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

일본어 고어 및 오키나와 방언 공부하려고 했었던 이야기

좀좀이 2013. 3.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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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것은 '실패한 이야기'에요. 당연히 일본어 고어 및 오키나와 방언 몰라요.


일본어는 고1때 독학으로 공부했었어요. 영어를 무지 싫어해서 잘 모르니 영어 시간은 매번 생지옥이었고, 학교 공부도 흥미없었던 때였는데 제 짝이 일본어를 잘 하는 오타쿠였어요. 그래서 걔가 일본어 아는 게 신기해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는 일본어 교재도 지금처럼 많지도 않을 때였고, 가뜩이나 지방에 살아서 구할 수 있는 교재가 많지 않았어요. 인터넷 보급이 널리 되기도 전이라 일본 애니메이션 구운 CD를 만 원에 파는 가게가 있던 시절 이야기.


1년간은 참 열심히 했던 일본어. 그러나 정작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는 고2부터는 일본어 공부를 손떼었어요. 고2때부터는 일본어를 아예 공부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JLPT 2급을 혼자 공부하고 준비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때 교재라고는 사전처럼 나온 JLPT 2급 단어장과 설명도 없는 문제집 한 권 뿐. 그렇다고 집에 인터넷을 설치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노래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니 당연히 일본어 공부가 재미없을 수 밖에 없었어요.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사전처럼 생긴 단어장을 외우거나, 풀어봐야 소나기 퍼붓듯 틀리는 문제집 풀어보고 설명이 없어서 왜 틀렸는지도 모르고 다음 장 문제 풀다가 또 다 틀리고 왜 틀렸는지도 모르고 가면 갈 수록 푸는 게 아니라 그냥 다 찍어가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JLPT 취득을 목표로 잡자니 독학으로 청해를 준비하는 것은 애니나 일본 노래를 많이 듣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는데 이것들을 쉽게 접할 수 없었기 때문에 JLPT를 칠 수도 없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흘러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해 대학교 3학년이 되었어요. 이때 일본어는 퇴화에 퇴화를 거듭해 어디 가서 일본어 할 줄 안다고 할 수 없을 지경까지 떨어졌어요.


대학교 3학년 초.  고시원에 들어온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부엌에서 라면 하나 끓여먹으려는데 남자 한 명이 들어왔어요. 외모에서부터 느껴지는 뭔가 큰 이질감. 그 남자 인간은 냉장고에서 자기 반찬을 꺼내 밥그릇을 들고 젓가락으로 밥을 집어먹기 시작했어요.

 

저도 밥을 젓가락으로 먹을 때 종종 밥그릇을 들고 먹어요. 특히 잘 뭉치지 않는 밥은 한 젓가락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어 귀찮은 젓가락질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밥그릇을 들곤 해요. 제가 설거지를 안 한다면 당연히 숫가락으로 밥을 퍼먹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먹지만 혼자 제가 사용한 식기 설거지를 다 해야 하는 상황. 하나라도 설거지할 것을 줄이려는 눈물나는 노력으로 인해 저 역시 고시원에서 거의 항상 젓가락으로만 밥을 먹었어요. 그래서 밥공기를 들고 젓가락으로 밥을 집어먹는 것 자체는 그다지 이상할 것이 없었어요.

 

하지만 외모와 패션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있었어요. 분명 한국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본인인가?'


일본인과 직접 대화를 주고받은 적은 거의 없지만 일본인이라면 적게 보지는 않았어요. 일단 고향에 일본인 관광객이 매우 많이 와서 일본인이라면 어려서부터 꽤 많이 봤어요. 학교 및 학교 근처에 일본인이 많았고, 가끔 놀러가는 명동 역시 일본인이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소 닭 보듯 지나치기를 몇 번. 용기를 내어 인사를 했어요.


"아...안뇽하세요."


어눌한 한국어 발음. 서로 할 말이 없었어요. 교과서 보면 안녕하세요 다음에 '어떻게 지내세요?'가 나오는데 그 인사 하기도 뻘쭘한 상황. 제가 먼저 말을 걸었으니 뭔가 말은 해야하는데 저도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일본인이세요?"


