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

중학교 집중이수제의 악몽

좀좀이 2013. 3. 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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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가기 전의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블로그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우즈베키스탄에 갔고, 이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지금껏 다닌 여행 이야기를 올리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가 끝난 것이 10월 31일이었으니 올릴 틈도 없었다.


여행기를 제외하고 이미 너무 지나간 이야기는 블로그에 안 올리려고 하는 편인데, 이것은 왠지 올리고 싶어졌다. 사실 지금껏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기록을 남겨놓은 적이 없는 이야기이다보니 여기에 기록을 남겨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보다 근본적 이유는 글감 개발을 아직도 못 하고 있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내 20대를 되돌아보면 군대까지 포함해서 큰 변화가 8번 있었다. 나의 위치와 환경이 확 바뀌어서 그때마다 크게 바뀌었다. 우즈베키스탄에 갔다 오는 것이 결정된 것이 29세 끝자락이었으니 이것까지 포함한다면 9번의 변화다. 만약 각 시기의 내가 모두 한 자리에 만난다면 엄청나게 웃길 것이다. 어쩌면 서로 한국어를 하는데 외계어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여덟 번째. 이때가 28살이었다. 이때 다시 서울로 돌아와 방은 서울에 잡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았다. 무슨 아르바이트를 하면 좋을까? 해 보고 싶은 것은 왠지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때까지 선생님만큼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선생님과 사이좋게 지내지는 않았고, 개인적으로 선생님들을 싫어했다. 선생님과 엮이는 일이라면 귀찮은 일이거나 혼나고 두들겨맞는 일 뿐이라서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았고, 내가 그렇게 선생님들을 싫어했는데 선생님이 되어서 애들에게 그렇게 미움받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친구가 기간제 교사를 하며 교사에 대한 열정을 보이자 왠지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선생님 역할을 찾아보니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학원 강사에서 일단 예체능은 무조건 안 되고, 남는 국,영,수,과,사에서 알아보아야 하는데 일단 영어는 내가 잘 모르므로 제외. 수학, 과학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영어, 수학은 고등부까지 맡게 되거나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일단 내 능력에서 역부족. 이것은 입시 교육을 떠나도 한참 전에 떠난 내가 감히 건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지금 다시 수학의 정석을 펼쳐놓고 수학 공부할 것도 아니니 말이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문과이기 때문에 수학, 과학은 애초에 원서를 집어넣는다 해도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국어와 사회. 즉 내가 지원해서 될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는 국어와 사회 뿐이었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국어와 사회. 어떤 것이 더 자신있는가? 더욱 자신있는 과목은 사회였다.


그래서 사회 강사 모집에 원서를 넣었는데 의외로 빨리 채용되었다. 마침 그때 본 드라마가 '드래곤 사쿠라'였다. 일본 드라마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드라마였다. 이걸 보며 나도 멋진 학원 강사가 되겠다고 꿈꾸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가 EBS 인강 보며 중학교 사회 공부할 줄은 몰랐다...정말 몰랐다...


