 첫 번째 란저우 라면 이후 미안해서 모스크 가준다고 했던 친구였지만, 모스크 한 번 들어갔다 나오더니 이건 정말 아니라고 크게 느꼈나봐요. 친구는 여기서 좀 쉬고 백탑사나 다녀오자고 했어요. 강을 건너야 수상 모스크로 갈 수 있는데 강 건너에는 쉴 만한 곳이 없어 보였어요. 친구가 이따 가겠다고 한다면 일단 여기에서 조금 쉬다가 강을 건너가면 되는데, 강변에서 일단 쉰 다음 이따 갈 친구가 아니었어요.
'얘를 데리고 수상 모스크 가야 하나?'
친구를 억지로 모스크로 데려가면 친구는 분명히 계속 불만을 쏟아낼 것이었어요. 모스크 안에서 구경하는 동안 계속 빨리 나가자고 보챌 것이 뻔했어요. 친구가 지금 다른 곳을 가자고 모스크 가기 싫다는 것은 아니었어요. 강변에서 쉬고 적당히 도시 둘러보다 백탑사를 가자는 것이었어요. 친구는 백탑사도 가기 싫어했지만 이것은 제가 오늘 반드시 가야한다고 딱 못을 박아놓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러면 너는 여기에서 돗자리 깔고 쉬고 있어. 나 혼자 저기 다녀올테니까."
"너 혼자?"
"응. 저기 길 어렵지도 않잖아? 그냥 강만 건너서 가면 되는데."
친구는 망설였어요. 저랑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저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여기가 중국이고 제가 중국어도 못하는 데다 핸드폰 개통도 안 한 상태였기 때문에 제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것이었어요. 만약 둘이 떨어져서 돌아다니다 제가 약속 장소에 못 찾아오면 문제였으니까요. 여기는 위구르어가 당연히 안 통하니 제가 길을 잃어버려서 헤매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헤맬 수 있었어요. 와이파이 되는 곳으로 가서 연락을 취한다면 친구와 다시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이 둘 모두에게 매우 피곤한 일인 것은 사실.
그러나 수상 모스크는 길을 잃어버리고 자시고 할 것이 없는 곳이었어요. 친구가 자기 혼자 이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숨어버리지만 않는다면 저 혼자 수상 모스크를 갔다가 친구가 있는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어요. 황하를 따라서 중산철교까지 걸어간 후, 중산철교를 건너 반대 방향으로 쭉 가면 끝이었거든요. 길이 너무 단순했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릴 확률 자체가 없었어요.
친구가 계속 망설이자 지금 저와 모스크를 가든가 여기에서 혼자 좀 쉬고 있든가 선택하라고 했어요. 친구는 정말 모스크가 가기 싫었기 때문에 혼자 쉬고 있겠다고 하면서 그늘에 돗자리를 펼치고 누웠어요.
"2시까지 돌아올께."
친구가 카메라를 안전하게 간수하고 눈 감고 자는 것을 보고 수상 모스크를 가기 위해 중산철교 쪽으로 걸어갔어요.
"중산철교까지 은근히 먼데?"
친구에게 2시까지 돌아오기로 약속했는데 친구가 자리 깔고 자고 있는 곳에서부터 중산철교까지의 거리가 제 생각보다 의외로 가깝지 않았어요. 중산철교에 도착하자 벌써 1시 20분이 넘어버렸어요.
"수상모스크까지 빨리 다녀와야겠다."
중산철교를 건너자 백탑산 공원 올라가는 길이 나왔어요.
"여기 확 올라가버릴까보다."
만약 여기를 지금 올라가버린다면 친구는 난리가 나겠지? 백탑산 공원은 지금 남은 시간 안에 절대 다녀올 수 없는 곳이었어요. 여기를 지금 혼자 올라가버린다면 친구는 약속한 시간에 제가 안 와서 납치되어 장기밀매당한 것 아닌가 엄청 걱정하고 방방 뛸 거에요. 제가 두 번째 란저우 라면을 먹고 격분했던 것의 10배 더 화난 친구를 구경할 수도 있을 거에요. 지금 올라가면 딱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친구에게 2시까지 돌아오기로 했기 때문에 얌전히 수상 모스크만 보러 갔어요.
크지는 않지만 강변에 있어서 매우 잘 보이던 미나렛이 보였어요.
"어? 문이 왜 잠겨 있지?"
이것은 중국 이슬람의 특징이야? 모스크 원래 항상 개방된 곳 아니었어?