다짜고짜 국적 물어보기. 중국인이면 대략 낭패.


"예."

"소우데쓰까!"


깜짝 놀란 일본인. 제게 일본어를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코쿄세노 토키, 니홍고오 벤쿄시마시타."


다시 한 번 저의 저질 일본어가 뿜어져 나왔어요. 일본어 2단 콤보 작렬. 일본인은 제가 일본어를 구사하자 매우 반가워했어요.

 

하지만 일본어는 고등학교 1학년때만 공부했어요. 그나마도 독학으로 당시 JLPT 2급 준비 조금 하다 말았어요. 당연히 일본어로 유창하게 대화하기란 불가능. 인사를 나눈 후 한동안 '곤니치와'만 말하는 상태가 이어졌어요.

 

이러면 안 되겠다!


큰 결심을 했어요. 완벽을 추구하다가는 맨날 곤니치와만 말하다 끝날 것 같았어요. 다행히 일본인이 간단한 한국어는 할 줄 알았어요.

 

"코쿄와 도코데스까? 와타시노 코쿄와 제주도데쓰."


드디어 곤니치와 말고 다른 말을 했어요. 일본인은 제 말에 놀라며 자신의 고향을 이야기했어요. 일본어로 이야기하려 노력했지만 안 되는 부분은 그냥 한국어로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알게된 사실은 그 일본인의 할아버지께서는 오키나와 분이셨다는 것. 그래서 오키나와와 일본의 관계에 관심이 많고 기회가 닿는다면 제주도와 한국과의 관계, 그리고 일본과 오키나와의 관계를 비교해보고 싶어했다는 것이었어요.

 

"일본어와 오키나와 방언 많이 다르나요?"

"예, 많이 달라요."

 

이 시기 'NHK에 어서오세요'라는 만화를 너무 감명깊게 보았어요. 그래서 일본어 공부를 다시 하고는 싶었지만 예전에 공부했던 기억은 있는데 잊어버려서 다시 공부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짜증나 공부하지 않고 있었어요. 아무리 일본인이 같은 고시원에 살고 있어서 '일본인과 대화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목표를 세우고 일본어 교재를 펴도 짜증을 이겨낼 수 없었어요.

 

차라리 방언을 공부해봐?


어차피 표준 일본어는 한 번 공부해 보았어요. 그것을...그것도 예전에 했던 부분부터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복습부터 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방언은 공부해본 적이 없었어요. 일본어에서 아는 방언이라고는 '난또 유톤네?'라는 오사카 방언 한 마디. 그 말 한 마디 배워서 오사카에서 살다 온 애에게 말해 보았더니 기분이 확 상해 보였어요. 한국어 모르는 외국인이 한국어 한 마디 배웠다고 '캐쉐퀴야'라고 할 때 그 반응이었어요. 알고 보니 '뭐라 씨부리노?' 정도였어요.

 

그러던 차에 '오키나와 방언'과 관련된 정보가 저를 찾아온 것이었어요. 일단 고시원에서 사는 일본인의 '일본어와 오키나와 방언 많이 달라요'라는 말과 당시 즐겨 방문하던 '나오키넷'이라는 사이트에서 나오키씨의 오키나와 여행기를 통해 읽은 '오키나와 방언 모르겠어요'라는 내용. 이거라면 할 만 하겠는걸? 이제는 중학생도 JLPT 2급 따고 일본 애니를 자막 없이 보는 세상. 하지만 오키나와 방언이라면? 오사카 방언이야 일본 방송에서 잘 나오고 오사카에 한국인이 많이 살아서 아는 사람이 왠지 많을 것 같았어요. 그러나 오키나와 방언이라면?

 

이건 정말 없을 거다.

 

설마 오키나와 방언을 공부하는 놈이 있겠어? 오키나와 갈 돈이면 동남아도 갈 수 있는 현실. 오키나와에 우리나라 사람이 산다는 말도 못 들어봤어요. 오키나와 방언이라면 공부할 가치가 있겠어.

 

그러나 당연히 인터넷에 오키나와 방언 자료가 있을 리 없었어요. 이렇게 오키나와 방언 탐사는 시작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시간이 흘러...

