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삼대악산 (2010)2011. 11. 17. 11:51

버스는 속초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어요. 11시가 조금 넘었어요. 숙소는 찜질방. 찜질방을 미리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설마 하나도 없겠냐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속초인데 찜질방이 몇 개는 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과 함께 무작정 걷기 시작했어요. 버스 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걷다 길을 건너 계속 걸었어요. 등대공원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등대공원에 가서 속초 야경을 한 번 보기로 했어요. 전에 와서 길이 기억날 줄 알았지만 길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고 계속 걷다보니 큰 호수가 나타났어요.


우리 왠지 길 잘못 가는 거 같은데?”

그러게. 어떻게 된 게 찜질방이 하나도 안 보이냐?”


버스 터미널에서 가져온 지도를 펼쳐보며 현재 위치를 찾아보았어요. 왠지 상당히 잘못 가고 있는 것 같았어요. 마침 우리 쪽으로 아주머니들께서 오고 계셨어요.


실례하지만 말씀 좀 여쭈어볼 수 있을까요?”

.”

이 근처에 찜질방 있나요?”

찜질방저기 보이는 건물에 찜질방 있어요.”


아주머니께 찜질방을 여쭈어 보았는데 찜질방 위치를 알려주시고 속초를 구경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셨어요. 멀리 보이는 불빛들이 오징어잡이 어선 불빛인데 아침에 항구로 가서 오징어를 많이 사지 말고 몇 마리만 사서 회로 먹으라고 알려주셨고, 이것 저것 알려주시다가 잘 곳이 마땅치 않으면 자기 집에서 하룻밤 머물고 가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차마 신세질 수는 없어서 괜찮다고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 드린 후 찜질방으로 갔어요.


어둡다.

멀리서 봐도 어둡다.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곳은 24시간 영업하는 사우나였어요. 하지만 불은 꺼져 있었어요. 불길한 예감. 혹시나는 역시나 였어요. 장사를 하는데 불을 꺼놓을 리가 없죠.


그래도 설악산 때문인지 24시간 영업 사우나가 주변에 많네.”


주변에 많았어요. 하지만 문제는 전부 컴컴하다는 것. 불을 다 꺼놓았어요. 불 꺼진 24시간 영업 사우나 여러 곳을 지나가다가 조그만 해수욕장 앞에 우리는 멈추어 섰어요.


바비큐 먹자.”


뜨뜻한 바닷바람. 멀리 바다에 뜬 오징어잡이 어선의 불빛. 그리고 흐린 하늘과 그 사이로 보이는 달님. 바위에 걸터앉아 바비큐를 뜯어먹기 시작했어요.


이야, 여기 장난 아니네. 저 부표 봐. 해안가에서 코앞에 붙어 있는데?”

진짜네?”


백사장에서 10미터도 안 되는 곳에 부표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어요. 저거 넘어가면 물이 매우 깊다는 소리. 해수욕장이라고 하는 곳인데 10미터 밖은 꼬르륵하는 지점! 동해 바다가 깊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어요.


처음에는 바비큐가 참 맛있었어요. 하지만 양념이 너무 진한데다 식을 대로 식어서 질겼어요. 육포를 뜯어먹는지 바비큐를 뜯어먹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어요. 육포야 몇 조각 주워먹고 말면 되는데 이것은 양이 너무 많아서 먹어도 먹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도 어쨌든 속초시 어딘가에 있는 찜질방을 찾아 들어가면 바로 자고 다음날 등산. 어떻게든 영양분을 보충해야 했어요. 처음에는 나름 맛있게 먹었지만 딱 세 입 맛있게 먹고 나머지는 그냥 우겨넣었어요.


다 먹었다. 진짜 다 먹기 힘드네.”

다 먹었냐? 넌 진짜 괴물이다.”


친구의 경악. 친구는 몇 입 먹다 말고 도저히 못 먹겠다고 했어요. 쓰레기 봉지에 일말의 후회 없이 먹다 남은 바비큐를 집어넣는 친구. 웬만하면 제가 먹어치우겠다고 했겠지만 이 바비큐만큼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냥 얌전히 족발 살 걸.”

그러니까. 족발 샀으면 지금 우리 둘이 엄청 배부르고 맛있게 먹었을텐데.”


