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15 - 강원도 태백시 상장동 벽화마을 - 구 함태탄광 광부사택촌

좀좀이 2023. 1. 23.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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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깜깜해져?"

 

강원도 태백시 시내버스 4번 버스를 탄 지 얼마 안 되었어요. 벌써 깜깜해졌어요. 완전히 한밤중 칠흑같은 어둠이 태백시를 집어삼켰어요. 순식간에 햇볕이 하나도 없고 깜깜한 동네로 바뀌었어요. 시꺼먼 것은 하늘이고 더 시꺼먼 것은 땅이고 아주 새까만 것은 산이었어요. 어둡고, 더 어둡고, 아주 어두운 것만 보였어요. 버스 타기 전만 해도 달리는 버스 안에서 풍경 사진을 몇 장 찍으려고 했어요. 이 생각은 몇 분 채 안 되어서 좌절되었어요.

 

산골 지역은 해가 일찍 저뭅니다.

 

산골 지역은 해가 일찍 저문다는 말이 있어요. 실제로 산에 가보면 평지보다 해가 일찍 저물고 날이 더 빨리 어두워져요. 그래서 산행 갈 때는 평지 기준으로 해가 질 시간보다 더 이른 시간에 해가 질 거라 예상하고 산행 계획을 세워야 해요. 평지 기준으로 해가 질 시간 기준으로 산행 계획 짰다가 계획보다 늦어지면 어두침침할 때 산길을 걸어야하는 수가 있어요.

 

강원도 태백시가 첩첩산중에 있는 곳이라는 것은 알고 왔지만 이렇게 제가 살고 있는 의정부와 비교했을 때 날이 어두워지는 시간이 꽤 차이날 거라 예상하지는 못했어요. 기껏해야 몇 분 정도 차이날 거라고 예상했고, 그것도 여기 와서야 든 생각이었어요. 태백시 도착했을 때만 해도 날 저무는 시간이 이렇게 크게 차이날 거라고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장성동은 어떤 곳일 건가?'

 

태백 시내버스 4번은 상장동 벽화마을로 가기 전에 장성동을 지나갈 거였어요. 장성동은 태백시에서 규모가 있는 지역이에요.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에는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있어요.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는 지금도 가행중인 탄광이에요.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서 채탄된 석탄은 여전히 철암동에 있는 철암역두 선탄시설 및 저탄장으로 운반되고 있구요. 태백시 북쪽 중심지역이 황지동이라면 태백시 남쪽 중심지역은 장성동이었어요.

 

'장성동 규모 좀 되면 장성동이나 구경하고 황지로 돌아갈까?'

 

강원도 태백시 상장동 벽화마을은 반드시 가고 싶은 곳까지는 아니었어요. 상장동 벽화마을도 태백시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기는 했어요. 그렇지만 굳이 가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애초에 상장동 벽화마을을 매우 가고 싶어했다면 구문소를 제끼고 동점역 갔다가 바로 상장동 벽화마을로 넘어갔을 거에요. 아니면 동점역까지도 제끼고 상장동 벽화마을로 넘어갔거나요. 그러나 그러지 않고 오히려 상장동 벽화마을 구경을 사실상 포기하고 구문소를 제대로 돌아다녔어요.

 

나 이미 도계 갔다 왔어.

도계에서 많이 봤어.

 

강원도 태백시 상장동 벽화마을에 별 흥미가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태백시 옆동네인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을 다녀왔기 때문이었어요. 도계읍 전두리 가서 탄광촌 풍경을 보고 왔어요. 강원도 태백시 도계읍 전두리는 '생생한 탄광촌 풍경' 수준이 아니라 '싱싱한 탄광촌 풍경'이었어요. 장성동도 탄광촌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장성동에서 채탄된 석탄은 모두 철암동으로 넘어가요. 그러나 도계읍 전두리에서 채탄된 석탄은 도계역 바로 뒷편 저탄장에 쌓여요. 도계역 바로 뒤가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입구구요. 도계는 탄광 입구 바로 앞이 도계역이고, 그 맞은편이 전두시장이에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에서 아주 싱싱한 탄광촌 풍경을 제대로 본 지 얼마 채 되지 않았어요. 도계 여행 갔을 때 탄광촌의 생생한 모습을 매우 잘 보고 왔어요. 도계에 있는 탄광사택촌도 둘러봤어요. 단지 도계읍 전두리 다녀온지 얼마 안 되어서 흥미가 안 생기는 것이 아니었어요.