 

대학교도 졸업했어요. 졸업 후 이것 저것 일도 하고 공부도 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졸업후 어찌어찌하다 서울에 사는 친구집에 잠시 함께 살기로 했어요. 서울에서 고시원에 다시 들어가기는 싫고 혼자 자취를 하자니 보증금이 문제여서 고민하던 차에 마침 친구가 혼자 살고 있어서 집세와 생활비를 반씩 내는 조건으로 친구집에 들어갔어요.

 

일본어를 전공한 친구. 그래서 친구에게 물어보았어요.


"너 오키나와 방언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지극히 정상적인 친구의 정상적인 반응.


"너희는 방언 같은 거는 안 배워?"

"응. 방언 같은 거는 안 배우고 고어는 배웠다. 진짜 어려워서 죽는 줄 알았어."

"고어? 일본어 고어?"

"응."

"그 책 지금 있어?"

"아니, 고향 집에 가져다 놓았는데? 어차피 필요 없는 책이어서."


일본어 고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어요.


"그 책 나중에 좀 가져다 줄 수 있어?"

"그건 왜? 표준 일본어나 공부해."


매우 정상적이고 건전한 반응이었어요. 사실 생각해보면 오키나와 방언이나 일본어 고어 공부보다는 표준 일본어 공부를 먼저 하는 게 맞아요. 제가 무슨 일본어를 끗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완전 저질 일본어 수준. 표준 일본어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데 방언이나 고어를 본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계산이자 잘못된 생각. 일본어 고어는 그냥 궁금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책을 가져다 달라고 조르지 않았어요.

 

"아...심심해."


심심해하는 친구.


"야, 일본어 고어 해봐."

"그걸 어떻게 하냐! 지금 일본어랑 완전 다르다니까."

"배웠대메. 한 번 해봐."


이렇게 친구 약올리기용으로 사용할 뿐 오키나와 방언도 일본어 고어도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고 덤비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이렇게 보내던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어요.


의외로 선선했던 여름, 친구가 대학을 졸업해 잠시 고향에 내려가 버렸거든요. 덕분에 한 달간 저 혼자 방에서 뒹굴어 다녔어요. 해가 지면 일어나 인터넷 좀 하다가 다시 잠을 자는 날의 반복. 심심하면 오키나와 방언 찾는 시도만 해 보았어요. 당연히 나올 리 없었어요.

 

"야, 선물!"


고향 갔다 돌아온 친구가 제게 책 한 권을 던져 주었어요.


"이거 뭐?"

"너 일본어 고어 공부하고 싶다고 했잖아. 너, 몇 쪽이나 보자."



친구가 고향 내려가 있는 동안 일본어 고어 책을 가져다달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친구가 알아서 선물이라고 가져온 것이었어요. 감동의 스콜.


"내 반드시 일본어 고어 마스터한다!"

 

뇌가 오그라들셰라...

 

기세좋게 일본어 고어 책을 펼쳤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일본어 고어는 우리나라 고어와는 비교할 수 없게 어렵다는 이야기를 몇 번 접하기는 했어요. 일본 전 국토가 홀라당 초토화된 적도 없고, 고유 문자를 쓴 역사도 꽤 길어서 고어 자료가 많이 남아있다 보니 고어 연구가 잘 되어 있고, 그 부작용(?)으로 학교에서 배우는 일본어 고어가 매우 어렵다는 말을 몇 번 들었었어요. 일단 선물로 받았고,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받자마자 몇 쪽 넘겨보다 바로 내린 결론은...

 

이거 일본어 맞냐?

 

솔직히 다르고 어렵다해도 이럴 줄은 몰랐어요. 무슨 같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였어요. 예를 들면 형용사. 현대 일본어에서 형용사는 '이'로 끝나지만 고어에서는 '시'로 끝났어요. 그리고 활용에서도 고어에서는 '쿠' 활용 형용사와 '시쿠' 활용 형용사로 나누어졌어요. 그리고 이와 더불어 '카리' 활용이라는 것도 있었구요. 거기에 음편이 있는데 연체형에 체언이나 조사가 붙을 때 나타나는 '이' 음편 (키->이), 연용형에 용언이나 조사 '테'가 붙을 때 나타나는 '우' 음편 (쿠->우), 그리고 '루'가 '응'으로 바뀌는 '응' 음편도 있었어요. 하여간 엄청나게 복잡했어요. 복잡한 건 둘째치고, 이게 일본어가 맞나 싶었어요.


