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돌아와 친구는 핸드폰을 충전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이 충전으로 앞으로 하루 넘게 버텨야 했어요. 핸드폰을 충전시키는 동안 둘 다 소파에 앉아서 잠시 쉬었어요.
'샤워 한 번만 하면 정말 날아갈 것 같을 텐데...'
여름철 여행은 이게 문제에요. 겨울에는 몸에 땀이 날 일이 별로 없으니 샤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들어요. 물론 아예 안 드는 것은 아니에요. 몸이 꽁꽁 얼어붙었을 때 온수로 샤워해서 몸을 빨리 녹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는 해요.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수가 아닌 영역. 추운 날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서 몸을 녹이는 것이 피로 회복에 매우 효과적이기는 하나, 따뜻한 곳에서 몸을 천천히 녹이며 쉬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요. 그러나 여름은 일단 나갔다 들어오면 몸이 땀 범벅.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 땀이 그대로 마르고 다시 났다가 마르고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온몸에서 악취가 나게 되니까요. 이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필수적인 행동이에요. 겨울철에 몸을 녹이기 위해 온수 샤워를 하는 것은 오직 개인적 만족을 위한 것이지만, 여름철에 땀을 닦아내기 위해 샤워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행위이기도 해요.
여기에 땀이 마르면 온몸이 끈적거려요. 이것은 불쾌감을 유발하고, 피로도 더 빠르게 쌓아올리는 요소에요. 어떤 여행이든 여행을 진행할 체력이 가장 중요한데, 이 체력을 마구 깎아먹는 요소에요.
간절하게 샤워를 한 번 하고 나가고 싶었지만, 샤워를 할 수 없었어요. 그저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아가며 땀을 말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폰 충전 많이 되었냐?"
"응. 많이 되었어."
친구의 핸드폰이 많이 충전되었어요. 이제는 진짜 이 숙소에서 나가야할 시간. 둔황역 가는 버스는 일찍 끊길 수 있고, 텐트를 치기 위해 자리를 알아보려면 해가 있을 때 돌아다녀야 했어요. 텐트 안에서 두 명이 자야 했기 때문에 텐트 치는 자리를 고르는 것이 대충 넘어갈 일은 아니었어요. 한 명이면 한쪽으로 쏠려서 자도 되고, 울퉁불퉁해서 등이 박이는 자리에는 짐을 놓고 그나마 평탄한 자리에 드러누워서 자도 되요. 그러나 둘이 자야 하기 때문에 아주 평탄하고 둘 다 편히 누울 수 있는 평탄한 자리를 찾아야 했어요. 한쪽이 쏠린 자리라면 밤에 남자 둘이 부비부비 껴안으며 자야 하고, 울퉁불퉁해서 등이 박이는 자리에 눕게 되면 그 자리에 누운 사람은 시안 갈 때까지 컨디션이 엉망이 되요. 즉, 뭐가 그래도 잘 보이는 해 떠 있는 시간에 잠 잘 자리를 찾아야 했어요.
오후 5시 30분. 숙소에서 나왔어요.
역시나 명사산은 해가 머리 꼭대기에서 많이 내려와 있으니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명사산으로 오는 사람은 많았지만, 명사산에서 둔황 시내로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명사산은 이제부터 붐비는 시각.
3번 버스를 타고 둔황 시내로 나갔어요.
"저 사람 위구르인이다!"
위구르인의 빵인 삼사도 보였어요.
마지막에 이렇게 위구르인과 문화를 보는구나!
둔황은 그래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아주 먼 편은 아니에요. 물론 기차로 오려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요. 저는 계속 동쪽으로 가는 중. 계속 위구르와 멀어지고 있었어요. 다음 도시인 란저우는 둔황보다 훨씬 동쪽에 위치한 도시. 란저우는 이름부터 너무 한족 도시인 것이 티가 났어요. 이름만 보면 한족만 득시글할 것 같은 도시였어요. 그래서 이 위구르인들이 더욱 반가웠어요. 앞으로 여행 끝까지 더 이상 위구르인들을 못 볼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정작 밤에 먹을 오늘의 저녁거리는 위구르인들이 파는 삼사가 아니라 이 호떡이었어요.
