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복습의 시간 (2016)

복습의 시간 - 50 중국 견문록 둔황 사주시장 야시장 敦煌 沙洲市场

좀좀이 2016. 10. 2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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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3번 버스 막차가 버스 정류장에 정차해 있었어요. 버스 기사는 막차이니 빨리 타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친구와 3번 버스에 올라탔어요. 이 차가 막차인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타고 있었어요. 이 사람들 거의 다 사주시장 야시장에 가는 사람들이었어요. 꽉꽉 들어찬 사람들 사이로 낑겨 들어갔어요. 저와 친구가 버스를 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출발했어요.


버스가 사주시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루루 내렸어요. 시계를 보니 10시 40분이 넘은 시각이었어요.



"우리 수박 한 통 사서 나누어먹자."

"수박? 너 수박 안 좋아하잖아."

"명사산 다녀오니까 목마르고 입안이 텁텁하다. 시원하게 수박 하나 사먹자."

"나야 좋지."


수박 한 통은 11위안이었어요. 크기는 어른 머리만한 것이었어요. 이 수박 역시 투르판에서 왔다고 했어요. 상인에게 수박을 썰어달라고 부탁해서 수박을 먹기 좋게 자른 후 버스 정거장 의자에 앉아 수박을 먹기 시작했어요. 미지근하기는 했지만 시원해서 먹을만 했어요. 그러나 그 달콤한 수박이 아니었어요. 위구르 지역에서 먹었던 그 달디 단 수박이 아니었어요.


'위구르 지역 돌아가고 싶다.'


양꼬치도 그렇고 수박도 그렇고 모두 짝퉁 같았어요. 그렇다고 가격이 그쪽보다 저렴한 것도 아니었어요. 마치 정품을 사용하다가 갑자기 짝퉁을 사용하게 된 기분이었어요. 위구르인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수박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어제보다 사람들 더 많은 거 닮지 않아?"

"어. 오늘은 사람들 진짜 많네."

"뭐 있나? 라마단이라서 다 기어나왔을 거 같지는 않은데."

"아! 중국 지금 단오잖아!"


그러고보니 무슬림들에게는 라마단이 시작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한족들에게는 단오 명절이었어요. 중국의 방학에 단오까지 겹쳐서 사람들이 많은 듯 싶었어요.




沙洲市场



야시장 가게들도 전날보다 훨씬 장사가 잘 되고 있었고, 전날보다 더 늦은 시각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가게가 문을 열고 있었어요. 전날은 문 닫은 가게들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오늘은 문 닫은 가게가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물론 중국 기준으로는 매우 한산하다고 해야겠지만요. 그리고 사진에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더 잘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어두워서 사람들이 별로 없을 때에만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에요.




시장에서는 나무에 양각으로 조각한 기념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열심히 조각품을 만들고 있었어요.



북 소리가 들렸어요. 무슨 길거리 공연이 있는지 친구와 보러 갔어요. 길거리 공연까지는 아니고 몇몇 사람들이 북을 치면서 음악 CD와 북을 팔고 있었어요.


"어? 위구르인이다!"



한 눈에 위구르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어요. 외모가 한족과 아예 다르거든요. 저 남자 뒤에 있는 한족 여자와 얼굴을 비교해보면 바로 얼굴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에요.


"위구르인이세요?"

"예. 우리 말 어떻게 알아요?"

"저 우즈베키스탄에서 우즈베크어 공부했어요."

"그래요? 신장 가본 적 있어요?"

"예, 저희 거기에서 왔어요."

"어디 가보았어요?"

"투르판, 우루무치, 카슈가르, 쿠차요."

"어땠어요?"

"좋았어요. 거기 다시 가고 싶어요."


이 아저씨가 팔고 있는 음악 CD를 구입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내 컴퓨터에 CD롬이 없다.


