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람이 있다 (2019)

서울 도봉구 도봉동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무수천 무수골 마을 풍경, 지명 유래

좀좀이 2019. 6. 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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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봉구 도봉동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무수골 마을 풍경은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었어요.



서울 도봉구 도봉동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무수천 무수골 마을은 상당히 오래된 마을이에요. 조선 시대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마을이거든요.




'무수리'라는 지명에서 '무수'는 우리말 무쇠에요. 이 무쇠를 한자로 쓰면 주철 鑄鐵, 수철 水鐵 이라고 표기해요. 그래서 도봉산 자락 무수골 마을은 옛날 기록을 보면 수철동으로 적힌 기록도 있다고 해요.




무수골 마을을 무수울이라고 하기도 해요. 무수울은 전국 여러 지역에서 사용하는 지명 중 하나에요. 무수울 이름이 붙은 지역 공통점은 골짜기나 산 아래에 위치한 마을로 물이 많은 곳이라는 점이에요. 골짜기에 항상 많은 물이 흐르기 때문에 '물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무수울, 무수골로 변했다는 말도 있어요. 옛날에는 무수골을 무수동, 무시울, 모시울이라고도 불렀다고 해요.




현재 무수골 마을은 無愁洞 이라는 한자를 써요. 근심없는 마을이라는 뜻이에요.


일단 공식적인 설명을 보면 무수골 마을 이름 유래는 조선시대 세종 대왕과 관련이있어요. 세종의 아홉째 아들 영해군의 묘가 무수골에 있어요. 세종대왕이 생전에 아들의 묘에 왔다가 원터 약수터의 물을 마시고 물 좋고 풍광 좋은 이곳은 아무 근심이 없는 곳이라 말했대요. 그 발언에서 비롯된 것이 한자로 無愁洞 - 즉 근심 없는 마을이라는 것이에요.




이 외에 무수울에 있는 영해군 묘 형국이 선인무수지형 仙人舞袖之形 - 즉 신선이 소매를 펼치고 춤을 추는 형국이라서 무수동 舞袖洞 이라고 했다가 무수동 無愁洞 이 되었다는 설도 있어요.




서울 도봉구 도봉동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무수천 무수골 마을의 가장 큰 특징은 토박이가 많이 거주한다는 점이에요. 학문적인 의미에서 토박이는 3대 이상 거주하고 있는 사람을 의미해요. 누구나 당연히 막 이주해온 사람을 토박이라고 하지 않아요. 막 이주해온 사람은 이주 1세대에요. 이주 1세대가 자식을 낳아 그곳에서 자라고 커서 계속 거기에서 살면 이주 2세대에요. 보통 이주2세대들은 자신들이 동네 토박이라고 말해요. 그러나 학문적으로는 토박이가 아니에요. 이 이주 2세대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계속 그 동네에서 살아야 학문적으로 토박이라고 해요.


서울은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토박이가 거의 없는 지역이에요. 그래서 서울 방언은 연구하기 유독 어려운 방언으로 손꼽혀요. 현재 서울 자체가 한국전쟁 이후 급격히 확장하면서 그 영역을 갖게 되었고, 여기에 전국 각지 -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 대거 서울로 상경했거든요. 이는 서울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기도 중 서울과 접해 있는 지역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이와 같은 이촌향도 현상에서 과거 양상과 현재 양상의 차이라면 현재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집단도 존재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서울보다 오히려 서울 근교 경기도 도시에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토박이가 많이 거주하는 무수골 마을은 상당히 독특한 마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무수골 마을 골목길을 계속 돌아다녔어요.





무수천 무수교가 나왔어요.


무수교


아직 다리를 건너지 않고 계속 도봉초등학교가 있는 쪽 골목길을 돌아다녔어요.










노란 돼지저금통이 다쳐서 반창고가 붙어 있었어요.


돼지저금통


꽤 많이 다쳤나봐요. 저 정도면 중환자에요.








동네 깊숙히 들어갔어요.





'도봉암'이라는 절이 있다는 표지판이 있었어요.




도봉암 앞에 도착했어요.


도봉암


안으로 들어갔어요.


도봉산 당집 도봉암


도봉산


서울 도봉구 도봉동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무수천 무수골 마을 풍경, 지명 유래


서울 무속신앙


"안녕하세요."

"예."

"여기 절인가요?"

"아, 여기는 절이 아니라 당집이에요."


앞에 불상이 서 있어서 절인 줄 알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여기는 당집이었어요.


서울 도봉구 무속신앙


인사를 드리고 다시 밖으로 나왔어요.




건물 건설현장에서 공사로 인해 발생한 소음이 조용한 마을 하늘에 울려퍼지고 있었어요. 여기도 아마 언젠가는 서울의 흔한 원룸, 빌라촌 같은 풍경이 될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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