모스크로 들어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철문이 잠겨 있었어요. 신장 위구르 지역 여행을 할 때도 많이 겪었던 일이 여기에서도 일어났어요. 다른 지역에서는 낮에는 모스크를 항상 개방해놓는데 중국에서는 딱 예배 시간에만 문을 열어놓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이 모스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어요. 예배 시간이 아니라 문을 걸어잠가놓은 것 같았어요. 순간 여기 왜 왔나 힘이 쭉 빠졌어요.
쇠창살 사이로 카메라 렌즈를 집어넣어 내부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여기가 폐쇄된 모스크 같아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냥 예배 시간이 아니라 문을 걸어잠가놓은 모양이었어요. 신장 위구르 자치구였다면 안에 누구 있냐고 불러보았을 거에요. 거기는 위구르어가 통하는 지역이니까요. 그러나 여기에서는 사람을 부를 방법이 없었어요. 부를 수는 있을 거에요. '칭원'이라고 외치면 저를 바라보는 사람이 하나는 있겠죠. 그 다음이 문제였어요. 한국에서 온 관광객인데 이 안에 들어가보고 싶다는 말을 중국어로 할 줄 몰랐거든요. 영어가 통할 거라고는 아예 상상도 안 했고, 이 사람들이 아랍어를 알아들을 거라고 기대도 안 했어요.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이대로 돌아가자니 너무 허무했어요. 지금 아니면 모스크를 갈 수 없었어요. 모스크의 '모' 자만 들어도 병원 끌려가는 아이 표정이 되는 친구를 모스크로 잡아끌고 간다면 그 친구의 짜증을 모두 뒤집어써야 했어요. 억지로 모스크에 데리고 들어가는 순간 친구는 엑소시스트 앞의 마귀가 되어서 거품 물고 사지를 벌벌 떨지 않는 게 다행일 거에요. 이 시간 아니면 오늘 모스크 구경은 절대 불가능했어요. 제게 란저우 라면을 먹인 것을 생각하면 모스크 끌고 들어가서 정화를 시켜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친구와 싸워가며 꼭 모스크를 구경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무 모스크나 하나 가봐야겠다.
란저우는 모스크가 참 많아요. 발에 채이는 것이 모스크라 해도 될 정도로 많아요. 이것이 매우 신기해서 모스크 하나를 꼭 들어가보고 싶었어요.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란저우에 회족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모스크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행을 다닐 때에는 란저우에 회족이 많다는 것 자체를 몰랐거든요. 중국어를 모르니 그들과 직접 이야기해볼 기회 자체가 없었고, 따로 유심을 개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쪽 문화에 대해 검색을 마음껏 하지 못했어요. 모스크는 구경하기도 힘들 거라 생각한 란저우에서 모스크가 엄청나게 많이 보이자 이것들 중 하나는 들어가서 대체 어떤 모스크인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어요.
저 모스크나 가봐야겠다.
모스크 지붕을 보고 방향을 확인한 후 언덕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어요.
입구 오른편에는 아랍어가 적혀 있었어요.
위에 적힌 내용은 신의 사도가 신께 기도드리고 그에게 복종하라고 말했다는 것이었어요. 가운데 적힌 것은 읽어보려 했으나 읽기 어려웠어요. 눈으로 따라가며 읽으려 했지만 잘 읽을 수 없었어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것이 제가 찾던 중국어를 아랍 문자로 표기한 샤오얼징은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이 모스크의 이름은 란주방 모스크였어요. 방 坊 이 성조에 따라 1성이면 '골목, 거리'라는 뜻이고 2성이면 '작업장'이라는 뜻이라는데 아마 첫 번째 뜻 아닐까 추측했어요. 중국 사극이나 무협지 보면 저 방이 많이 나오죠.
"앗살라무 알라이쿰."
한족인 것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우즈베크식으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 아랍어로 인사를 드렸어요. 서로 말이 당연히 통할 리 없었고, 이 모스크를 구경하고 싶기는 했기 때문에 머리를 굴린 것이었어요. '니하오'라고 하면 뭐라고 중국어로 쏼라쏼라 말을 걸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예배 중이니 안 된다고 말할 거 같기도 했거든요. 물론 중국어로 말한다면 저는 하나도 못 알아듣겠지만요.
"칸, 커이 마?"
문법적으로는 아마 틀린 말일 거에요. 그래도 대충 의미는 통했어요. 입구쪽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그러라고 대답해주었어요. 봐도 되겠냐고 물은 말에 그러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예배당 내부도 볼 수 있을 건가? 하긴, 아까 봐도 된다고 했으니 들어가도 별 상관은 없겠지."
