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크 언어들은 과거 모두 아랍 문자를 차용해서 사용하고 있었어요. 아제르바이잔어 역시 예외가 아니었지요.
참고로 이 글에서 사용된 이미지 대부분은 출처가 http://www.omniglot.com/writing/azeri.htm 랍니다.
출처 : http://www.omniglot.com/writing/azeri.htm
아랍 문자를 차용한 아제르바이잔어 문자는 현재 이란에서 계속 사용되고 있어요. 참고로 아제리인은 아제르바이잔보다 이란 북부에 더 많이 거주하고 있답니다. 이란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의 중심지는 타브리즈랍니다.
이란 거주 아제리인들을 위한 아제르바이잔어 교과서는 이렇게 지금도 아랍 문자를 차용해 만든 아제르바이잔어 문자를 사용하고 있지요. 저 지문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어를 알고 아랍 문자를 안다면 읽을 수는 있어요.
레닌이 소비에트 혁명으로 소련을 건국한 후, 아제르바이잔을 무력 점령하며 아제르바이잔은 소련의 한 구성국가가 되었어요.
레닌은 소련에 편입된 튀르크 민족들에게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고 발전시킬 권리를 주었으며, 문자개혁을 권유했어요. 사실 아랍 문자는 튀르크 언어를 표기하기에는 썩 잘 맞는 글자도 아니었을 뿐더러, 대부분의 튀르크 민족이 사용하던 아랍 문자 체계는 튀르크 언어를 표기하기에 매우 부적합했어요.
이 내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먼저 아랍 문자에 있는 자음과 튀르크 문자에 있는 자음이 100% 일치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튀르크 언어들에서 실제로는 같은 발음이지만 어원을 표기하기 위해 쓸 데 없이 사용하는 문자들이 있었어요. (이는 현재 이란어의 문자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위의 표에서 아랍 문자는 무시하시고 발음 표시만 보시면, s, z 는 세 개 씩이나 있고, 자음 v 와 모음 u, y 는 합쳐져 있어요.
게다가 기본적으로 모음 표시를 안 하는 아랍어의 아랍 문자 체계를 그대로 들여와서 더욱 문제였어요. 아랍어에서 아랍 문자를 사용하며 모음을 표기하지 않는 것은 그래도 아랍어의 특성상 그럭저럭 읽을 수 있는데, 튀르크 언어들은 당장 아랍어처럼 3모음 체계도 아닐 뿐더러, 문법적으로 아예 달랐기 때문에 모음표시를 해주지 않으면 읽기가 매우 어려웠어요. 한국어에서 모음을 죄다 쓰지 않고 오직 자음만 표기했을 때 나타날 모습을 떠올리시면 되요. 아랍어에서 모음을 안 적어주어도 문제가 크지 않은 이유는 먼저 아랍어는 3모음 체계라 선택의 폭 자체가 좁을 뿐더러, 아랍어는 자음으로 이루어진 어근을 가지고 파생시켜나가며 단어를 만들어가는 언어이기 때문에 파생형에 맞추어서 읽을 수가 있어요. 하지만 튀르크 언어들은 3모음보다 훨씬 많은 모음을 가지고 있을 뿐더러, 자음으로 이루어진 어근을 가지고 파생시켜나가며 단어를 만들어가는 체계를 가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모음을 적지 않는 아랍 문자 사용은 전혀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었죠. 당연히 이런 문자 체계는 높은 문맹률에 엄청나게 이바지하고 있었구요.
레닌은 문자 개혁을 권하기는 했지만, 러시아어의 문자인 키릴 문자로 문자를 바꿀 것을 권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라틴 문자로 문자를 바꿀 것을 권했어요. 이는 당시 소련 지배층 사이에 만연해 있던 '러시아 민족주의의 소련화'를 경계하던 레닌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었어요.
소비에트 혁명 이후, 소련에서는 당연히 '소련화'가 당면과제였어요. 경제는 마르크스주의를 따른다 하고, 정치는 소수의 직업적 혁명가들로 이루어진 혁명조직이 혁명을 선도해 나아가야 한다는 레닌의 혁명전위당 이론에 따른다 하지만, 언어,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 마땅히 기준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었어요. 이 당시 상당수의 소련 지배층 상당수가 언어, 문화에서의 소련화의 기준은 가장 발전된 러시아에 맞추어 러시아화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었지만, 레닌은 이를 러시아 제국주의로 간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초기 문자개혁 당시 라틴 문자로의 개혁을 권장한 것이었지요.