 

나 내일 도계 또 가.

내일 탄광촌 풍경 또 볼 거야.

 

다음날 운탄고도1330 8길을 걸을 예정이었어요. 운탄고도 8길은 도계역에서 시작해서 신기역에서 끝나요. 도계읍과 신기면을 걸어가는 길이에요. 다음날 운탄고도 8길을 걷기 위해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으로 넘어가면 도계 탄광촌 풍경을 또 볼 거였어요. 차 타고 휙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며 볼 것이었기 때문에 제 의사와 관련없이 도계 탄광촌을 잘 볼 예정이었어요. 그러니 상장동 남부마을이 태백시의 광산사택 마을이라 해도 여기를 반드시 봐야 할 것까지는 없었어요. 만약 태백만 보고 떠난다면 상장동 남부마을도 한 번 잘 보고 싶었겠지만 다음날 당장 지금도 가동중인 탄광이 있고 그 탄광을 중심으로 형성된 탄광촌이 있는 도계에 갈 거였기 때문에 상장동 벽화마을은 꼭 가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어요.

 

'장성동은 규모 좀 크겠지?'

 

태백 시내버스 4번이 장성동으로 들어왔어요.

 

"여기는 뭐 다 산이야?"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 들어와서 깜짝 놀랐어요. 장성동도 온통 다 산이었어요. 아직 안 가본 구간이라면 상장동 벽화마을부터 황지동 중앙로로 가는 길일 건데 여기는 보나마나 전부 산일 거였어요. 그나마 산이 아닐 수 있다고 기대할 만한 곳은 장성동 뿐이었지만, 장성동도 온통 산이었어요. 이런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사는 것 자체가 신기했어요. 단순히 산이 아니라 정말 아주 좁은 평지를 제외하면 코 앞이 산이었어요.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전부 산이었어요. 황지동 중앙로도 산이 가까이에 있는데 중앙로를 벗어나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본 게 온통 산이었어요. 통리, 철암, 구문소에 이어 장성동까지 코 앞에 산이 있었어요.

 

'상장동 가자.'

 

장성동 번화가에 온 거 같기는 한데 어디가 장성동 번화가인지 분간도 안 되었어요. 낮은 건물이 여러 채 있었어요. 건물 너머는 전부 산이었어요. 어둠이 깔리자 시커먼 하늘 아래 새까만 산이 더욱 바로 코 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어둠을 틈타 산들이 사람 사는 얼마 안 되는 평지로 돌진해오고 있었어요. 깊은 산 속에 건물 몇 채 있는 동네 같았어요. 간간이 불이 켜져 있는 곳도 있었지만 거리에 사람들도 별로 안 보였어요. 어디에서 내려야할지 감도 안 왔어요.

 

목적지를 상장동 남부마을에서 장성동으로 바꿀지 고민했지만 별 의미없는 고민이었어요. 장성동에 대해 알아본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장성동에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입구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어요. 깜깜해서 뭐 보이는 것이 없었어요. 번쩍거리는 번화가 비슷한 게 있었다면 버스에서 내려서 장성동 구경하고 다시 버스 타고 황지동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선택했겠지만 번화가라고 부를 만한 곳이 어디인지 찾지 못했어요.

 

이런 일이 발생한 결정적인 원인은 장성동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버스에서 장성동이라고 하는데 너무 산 속 시골 같아서 카카오맵을 보다가 중요한 것을 발견했어요. 태백시는 시 전체가 좁은 골짜기를 따라 형성되어 있어요. 장성동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니 제 아무리 상점, 식당이 많은 곳이라 해도 매우 협소한 공간에 몰려 있다 보니 얼핏 보면 수도권 대도시 골목길 같아 보였어요. 여기에 태백시 자체가 석탄 산업 쇠락과 맞물려 쇠락한 곳이라서 장성동 상권도 별로 크지 않았고, 고층 빌딩 상가가 없었어요. 그러니 시골 읍내보다도 작은 조그만 상권 같아보이는 곳이 여기에서는 나름대로 큰 상권이었어요.

 

2022년 10월 5일 18시 37분, 굴다리사거리 정류장에서 4번 버스에서 하차했어요.

 

 

태백 시내버스 4번은 상장동 벽화마을 바로 앞까지 가지 않았어요. 상장동 벽화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굴다리사거리 정류장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야 했어요. 먼 거리를 걸어가야하지는 않았어요. 상장동 벽화마을은 굴다리사거리 정류장 지척에 있었어요. 굴다리사거리 정류장을 '상장동벽화마을 입구' 정류장이라고 바꿔도 문제 삼을 사람 하나도 없을 정도였어요.

