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에메랄드 불상을 보는 거야?
그렇게 보고 싶었던 에메랄드 불상이었어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것 만큼은 매우 보고 싶었어요. 계몽사 학습그림사회에서 에메랄드 불상에 대해 읽은 후, 항상 '태국'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에메랄드 불상을 떠올렸어요. 태국 방콕에 간다면 무조건 에메랄드 불상부터 볼 거라고 막연히 상상해왔어요. 번쩍거리는 에메랄드로 된 불상. 그렇게 큰 에메랄드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어요.
이 사진은 계몽사 학습그림사회에 나와 있는 에메랄드 불상에 대한 설명이에요. 물론 이 불상은 매우 놀라운 불상이기는 하지만, 에메랄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에요. 에메랄드로 만들어졌다고 흔히 알고 있지만, 사실은 옥으로 만들어진 불상이지요. 그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꼭 보고 싶었어요. 옥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도 변한 것은 없었어요. 게다가 국왕이 직접 이 불상의 옷을 갈아입힌다는 것은 옥이든 에메랄드든 똑같았어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 불상을 보러 가는 것도 마찬가지였구요.
버스 정거장에서 왕궁으로 가기 위해서는 사거리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어요. 이 횡단보도 뒷편으로는 시장이 있었어요.
"여기도 두리안 파네?"
지난 번 베트남 여행 갔을 때 현지에서 두리안인줄 알고 먹었던 것은 잭푸르츠였어요. 맛볼 때 왜 악취가 안 나나 궁금해했는데 잭푸르츠였기 때문에 악취가 날 리가 없었어요. 그리고 지금 제 눈 앞에 있는 것은 바로 두리안. 태국 친구 말로는 지금이 두리안 제철이라고 알려주었어요. 분명 이번에 반드시 먹어보아야하는 그 두리안이 눈 앞에 있었어요. 이 역시 어렸을 적부터 이어져왔던 궁금함의 하나였어요. 두리안이 '과일의 왕'이라는 말을 듣고 극강으로 달고 매우 맛있는 과일일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두리안을 먹어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의외로 그렇게 강력하게 달지 않고 대신 냄새가 매우 고약하다고 했어요. 냄새가 고약하고 그렇게 맛있는 것도 아니라는데 왜 대체 과일의 왕이라고 하는 거지? 어렸을 때에는 '과일의 왕'이라는 말 때문에, 대학교 들어가서는 '고약한 냄새나는 맛없는 과일'이라는 말 때문에 두리안의 정체가 매우 궁금했어요.
가격은 일단 저렴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 커다란 두리안 한 통을 혼자 다 먹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혹시 맛보고 맛있다면 나중에 한 통을 도전해볼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아니었어요. 일단 모양은 아무리 보아도 그것처럼 생겼어요. 예, 그거 맞아요. 화장실 가서 볼 일 볼 때 그거요. 저게 갈색이었다면 정말 아무리 과일의 왕이라고 해도 보기조차 싫었을 거에요. 가격은 만만한 것이 100바트. 그 이하 것은 보이지 않았어요.
바보가 될 걸 알면서 돈을 쓴다.
일단 주변에서 특별히 고약한 냄새가 나지는 않았어요. 썩은내나 지린내가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냄새는 거의 없었어요. 다른 곳에서 작업을 해서 가져온 두리안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까서 포장한 두리안이었는데요. 냄새에 경기 일으킬 수준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100바트면 3500원. 삶은 고구마 두 덩어리 정도 크기에 3500원. 사실 별로 먹고 싶지 않았어요. 이건 재미도 없어요. 하도 두리안 고약하다고 욕해놓은 사람이 많아서 뭔 욕을 해도 재미가 없어요. 이건 오히려 너무 맛있다고 눈에서 하트 뿅뿅 뿜어내야 별종으로 인정받는 그런 존재. 그래도 그 악평들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뭔가 '동남아시아 왔는데 먹어보아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짧게 끝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100바트를 내고 두리안을 구입했어요.