집에서 교재를 휙 넘겨보았는데 당연히 다 아는 내용. 그래서 '이까짓 것!'하고 수업을 들어갔다. 그런데 설명하려고 하니까...이거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분명 다 아는 것이었다. 이거보다 훨씬 어려운 공부를 했는데 이것도 모를 수가 있나. 그런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니까 뭘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네. 문제집 설명 읽어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슨 얼어죽을 드래곤 사쿠라...내 상상은 내가 고등학생때에나 부합하는 상상이었다.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고, 그동안 별로 관계가 없었던 중학생의 세계는 말 그대로 '판타지'였다. 그냥 외국 가서 그 세계에 적응하는 기분이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이걸 왜 모르지? 이걸 대체 어떻게 쉬운 말로 설명해 줘야 해? 얘네들은 왜 이런 반응을 보이지? 당최 이해도 안 되고 알 수도 없는 끝없는 미지의 세계. 문제는 여행할 때라면 그냥 구경하고 천천히 익혀가고 맞는 것은 따라하고 안 맞는 것은 버리고 좋으면 더 머무르고 싫으면 떠나고 하면 되는데 이건 여행이 아니라 일이라는 것. 결국 EBS 인강을 보며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공부하고 원장님과 다른 선생님들께 물어가면서 많이 배워야 했다. 흔히 상상하듯 잘 아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완벽히 별개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군대에서도 상병은 여유가 흐른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 아니까. 그렇다. 나도 1년 해보니 대충 어떻게 하면 된다는 것이 감이 왔다. 언제부터 시험 준비 들어가고, 애들은 특성에 따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감이 서서 이번 한 해는 참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중학생의 세계에 대한 공부도 나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지난해처럼 문제 하나 발생할 때마다 정신없이 답을 찾느라 우왕좌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다. 이제는 어쨌든 경험치를 1년 쌓았고, 햇병아리 이등병처럼 어리버리대며 사고칠 시기는 지난 것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2011년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꿈이었다.


학원에서 가르치며 내가 학 학기를 놓고 진도를 나간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학원에서는 한 과목을 기본적으로 세 번 가르친다. 먼저 방학때. 방학때 중간고사~한 학기 진도를 다 떼어준다. 그리고 학기가 시작하면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중간고사 예정 범위까지 가르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험이 가까워지면 시험 대비로 다시 한 번 가르친다.


내 경우에는 방학때 한 학기 진도를 다 떼었다. 이때는 목표를 낮게 잡았다. 나중에 다시 책을 보았을 때 '이게 무슨 개소리야?'라고 하지만 않으면 되는 정도로 목표를 잡고 훑어본다는 느낌으로 진도를 나갔다. 그 다음 학기가 시작하면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데에 무리가 없지 않을 정도를 목표로 잡고 진도를 나갔다. 마지막으로 시험이 가까워지면 바짝 조여서 진도를 나갔다. 처음 학원 강사를 시작했을 때에는 무조근 바짝 조이는 것이 최고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해보니 나와 학생들 모두 피곤하고 서로 짜증만 날 뿐이었다. 나는 했던 설명 또 하고 또 하고 계속 반복하며 짜증나고 애들이 왜 자꾸 까먹나 짜증이 날 뿐이었고, 애들은 애들대로 내가 짜증이 나니 당연히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름방학부터 방법을 바꾸었더니 그게 훨씬 효과가 좋았다. 애들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멍청하고 무능한데 의욕만 앞서서 애들과 쓸 데 없는 충돌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몰라서 배우러 온 학생들에게 '이것도 몰라?'라고 생각하는 선생이 멍청한 것이지...


방학때 어떻게 가르칠지에 대해서는 학원에서도 관용도가 높았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하면 최소한의 암묵적 의무가 있었는데, 바로 시험 범위까지는 두 번 가르치도록 진도를 나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당연한 것이 학교보다 진도가 느리면 시험범위까지 진도를 나갈 수가 없다. 학교에서 시험 즈음해서 시험범위까지 나가기 때문에 학교 진도보다 느리게 나가면 학원에서 시험 대비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3월 둘째 주였을 거다. 여느 때처럼 1학년 교실에 들어가 책을 책상에 내려놓고 느긋하게 의자에 앉았다.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 이미 방학때 한 번 가르쳤으니 힘들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이미 작년에 가르쳐본 것이잖아. 애들이 말을 안 듣고 난리를 피우는 것도 아니구. 오늘도 애들이랑 즐겁게 시간을 보내야지. 이미 방학때 한 번 가르쳤던 것이니 여유가 흘러넘쳤다. 애들에게 학교 이야기도 듣고, 잡담도 하면서 느긋하게 진도를 나가야지. 그래도 이미 가르쳤던 것을 다시 가르치는 거라 방학때 한 거 잊어버렸는지 확인하고 잊어버렸다면 다시 떠올리게 하고 부족한 점은 다시 체크해서 그것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하면 되는 평화로운 시간.