예배당은 2층에 있었어요. 2층 예배당 앞으로 갔어요.
'여기 들어가면 안 되겠다.'
예배중이었어요. 놀라운 것은 검은 커튼으로 입구를 완벽히 가려놓았다는 것이었어요. 그 안에서 이맘이 중국어로 연설을 하고 있었어요. 뒤늦게 온 회족들이 우두를 마친 후 커튼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커튼 밖에 앉아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어요. 안에서 들려오는 이맘의 중국어 연설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니 이 상황이 저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어요. 그냥 예배 드리고 이맘이 연설하고 있는 장면이라면 지금껏 한두 번 보고 겪었던 것이 아니니 사진만 안 찍고 별 부담없이 스윽 보고 지나갔을 거에요. 이렇게 검은 커튼으로 밖에서 안을 아예 볼 수 없게 해놓은 것은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기도하러 온 회족들이 커튼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커튼 밖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어요.
'이거 위험한 상황은 아니겠지?'
그럴 리야 없겠지만 좀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어요. 모스크 예배당 앞에는 신발이 매우 많았어요. 예배당 앞에 신발은 많은데 커튼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오직 이맘의 연설 소리 뿐이었어요. 여기에서 빨리 멀어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에서는 돌아다니면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질리도록 본 중국 공산당이 제작해 붙여놓은 잘못된 종교 활동 신고 포스터를 보지 못했지만 이 장면을 직접 보니 그 포스터에서 보았던 그림 하나하나가 떠올랐어요.
"이 꾸리꾸리한 냄새는 뭐지?"
발 꼬랑내였어요. 검은 커튼 앞에 놓인 신발 하나하나에서 엄청난 꼬랑내가 위로 올라오고 있었어요. 단지 신발만 모여서 이렇게 강력한 악취를 만들어내는 것은 또 처음이었어요. 이렇게 신발만 모아놓아서 엄청난 발냄새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어요. 괜히 중국인을 욕할 때 불결할 장 脏 (번체 髒, zāng) 을 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저 한자 뒤에 鬼 꿰이를 쓰면 우리가 아는 그 두 글자 짜리가 되는 거고, 国佬 꿔라오 를 쓰면 우리가 아는 그 세 글자 짜리가 되죠. 중국인 사장님이 두 글자 멸칭의 어원이라는 것은 헛소리구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검은 커튼과 이맘의 중국어 연설, 그리고 신발들이 뿜어내는 엄청난 발냄새에 이곳을 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모스크에서 나와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46분이었어요. 이제 부지런히 친구가 자고 있는 자리로 돌아가야 했어요.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역시나 면요리를 먹고 있었어요.
다시 중산철교를 건넜어요.
"나 혼자 가방을 앞으로 메고 있네?"
란저우는 도둑의 도시라고 들었기 때문에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니고 있었어요. 등에 메고 있는 가방 없이 앞에 가방을 메고 있으니 매우 불편했어요. 게다가 사람들을 보니 이렇게 가방을 앞으로 메고 있는 것은 저 뿐이었어요. 이렇게 앞으로 메고 다니고 있으니 더 이상해 보였어요. 이 가방 안에 귀중품이 있다고 아주 자랑하고 다니는 모습이었어요. 이렇게 다니면 오히려 표적이 되게 생겼어요. 가방 안에 노트북 컴퓨터가 들어있기는 했지만, 이것은 칼로 가방을 조금 째는 정도로는 빼갈 수 없는 것이었어요. 가방 안에 노트북 파우치가 들어 있고, 그 속에 노트북 컴퓨터가 들어 있었거든요. 여권과 카드, 비상금은 목걸이 지갑 속에 있었고 오직 노트북 컴퓨터만 가방 속에 있었기 때문에 뒤로 메고 다닌다 해서 크게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어요. 노트북 컴퓨터 외에는 가방 안에 귀중품이 하나도 없었구요.
가방을 등으로 메자 자세가 매우 편해졌어요.
다리를 건너 다시 열심히 걸었어요. 다행히 2시 5분에 친구가 자고 있는 돗자리 옆으로 돌아왔어요. 친구는 잠에서 깨어 있었어요.
"모스크 잘 다녀왔냐?"
"수상 모스크는 문 잠겼길래 다른 모스크 하나 다녀왔다."
"이제 가?"
"나도 조금만 쉬자."
돗자리 위에 드러누웠어요.