먼저 냄새. 아무리 코를 벌름거리고 킁킁대어 보았지만 못 견딜 정도로 지독한 악취는 나지 않았어요. 분명히 제철이라고 했는데 코가 막혔나? 방콕의 매연에 코의 후각 세포가 다 코팅당했나?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어요. 사실 못 견딜 정도의 냄새였다면 이 자리에서 냄새가 진동해야 했을 거에요. 이 자리에서 냄새가 진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냄새 자체는 못 견딜 정도로 지독하지 않다는 말.
냄새는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어요. 냄새가 지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 거부감없이 한 입 베어물었어요.
으허버버버 으허허어버버버
그래. 차라리 냄새가 지독하면 참겠다. 이건 일단 다 먹기는 해야겠는데 이 식감이...
크리미한 식감이라고 하는데, 이건 크림과는 3년 정도 떨어져 있는 식감이었어요. 정확히 표현하자면 맛과 식감이 물에 띵띵 불은 삶은 고구마였어요.
나 원래 고구마 안 좋아해.
고구마 과자는 좋아하지만 고구마 그 자체는 썩 좋아하지 않아요. 그나마 군고구마의 탄 부분이라면 맛있게 먹지만 나머지 부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삶은 고구마는 더욱 별로고, 이게 물에 빠져서 띵띵 불은 부분은 더욱 싫어해요. 참 '설컹설컹'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물컹물컹'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그런 이상한 식감. 차라리 크림처럼 속이 질질질 흘러나오는 거라면 더 나았을 거에요. 부드럽기는 한데 그거 참 느글거리게 만드는 부드러움이었어요.
먹는 것을 버릴 수도 없고 이것을 들고 다니며 먹고 싶지도 않았어요. 방법은 오직 하나였어요. 그 자리에서 꾸역꾸역 입 속에 우겨넣는 것. 맛 자체가 싫은 것보다 식감이 매우 싫었기 때문에 대충 씹어서 계속 삼켰어요.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만약 이런 식감에 냄새까지 역했다면 전혀 고민하지 않고 바로 버려버렸을 거에요. 그러나 냄새는 그냥저냥 괜찮았기 때문에 어떻게 다 먹어치울 수 있었어요.
두리안을 다 먹고 왕궁 앞으로 갔어요.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마주친 것은 어마어마한 물량의 중국 단체 관광객. 바로 위 사진 제일 밑을 주목해서 봐주세요.
아...
태국으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는 말은 많이 접했어요. 단체 관광객과는 안 얽히는 것이 최고. 단체 관광객과 안 얽히는 것이 최고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게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에요. 유명 관광지라면 단체 관광객이 많이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특히 중국 단체 관광객. 이들은 정말 피하고 싶은 존재. 이미 고향에서 무수히 많이 봐왔던 단체 관광객들 중에서도 그 난이도가 유별나게 높기로 악명 높은 무리.
그래도 중국 청년 배낭여행 패거리들이 떼제비로 몰려온 게 아닌 것에 감사하자.
중국인 관광객들 매너가 형편없는 것은 이제 국제적으로 공공연한 사실. 한둘이서 다니는 중국인 관광객은 매너가 괜찮은 경우도 많은데, 무리에 한 명씩 늘어나기 시작하면 정말 짜증을 일으키는 존재들. 어느 나라 사람이건 무리가 늘어날 수록 오만방자해지기는 하지만, 보통 무례한 정도가 2차함수 그래프 정도의 기울기로 증가한다면 중국인들은 4차함수 그래프 정도의 기울기로 증가한다는 것이 차이. 그나마 가이드가 어느 정도 통제하는 단체 관광객들 무리는 무례한 정도의 기울기가 급격히 가파라지지 않는데, 통제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자유여행 패거리들은 하나 늘어날 때마다 그 무례한 정도의 기울기가 무섭기 가파라져요. 여행지에서 절대 마주치기 싫은 정도를 순서로 매긴다면 중국인 청년 자유여행 패거리 - 그 외 자유여행 패거리 - 중국인 단체 관광객 무리 - 그 외 단체 관광객 무리에요. 단체 여행객 무리를 처음 겪으면 상당히 짜증나고 당황스럽겠지만, 몇 번 겪어보면 나름의 요령이 생겨서 심각할 정도로 여행에 방해받지는 않아요. 단체 여행객 무리는 나름의 흐름과 박자가 있거든요. 사실 단체 여행객들의 질은 가이드가 결정한다고 봐도 되요. 가이드가 개념찬 사람이면 단체여행객들도 개념있게 다니지만, 가이드가 쓰레기라면 관광지의 모든 것 그 전체를 파괴하는 시바신 떼거지로 돌변하지요. 어느 국적이든 간에 일단 단체 관광객 무리와 엉켜버렸다면 그 무리의 가이드부터 찾아야 해요. 가이드를 보면서 틈새에 끼어들고 흐름에서 벗어나고 해야지, 단체 관광객 무리에 맞서서 자신의 시간을 쟁취하려고 하면 단체 관광객들에게 쓸려다니며 아무 것도 못 해요.