 

철도가 부설되어 있는 다리 아래 굴다리로 갔어요.

 

 

굴다리에는 '상장남부마을'이라고 적혀 있는 간판이 붙어 있었어요. 상장동 벽화마을과 상장동 남부마을은 같은 곳이에요. 그래서 어떤 글에서는 상장동 벽화마을이라고 하고, 어떤 글에서는 상장동 남부마을이라고 해요.

 

원래 이름은 아마 상장 남부마을일 거에요. 이 마을이 조성되었을 때부터 동네가 벽화마을이었을 리 없으니까요.

 

 

상장동 벽화마을 입구로 갔어요. 매우 어두컴컴했어요.

 

 

여기도 연탄재가 있었어요. 상장동은 난방을 지금도 연탄재로 하는 것 같았어요.

 

 

 

 

'개 짖는 거 아냐?'

 

상장동 벽화마을은 벽화마을로 조성되어서 관광지로 알려져 있어요. 여기는 일반인들이 거주하는 곳이었어요. 이런 곳을 늦은 시각에 돌아다닐 때 가장 신경쓰이는 점은 바로 개에요. 개가 짖어대기 시작하면 엄청 시끄러워요. 매우 야심한 시각에 온 게 아니라 저녁 7시 채 되기 전에 왔기 때문에 돌아다녀도 딱히 문제되거나 이상할 것 없는 시각이었어요. 단지 날이 일찍 저물어서 완전 한밤중 같아보일 뿐이었어요. 그렇지만 이렇게 해 진 후 개가 짖으면 유독 더 시끄럽고 동네 민폐에요.

 

 

 

 

상장동 벽화마을은 과거 함태탄광에서 근무하던 광부와 그 가족들의 사택촌이었어요. 여기에서 함태탄광이 민영탄광이었는지 대한석탄공사 함태광업소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찾은 자료마다 말이 달랐어요.

 

 

석탄 산업이 호황이었던 1970년대에 상장동 남부마을에는 광부만 해도 무려 4천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해요. 광부만 4천명이고, 광부의 가족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은 인구가 여기에서 거주했어요.

 

석탄 산업이 호황이던 시절에 상장동 일대는 밥집, 대폿집이 골목마다 즐비했다고 해요. 상장동은 태백시에서 손꼽히는 번화가이자 중심가였다고 해요.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1993년 12월에 함태탄광이 폐광하자 상장동 벽화마을에 거주하던 사람들도 급격히 감소했어요. 석탄산업 호황기의 정점일 때는 태백시 인구의 99%가 외지인이었다는 말도 있어요. 전국 각지에서 탄광 일자리를 보고 달려온 사람들로 형성된 도시가 바로 태백시였어요. 오직 일자리와 돈만 보고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태백시에 대한 애착은 낮았고, 폐광되고 일자리가 사라지자 새로운 일자리와 돈을 찾아 대부분 우루루 떠나버렸어요.

 

 

상장동 탄탄대로 종합안내판이 나왔어요. 상장동 탄탄대로 종합안내판에 적혀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어요.

 

태백 상장 벽화마을

탄광이야기 마을 (남부마을)

 

태백시 상장동에 위치한 벽화마을(탄광이야기 마을)은 2011년 태백시 뉴빌리지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래 이제까지 마을 주민들이 인력봉사 자진참여, 재능기부를 통한 주민 주도형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추진되었습니다. 사업 초기 마을은 폐광 이후 옛 탄광촌의 상당히 낙후되고 빈민가적인 성향이 강한 인적이 드문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식의 전환은 마을의 역사를 바꿀 만큼 획기적인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우선 화단 정비 및 마을 주변에 지저분한 내 집 앞 청소부터 시작했고, 마을발전 위원회를 조직, 화단 정리 및 식재 수목으로 황폐했던 마을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고자 주민 하나하나가 뜻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그려 보자는 취지에서 탄광촌의 애환과 추억 그리고 동심을 벽화를 통해 재현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이야기 마을 사업 조성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은 자원봉사센터와의 재능 기부 협약을 통한 상호 협력 및 그림에 재능 있는 인재들의 끊임없는 자진 참여 및 동참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골목골목마다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칙칙했던 마을의 분위기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해맑은 웃음 속에 밝게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줄 수 있는 거리를 만들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와, 여기도 산이야!"

 

어둠 속에서 또 한 번 놀랐어요.