선선한 강바람. 버드나무 이파리가 바람에 춤추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어요. 이것이 전날 밤 꿈꾸던 란저우의 밤이었어요. 이렇게 강가에서 느긋하게 한숨 자는 것을 꿈꾸었어요. 전날 기차 안에서 상상하던 편안한 잠자리를 백주대낮에야 즐기게 되었어요.
"사람들이 우리 부러운 듯 쳐다본다."
"돗자리 가져와서 깔면 편하고 좋지, 뭐."
"우리 확 텐트 치고 한숨 잘까?"
"야, 그러지는 말자. 그랬다가는 진짜 우리 이상하게 쳐다볼 거다."
강변에서 놀고 쉬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돗자리 펼치고 드러누워 쉬는 것 정도는 이상할 것이 없었어요. 돗자리를 가져와서 깔고 누워 있는 사람들이 저와 친구 밖에 없기는 했지만요. 돗자리 들고 나와서 노는 거야 중국인들에게도 이상할 것은 없는 일. 하지만 여기에 텐트를 치고 들어가서 쉰다면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다 이상하고 궁금한 눈빛으로 쳐다볼 거에요. 아무리 남의 일에 무신경한 중국인이라 해도요.
"이 사람들 우리 막 따라하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을껄? 우리가 텐트 치면 사람들 다 여기 놀러올 때 텐트 치고 놀 수도 있어."
친구와 사이좋게 돗자리 위에 누워 농담을 하며 쉬었어요.
"슬슬 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저거 유료인가?"
란저우에서 볼 것 중 하나가 바로 수차였어요. 입장료가 있다면 당연히 안 볼 생각이었어요. 일단 매표소가 있는 것으로 보아 유료 관람지는 맞았어요.
"사람들 돈 하나도 안 내고 들어가는데?"
가만히 보니 매표소 안에 사람이 없었어요. 사람들은 표를 사지 않고 그냥 막 들어가고 있었어요.
"우리도 따라 들어가보자!"
"표 안 사도 돼?"
"아무도 표 안 사네. 안에서 뭐라고 하면 표 잃어버렸다고 하지, 뭐."
사람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게 황하물 끌어다 쓰던 수차인가봐!"
수차를 구경하는데 한쪽에 세워진 팻말이 눈에 들어왔어요.
중국인 관광객들 매너 없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요. 이것은 단순히 중국인들이 워낙 많아서 그런 무개념한 사람이 많다는 문제가 아니에요. 진짜로 개념이 없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거든요. 아직 '공중도덕'이라는 개념 자체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사람들이에요. 이것이 워낙 문제라 중국에서도 중국인 여행객들에게 제발 공중도덕 좀 지키라고 운동을 펼친다고 하던데, 이렇게 '문명여행' 안내문이 걸려 있었어요.
"수차 진짜 크다!"
얼핏 보면 물레방아 같아 보이지만 물레방아와는 다른 것이었어요.
"저거 양가죽 배다!"
천천히 구경하면서 걸어갔어요. 표를 구입하고 들어오는 사람도 하나도 없었고, 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어디에도 없었어요.
붉은 물과 초록빛 나뭇잎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어요. 홍수가 난 다음날 같은 분위기였어요. 수인성 질병과 모기가 떠올랐어요. 여기는 말라리아와 거리가 먼 곳인데 말라리아가 떠올랐어요. 중앙아시아를 여행할 때까지만 해도 말라리아는 정말 멀고 먼 질병이었어요. 그런데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기 시작하면서 말라리아가 왠지 모르게 매우 가까이에 있는 병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런 풍경을 보면 말라리아가 있을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라리아가 그냥 떠올랐어요.
수차가 전시된 곳을 빠져나와 사진 찍은 것을 하나씩 살펴보았어요.
"사진 또 이렇게 찍혔네?"
이번 여행에서 사진 찍는 자세에 문제가 있는지 사진 중 이렇게 찍혀서 망한 사진이 꽤 되었어요. 셔터를 누르며 카메라가 흔들려서 발생한 문제였어요.
'카메라로 사진을 워낙 대충 찍다보니 이런 일도 발생하나보다.'
아무리 정성껏 사진을 찍으려 해도 언제부터인가 사진을 대충 찍는 습관이 몸에 배어버려서 정성껏 사진 찍는 것이 잘 되지 않았어요. 별 생각 없이 사진을 찍으면 대충 이 정도면 되겠다 싶을 때 셔터를 확 누르고 카메라를 꺼버렸어요. 그러다보니 이렇게 망한 사진도 많이 나오고 있었어요.
수차 공원 근처에는 이렇게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도 있었어요. 안으로 들어가보려 했지만 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우리 밀크티 한 잔 마시면서 좀 쉴까?"