그에 비해 배낭여행 패거리들은 통제할 사람이 없어서 얽히는 순간 상당히 문제가 되요. 얘네들은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예측하고 대처할 방법도 마땅히 없어요. 단체 관광객들이 대형 트럭이라면 얘네들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는 오토바이 같은 존재. 일단 엉키면 단체관광객 무리가 싹 청소해주고 가기를 바랄 정도로 답이 없는 무리들이에요. 그리고 그 중에서 중국인 청년 배낭여행 패거리들은 유독 그 정도가 심하구요. 배낭여행 패거리들이 평범한 오토바이라면 중국인 청년 배낭여행 패거리들은 심야의 폭주족 무리들.
입구를 통과해 왕궁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왠 태국인이 거기 있지 말라고 소리쳤어요.
'여기는 출입금지 지역도 아닌데 왜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는 거지?'
알고보니 그 태국인은 중국 단체 관광객을 인솔하는 가이드였고, 자기가 먼저 찍으려고 그렇게 소리쳐댄 것이었어요. 이 왕궁 일정이 어떨지 아직 표를 끊지도 않았는데 이미 이 일정의 결과가 어떨지 답이 나와 있었어요. 가이드가 이렇게 쓰레기라면 그 결과는 뻔했어요.
위에서 이미 결과를 적어 놓았어요. 가이드가 쓰레기면 그 쓰레기 가이드가 인솔하는 단체 관광객들은 시바신 떼거지로 돌변한다구요. 쓰레기 가이드가 일으키는 진짜 심각한 문제는 자기가 인솔하는 단체 관광객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해 다른 단체 관광객 팀과 섞이고 엉키게 만들어버리는 거에요. 이러면 다른 팀 관광객들이 섞여버린 팀의 가이드 또한 자기 팀 관광객들 통제력을 상실하고, 가이드가 통제력을 상실하니 이 무리는 또 다른 팀에 섞여버리는 연쇄작용을 일으켜 엉망진창 같은 상황을 만들어요. 아직 표도 끊지 않았는데 이미 그런 상황이 발생해 있었어요. 가이드끼리 싸우고 관광객들은 엉켜서 사진 찍는 포인트에 전혀 다른 팀 관광객 여럿이 서로 먼저 서겠다고 달려가고 있었어요. 당연히 제게 자기 무리가 먼저 찍어야한다고 비키라고 소리친 가이드의 팀 역시 다른 팀과 엉켜 있었고, 그 가이드는 다른 가이드와 싸우고 있었어요. 전체적인 상황이 진짜 목불인견이었어요.
아직 왕궁 구경 시작도 안 했는데 눈 앞에 펼쳐진 아수라장. 안은 여러 팀이 꼬여 있는 상황인데 뒤에서는 또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꾸역꾸역 우겨들어오고 있었어요.
그 와중에 찍은 사진이 바로 이 사진이에요.
앞에서 가이드끼리 싸우고 무리는 뒤엉켜 있던 한 덩어리는 그 상태를 풀지 못하고 왕궁으로 입장하기 위해 앞으로 갔어요.