이것은 돈 문제가 아니었어요. CD에 마음에 드는 곡 한 곡 정도야 있겠지. 문제는 제 노트북 컴퓨터에 CD롬이 없어서 CD를 구입해도 그 음악을 들을 길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mp3 녹음이 아니라면 프로그램 구해서 mp3로 변환시켜야 하는 문제도 있었어요. 한국 돌아가서 PC방에서 이 작업을 하는 방법도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음악을 들어보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위구르인을 만나자 정말 반가웠어요. 고향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하루 종일 반 벙어리였는데 갑자기 위구르어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어요. 외국에서 같은 나라 사람 만나서 기분이 좋은 것은 한국어로 시원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서인데, 지금 이 아저씨와 위구르어로 대화하며 느끼는 그 감정이 바로 이 감정이었어요. 눈 뜬 벙어리에서 갑자기 일순간 벗어난 기분이었어요.


아지씨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야시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시장을 둘러보는데 여기도 옥을 많이 팔고 있었어요.





전날 한 번 구경한 시장이라 오늘은 둘 다 사진 찍고 싶은 것을 찾고 혹시 기념품 구입할 것이 있나 자세히 살피며 돌아다녔어요.


전날 한 번 구경한 시장이라 오늘은 둘 다 사진 찍고 싶은 것을 찾고 혹시 기념품 구입할 것이 있나 자세히 살피며 돌아다녔어요.








"이제 슬슬 돌아가자."


저는 여기에서 엽서와 냉장고 자석을 구입했어요. 이것은 제가 가지려고 구입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모으는 친구가 있어서 구입한 것이었어요. 제가 제 기념품으로 구입할 것은 아무 것도 구입하지 않았어요. 무언가 딱 와닿는 것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만약 2000년대에 여기에 왔다면 이것저것 구입했을 거에요. 그러나 지금은 2016년. 중국 기념품은 질리도록 많이 보았어요. 게다가 중국인, 조선족이 몰려 사는 서울의 대림, 그보다는 짝퉁 느낌이 나지만 역시나 중국인들이 많은 건대 입구, 그리고 2000년대 중후반 경희대학교가 중국인 유학생을 엄청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중국인들이 엄청 많아진 휘경동, 이문동에 자주 가다보니 이제 어지간한 것은 신기하지도 않았어요.


여기에 치욕스러운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에서 파는 기념품 대부분이 중국산이에요. 단순히 중국에 제작 공정만 맡긴 것이 아니라 중국 기념품을 그대로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는 것이에요. 1990년대부터 세계화, 첨단화라는 이름하에 이도 저도 아닌 엉터리 디자인이 쏟아져나오다 아직까지도 '한국적인 느낌'을 가진 디자인 틀을 정립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이렇게 가면서 기존에 있던 한국적인 느낌마저 잃어버렸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쌈마이'한 조악한 디자인만 남아버렸어요. 이것과 맞물려 가뜩이나 발달하지 못한 기념품 디자인에 중국제 관광 기념품이 쏟아져 수입되면서 우리나라 기념품은 말 그대로 '망했어요'가 되어버렸어요. 20여년을 그렇게 날려버리고 요즘 들어서야 그나마 조금씩 '한국적인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잡혀가는 느낌이에요. 어쨌든 아직까지도 '한국적인 디자인'에 대해서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요. 일본, 타이완, 베트남 모두 딱 떠오르는 디자인과 느낌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고, 그나마 있다고 해도 그것은 1980년대 것들. 주변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중국적인 것은 중국에 가지 않아도 흔히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중국 기념품은 어지간해서는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전날과 마찬가지로 야시장 먹자 골목으로 갔어요.




"양꼬치 먹을까?"

"너 먹고 싶어?"

"아니. 왜 이렇게 양꼬치가 짝퉁스러워 보이냐?"

"그러게. 위구르인들 것 보다가 이거 보니까 뭔가 돈 아까워 보인다."