"어서 둔황역 가자."
둔황역 가는 버스 막차가 7시에 끊긴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와 대충 둘러보며 시장을 지나쳐갔어요.
야시장 및 사주시장을 관통해 지나가다가 가게에 들여서 생수 두 통을 사서 제 가방 양 옆에 꽂은 후,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12번 버스를 탔어요. 12번 버스는 1인당 3원이었어요. 중국 시내 버스 요금을 생각하면 상당히 비싼 편에 속하는 버스였어요. 0.5위안에서 1위안 정도를 내고 버스를 타고 다니다 갑자기 3위안 내려고 하니 상당히 많은 요금을 내는 기분이 들었어요. 사실 3위안이라고 해봐야 저때 환율이 170원이라 510원 정도였지만요.
'과연 잠잘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을까?'
멀어져가는 둔황을 바라보았어요.
점점 건물이 듬성듬성 보이기 시작하더니 시골풍경으로 바뀌었어요.
둔황역에서 내려서 먼저 발권부터 받았어요.
기차표를 발권받은 후, 기차역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어요. 다음날 여기 올 때는 아침 이른 시각이기 때문에 기차역을 구경하려면 지금 구경해야 했어요. 솔직히 밖에 나가서 잠자리를 찾는 것보다 건물 안에서 자는 것이 훨씬 편하게 잘 수 있거든요. 일단 건물 안 바닥은 평평하니까요. 기차역 내부 대합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표 및 보안검색을 받아야 했어요. 그래서 대합실로는 들어가지 않고 매표소 및 상점에만 들어가 보았어요.
"여기서 위구르 지역 밀크티 판다!"
위구르 지역에서 생산된 공산품 밀크티 패트병이 보이자 눈이 번쩍 뜨였어요. 생각할 것 없이 바로 집어들었어요. 밀크티를 계산하고 밖으로 나와서 기차역 건물 앞에 앉았어요. 밀크티를 마시며 그새 땀범벅이 된 몸을 말렸어요. 저녁 7시였지만 너무 밝았어요. 텐트를 치고 자기에는 너무 날이 밝았어요. 어디에 쉴 만한 곳이 있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먼저 조금 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쉴 만한 자리를 찾아갈 생각이었어요.
대합실 앞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과일 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다가왔어요. 친구는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저는 중국어를 몰라서 그냥 멍하니 앞만 내다보고 있었어요.
뒤로는 황량한 사막과 산. 앞으로는 푸른 나무와 시설들. 그래도 여름에 와서 다행이야. 겨울에 왔다면 여기 엄청 추웠을 거야. 둔황 일정은 매우 괜찮았어요. 명사산이 그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어요. 게다가 커다란 절도 보았어요. 숙소와 야시장 사이를 걸어다니기는 했지만 그것 말고는 특별히 힘들 만한 것이 없었어요. 숙소와 야시장 사이의 거리를 보고 무조건 힘들다고 생각없이 뱉어대는 사람들도 아주 많겠지만, 가볍게 맨몸으로 충분히 무리없이 걸어갈만한 거리였어요. 그리고 그것 말고 아예 힘들 건덕지가 없는 일정이었구요. 돈 내고 운동하러도 가는데, 그냥 건강을 위해 산책했다고 생각하면 될 만한 거리였어요. 피로도 많이 풀렸고, 재미도 있었기 때문에 둘 다 만족한 일정이었어요. 중국 여행 두 번째 부분의 시작으로는 매우 행복한 도입부였어요.
"우리 이 사람들한테서 과일 살까?"
"갑자기 왜?"
"그냥."
친구는 과일 장수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과일을 사고 싶다고 했어요. 친구는 정말 착하거든요. 그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분들 도와드리고 싶다고 과일을 구입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데 소량으로는 팔지 않고 대량으로 팔고 계셨어요. 과일 상태를 떠나서 양이 많아서 둘이 감당할 양이 아니었어요. 조금만 사려고 했지만 '조금'이라는 기준 자체가 아예 달랐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저거 사면 결국 우리 다 버리게 될 거라고 하면서 친구를 말렸어요. 친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역 옆으로 가서 길을 따라가다보면 조그만 마을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잠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고 제게 알려주었어요.