진심으로 여기를 보아야하나 싶은 생각이 마구 들었어요. 중국인들이 양산을 펼쳐들고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이건 뭐 마땅히 할 말도 없었어요. 한둘이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떼거지로 양산을 들고 있으니 사진은 둘째치고 당장 눈 안 찔리게 신경을 써야할 판이었어요. 중국인들이 당연히 남을 배려하면서 양산을 쓰고 돌아다닐 리가 없으니까요. 제 딴에는 갈 길 간다고 가는 것이겠지만 옆사람 안 보고 양산 들고 갈 길을 가니 양산이 얼굴 바로 옆으로 스쳐가기 일쑤였어요. 게다가 양산을 쓰고 일렬횡대로 돌아다니는 중국인들 덕분에 가뜩이나 미어터지는데 더 미어터지고 있었어요.
이 모든 게 아직 왕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일어나고 있는 상황.
그래도 에메랄드 불상은 꼭 보아야겠다.
목표는 오직 에메랄드 불상. 오직 에메랄드 불상이었어요. 쓰레기 태국인 가이드들 때문에 단체 관광객들 다 엉켜 있고, 중국인들은 양산 휘두르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구경을 한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 이건 특별히 계산하고 말고 할 필요가 없었어요. 아직 입장권 끊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 지경인데 내부에서 볼만한 곳이라고 하는 곳은 더 하면 더했지 덜 할 리는 없었으니까요. 이런 데에 돈을 쓰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굳이 안 간다고 해도 별 상관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안에는 그렇게 보고 싶던 에메랄드 불상이 있었어요. 그것만큼은 꼭 보고 싶었어요. 어떤 아수라장이라도 좋았어요. 너무나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왕궁 및 에메랄드 사원 입장료는 500바트였어요. 그리고 지나치게 짧은 하의는 입장 불가이며, 지나치게 짧은 하의를 입고 왔을 경우 천을 빌려서 아래에 두르고 다녀야한다는 입장 복장 규정이 있었어요. 이 옆에서 백인 남자와 같이 온 미국계 동양인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불만을 매우 강하게 토하고 있었어요. 자기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오고는 왜 억지로 아래에 두르는 천을 돈 내고 빌려야하냐고 짜증을 마구 내고 있었어요. 오히려 백인 남자가 여자를 달래고 있었어요. 입장하지도 않았는데 정말 별 광경 다 목격하고 있었어요.
왕궁 입구로 갔어요.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은 아예 따로 입장시키고 있었어요.
내부는 관광객들로 정신없었어요.
"일단 관광객들이 별로 없는 곳부터 봐야겠다."
관광객들이 엉켜 있는 곳에서 일단 비켜섰어요.
이쪽은 단체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는 곳이 아니어서인지 매우 한적했어요.
"하...저기를 또 기어들어가야하네."
입구에서 시작된 아수라장과 달리 이쪽은 매우 조용했어요. 분명 같은 왕궁 내부인데 전혀 다른 세계 같았어요.
연어.
알래스카의 연어는 산란기가 되면 거친 물살을 힘차게 거슬러 올라갑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나오는 그 말투로 딱 생각났어요. 저쪽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거센 물결. 저 물결 속에 휩쓸리는 순간 나는 한 마리 연어가 된다. 저 조류를 따라 쭉 간다면 제대로 보지 못할 것이고, 저 조류에 반항하는 순간 거센 조류를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진짜 연어가 얼마나 산란을 위해 고생하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저곳. 저기에 연어 잡아먹는 불곰이 없어서 다행이야. 썩은 물 위에 부유물이 떠다디듯 양산들이 보였어요. 그래. 저것은 3급수. 장구벌레 잔뜩 사는 3급수.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지고 저 인파 속으로 들어가기로 하고 일단 눈 앞에 있는 앙코르와트 모형부터 살펴보았어요.