이것이 바로 중국 요리 맛의 근본인 강한 화력. 우리나라 가스레인지로는 아무리 발악을 해도 중국 요리의 맛을 낼 수 없는데, 그 이유가 바로 저 강한 불 때문이에요. 중국은 가스통에 호스를 연결해 바로 불을 붙이거든요. 그래서 화력 자체가 달라요. 집에서 아무리 가스레인지 세게 튼다고 해도 저 화력이 나올 수 없어요. 그러다보니 중국 음식의 불맛을 느끼고 싶을 때에는 중국집 가서 먹어야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나라 중국집에서의 화력보다 이렇게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화력이 훨씬 세구요. 우리나라는 일류 셰프들이 요리할 때 불이 확 오르면 우와 하지만, 중국에 오니 길거리 노점에서 볶음 요리 파는 사람들도 전부 불 확확 올리고 있었어요.




"너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모스크!"

"아, 무슨 모스크야! 나 모스크 가기 싫어!"


그래도 제가 모스크에 가고 싶다고 하자 친구가 음료수를 구입하면서 어디에 모스크가 있냐고 물어보기는 했어요. 모스크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어요.


"너 정말 모스크 갈래?"

"지금은 별로. 지금 어두워서 뭐 보이겠냐."


사실 이때 모스크는 농담으로 말한 것이었어요. 둔황에 모스크가 있을 거라 상상하지도 않았고, 그냥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말한 것이었거든요. 설령 모스크가 있다 하더라도 밤이라 갈 생각이 없었어요. 지금은 너무 어두워서 제 카메라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거든요. 아예 까맣게 나오거나 흔들려서 도저히 못 봐주게 찍힐 것이 뻔했으니까요. 어쨌든 일단 이쪽에 모스크가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어요.


친구와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데 전날 밀크티를 사서 마셨던 그 가게가 보였어요.


"너 밀크티 마실래? 내가 살께."

"너가? 너 아까 내가 반찬 사서 사주는 거?"

"아니. 그냥 나 마시고 싶어서. 너 안 마시게?"

"나도 마시고 싶어. 너 그런데 진짜 아까 내가 반찬 사서 사주는 거 아냐?"

"뭘 아까 반찬이야. 내가 마시고 싶어서 사는 거래니까."


제가 밀크티를 사겠다고 하자 친구가 신났어요. 사실 80은 제가 먹고 싶어서 친구 것도 사주는 것이었고, 20은 아까 친구가 반찬 사서 사주는 것이었어요.


밀크티를 마시며 숙소로 돌아왔어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씻고 빨래를 한 후, 침대에 걸터앉았어요. 친구는 인터넷을 이용해 무언가 이것저것 보고 있었어요. 저는 란저우에 대해 찾아보았어요. 란저우 여행 정보는 정말 별로 없었어요. 일단 여기에 야시장이 있고, 볼 것이 황하쪽에 몰려 있다는 것 정도였어요. 역에서 나와서 쭉 걸어올라가면 황하가 나오고, 이 황하 근처에 볼 것이 몰려 있었어요. 야시장도 황하 근처 어디쯤이었어요.


'란저우 도착하면 자정쯤 되니까 야시장 가서 저녁 먹고 황하 어디께에 텐트 치고 자면 되지 않을까?'


중국어로 여행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 한 이것이 한계였어요. 란저우에 대해 이 정도 알아본 후, 불을 끄고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다음날 체크아웃해야 했기 때문에 전날밤처럼 늦게 자면 안 되었어요. 오늘 최대한 침대에 누워서 휴식을 취해야 했어요. 이 휴식이 앞으로 사흘 밤 그렇게 그리워할 그 휴식이었거든요. 이 어둠이 지나가면 그때부터 이 여행 최고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될 것이었어요. 마치 최후의 만찬처럼 노숙과 딱딱의자 장시간 이동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다지며 최대한의 휴식을 얻기 위해 격렬하고 필사적으로 침대에 누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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