정말로 더웠어요. 조금만 걸어도 덥다는 말이 입에서 줄줄줄 새어나왔어요. 지금 백탑산을 기어올라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는 지금 백탑산을 기어올라간다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릴 것이었어요. 웬만하면 땀을 내지 않고 돌아다니고 싶었어요. 오늘도 기차 야간 이동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오늘 옷이 땀에 흠뻑 젖어버리면 그 옷을 입고 내일까지 있어야 했어요. 빨라야 내일 점심 즈음 시안 공항에서 B를 데리고 시안 숙소 돌아와서야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땀이 최대한 안 나게 돌아다닐 계획이었어요. 그러므로 지금은 일단 많이 더우니 적당히 찻집 가서 밀크티나 마시며 쉬다가 이따 백탑산을 올라가기로 했어요.
친구는 스마트폰으로 찻집 위치를 검색해보았어요.
친구가 바이두 지도를 검색해보더니 근처에 공원이 있고 찻집도 있다고 하며 따라오라고 했어요.
거리에서는 종이를 잘라 만든 장기알로 장기를 두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내는 노인분들도 보였어요.
우리나라 서울 종로 탑골 공원 분위기보다 훨씬 좋아 보였어요. 건전한 여가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우리가 중국에게 본받아야할 점이었어요. 우리나라는 여가생활이라 하면 뭘 하든 어디에서 하든 결국 술이 따라다니니까요.
"저건 뭐지?"
"저기 무슨 공원 있네."
"공원 가서 공원 구경도 하고 좀 쉬자."
공원으로 가기 위해 또 위험한 길을 건넜어요.
친구의 바이두 지도를 보며 가보니 호수가 있는 공원이 나왔어요.
이 공원은 서호공원 西湖公园 이었어요.
그늘 아래로 돌아다니며 호수를 천천히 구경했어요.
뭔가 올라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었어요.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기어올라갔다는 말이지요.
이런 저런 잡담을 하며 공원을 돌아다녔어요.
공원에서 나와 친구 스마트폰으로 바이두 지도를 보며 찻집을 찾아갔어요.
"야, 찻집 어디 있냐?"
"이쪽이라는데?"
"여기 맞아?"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바이두 지도가 틀린 것을 한두 번 겪어본 것이 아니었어요. 친구 말에 의하면 분명히 찻집이 나와야 하는데 찻집은 고사하고 차 비스무리한 마른 풀떼기 파는 가게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이미 신뢰가 깨진 바이두 지도였기 때문에 바로 이 지도가 우리 또 낚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그리고 그 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어요. 지도상에 찻집이 있다고 나와 있는 곳까지 갔지만 찻집 따위는 없었어요.
"야, 그냥 마트나 가자."
날은 덥고, 찻집 간다고 바이두 지도 보며 한참을 걸었지만 결과는 꽝. 새로운 찻집을 또 검색해서 땀 뻘뻘 흘릴 바에는 확실히 어디 있는지 아는 대형 마트 가서 노닥거리는 것이 십만 배 더 현명하고 경제적인 선택이었어요. 친구도 마트 가는 것에 동의했어요. 마트를 가기 위해서는 길을 또 건너야 했어요. 친구를 이끌고 조심스럽게 길을 건넌 후 마트가 있는 건물로 가서 입구가 있는 층까지 올라갔어요.
"야, 저 모스크는 꼭 가봐야하는 거 아냐? 엄청 크네!"
"모스크 싫어!"
친구는 모스크 가자는 말을 듣자 에프킬라 맞은 바퀴벌레 마냥 부르르 떨며 거부 반응을 일으켰어요. 이 친구를 데리고 모스크 가는 것은 일단 시안까지는 깔끔히 단념하는 것이 저와 친구의 우정, 그리고 저의 정신상태에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우리 이따가 저 길 또 건너가야 해."
길을 보니 한숨이 푹 나왔어요. 훠궈 냄비 속 펄펄 끓는 홍탕과 백탕 국물 둘 다 냄비째 부여잡고 들이마시라는 꼴이었어요. 차가 없는 길은 차가 없어서 차가 고속 질주중이었고, 차가 미어터지는 길은 차가 미어터져서 정신없었어요. 고속 질주하는 차 사이로 길을 절반 건넌 후, 미어터지는 차 사이를 안전하게 빠져나가야 이 길을 건널 수 있었어요. 위험하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어요. 어느 쪽이든 절대 사람이 건넌다고 차가 멈추어주지는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