캄보디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앙코르와트. 아마 캄보디아보다 앙코르와트가 더 유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유적.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다녀와서 마치 다녀온 곳 같이 느껴지는 곳. 태국에서는 앙코르와트도 자기들 역사라고 주장한다고 해요. 당연히 캄보디아는 격렬히 반발하구요. 다행이라면 태국이 무력 점령을 시도하지 않고 있고, 캄보디아도 태국의 이런 주장에 반발할 만큼의 국력이 없어서 그냥 현재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고 해요. 정확히는 앙코르와트가 아니라 앙코르와트에서 멀리 떨어진 쁘레아 비히어 사원에 대해 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요. 이게 와전되어서 태국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영유권까지 주장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구요. 단, 태국이 자신들의 역사를 역사왜곡에 가까울 정도로 미화하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어왔는데, 그 대상 중 하나가 앙코르와트라고 해요. 태국이 동남아시아 중심국가가 된 것은 18세기부터의 일이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동남아시아 패권국가 '태국'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상황은 1782년 수립된 랏따나꼬씬 왕조부터이죠.
이쪽의 평화도 곧 사라졌어요. 중국인들이 하나 둘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에구. 다시 저 인파 속으로 들어가야."
프라씨 라따나 쩨디 사진을 찍고 다시 인파 속을 향해 걸어갔어요.
쁘라쌋 프라 텝 비돈을 향해 걸어갔어요.
"아이구, 백인들도 별 수 없구만!"
인파 속에 들어가자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어요. 중국인들 물량에 치여서 백인들이 정신을 잃은 듯 쓸려다니고 있었어요. 다른 관광지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장면. 이기주의로 비쳐질 정도로 자기 중심적으로 행동하는 백인들도 중국인 물량에는 별 수 없었어요. 지금껏 다녀본 관광지에서 보지 못한 모습이었어요. 진짜 물량 앞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이 모습을 바라보며 흥선대원군이 빙의되기 시작했어요. 내양우외한환. '내우외환' 內憂外患 이라는 한자숙어가 있어요. 내양우외한환은 內洋憂外漢患. 안은 서양인으로 시끄럽고 밖은 중국인으로 시끄럽다. 제가 만든 말이에요. 이 말이 저의 태국 여행 전체적 감상이에요. 하여간 중국인들 물량에 밀려 아무 것도 못 하는 서양인 관광객들의 모습은 태국 여행 전체적인 인상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상당히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었어요.
드디어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에메랄드 불상이 있는 곳까지 왔어요. 비록 옥으로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좋았어요.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것을 보는 순간이었어요.
절당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 절당 앞은 당연히 사람들이 바글대고 있었어요. 신발을 벗고 에메랄드 불상을 보기 위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와! 진짜 굉장하구나!"
그렇게 큰 불상은 아니었지만, 이게 왜 이렇게 귀중한 보물로 모셔지고 있는지 확 와닿았어요. 어떻게 보면 이것의 크기가 절묘해서 더더욱 귀중한 보물로 모셔지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이 불상이 66cm 라고 하는데, 만약 1m 넘는 크기였다면 오히려 덜 신비로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5세기에 란나 양식으로 만들어진 불상이라고 하는데, 그것까지 와닿지는 않았어요. 불교 미술에는 너무나 무지해서 그것까지 감상할 능력이 없었거든요. 그저 보면서 그렇게 보고 싶었다는 것을 보았다는 감동, 그리고 진짜 신비로워보인다는 느낌 뿐이었어요.
절당 내부에도 당연히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어요. 이 안에 있는 중국인은 전혀 다른 중국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어요. 얌전히 절하고 기도드리는 중국인들. 그리고 뒤에 서서 절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국인들. 법당 안에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시끄럽지 않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어요. 확실히 불교 문화권이라 그런지 불당 안에서만큼은 매우 점잖고 예의바랐어요. 밖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달리 특별히 서로 밀치고 끼어들고 하는 상황은 없었어요. 밀치고 끼어드는 일이 발생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건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곳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수준이었어요. 이 또한 상당히 큰 인상을 주는 모습이었어요.
에메랄드 불상에 절을 드리고 밖으로 나왔어요.