 

 

상장동 벽화마을 바로 뒤에는 소도천이 힘차게 흐르고 있었어요. 비가 내려서 물이 더 불어나서 더욱 힘차게 흘렀어요. 소도천 바로 뒤로는 산이 있었어요. 물 흐르는 소리가 매우 시원했어요.

 

'여기는 어떻게 물꼬만 틀면 관광지로 엄청 잘 될 거 같기도 한데...'

 

다른 지역이었으면 '우리동네 비경', '우리동네 아름다운 하천'이라고 엄청나게 홍보했을 풍경이 여기에서는 관심 하나도 못 받고 있었어요. 수도권이었다면 소도천 정도 풍경 보는 자리였다면 벌써 카페촌 형성 10만번은 되었을 거에요. 카페촌, 공방촌 같은 거 형성되면 상당히 인기 끌 것 같은 곳이었어요. 태백역, 태백버스터미널에서 조금 걸어가서 태백 시내버스 1번 타고 바로 올 수 있는 곳이기 떄문에 대중교통 접근성도 상당히 좋은 곳이었어요.

 

'세상 쉽지 않아.'

 

그렇게 안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에요. 그래도 상장동 벽화마을이 태백시 여행지로 꽤 유명해진 데에는 태백역과 태백버스터미널에서의 접근성이 좋다는 점과 주변 풍경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점 때문일 거에요. 탄광과 광부를 소재로 한 벽화가 독특하기도 하지만요.

 

 

 

 

 

사실 벽화마을이라는 것 자체가 2010년대 초중반에 반짝 뜨고 그 뒤에 아주 빠른 속도로 사그라들어버렸어요. 무슨 주식판 정치 테마주처럼요. 초기에는 너무 예쁘고 감성적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갔어요. 그러나 '마을 벽화의 가치'는 다시는 못 볼 역사적 고점 찍고 버블버블 팝팝 거품이 터져버렸어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마을 벽화사업이 도처에서 너무 남발되었어요. 벽화마을이 너무 많이 생겨서 가치가 떨어졌어요. 미술쪽에서 일종의 재능기부, 포트폴리오 작업처럼 많이 뛰어들었고, 지역 관계자 및 참여자 모두 돈도 별로 안 들어서 쉽게 진행할 수 있다는 특성이 매우 컸어요. 페인트 값과 시간 정도면 충분했으니까요. 비슷한 그림 베끼기가 수두룩했어요. 또한 마을벽화사업이 너무 남발되다 보니 나중에는 영등포 쪽방촌 같은 전혀 관광지가 될 수 없고 위험하기까지 한 곳까지도 벽화가 뒤덮었어요. 이렇게 되면서 마을 벽화의 가치는 형편없이 떨어져버렸어요. 수도권에서는 이제 '벽화마을'이라고 하면 우범지역, 접근금지지역을 알리는 갱스터 그래피티 같은 역할까지 하고 있어요. 농담도 과장도 아니고 수도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대로 현실이에요.

 

두 번째는 이런 벽화 사업 같은 것은 한 번 벽화를 칠하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보존, 보수 작업을 해줘야 해요. 하지만 대부분 단발성 이벤트로 끝났어요. 많은 벽화가 방치되었고 흉물로 전락했어요. 벽화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어요. 차라리 단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줬으면 주민들이 알아서 페인트 가져와서 덧칠이라도 할 텐데 그림을 그려놨으니 그것도 어려웠어요. 나날이 흉물로 변해가는 벽화들은 다른 벽화마을의 가치도 덩달아 같이 떨어뜨렸어요.

 

 

 

 

 

아직도 벽화마을로 유명하다니 진짜 대단한 것이오.

 

이렇게 벽화마을 조성사업의 희대의 테마주처럼 돌아갔지만 태백시 상장동 벽화마을은 아직도 여전히 벽화마을로 유명해요. 정말 대단한 거에요. 전국 수많은 벽화마을이 거품 펑 터져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도 못 하는데 태백시 상장동 벽화마을은 여전히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제가 갔을 때야 당연히 방문객이 있을 리 없는 시간이었지만, 지금도 상장동 벽화마을 가는 관광객들 계속 있어요.

 

강원도 태백시 상장동 벽화마을이 여전히 벽화마을로 유명한 데에는 태백시가 꾸준히 열심히 홍보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관광지로써의 잠재력이 꽤 있었다고 봐야 해요. 기본 잠재력 없으면 제 아무리 홍보를 열심히 해줘봤자 거품 터질 때 같이 무너지거든요. 거품은 주식, 코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어디에나 다 거품은 있어요.