하지만 이미 끝난 일. 족발 살 돈으로 바비큐를 선택한 것은 우리의 자유로운 선택이었어요. 그 누구도 강요한 적 없어요. 단지 우리의 선택이 처절히 실패했을 뿐. 비싼 돈 내고 저는 우겨넣고 친구는 버렸어요.


바비큐로 기분전환하고 속도 채우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어요. 방향은 완전 틀렸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어요. 여관에 들어간다면 실패에요. 여관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 경비에 거대한 구멍이 발생해요. 이것만은 피해야 하는데 찜질방은 없고 24시간 영업 사우나는 전부 문을 닫아버렸어요.


터미널로 돌아가자.”


둘 다 방향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파악했을 때에는 이미 자정을 넘어버렸을 때였어요. 나름 일찍 도착했으니 푹 자고 다음날 등산할 수 있겠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제 오늘 등산을 해야 하고 잠을 청할 곳은 보이지 않았어요. 진지하게 노숙까지 생각했어요. 등산만 아니었다면 노숙을 했을 거에요. 하지만 호락호락한 산행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우리 둘 다 대충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차마 노숙은 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터미널로 돌아가는 길. 설악산 대청봉 등산을 위한 준비운동이라고 스스로를 달랬어요. 하지만 후끈후끈한 바닷바람은 잠을 자지 못하고 등산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한 생각을 계속 끄집어냈어요.


우리 꽤 멀리 걸어왔네?”

진짜 덥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좋은 소재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둘이 한 이야기는 군대 이야기와 고등학생 시절 이야기. 친구와는 고3때 같은 반을 했어요. 그래서 함께 고3때를 회상하며 걸었어요. 그나마 고3때 재미있게 보내서 여러 이야기를 하고 웃으며 걸을 수 있었어요. 이런 저런 잡담을 하며 걷다보니 터미널 앞까지 도착했어요.


실례하지만 말씀 좀 여쭈어볼 수 있을까요?”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찜질방 위치를 여쭈어 보았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처음에 24시간 영업 사우나를 추천해 주셨어요. 그러나 우리가 그곳을 가 보았는데 문을 닫았더라고 이야기를 하자 속초 목욕탕은 셋째 주 일요일 새벽에는 대체적으로 쉰다고 알려주셨어요. 우리가 간 날은 정확히 셋째 주 일요일. 딱 걸린 것이었어요.


걸어서 돌아다녔다는 것은 여기에서 택시타고 가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아주머니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방항을 정확히 반대로 잡고 걸었던 것이었어요. 버스터미널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다가 시내로 들어가는 길로 쭉 가다 보면 찜질방이 하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버스터미널에서 나와 왼쪽으로 갔어요. 오른쪽으로 가면 설악산 설악동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쪽으로 가야 찜질방이 있다는 것은 몰랐어요.


고맙습니다.”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걸었어요.

우리 오늘 밤에 걸어서 속초 시내 구경 다 하네. 준비운동도 다 하구.”

그러게 말이야.”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둘 다 운동부족에 저질 체력. 오히려 많이 걸어서 준비운동을 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걸었어요.


찜질방이 보인다!”


드디어 찜질방이 보였어요. 찜질방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사먹고 찜질방에 들어가려는데


입구가 안 보여!


아무리 찾아보아도 입구가 보이지 않았어요. 찜질방은 찾았는데 입구를 못 찾아서 못 들어가는 황당한 상황. 일단 찾기는 찾았기 때문에 입구를 찾으러 주변을 돌아다녔어요.



사진이나 찍자!”

속초에 와서 겨우 찜질방을 찾은 감동적인 순간. 사진을 남겨 기념하기로 했어요.



새벽 1시가 넘었어요. 항구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항구 앞 식당을 비추는 가로등이 유난히 외로워 보였어요. 사진을 찍고 주변을 한 번 훑어보았어요. 입구가 보였어요.


들어가자마자 너무 더워서 냉탕에 들어갔어요. 해수사우나라고 했는데 물이 정말 짰어요. 가만히 있으면 몸이 자꾸 둥둥 떴어요.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놀다가 2시 넘어서야 겨우 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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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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