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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38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10화

시위가 진압된 지 며칠 지났다. 모든 것이 조용하고 평온하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모두가 자기 할 것을 하며 산다. 나와 라키사, 이고도 바뀐 것이 없다. 학교에 내려진 폐교령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아침부터 서점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일상.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라면 이 일상이 너무나 다르게 보이겠지. 그러나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주변이 어수선하지 않아서 좋다고 해야 할까? 모두가 시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거리에는 경찰과 군인이 쫙 깔려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거리에 치안 유지를 위한 병력이 깔려 있는 것과 날씨를 제외하면 바뀐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치롤라 병문안 갈 건데 너희도 갈래?" "치롤라요?" 이고가 갑자..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09화

확실히 시위가 크게 발생하니 책 수거할 일이 확 줄어들었다. 책을 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 시위에 신경이 팔려 있어서 그런 것일까? 시위가 시작된 이후부터 책을 빌려가는 사람이 없다. 책을 사가는 사람이야 원래 별로 없었고 대부분 책을 빌려가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나마도 없으니 서점에 일이 정말 없다. 가만히 앉아있기 민망할 정도다. 일이 너무 없어서 이렇게 있다가 돈을 받아가도 되나 싶을 정도다. 이런 날이 계속 있으면 좋을 것이 없다. 그래도 가끔 책 수거하러 돌아다니기도 하고 다른 일도 있고 해야 이렇게 쉬는 날이 있을 때 운 좋은 날이라고 하지, 대놓고 계속 일이 아무 것도 없으니 신경이 안 쓰일 래야 안 쓰일 수 없다. 지금 정도라면 이고가 나와 라키사 모두 해고하고 혼자 서점을 보아도 충분하..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08화

학교가 폐교되었으니 아침에 학교에 가야 할 필요가 없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우물가에 가서 세수를 하고 돌아왔다. 정상적인 나날이었다면 지금쯤 학교에 가고 있어야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래야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학교에 가봐야 시위하고 있는 애들 뿐이겠지. 지금은 이른 아침이니 시위하는 애들도 얼마 없으려나? 수건을 벽에 걸어놓고 빗자루를 들고 서점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어떻게 하지?' 빗자루로 쓸고 있는 이 먼지와 함께 이 고민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빗자루로 먼지를 쓸면 먼지만 쓸려나갈 뿐이다. 고민은 그대로 있다. 먼지가 말한다. '나를 치워봐야 내일 새로운 먼지가 쌓일 거야.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먼지가 아니야. 원래 있던 먼지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일 뿐. 네 고민도 마찬가지. 무슨 일이 있어..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07화

라키사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서 이 자리를 최대한 빨리 떠야 한다. 여기는 위험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위험한 거다. 위험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타슈갈, 이거 꿈이지?" "빨리 가자!" 라키사의 손을 꽉 움켜쥐고 서점을 향해 달렸다. 달려가다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학교에서 계속 검은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아오르고 있다. 그렇게 한참 달렸다. 숨이 가빠서 더 달리지 못하겠다. 자리에 멈추어섰다. 라키사가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상황이 끝나지 않아. 분명 꿈이라면 이렇게 숨이 가쁘고 괴롭지 않겠지. 이것은 현실이다. 받아들일 수 없지만 현실이다. 머리 속이 하얗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괜찮아?" 이제야 내가 라키사의 손을 계속 쥐고 있다는 것을 알았..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06화

벌써 개학한지 일주일이다. 학교는 하루가 다르게 시끄러워져갔다. 개학한 다음날부터 학생들끼리 편을 갈라 언쟁을 하기 시작했고, 점점 양쪽에 가담하는 학생들이 늘어만 갔다. 책을 다 읽은 학생들이 늘어나서 이런 현상이 더욱 격해지는 것일 거다. 이제는 이 언쟁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이 없을 지경이다. 내가 들어가는 강의실에서 그 언쟁에 참여하지 않는 학생은 오직 나와 라키사 뿐이다. 나도 그 언쟁에 가담하고 싶다. 하지만 개학한 다음날 서점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라키사의 말을 들은 후 아무 말 하지 않기로 했다. 라키사 말대로 어느 날 갑자기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 해? '오늘도 학교 가면 또 애들 언쟁하는 꼴 봐야겠네. 그나저나 라키사는 엄청 속상해하는 거 아냐?' 나야 지난 학기 꼴등으로 시험을 통과했다. ..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04화

계단 위에 한 여자가 있다.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며 내게 오라고 한다. 계단을 한 걸음 올라갔다. 여자는 한 걸음 뒷걸음질쳤다. "왜 뒤로 가?" "나는 너를 향해서 한 걸음 다가간 거야." "그래?" 다시 계단을 한 걸음 걸어올라갔다. 이번에는 여자가 세 걸음 뒷걸음질치며 올라갔다. "너 왜 계단을 올라가?" "나는 지금 너한테 가고 있는 거야." "그게 뭐 나한테 오고 있는 거야?" "너한테 가고 있는 거라니까!" 여자는 나에게서 멀어졌는데 오히려 나와 가까워졌다고 소리쳤다. "그러면 거기 가만히 있어! 내가 너를 향해서 달려갈께!" "응! 빨리 와!"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여자는 분명히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여자와의 거리가 전혀 좁혀지지 않는다. 나와 여자 사이의 계단 난간 수가 하나도 줄어들지 ..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1장 08화

"나 인쇄소 다녀온다." "책 주문하게?" "어. 가서 이야기해봐야지. 지금 들고 올 수 있는 것은 바로 들고오구." 이고는 수레와 지게 앞에서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왜?" "수레를 끌고갈까, 지게를 짊어지고 갈까 고민중이다." "설마 오늘 책 많이 받아올까? 급한 거 있어?" "아니." "그러면 지게 짊어지고 가. 바로 나갈만한 책만 몇 권 가져오고 나머지는 나중에 한 번에 서점으로 보내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럴까..."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고민하네. 나 같으면 무조건 지게 짊어지고 간다. 아직 서점에 책이 부족하지 않다. 사람들이 와서 찾는 책이 없는 경우도 별로 없고. 어떤 책이 새로 들어올 지는 잘 모르겠지만 급한 책은 거의 없을 거다. 최소한 내가 근무하고 있는 시간에 서점에 아예 ..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1장 07화

"이고, 뭐해?" "일한다." "아까 하던 거 계속 하고 있어?" "어." 그러고보니 아침에 학교 갈 때 이고가 '오늘은 머리아픈 날이네' 라고 중얼거렸었다. "무슨 일이길래 머리 아파?" "그동안 밀린 도서 구입 목록 쫙 작성하려구." "그거 일 많아?" "어. 한동안 새로 구입하지 않아서. 팔린 책도 꽤 있고 새로 나온 책도 많아서 그것들 참고하면서 정리 한 번 해야 해." 아침에 이렇게 간단히 대화를 하고 학교에 갔다 돌아왔다. 이고는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종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아침에 머리아픈 날이라고 하더니 진짜 머리가 많이 아픈가 보다. 이고 표정을 살펴보았다. 표정이 썩 밝지 않다. 책상 위에는 지금까지의 대출 목록, 판매 목록, 도서 카드가 쫙 펼쳐져 있다. 저거 지금 잘못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