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

잡지 '지나가는 마을' 이야기

좀좀이 2013. 3. 4. 09:23
728x90

2010년 여름 어느 날. 선선해지면 일어나 할 것 하다가 월드컵 경기 전부 보고 학원 가서 수업하고 돌아와서 집에 와서 잠을 청하던 평범한 어느 날이었다.


고향에서 임용고사 준비를 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처음 대화는 그냥 평범했다. 굳이 특별한 것을 느낄 수 없는 대화. 그런데 어쩌다보니 대화가 창작으로 나아갔고,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다.


당시 나는 글을 쓰지 않은지 매우 오래되었다. 마지막으로 글을 써본 것이 대학교 4학년때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수업 과제물로 소설을 써서 제출한 것이었다. 그것도 몇 년 되었지? 그 후로 일하며 느낀 것도 글로 써 보려고 하고, 여행기도 써 보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조금 쓰다가 던져버리곤 했다. 그리고 이 즈음에는 그나마도 아예 안 쓰고 있었다.


"우리 잡지 만들어볼래?"

"무슨 잡지야? 그거 인쇄하면 돈도 안 남을 텐데."


그때 친구가 솔깃한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다. e-book으로 잡지를 만들어 팔면 인쇄에 들어가는 돈이 안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e-book이 뭔지도 몰랐다. 그냥 pdf 파일로 만들어 뿌리는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e-book으로 만들든 pdf로 만들든 생각해보니 인쇄비용이 안 들어간다는 장점이 있었다. 우리가 출판사를 찾아가 출판해달라고 할 필요도 없었고, 판매도 우리가 알아서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과연 내 20대를 아무 것도 안 남기고 그냥 끝낼 것인가?


아마 친구가 장난으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솔직히 이때 일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이야기가 어떻게 발전해서 잡지 이야기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친구가 장난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구가 e-book으로 출판하면 될 거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머리에 번개가 번쩍였다는 것부터 기억날 뿐이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는 예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이 욕구는 그저 욕구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해야겠다'는 의지를 일으키는 것이 결여된 욕구이다보니 그냥 욕구로만 머물고 있었다. 지금껏 글을 쓰다가 중단한 것들 (그 가운데 대부분이 이 블로그를 시작하고 연재를 하면서야 끝이 났다)을 다시 쓴다면 글 갯수는 충분히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언젠가 써야지 써야지 하기만 하고 미루고만 있었던 것들이었는데 잡지를 만들어 글을 기고하기 시작하면 왠지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만약 잡지가 팔린다면 돈이 들어온다!


그나마 대학교 다닐 때에는 이래 저래 일기처럼 남겨놓은 기록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특별히 남겨놓은 기록이 없었다. 글로 써 놓은 것도, 사진으로 남겨 놓은 것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친구와 잡지를 만든다면 기록없이 지나간 것들도 어떻게 기록을 해놓을 수 있고, 20대에 뭔가 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그저 출판 과정이 매우 쉬워지고 초기 자금이 안 들어간다는 생각에 너무나 쉽게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게 쉽다면 개나 새나 다 기획하고 앉아 있지.


내가 이쪽에 대해 아는 지식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간접경험이니 뭐니 다 끌어모아봐야 일본애니메이션 '현시연'에서 동인지 발간하는 과정을 보았던 것 정도. 그런데 친구와 열정만으로 덤벼들었다.


당연히 우리 외에 동참자는 없었다. 처음 친구와 이야기하고 구상을 할 때에는 사진과 글을 후원받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이게 쉬울 리 없었다. 아니,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문제는 이게 자위용 잡지 발행이라면 그냥 구걸하듯 받아와도 문제가 없는데 우리의 목표는 판매하는 것이었다. 즉, 이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다. 글과 사진을 후원받는 게 쉽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다면 분량을 전부 나와 친구가 뽑아내야 한다는 것. 그냥 1개 만든다면 혹시 모르겠다. 하지만 매월 월간지로 발행하려면 이게 엄청난 양이다. 정말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글이 쏟아져나오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 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일단 잡지를 만들기로 하고, 내가 글을 연재할 것이 무엇이 있나 생각해 보았다. 이게 장기적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연재물은 필수였다. 매일 새로운 글감이 하나씩 쏟아져 나오기는 고사하고 1년에 글감 몇 개 나오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이미 경험해 보아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매월 기본 분량은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답은 연재물에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연재를 할 만한 것이 딱 두 개 있었다.


첫 번째는 여행기. 가장 먼저 싣기로 한 것은 '삼대악산'이었다. 이것은 지금 블로그에 연재완료했다. 우리나라에서 험하기로 유명한 설악산, 치악산, 월악산을 다녀온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나의 외국어 방랑기'. 이것은 내 20대 최고의 뻘짓이자 최고로 오랫동안 지속했던 이야기. 이것은 차마 부끄러워 아직까지도 이 블로그에 연재를 못 하고 있다. 참고로 말하자면 괜히 방랑기가 아니다. 우즈벡어 외에는 아직도 제대로 할 줄 아는 외국어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웃긴 이야기고 어떻게 보면 한심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이건 분량이 엄청 많았다. 여담으로 이것을 완결낸 것은 2011년이었다. 20대가 끝나기 전에 반드시 완결하겠다고 결심하고 전철 안에서 열심히 써서 겨우 완결지은 이야기이다.