법당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 경고 표지판에 정확히 에메랄드 불상을 찍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없었고, 법당 내부에서 촬영을 금지한다는 말만 있었어요. 법당 밖에서 법당 정면으로 사진을 찍으면 에메랄드 불상이 찍혀요. 줌렌즈로 당겨찍는다면 에메랄드 불상을 충분히 찍을 수 있었어요. 단지 법당 내부에서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것인지 에메랄드 불상 자체를 찍지 말라는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원래는 에메랄드 불상 자체를 사진으로 찍으면 안 되지만, 건물 밖에서 찍는 것에 대해서는 그냥 크게 신경 안 쓰는 것 같았어요.
잠시 쉬며 벽화를 구경하다가 뒷편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가 보았어요.
"어쨌든 에메랄드 불상 봤다."
다시 인파 속으로 들어갔어요. 태국에 대한 공부가 크게 부족한 것도 있었고, 느긋하게 현장에서 표지판에 있는 설명 읽어가며 돌아다닐 상황도 아니었어요. 그저 남은 부분은 보면서 '화려하다' 라고 생각할 뿐이었어요. 라마1세가 수도를 톤부리에서 방콕으로 옮긴 1785년부터 왓 프라깨우 건설이 시작되었고, 짜끄리 마하 쁘라쌋이 서양 건축과 태국 건축의 만남이라는 것 등을 느낄 수도, 알 수도 없었어요. 그냥 죄다 '아름답다', '화려하다', '신기하다' 뿐이었어요. 현재 왕이 거주하지 않는 왕궁이라 해도 왕궁이었고, 매우 중요한 곳이다보니 관람경로는 딱 정해져 있었어요. 그 안에서 모든 관광객들이 돌아다니다보니 한가하게 설명을 읽고 찾아볼 여유가 전혀 없었어요.
드디어 출구가 코앞이었어요.
왕궁 출구쪽 구석의 군사박물관에는 사람들이 정말로 거의 없었어요.
출구를 나왔어요.
아까 처음 찍었던 그 풍경을 다시 찍었어요. 이제 문 닫을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인지 이쪽에서 사진을 찍는 단체관광객들이 보이지 않았어요.
불교의 나라 태국답게 스님들이 안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여전히 길은 양산을 쓴 중국인들이 뒤덮고 있었어요.
왕궁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쪽에 있는 시장으로 가는데 양산을 쓴 중국인 무리가 길을 다 막고 걸어가고 있었어요. 일렬 횡대로 늘어서서 제대로 길을 막고 있었고, 이들을 제치고 갈 방법도 마땅찮았어요. 아예 사거리 횡단보도가 있는 길 끝까지 차도로 나가서 걸어가지 않는 이상 이들 뒤를 졸졸 쫓아가야 하는데, 이들이 느린 속도로 곱게 가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끼리 장난치며 펼쳐진 양산 휘저어대고 사진찍겠다고 멈추어서고 하는 통에 제대로 걸어갈 수가 없었어요. 사진찍겠다고 멈추고 장난치는 것까지는 괜찮았어요. 하지만 양산을 우산처럼 딱 세워서 불규칙하게 휘두르며 걷는 것은 정말로 신경쓰였어요. 이 양산 높이가 제 얼굴이 있는 높이였거든요. 몸에 툭툭 부딪히는 거야 그러려니 하겠지만, 양산의 철사로 된 살이 얼굴 바로 앞에서 자꾸 얼쩡거리는 것은 웃으며 넘어갈 일이 아니었어요. 결국 짜증이 폭발해서 건성으로 '쏘리' 외치며 손으로 양산을 쳐버리며 눈 앞의 중국인들을 전부 제치고 갔어요.
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목이 말라서 물부터 사서 마셨어요. 시계를 보니 3시 30분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한 시간 반 동안 왕궁을 구경한 셈이었어요.
시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이 제단이었어요. 그 외에는 특별히 인상적인 것이 없었어요. 그냥 중국인을 위한 시장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이 보인다는 것 뿐.
"쯧쯔쯔...여기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에게 먹혀버렸구나."
기념품 판매대를 보다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조각이야 태국에 화교들도 많이 살고 있으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마오쩌둥 조각은 대놓고 딱 중국인 관광객을 노리고 판매하고 있는 것이었어요. 씁쓸함이 느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