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

이스마일 카다레 - 부서진 사월

좀좀이 2013. 2. 27.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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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바니아에 대해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나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어렸을 때 이웃집에서 종종 빌려다 보던 '학습그림사회'라는 만화 동유럽 편에서 맨 마지막에 아주 조금 나와 있었던 것이었다. 당시 이 책에서 적성국가는 국기와 정식 국명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동유럽편은 전부 국기와 정식 국명이 나와 있지 않았다. 이 동유럽 편에서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모습이라면 체코슬로바키아편 첫 페이지 사진이 바츨라프 광장에서 민주화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었고, 동독편에서는 칙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굳은 표정으로 퇴근하는 사람들, 불가리아편 첫 페이지가 장미밭, 그리고 알바니아편에서 전통 민속 축제라고 빨간 스카프를 맨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사진과 지로카스트라 광장 사진이다. 그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어쩌면 너무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득 접해서 관심이 생겼을 것이다. 마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심리랄까.


내가 알바니아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라고는 먼저 정부까지 연루된 거대 피라미드 사건. 당연히 피라미드 회사는 망할 수 밖에 없는데, 막 공산주의에서 벗어난 알바니아는 이런 것을 잘 몰랐고, 막연히 높은 수익을 준다고 한다는 말에다 정부가 이를 권장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바람에 결국 회사는 망하고 알바니아는 내전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벙커. 유고슬라비아 및 소련, 그리스와 사이가 안 좋던 알바니아는 전국을 요새화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시멘트 벙커를 세웠다. 누가 벙커를 더 잘 짓나 벙커 콘테스트까지 할 정도였다고 하며, 벙커 짓는 데 사용된 시멘트면 알바니아의 모든 도로를 다 포장할 수 있다고 할 정도다.


그리고 덤으로 알게 된 것이라면 이탈리아에서 알바니아인들이 범죄를 많이 일으킨다는 것.


하여간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만 가득한 나라였다. 그래서 알바니아에 일부러 가보고 싶었다. 대체 어떤 나라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스마일 카다레'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이 작가는 알바니아 작가로 매해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라간다고 했다. 당연히 수상할 리는 없다. 사실 알고 보면 노벨 문학상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라갔다는 것이 명예로운 것이지 그 상을 받았다는 것은 그다지 명예로울 것은 없다. 후보 중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수상자가 결정된다는 것은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우리나라가 노벨 문학상을 노린다면 차라리 이모티콘 가득한 귀여니의 소설이 훨씬 가능성 있을 것이다. 이것도 이제 때가 늦어버린 것일건가? '고전적 글의 파괴'라고 좀 우겨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물론 농담이다. 이거 가지고 물고 늘어지지는 말기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는 알바니아에 대한 이미지가 모두 부정적이었다. 이때가 2006~2007년도였다. 알바니아가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은 이때만 해도 알바니아가 잘 나서가 아니라 코소보 문제 때문이었다. 이때도 알바니아가 부각된 게 아니라 코소보에 사는 알바니아인들이 부각된 것이었다. 알바니아가 세르비아와 코소보를 놓고 전쟁을 벌일 만한 강력한 나라는 당연히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다.


여기까지 읽고 기분이 상했을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알바니아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느냐고 말이다. 비뚤어진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반박을 할 것이다. 그러면 그때까지 알바니아에 대해 좋게 알려진 자료가 있으면 한 번 가져와 보라고 말이다. 이때만 해도 영어로 된 자료로조차 알바니아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적었고, 그나마도 다 부정적인 내용 뿐이었다.


이런 나라의 작가가 쓴 소설이라고 해서 처음 읽은 것이 꿈의 궁전. 말이 필요 없었다. 이것은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꿈의 궁전을 읽고 알바니아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 것은 아니었다. 사실 꿈의 궁전은 알바니아를 그리기에는 맞지 않는 소설이다. 공산 알바니아 시절 어두운 모습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모습으로 바꾸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꿈의 궁전을 읽고 이 작가 소설에 크게 반해서 읽게 된 소설이 바로 부서진 사월.



"알바니아는 무조건 간다!"


이 결심을 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알바니아에 반드시 가서 알바니아어로 된 부서진 사월을 반드시 구입해 소장하겠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알바니아어를 공부하고 원서로 읽어버리겠다! 이렇게 결심을 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당연히 아직도 알바니아어는 공부를 하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소설의 배경은 근대 알바니아다. 도시는 현대화 되어가고 있지만 시골은 아직 전통이 지배하는 시대. 시골은 복수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것은 걸어서 세계속으로 알바니아편에서도 나왔던 내용으로, 공산 알바니아 붕괴 후 다시 생겨났다고 한다) 복수는 커지고, 나중에는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까지 이 복수에 휘말려 죽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운명이다.


전체적인 소감은 한 편의 신비로운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김동리의 무녀도 이후 처음 느껴본 그 느낌이랄까. 쉬지 않고 계속 읽어나갔다. 그리고 그 신비와 무거움이 지배하는 땅 알바니아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알바니아에 기회가 되면 한 번 가 보아야겠다는 정도였는데, 이 소설을 읽고난 후에는 반드시 가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고보면 나도 소설에 크게 감명받아 여행을 간 나라가 있기는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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