 

제가 봤을 때 상장동 벽화마을이 아직도 벽화마을로 유명한 이유로는 먼저 주변 자연풍경 자체가 아름다워서 기본적인 것이 깔려 있고, 벽화의 테마도 흔해빠진 벽화마을의 벽화들이 아니라 탄광과 광부의 삶을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봐요. 탄광과 광부의 삶을 주제로 한 벽화는 정말 광산이 있는 곳이 아닌 곳에서는 따라할 수 없는 벽화 주제니까요. 그래서 희소성이 있어요.

 

 

 

 

 

강원도 태백시 상장동 벽화마을을 돌아다니면서 2019년에 서울 달동네, 쪽방촌을 찾아서 돌아다닐 때가 생각났어요. 동네 모습이 비슷했어요.

 

잠깐! 떠오른다!

 

문득 생각이 하나 번쩍 스쳐지나갔어요.

 

한국은 발전 역사가 짧아서 지역적 특성보다는 개발시기적 특성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한국 도시 여행은 솔직히 말해서 진짜 재미없어요. 무슨 도시들이 다 복사해서 붙여놓은 거 같아요. 딱히 특징이랄 것이 별로 안 보여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 도시에 대해 똑같은 건물을 찍어내서 어디를 가나 똑같은 풍경이라고 비판해요. 그리고 이 비판은 타당하고 옳은 비판이구요.

 

강원도 도계, 상장동 등 강원도 남부 첩첩산중 탄광촌에 와서 본 마을 풍경은 서울 달동네와 상당히 비슷했어요. 너무 비슷해서 놀랐고, 너무 비슷해서 아주 큰 호기심을 유발하지는 못했어요. 대체 왜 여기에서 서울 달동네와 아주 비슷한 풍경을 보고 있는지 의문이었어요. 그러다 상장동 남부마을을 돌아다니다 깨달았어요.

 

한국은 발전역사가 매우 짧아요. 도시가 형성되고 발전할 때는 지형적 특징도 중요하지만 시대적 특징도 중요해요. 한국은 발전역사가 짧다 보니 도시 개발도 매우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특정 시기에 개발된 도시들은 모두 천편일률적인 풍경을 만들어요. 1960년대에 개발된 지역은 거의 다 똑같고, 1970년대에 개발된 지역은 거의 다 똑같고, 1980년대에 개발된 지역은 거의 다 똑같은 식이에요. 개발된 시기 및 재개발, 재건축된 시기에 따라 아주 비슷한 형태를 보이는데 한국은 이 시기가 매우 짧은 편이에요. 1960년부터 현재까지라고 해봐야 고작 60년이니까요. 한국 도시들은 대부분 해방 이후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했으며, 기존 오래된 도시들은 이후 대체로 재개발되었어요. 그러니 전국 어느 도시를 가나 인문환경적 풍경은 대체로 비슷한 모습일 수 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서 200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는 서울에 지어진 아파트나 남쪽 끄트머리 제주도에 지어진 아파트나 비슷해요.

 

도처가 산지라는 지형적 특징이 엄청나게 강한 태백시도 예외일 리 없었어요. 서울 달동네가 본격적으로 사람 사는 제대로 된 가옥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60~70년대에요. 강원도 탄광촌 광부사택이 사람 살 만한 가옥 형태를 갖추게 된 것도 이 즈음이구요. 그러니 둘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당연했어요. 동시기에 형성되고 건축된 가옥들이 서울이라고 슬레이트 단층집 짓고 강원도 남부 탄전지대라고 너와집 지어놓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여기는 도계 광산사택보다 훨씬 좋은데?"

 

강원도 태백시 상장동 남부마을 광부사택촌 가옥들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에서 봤던 장미사택, 유신사택, 명랑사택보다는 훨씬 좋은 집이었어요.

 

 

 

 

 

역시 대기업에서 일해야 복지가 좋아.

 

이런 깨달음을 받아가는 곳인가.

 

여행 오기 전에 강원도 태백시 관련 자료를 찾아봤어요. 여행 목적으로 찾아본 것은 아니었어요. 2022년 8월 29일부터 8월 31일까지 다녀온 강원도 남부 여행의 여행기를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다 본 자료였어요. 강원도 남부 탄광지역 자료들 중에는 태백시를 다룬 자료도 꽤 있었어요. 이 자료 중에는 과거 태백시에서 남쪽에는 대형 탄광 근로자들이 몰려 살았고, 북쪽에는 영세 탄광 근로자들이 몰려 살았다고 나와 있었어요. 남쪽은 장성동, 철암동, 상장동 등이고, 북쪽은 황지동, 삼수동 등이에요.