이렇게 연재물 두 개에 매달 글 하나씩 쓴다면 어떻게 분량이 나올 거 같았다. 그동안 구상하던 장편 판타지를 하나 더 연재할까? 아니면 단편으로 매달 판타지 하나씩 써서 기고할까? 어쨌든 좋았다. 이것은 나중에 생각하자. 그리고 이 안이한 생각이 나중에 큰 문제로 발전했다.


나의 계획은 무슨 동아리 잡지 계획보다도 못한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분명 이 일은 돈이 걸린 일이었다. 그래서 친구와 돈 문제는 어떻게 할 지 고민했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내가 계좌를 하나 개설하고 체크카드를 친구에게 넘기는 것.


나는 서울에, 친구는 고향에 있었기 때문에 작업실로 쓸 블로그도 하나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이것이다. http://painworks.tistory.com/


그리고 창간호. 둘이 열심히 만들었다...가 아니라 친구가 열심히 만들었다...참고로 나는 컴맹이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컴맹이어도 컴맹 티가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터넷 검색해서 그대로 따라하면 대충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 잡지를 만드는 것을 인터넷 검색해서 대충 흉내내며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쪽을 친구가 다 맡아서 해야 했다. 성격 좋은 친구는 후원금까지 모금해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글을 열심히 써서 분량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 뿐이었다.


2010년 9월. 드디어 창간호가 나왔다.



마침 내가 찍은 사진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서 표지로 사용했다. 표지까지 다 해서 총 32페이지.


1호는 문제없이 발행되었다. 비록 팔린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첫 술에 배부르랴. 열심히 하면 분명 좋은 성과가 있을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다음 호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이미 앞에서 말한 문제가 당장 2호부터 터진 것이었다. 분량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 소재 하나만 떠오르면 글을 쓰겠는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글을 쓸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글을 미리 써 놓은 게 있었느냐? 천만의 말씀이었다. 연재물 외에는 글을 미리 써놓은 것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연재물 두 개만 가지고 기본 분량을 뺴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 게다가 이때는 판타지가 아니라 일반 단편소설을 올릴 생각이었다. 그러다보니 소재가 더욱 없었다.


허술했던 기획도 당장 2부부터 문제가 되었다. 틀이 확실히 안 잡혀 있는데 글은 안 나오고, 원고를 친구에게 넘겨주어야할 날은 게속 다가오니 미칠 노릇이었다. 차라리 틀이 안 잡혀 있으면 아무 거나 써 보겠는데 그러자니 틀이 잡혀 있고, 그렇다고 틀에 맞추어 글을 써 보려니 틀이 막연하고 재미있는 생각은 더더욱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2부를 마구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설마 했던 후원금이 조금이나마 모금되었기 때문이었다. 후원금은 잡지를 인쇄해 후원자분들께 보내드리고 홍보용으로 몇 부 인쇄하는 데에 전부 들어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후원금을 어떻게 썼는가가 아니었다. 후원금이야 오직 잡지 인쇄와 배송에만 사용했고 사용 내역을 모두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그거 자체만으로는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후원금을 받았기 때문에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분명 친구와 내가 열심히 노력을 했지만 결과는 안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만 놓고 보면 어쨌든 후원금을 받았는데 아무 것도 나오지 않은 셈이었다. 이것은 나나 친구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과가 나빠서 돌을 맞더라도 후원금을 받은 이상 다음 결과물을 제시해야 했다.


글을 쓰기 위해 예전에 끄적였던 일기 비슷한 글까지 전부 읽었다. 그래서 어떻게 2호를 발행했다.



후원에 대한 결과를 내놓았다고 안도한 것도 잠시. 3호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 둘 다 한계였다. 친구는 당장 임용고사를 준비해야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소재가 완벽히 고갈되어 버렸다. 연재물 두 개야 어떻게든 되지만, 그 외에 분량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글을 쓸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가 임용고사 끝난 후 3호를 만들자고 했지만, 친구가 임용고사 끝난 후에도 글감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친구가 만든 '지나가는 마을'은 그렇게 2호로 끝났다.


. . .


며칠 전. 친구가 카톡으로 말했다.


"야, 우리 잡지 다시 하자."


순간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할까 말까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다시 하겠다고 했다. 2010년, 잡지를 하며 겪고 느낀 많은 것들이 다시 떠올랐던 것이었다.


자리에 누웠는데 잡지 생각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난 번에 문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두 번째 하는데 또 첫 번째 때처럼 한 차례 불어닥치고 지나간 태풍처럼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다음날. 친구와 다시 이야기를 했다. 지난 번에 대한 반성. 우리 둘 다 너무 미숙했었다. 그리고 너무 몰랐다. 내 생각은 그랬다. 모르면 모르는대로 적당히 시작해야 했는데, 모르는데 어설프게 틀을 흉내내었고, 그게 결국 화근이 되었다. 둘 다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틀에 많은 유동성을 주어야 했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다. 준비도 너무 부족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과 잡지에 글을 싣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 만든 '틀'이라는 속박에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친구와 다시 잡지 계획을 세웠다. 지난 번의 경험과 비판을 토대로 다시 틀을 잡았다. 일단 친구와 세운 목표는 1년. 일단 1년간 월간지로 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올 4월부터 다시 출간하기로 했다.


p.s. 

1. 혹시 저 '지나가는 마을' 1,2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비밀댓글로 이메일 남겨주세요. 그러면 pdf버전으로 1,2권 보내드릴게요.

2. 잡지 '지나가는 마을' 공식 블로그는 http://painworks.tistory.com/ 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