1922년, 튀르크 언어 중 최초로 아제르바이잔어가 라틴 문자로 문자개혁을 단행했어요.
몇 개 현재 아제르바이잔어와 차이가 나는 글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현행 문자와 비슷한 편이랍니다.
그리고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터키의 문자개혁은 매우 잘 알려져 있어요. 이것은 학창시절 세계사 시간에도 배우는 내용이지요. 하지만 이 터키의 터키어 문자개혁보다 아제르바이잔의 문자개혁이 훨씬 빠르답니다. 터키까지 포함해도 아제르바이잔의 라틴 문자로의 개혁이 튀르크 언어들 중 문자개혁 중에서는 최초에요.
이후, 1926년부터 이 라틴 문자에 대한 수정 논의가 시작되었고, 1933년에 이 라틴 문자를 다시 수정했어요.
1933년 버전은 1922년 버전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차이가 몇 개 있어요. 먼저 원래는 g가 오늘날 ğ 발음에 해당하는 문자였는데, 이게 오늘날 버전과 같은 발음을 나타내는 글자로 바뀌었다는 것이지요. q-k 도 서로 표현하는 발음이 바뀌었어요. 또한 영어 sh 발음에 해당하는 발음을 나타내는 글자가 키릴 알파벳 з 에서 ş 로 바뀐 점도 주목할 만 하지요. 두 개가 서로 바뀐 것이 두 쌍이나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끄는 점이에요.
ng 를 표현하는 문자는 1938년에 폐지되었어요.
하지만 레닌 사후, 스탈린 집권기였던 1939년, 아제르바이잔어는 강제적으로 키릴 문자로 문자개혁을 당했어요.
이때 라틴 문자에서 키릴 문자로 문자개혁된 이유는 스탈린이 터키와 소련 내의 튀르크 민족의 단결을 크게 우려했기 때문이었어요. 아제르바이잔 바쿠 유전은 이 당시 소련의 생명줄이었고, 아제르바이잔에서 튀르크 민족이 범튀르크주의에 동조해 봉기를 일으킨다면 그 자체가 소련에게 막대한 타격이었기 때문에 스탈린은 터키와의 단절을 위해 소련 내의 모든 튀르크 언어에 대해 키릴 문자로의 문자 개혁을 단행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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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키릴 문자는 1958년에 다시 한 번 개혁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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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30일, 아제르바이잔은 소련에서의 독립을 선포했고, 동년 12월 25일, 문자개혁을 단행했어요. 이때 문자 개혁은 키릴 알파벳을 라틴 알파벳으로 돌려놓은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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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발표된 아제르바이잔의 라틴 알파벳은 터키의 라틴 알파벳과 거의 똑같아요. 발음면에서 두 언어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미세하게 다르기는 하지만, 터키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일단 큰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알파벳에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ä 때문이었어요. a 위에 점을 두 개 찍는 알파벳인데, 문제는 이 알파벳이 아제르바이잔어에서 너무나 많이 쓰인다는 것이었어요. 더욱이 아제르바이잔은 키릴 알파벳을 썼던 지역이다보니 정자체를 선호하는 터키와 달리 필기체를 선호하는데, ä 는 점을 계속 찍어주어야하니 상당히 큰 불편을 주었어요.
ä 가 얼마나 많이 쓰이냐 하면, e 와 ä 가운데 ä 가 쓰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어려운 문법 설명 생략하고, 간단히 말하자면, 저 당시 알파벳을 가지고 아제르바이잔어를 쓸 때 e 와 ä 가 햇갈릴 경우, 죄다 ä 로 밀어주면 거의 다 맞출 정도에요.
이러다보니 ä 를 한 번에 쓸 수 있는 알파벳으로 바꾼 새로운 라틴 알파벳이 1992년 5월 16일에 공포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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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글자는 앞서 말한 ä 를 한 번에 쓸 수 있는 ə 로 바꾸었다는 점이에요. 이로써 아제르바이잔어를 쓸 때 글자 위에 점을 찍을 일은 '혁명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이 줄어들었어요. 참고로 ə 는 필기체로 쓸 때 좌우가 뒤집힌 6 쓰듯이 쓴답니다.
이후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라틴 문자 정착에 힘썼고, 심지어는 정부가 돈까지 지원해주면서 키릴 문자로 된 간판을 싹 다 바꾸어버렸기 때문에 키릴 문자로 적힌 아제르바이잔어는 정말 보기 어려워졌어요. 소련 시절에 출간된 책이나 간혹 거리게 남아 있는 오래된 기념패 정도에서나 발견할 수 있게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