"너네 사회 학교에서 어디 나가?"

"저희 사회 안 배우는데요?"

"야, 무슨 말이야? 2주일째인데 여태 놀기만 하냐?"

"그게 아니라 저희는 도덕만 배우고 2학기때 사회 배워요."


순간 머리가 멎어버렸다. 애들이 장난치는 줄 알았다.


"야, 장난치지 말구. 진도 어디 나가는데?"

"저희 도덕만 배워요!"


이거 꿈일거야. 세상에 한 학기 동안 도덕만 배우고, 한 학기 동안 사회만 배운다는 게 어디 있어? 무슨 대학교 교양 과목이야? 당연히 머리 속에서 이렇게 곱게 말하며 생각했을 리가 없다. 머리 속으로는 당연히 온갖 욕을 하며 뭐 이딴 일이 다 있나 싶었다. 교실에서 1학기에 사회를 배우는 학생은 고작 2명. 나머지는 전부 도덕을 배우고 있었다.


이건 대재앙이다.


깔끔했다. 그냥 저 생각 뿐이었다. 뭐 이딴 것이 다 있나 머리 속으로 실컷 욕하다가 충격이 가라앉고 드는 생각은 딱 저 생각 뿐이었다. 깊게 생각하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이것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해결 방법은 오직 하나. 원장님께 빨리 보고해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그래, 사회 배우는 두 명. 너네는 학교 진도 어디 나가?"


대답은 의외였다. 진도가 느렸다.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알 것이다. 3월은 새 학기라 들떠 있는 달. 그리고 4월은 시험을 친다. 그리고 5월. 5월...말이 필요한가? 기념일만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 이렇게 3개 몰려 있다. 게다가 각종 행사. 그냥 버리는 달이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사회가 만만한 분량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2학년에서 사회를 안 배운다. 오직 역사만 배운다.  중학교 1학년 사회에서 배우는 내용은 세계지리, 한국지리, 사회문화, 법이었다. 조금 자세히 설명하면 전 세계와 한국의 기본적인 지형 및 기후의 특징 및 이로 인한 인간 생활 양식과 사회의 특징, 인구, 도시, 문화, 인간과 사회의 관계, 법의 개념, 법의 종류, 재판, 법과 인권 등을 배운다. 이것을 한 학기에 다 배워서 끝내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내용이 쉬워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용은 더 어려워지고 많아졌다. 전년도에 이미 파악하고 느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고교과정에서 선택과목이 많아지고 공통과목이 줄어들면서 고교과정에서 공통으로 배워야하는 것들을 마구 중학교 단계로 내려보낸 것 아닌가 싶었다. 오래 전부터 학원을 운영해오신 원장님께서 처음 내가 사회 강사를 시작했을 때 '중학교 1학년 사회가 매우 어려워졌어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까지 다 나와요'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맞았다.


그래, 난이도가 높은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한 학기에 다 배운다는 것.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있었다. 거기에 만약 1학기에 사회를 다 배워야 한다면? 이미 결과는 나와 있었다. 아무리 내가 막 1년 일한 학원 사회 강사라 해도 답이 안 나오는 문제였다.


쉬는 시간이 오자마자 원장님께 급히 이 '집중이수제'를 보고드렸다. 원장님께서도 당연히 깜짝 놀라셨다. 이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나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했다. 먼저 사회를 한 학기만 배운다는 것. 아마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라면 학교에서 진도를 어떻게 나갈지 대충 예상하실 것이다. 그렇다고 나도 그렇게 나갈 수는 없는 일. 게다가 나는 진도를 주어진 시간 안에 두 번 나가야 해요. 학교에서 두 달에 사회책 반 권을 나가는데, 나는 한 달에 반 권. 그렇다고 '이것만 외워! 이것만 외워!'하고 경험을 근거로 무조건 찍어서 암기시킬 수는 없는 일. 전부 제대로 가르쳐서 한 달에 교과서를 반 권 떼야했다.