저녁 8시가 가까워지자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둔황역아, 내일 보자!
둔황역을 등지고 왼쪽으로 걸어가다보니 샛길이 보였어요.
굴다리를 넘어가자 오솔길이 나왔어요. 그리고 오솔길을 넘어가자 진짜로 마을이 나왔어요.
"이따 정 잠잘 곳 못 찾으면 저기서 자자."
가게 앞 나무 차양이 설치된 곳을 일단 봐두고 앞으로 계속 걸어갔어요.
"우리 예전에 여기저기 출사 다닐 때 생각나지 않냐? 거기 있잖아, 너랑 같이 달동네 출사갔던 곳."
사진을 찍으며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친구가 제게 물어보았어요. 친구와 같은 고시원에서 살던 2006년. 시간이 나면 친구와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제가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구입했던 때가 2006년. 그때 친구와 밤마다 서울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친구가 당시 니콘 D50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해서 사진을 찍는 것을 보고 저도 사진이 찍고 싶어서 소니 W1을 구입했어요. 둘 다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처음 출사를 간 것이 바로 이른 아침 이문동 달동네였어요. 그 후로 친구와 여기저기 출사를 잘 다녔었어요.
지금까지 제가 사용해본 디지털 카메라 중 성능이 가장 안 좋은 것이 바로 W1이었어요. 그런데 정작 그때 사진 찍는 재미를 가장 많이 느꼈어요. 그때만 해도 사진 한 장 건져보겠다고 엄청 신경을 쓰며 사진을 찍었어요. 조잡하지만 지원되기는 하는 완전 수동모드인 M모드로 사진도 찍고, 어떻게 하면 한 장이라도 더 예쁘게 찍을까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인데 이런 저런 필터들도 구입해서 사용해보고, 보다 넓게 찍어보려고 안경알도 구입해서 조잡한 광각 컨버터도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소재주의에서 벗어나 진짜 멋진 사진 찍어보겠다고 출사를 안 나가는 날에는 방에서 깡통 하나 놓고 여러 각도에서, 여러가지 설정을 하면서 사진을 쉴 새 없이 찍어대곤 했어요.
이렇게 한동안 사진에 미쳐있다가 사진에 흥미를 잃기 시작한 것은 당시 하이엔드 디지털 카메라였던 코닥의 P880으로 카메라를 바꾸면서부터였어요. 그때부터 카메라를 잘 들고 나가지 않게 되었어요. 카메라가 커서 안 들고 다니다보니 카메라로 사진 찍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고, 그렇게 카메라로 사진 찍는 일이 많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에 대한 열정은 빠르게 식어갔어요. 정작 지금까지 제가 사용해본 디지털 카메라 가운데에서 가장 만족했던 카메라였는데요.
그 이후로 디지털 카메라를 2번 바꾸었지만, 카메라를 바꾸어갈 수록 사진에 대한 열정은 더 식어갔어요. 게다가 스마트폰을 구입하면서 거기에 달린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보니 사진을 아예 건성으로 찍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사진 한 장 잘 찍어보겠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생각하고 계산하면서 진지하게 찍었는데, 이제는 대충 후려찍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사진 찍는 것 자체에서 큰 재미를 못 느꼈고, 사진을 예쁘게 찍어야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어요. 오직 기록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댈 뿐이었어요.
그런데 친구와 잠잘 곳을 찾으며 동네를 걸어다니면서 사진을 찍다보니 예전 친구와 출사다니며 진지하게 사진 찍으며 느끼던 그 재미가 다시 살아났어요. 손도 머리도 눈도 전부 예전 그 감을 잃어버린지 오래라 시원찮은 사진만 잔뜩 찍고 있기는 했지만요.
"저거 양 아니야?"
작은 우리에서 양이 저와 친구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포도밭과 원두막이 보였어요.