 

태백시 북쪽에는 영세 탄광 광부들이 몰려 살고 남쪽에는 대형 탄광 광부들이 몰려 살아서 명절 때가 되면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고 해요. 남쪽 광부들은 금의환향하듯 귀성길에 올랐지만, 북쪽 광부들은 고향에 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광부들이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명절이 되면 태백시 남부는 휑하고 북부는 침울한 분위기였다고 해요.

 

도계 광부사택과 비교하면 상장동 벽화마을 구 함태탄광 광부사택촌은 럭셔리 호화주택 그 자체였어요. 여기도 단층 다세대 주택 형태이기는 했지만 도계에 있는 탄광사택에 비할 바가 아니었어요. 역시 좋은 곳에서 일해야 복지도 좋아요. 대도시에서 살아야 보다 나은 거주환경에서 거주할 수 있구요.

 

 

해바라기에 망을 씌워놨어요. 저건 쥐가 올라가서 해바라기 씨 빼먹지 못하게 막기 위해 망을 씌워놓은 것일 거에요.

 

 

상장동 벽화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가 나왔어요.

 

 

바로 탄광에서 앉아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두 광부 그림이었어요. 이 그림이 강원도 태백시 상장동 벽화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에요.

 

 

탄광에서 앉아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두 광부 그림 옆에는 선탄부 벽화가 있었어요. 선탄부는 탄광사고로 순직한 광부의 아내들이 많이 취직하는 곳이었다고 해요. 탄광에서 캐낸 석탄에서 돌과 석탄을 골라내는 일이 선탄이에요.

 

선탄 작업도 석탄 가루가 상당히 많이 날리는 일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선탄부로 근무하던 사람들 중에서도 진폐증에 걸려 고생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고 해요.

 

 

 

 

 

상장동 벽화마을을 계속 돌아다녔어요. 저녁 7시가 넘었어요. 동네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었어요. 불은 켜져 있었지만 동네는 매우 조용했어요.

 

 

붉은 칠이 벗겨진 철제 우편함. 벽에 매달려 있어야할 우편함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어요.

 

'우체부 아저씨는 여기에 우편물 집어넣을 때마다 이 집에 절해야겠네.'

 

우편함이 바닥에 놓여 있으니 우편함에 우편물 집어넣으려면 바닥에 주저앉아야죠. 우편물 올 때마다 집배원으로부터 절 받는 집이었어요.

 

 

 

 

'예전에는 이 동네 어땠을까?'

 

이 동네에 사람이 많이 살고 함태탄광도 가동되던 시절 풍경이 궁금해졌어요. 예전에 탄광은 3교대로 작업했다고 해요. 그래서 야심한 밤에 출근하는 광부들도 있었다고 해요. 야심한 밤에 출근하는 광부들이 있다는 말은 반대로 야심한 밤에 퇴근하는 광부들도 있다는 말이에요. 그때였다면 항상 거리에 사람이 있고 북적이는 동네였을지 궁금했어요.

 

 

계속 벽화를 감상하며 걸었어요.

 

 

 

'이 동네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

 

강원도 태백시 상장동 벽화마을이 주민들도 좋고 방문객도 좋은 멋진 관광지로 잘 개발되었으면 좋기를 바랬어요. 기본적으로 자연풍경도 아름다운 동네니까 잘만 하면 어떻게 잘 될 거 같았어요.

 

밤에 봤다고 자연풍경 아름다운 거 모르는 거 아니에요. 까만 건 하늘이고 새까만 건 앞산이고 시꺼먼 건 하천이기는 했지만 명도 차이로만 본 풍경도 충분히 많이 아름다웠어요. 솔직히 한밤중에 이런 자연 풍경을 여기 아니면 어디에서 그렇게 편하게 봐요. 그런 한밤중 오직 명도 차이로 느끼는 자연풍경 보려고 산에 갔다가는 독사한테 깡 물리고 멧돼지한테 꿀꿀 들이받힐 수 있는데요. 이렇게 어두울 때 안전하게 자연풍경 보고 동네도 구경할 수 있는 곳도 흔하지 않아요. 정말 태백시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곳이었어요. 어두워졌을 때까지도 흥미로운 곳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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