두 번째 문제는 1학년이 한 반이었는데 그 반에서 사회를 배우는 학생은 오직 2명. 나머지는 전부 도덕. 이것도 문제였다. 나의 사회 수업은 오직 두 명을 위한 수업이었고,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들어두면 좋은 수업'이지 '반드시 들어야하는 절박한 수업'이 아니었다는 것.


원장님께서도 내 말을 듣고 깜짝 놀라시며 확인해 보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 출근일. 예상했던 대로 원장님께서 나를 따로 부르셨다.


"일단은 애들 사회 가르치세요."


출근 전,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하나였다. 내가 배로 일하는 것. 그거 외에는 답이 없었다. 그 학원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내가 택할 수 있는 답은 오직 하나.


원장님께 두 가지를 건의드렸다. 먼저 1학년 2학기 사회 교재를 무슨 일이 있어도 중간고사 끝날 때까지는 애들에게 구입하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일단 두 명은 가르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마다 별도의 시험 대비 문제집이 나오는데, 이것 역시 최대한 빨리 준비해 주셨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학교 시험 대비용으로 나오는 별도의 문제집에는 도덕이 있었다.


답은 내가 사회와 도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거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일단 시험 준비 기간 전에는 사회를 가르치고, 시험 준비 기간에는 도덕 교재도 생기므로 사회와 도덕을 내가 가르치기로 했다.


이거 왠지 승부욕이 불타는데?


수업을 들어가는데 긴장이 되었다. 이것은 설레임이 아니었다. 100미터 달리기 출발지점에 섰을 때의 긴장감이었다. 지난 1년간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느낌이었다. 중학교 3학년 연합고사 대비 문제집을 풀 때에도 이렇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잘 가르치고 못 가르치고를 떠나서 진도 나가는 속도 때문에 걱정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진도 나가는 속도 때문에 떨리고 긴장이 되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 상황. 지금 내가 달리기 하려고 여기 온 것도 아니고 누가 더 빠르게 말하나 시합하려고 여기 온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최고로 빠른 속도를 내야 했다. 학교에서 사회 수업은 일주일에 5시간. 나는 일주일에 4시간. 정확히는 3시간 30분. 그런데 학교보다 훨씬 빨라야 한다.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까를 고민하며 들어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진도를 나갈까를 고민해야 하는 이 황당한 상황. 그러나 그게 실제였다.


'숙제는 내지 않는다. 반드시 이 수업 안에서 문제까지 애들과 다 풀어서 끝내겠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직까지도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1학년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와 숨을 고르기 위해 심호흡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는 것이다. 매번 1학년 수업을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그랬다. 힘든 티를 안 내려고 해도 노력해도 안 낼 수가 없었다. 희안한 건 이렇게 힘드니까 오히려 더욱 승부욕이 불타올랐다는 것. 재미있는 것은 내가 무슨 승부를 하는 것처럼 하는데 애들도 덩달아서 동참했다는 것이었다. 하여간 희안하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는데 일단 좋은 쪽으로 희안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중간고사 기간. 드디어 시험범위가 나왔다. 의외로 범위가 적었다. 그리고 나는 집에서 중학교 도덕을 공부했다. 한 시간에 과목 두 개를 나가야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일단 사회는 최소한으로 요약해 설명하고, 문제를 풀게 시켰다. 그동안 도덕은 문제를 풀게 시켰다. 사회가 문제를 푸는 동안 도덕을 설명해주고 같이 문제를 풀었다. 도덕이 끝나면 도덕은 조용히 자습하라고 시키고 사회를 문제풀이했다. 정말 다행히 애들이 말을 매우 잘 들었고, 중간고사 결과도 괜찮게 나왔다.


