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7박 35일 (2009)

7박 35일 - 14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치슈미지우 공원, 개선문

좀좀이 2012. 1. 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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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인민궁전을 보러 가기로 했어요. 책자를 뒤져보았지만 인민궁전 외에는 크게 보고 싶은 것도 없었고, 아는 것도 없었어요. 그러나 인민궁전은 꼭 보고 가야 하는 것이었어요. 인민궁전을 본 후에는 농촌 박물관 (Village Museum)에 가서 루마니아의 전통 가옥 및 의상을 구경할 생각이었어요.


인민궁전으로 가는데 왠지 가 보는 것이 좋아보이는 공원이 나타났어요. 공원 이름은 치슈미지우 공원 (Cişmigiu park).



사진은 별 볼 일 없이 나왔는데 실제 보면 매우 예뻐요.


한가롭게 공원을 구경하며 어디로 갈까 다시 고민하게 되었어요. 인민궁전을 갈까 생각했지만 인민궁전은 못 들어가요. 시간도 애매하게 남았어요. 아침부터 너무 걸어서 많이 걷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어요. 그래서 농촌 박물관이나 보고 적당히 쉬다가 베오그라드로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름다운 공원.



정말 아쉬웠던 점은 우리가 시기를 정말 잘못 잡았다는 것이었어요. 3월 18일. 정말 애매한 날짜에요. 이 시기는...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애매한 시기에요. 날씨는 겨울에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겨울이라고 볼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풀만 자라있는 시기.


이 공원에는 꽃밭이 예쁘게 꾸며져 있었어요. 하지만 정말 애매한 시기이다보니 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었어요. 그나마 많이 핀 곳은 듬성듬성 폈고, 보통은 이파리만 나와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푸른 풀밭이었어요.


"비 많이 오네요!"

루마니아는 정말 아무 것도 안 도와주는 것 같았어요. 사람들은 나름 도와주려고 노력했는데 오토가르도 없었고, 베오그라드행 버스도 없었고 날씨는 비가 내렸어요.



비가 내리는데 농촌 박물관은 보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자꾸 길을 찾았다 잃어버렸다를 반복하고 있었어요.



여기는 전혀 갈 생각이 없는데 길을 잃어버려서 오게 된 곳이에요. 대학 광장 (Piaţa Universităţii) 근처에요. 왜 치슈미지우 공원에서 여기로 왔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아놔...이 도시 크기만 엄청 크네!"


부쿠레슈티는 정말 볼 것이 많은 도시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무언가 특별한 것? 그거라면 루마니아 전통 양식으로 지은 교회가 전부였어요. 아무리 지도책을 들고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겠다고 오는 친절함이 있다 해도 삭막함은 어쩔 수 없었어요. 게다가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어요. 가이드북에서 그렇게 경고로 가득 채워 놓았다면 여기는 정말 위험한 곳이에요. 현지인들이 우리에게 친절한 것과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이 우리를 노리는 것은 별개의 것이에요.


"우리 전철 타고 가죠."


농촌 박물관을 가기 위해서는 개선문을 먼저 가야 했어요. 그런데 지도를 펼쳐서 보니 아직도 몇 km를 더 걸어가야 했어요. 이건 정말 무리였어요. 여행을 오늘만 할 것도 아니고 내일도 하고 모레도 하고 글피도 할 거였어요. 그래서 그냥 전철을 타고 가자고 했고, 후배는 좋다고 했어요.


우리가 가야 하는 역은 2호선 Aviatorilor 역이었어요. 부쿠레슈티 전철표만이 가지고 있는 재미있는 특징은 전철표 하나를 사면 이게 1회권이 아니라 2회권이라는 것이었어요. 즉, 표를 사면 무조건 2번 이용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1개를 사서 2명이 써도 상관 없었어요. 저는 이것을 당연히 몰랐는데 매표소에서 알려주었어요. 오히려 제가 2장을 사겠다고 하니까 둘이 같이 쓰라고 하면서 쫓아냈어요. 이것도 친절이라고 봐야 할까요? 분명 친절하게 '여기 전철표는 2회권이니 둘이 1장 사서 같이 쓰면 되요'라고 알려준 것이기는 한데 굳이 2장 사겠다는 것을 쫓아낼 필요까지는...


"개선문이다!"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따 만든 거라고 했어요. 가까이 가 볼 수도 있어요.



생각만큼 멋있고 훌륭해 보이지는 않았어요. 실물로 본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개선문보다 사진으로 본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이 훨씬 멋진 것 같았어요.


이제 농촌 박물관을 찾아가는 일만 남았어요. 이건 어렵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지도를 보니 못 찾아가는 것이 바보였어요.



예...저는 바보였어요...


어디서 길을 잘못 들어갔는지 모르겠어요. 하여간 어디에선가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전혀 엉뚱한 곳으로 와 버렸어요. 목적지는 농촌 박물관이었는데 걷고 있는 길은 하러스트러우 (Harăstrău) 호수 주변 길이었어요.


'금방 끝나겠지?'


도시 한 가운데에 있는 호수가 커 봐야 얼마나 클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 시간 넘게 걷고 있었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게 한 번 들어오니 나갈 방법이 없었어요. 정말 진심으로 이 호수 주변을 걷고 있는 것이 후회되었어요. 하지만 별 수 없었어요. 더욱 약오른 것은 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왠지 바로 가로질러 갈 수 있어 보였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저 맞은편을 가야 하는데!"


정말 선택지가 없었어요. 무조건 앞으로 걷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어요. 진짜 열심히 걸었는데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았어요. 더 황당한 것은 이 호숫가 주변에 밖과 이어지는 입구도 없다는 것이었어요. 입구가 나오면 바로 나가려고 했어요. 일단 이 호숫가 길에서 벗어나 택시라도 잡아탈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밖으로 나가는 길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나 좀 살려줘!"


진짜 절규했어요. 후배 앞에서의 체면이고 뭐고 없었어요. 이 호수를 벗어나야 하는데 출구는 정말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어요. 다리는 끊어지게 아픈데 일단 이 지옥 같은 호수 주변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걸음을 멈출 수 없었어요. 그리고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고 있어서 앉을 곳도 없었어요.


"출구다!"


결국 호수 한 바퀴를 다 돌고 말았어요. 더 돌아다닐 힘이 하나도 없었어요. 다리가 끊어지게 아팠어요.



전철을 타고 다시 북역으로 돌아가는 길. Aviatorilor역 내부에요. 정말 무성의하게 지은 것 처럼 보였어요. 크게 관리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러니 노선도 위에 낙서가 되어 있는데도 방치를 하죠.



가라 데 노르드의 밤. 날이 어두워져서 정말 긴장했어요. 가이드 책자에 여기는 특히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다행히 생각보다는 훨씬 안전했어요. 가이드북이 오래된 것이라 그런가? 물론 조금 위험해 보이지는 했지만 직접적인 위험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역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중앙시장을 찾아 돌아다녔어요. 그러나 역시나 찾을 수 없었어요. 사람들에게 중앙 시장을 물어보면 어디라고 가르쳐 주기는 하는데 알려준 대로 가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렇게 한참 역 주변을 돌아다니다 중앙 시장을 가는 것은 포기하고 다시 가라 데 노르드로 돌아왔어요.


가라 데 노르드에서 쉬는 것은 절대 편하지 않았어요. 플랫폼이 역 바로 안에 있어서 앉아서 쉴 곳이 마땅히 없었어요. 사방팔방 찬 바람이 슁슁 부는 구조라서 어쩔 수 없이 카페에 들어가 쉬었어요.


21시 30분. 드디어 베오그라드행 기차에 올라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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