"야, 고어 쓰기는 쓰냐?"

"광고 같은 데에서 쓰기는 써."


고어를 보며 친구의 충고가 맞다고 생각했어요. 고어는 표준 일본어를 충분히 잘 알고 표준 일본어 문법을 아주 잘 알고 있을 때에야 도전하는 영역이었어요.


일본어 고어를 직접 보고서는 친구에게 '일본어 고어 해 봐'라고 하는 짓은 그만두었어요. 그냥 보고서 '이건 일반인이 할 건 아니다'라고 생각했거든요. 고등학생때 우리나라 고어를 처음 보았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이 책은 몇 번 보려고 노력해보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제 눈에 안 보이게 다른 책들 속에 파뭍어 버렸어요. 보기만 해도 심란해질 거 같고 두통이 찾아올 것만 같았거든요.

 

그러나 오키나와 방언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어요.


"야, 이 미친 놈아, 그 시간에 차라리 일본어 공부하라구."


제가 계속 친구 옆에서 오키나와 방언 자료를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자 친구가 혀를 쯧쯧 찼어요. 그러나 친구가 진심 어린 충고를 할 수록 오히려 더욱 오기가 생겼어요. 처음에는 '얼마나 다르기에...'라는 가벼운 호기심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내가 반드시 인터넷에서 오키나와 방언 자료를 구해버리고 말겠어!'라는 오기의 영역으로 넘어갔어요. 오키나와벤으로도 찾아보고, 류쿠어로도 찾아보고, 하여간 별별 검색어를 다 만들어내어서 계속 검색을 했어요. 결국 친구도 포기. 제가 오키나와 방언을 찾든 뭘 하든 별로 신경쓰지 않았어요.

 

"야, 오키나와 방언 자료 구했다!"

"그냥 일본어 공부 하라니까..."


오키나와 방언 자료를 구했어요. 친구는 역시나 시큰둥.


"야, 야 양이 뭔지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야 양'은 오키나와 방언으로 '집이다'라는 말이에요. 家를 일본어에서는 '이에'라고 하는데 오키나와 방언에서는 '야'. 그리고 '~이다'라는 의미의 일본어 '다'는 오키나와 방언에서는 '양'. 다른 일본어 방언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그래도 표준 일본어를 조금 알아서 볼 만 했어요. 교재는 일본어로 되어 있었어요. '지금'은 일본어로 '이마' 이지만 오키나와 방언에서는 '츄'.


"야 야이빈이 뭔지 알아?"

"또 엉뚱한 짓 한다."


친구의 당연한 반응. '야이빈'은 일본어에서 '데스'에요. 우리말로는 '~입니다'라는 뜻. '야 야이빈'은 '집입니다'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오키나와 방언에는 오키나와 방언에서만 사용하는 일본어 가나의 변형된 글자가 몇 개 있어요. 오키나와 방언에서 나타나는 음운변화 특징 중 인상 깊었던 것은 표준 일본어의 '키'가 오키나와 방언에서 '치'로 가고, 표준 일본어의 '스'가 오키나와 방언에서는 '시'가 된다는 점이었어요. 그래서 손님인 '캬쿠'는 오키나와 방언에서 '챠쿠'. 물인 '미즈'는 오키나와 방언에서 '미지'.

 

하지만 오키나와 방언을 공부하며 느낀 것은 이것 공부할 시간에 일단 표준 일본어부터 공부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겨우 구한 오키나와 방언 교재였지만 교재가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결국 일본어 사전을 찾아가며 보아야 했거든요. 즉, 교재가 일본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재를 보려면 먼저 일본어를 잘 알아야 했어요.

 

오키나와 방언의 세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본 두 문장이에요.


우누 스무쩨- 타카상. (그 책은 비싸다)

츄-야 아치상. (오늘은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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