'이번만 넘기자.'


새 교사용 문제집을 받았다. 1학년 2학기 사회. 이것이 바로 끝판왕이었다. 이거만 무사히 깨면 돼! 그러면 최소한 배드 엔딩은 안 걸려!


당시에는 어학연수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계속 그 학원에서 일할 생각이었다. 집중이수제 때문에 골치아픈 거 말고는 모든 것이 좋았다. 원장님 및 선생님들간의 분위기도 좋았고, 나와 학생들의 관계도 좋았다. 오직 하나. 집중이수제만 아니었다면 매우 행복하고 여유로운 학원 강사 생활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1학년 1학기 기말고사가 끝판왕이 된 이유는 바로 방학때 집중이수제를 할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기 때문에,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런 해괴한 제도가 등장할 거라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오직 정상적인 1학년 1학기 진도만 나가놓았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말했듯 시험 범위를 학원에서 방학에서 시험철까지 세 번 가르쳤기 때문에 중간고사는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처음으로 이렇게 진도를 많이 나가는 것 때문에 힘들었을 뿐이었지, 심적 부담이 크지는 않았다. 이미 방학때 한 번 가르쳤던 것을 다시 복습시키는 거라서 크게 시간을 잡아먹을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제집 문제는 방학때 애들과 다 풀어보았기 때문에 3월에는 설명을 다시 해 주면서 모르거나 이해가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필요한 것 외우게 시키는 정도였다.


문제는 바로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이것은 방학때 가르치지 않았다. 처음부터 설명을 다 해주어야 하고, 문제도 깔끔하게 다 풀어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약 두 달.  두꺼운 문제집을 보니 그냥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것만 무사히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다 괜찮았다. 집중이수제가 아니라 집중이수제 할아버지가 온다 해도 괜찮았다. 왜냐하면 여름방학때 무슨 일이 있어도 1학년 사회 진도 전부 한 번 다 나가버릴 거니까. 아니, 그 이전에 지금 도덕을 배운 애들은 다음에 사회를 배우잖아? 걔네들은 이미 지금 예습중이다. 지금 도덕하는 애들이 사회할 때에는 걔네들은 지금 한 번, 방학때 한 번이니 개학할 때에는 이미 두 번 배운 셈이다.


매번 수업에 들어갈 때마다 학교 진도를 체크했다. 학교 진도는 내가 걱정될 정도로 느리게 나가고 있었다. 당연했다. 5월. 5월이 왔어요. 그러나 학교 진도가 느리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나도 학교 다닐 때 몇 번 경험해 보았다. 날림 진도. 나중에는 대충 찍어주고 이것만 외워라 해서 휙휙 진도를 나가버린다. 중간고사 분량이 적어서 분명 기말고사 분량이 매우 많을텐데 학교 진도는 거북이 걸음이었다. 학교 진도 느리다고 나도 느리게 나가다가 나중에 시험 진도까지 못 나가면 그건 분명 큰 문제였다. 그래서 애들이 천천히 나간다고 해도 열심히 진도를 나갔다.


혹시나가 역시나. 막판에 날림 진도였다. 2학기에 사회 과목 1년치를 가르친다면 혹시 모르겠다. 그런데 1학기에 사회 과목 1년치를 다 가르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 우리나라 국경일 및 중요 행사는 상반기에 몰려 있다. 게다가 얘네들은 이제 막 중학교 입학한 애들이구. 도대체 며칠을 까먹는 거야? 이게 무슨 공장도 아니고 시간만 늘리면 늘려놓은 만큼 애들의 공부량과 지식이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그나마도 상반기에 걸리면 더욱 골치 아파진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학원에서 가르치며 가장 조심해야 하는 달이 5월이다. 사회적으로 붕 뜬 분위기라서 나도 붕 뜨고 애들도 붕 뜬 분위기라 나도 놀고 싶고 애들도 놀고 싶다. 하지만 아직 학기가 끝난 것이 아니라 진도는 계속 나가야 한다. 그런데 5월에서 삐끗하면 이게 6월 가서 피를 토하게 되는 수가 있다. 진도 면에서도 그렇고, 애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5월의 붕 뜬 분위기를 6월까지 끌고가 버리면 6월에 선생과 학생들 관계가 틀어지기 딱 좋은 상황이 발생한다. 선생은 진도를 못 나가서 안달이 났는데 애들은 계속 적당히 설렁설렁하고 놀자고 들면 당연히 관계가 틀어질 수 밖에 없다. 위에서 말했듯 6월은 시험준비기간이다.