동네는 정말로 낙후된 시골이었어요.
비바람이 몰아치면 바로 녹아 쓰러질 것처럼 생긴 이 흙벽 집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요.
계속 사진을 찍고 잠을 청할 자리를 찾으며 앞으로 걸어갔어요.
허름한 농구 골대가 보였어요.
친구가 알려준 바에 따르면 중국은 축구보다 농구가 인기가 훨씬 좋대요. 단지 덩샤오핑, 시진핑 등 중국 국가 지도자들이 축구광이기 때문에 이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축구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래요. 생각해보면 중국의 유명한 농구 선수로는 야오밍이 있었지만, 중국의 유명한 축구 선수로는 딱히 떠오르는 선수가 없어요. 중국이 농구는 잘하지만, 축구는 못하구요. 우리나라 언론에 아주 가끔 보도가 되기는 하는데, 중국 농구계에서 이런 중국 지도자들의 비위 맞추기를 위해 축구에 과도하게 투자하는 현상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구요.
텐트를 칠 만한 곳을 찾아보며 계속 마을을 돌아다녔어요.
어느덧 마을에서 벗어났어요.
이제 날도 슬슬 저물어가고 있었어요.
"우리 저기서 자자!"
전파 안테나 아래는 시멘트로 평평하게 땅을 포장해 놓았어요. 저 위라면 자동차가 기어올라올 일도 없고, 평평하니 텐트를 치기도 딱 좋았어요. 돌이 솟아나온 곳도 없고, 비스듬한 곳도 아니었거든요.
"저기 전자파 때문에 안 돼."
"저기가 무슨 전자파야?"
"너 그 송전탑 몰라? 그 주위에 전자파 엄청 많다니까!"
"저게 무슨 송전탑이야? 전파 안테나구만."
"어쨌든 안 돼."
저 전파 안테나 아래에 텐트를 치면 딱인데 친구가 전자파를 들먹이며 저기는 정말 싫다고 우겼어요. 그래서 일단 더 둘러보기로 했어요.
길 끝의 갈림길. 친구가 길 옆 공터에 텐트를 치자고 했어요. 그러나 그 자리는 절대 텐트를 칠 수 없는 자리였어요. 바닥을 보니 타이어 자국이 있었어요. 한밤중에 텐트 치고 자다가 차가 덮치면 아무 것도 못하고 대책없이 차에 치이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바닥도 매우 울퉁불퉁했어요. 돗자리 한 장으로 어떻게 될 정도가 아니었어요. 여기에 텐트를 치고 누우면 둘 다 등이 박여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어요. 게다가 땅이 평평한 것도 아니라 둘 다 잠들면 둘이 100% 찰싹 달라붙어서 밤새 남자 둘이 부비부비를 하게 생긴 땅이었어요.
친구에게 왜 여기에서 텐트를 치면 안 되는지 조목조목 설명해주자 친구가 납득했어요.
"그러면 텐트 어디에 쳐?"
"아까 말했잖아. 그 안테나 아래에 쳐야한다니까."
"거기 전자파 엄청 많잖아."
"송전탑도 아닌데 거기 전자파가 왜 들끓어? 거기 말고 우리 오늘 잘 곳 없다니까? 이제 해도 저물어가서 다른 곳 찾아볼 수도 없잖아. 모스크까지 걸어갈래?"
둔황 기차역에서 한참 걸어가면 모스크가 있었어요. 처음 류원에서 둔황 넘어올 때 모스크가 있는 것을 보았거든요. 친구는 바로 쿠차에서 라마단때 모스크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면서 얌전히 안테나 아래에서 자자고 동의했어요.
전파탑 옆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양에게 줄 풀을 베고 계셨어요. 친구가 중국어로 안테나 옆에 텐트를 쳐도 되냐고 여쭈어보았어요. 할아버지는 그러라고 하셨어요. 안테나 옆은 포도밭이었어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귀가하시는 모습을 보며 가방을 풀고 텐트를 쳤어요.
2016년 6월 8일의 밤이 이제 코앞까지 다가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