그런데 5월은 당연히 상반기다. 다행히 잘 넘어갔다. 만약 내가 이 해에 처음 사회 강사를 시작했다면 정말 큰 사고를 쳤을 것이다. 아마 시험 준비 기간 전에 시험 범위의 절반 채 못 나갔을 것이다.


기말고사도 무사히 잘 끝냈다. 드디어 평화가 찾아온 것일까?


하지만 남아 있는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아...같은 말 또 하려니 질려...


이번에는 1학기에 도덕을 배웠던 애들에게 사회를 가르칠 차례. 그런데 얘네들, 벌써 내게 설명 최소 2번 들었다. 시험준비기간에 도덕을 했으니 1.5배라고 하자. 그리고 방학때 당연히 1년치 다 나갔다. 알고서 당하면 그건 바보이니까. 내가 택한 방법에 따라가기 위해서는 방학때 1년치 다 나가야 했다. 그렇게 하고 보니 이제 애들은 내 설명을 최소 2.5번 들었다.


개학. 똑같은 내용을 나는 벌써 1년에 네 번째. 같은 내용을 똑같은 애들 앞에서 네 번째 가르치려니 아이디어 고갈이었다. 뭘 어떻게 설명해도 이미 전부 전에 설명할 때 사용했던 설명. 애들도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다 아는 눈치. 문제집은 이미 문제를 다 풀어버렸다. 이때는 정말 어서 빨리 시험용 문제집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래도 꼭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서로 여유가 있었다. 애들과 적당히 놀기도 하고 잡담도 하면서 느긋하게 진도를 나가도 나갈 진도는 매우 잘 나갔다. 양쪽 다 이미 몇 번씩 본 것이다 보니 큰 문제가 없었다. 5월에 못 논 것을 이제야 논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집중이수제. 대체 이것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무슨 공장 기계 가동하는 것도 아니구 단순히 시간과 지식이 비례한다는 건 무슨 생각에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안 배우는 기간 동안 잊어버리는 것은 계산에 안 들어가나? 제 아무리 기계라도 계속 가동시키지도 않고 관리 안 하고 방치하면 부식되어 가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학습량을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설령 학습량을 소화할 수 있다고 한다 해도, 그렇다면 그 속도는? 이게 아이가 따라갈 수 있는 진도 속도인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스스로 예습, 복습을 하는 학생이 정상인가,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 학생이 정상인가? 모범적인 학생과 정상적인 학생은 분명 다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덕분에 전력을 다 쏟아부어야 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내 개인적으로만 본다면 매우 많은 경험과 수확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가르치는 방법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은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칭찬할 수 있는 제도는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제목을 '중학교 집중이수제의 추억'이라고 차마 쓸 수가 없었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것이라고 도저히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학원을 찾아갔는데 집중이수제가 또 바뀌었다고 했다. 그래서 서점에서조차 책을 아직 들여놓지 않았다고 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사회 자체가 교과서 1개가 되어 버렸다. 이것은 올해 중1부터 적용이라고 한다. 정확한 것은 3월 개학해서야 알 수 있다고 했다. 대체 뭐지? 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아류작에 가까우니 안 놀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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