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달동네가 얼마나 있을까?


서울에는 달동네가 정말 많아요. 일본강점기 시절에도 달동네 비슷한 것은 있었다고 해요. 그 당시에는 토굴 위에 움막을 지어서 사는 집들이 모여 있는 토막촌이 곳곳에 있었대요. 토막촌은 현재 서울에서 찾아볼 수 없어요.


서울의 달동네는 빠르면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몰려 살며 형성되었고, 대체로 1960~1970년대 고도성장기 시절 극심한 이촌향도 현상과 맞물리며 생겨났어요. 초기 달동네 형태는 판자촌이었어요. 부실한 건축자재를 이용해 날림이라 불러도 될 수준으로 집을 짓고 살았으니까요. 판자촌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달동네는 서울에 몇 곳 있어요. 대표적인 곳이 바로 강남구 구룡마을이에요.


현대에 들어와서 판자촌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단지 옛날과 달리 집을 짓는 데에 사용하는 건축자재만 바뀌었을 뿐이에요. 정말 열악한 곳은 비닐하우스를 주거용으로 삼고 있고, 그나마 조금 양호한 곳은 조립식 건물이나 컨테이너를 이용해 집을 만들고 사용해요.


판자촌은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집 같은 형태로 바뀌어가요. 최소한 담장은 시멘트 벽돌로 쌓아놓고, 흙벽 외부에 시멘트라도 발라놔요. 슬레이트 지붕도 올라가구요. 이런 집들이 처음부터 벽돌로 제대로 지었는지, 아니면 흙벽에 시멘트만 칠했는지는 외벽을 눈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어요. 저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그 동네에 부서진 벽을 보고 대충 판단하는 거죠. 오늘날 서울의 달동네라고 하는 곳을 보면 대체로 최소한 외벽에 시멘트를 발라놓았고, 슬레이트 지붕이 올라가 있어요.


달동네가 더 발전하면 평범한 단독주택, 또는 원룸 건물 및 빌라가 많이 올라가 있어요. 이런 곳은 얼핏 보면 그냥 산 비탈면을 따라 저기까지 저렇게 건물을 올리나 싶은 생각만 들지 달동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어디까지 달동네라고 봐야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어요. 명확한 기준을 만들려고 한다면 만들 수야 있을 거에요. 건물이 무허가 건물인지를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을 거고, 거주민의 소득수준을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을 거에요. 그러나 이런 건 통계 및 토지대장을 싹 다 뒤져봐야 알 수 있는 거고, 그냥 돌아다니는 사람 눈으로 봐서는 알기 매우 어려워요.


그러나 일반적으로 '달동네'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어요. 산비탈을 따라 허름한 건물이 쭈르르 지어져 있는 경우요. 달동네 집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단층 슬레이트 지붕 가옥을 떠올리구요.


서울의 달동네를 찾아보았어요. 노원구에 달동네가 몇 곳 있었어요. 그 중 가장 유명하고 큰 곳은 바로 중계본동 백사마을이었어요.


2019년 5월 2일. 노원구에 있는 달동네를 가보기로 했어요. 첫번째는 바로 중계본동 백사마을이었어요. 백사마을을 보고난 후 노원구에 있는 다른 달동네를 보러 갈 계획이었어요.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은 지하철로 갈 수 없었어요. 백사마을까지 갈 방법을 찾아보았어요. 백사마을 입구는 중계본동종점 버스 정류장이었어요. 정류장 번호는 11409였어요. 여기까지 가는 버스는 1141, 1142번 버스였어요. 중계본동종점 11487 정류장에는 1141, 1142번 버스가 정차해요. 1141번 버스는 하계역, 태릉입구역, 석계역에서 정차하고, 1142번 버스는 상계역, 노원역, 창동역에서 정차해요.


이것 말고도 가는 방법이 더 있기는 했어요. 그러나 저는 의정부에서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환승을 최대한 적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창동역으로 가서 1142번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을 선택했어요.


2019년 5월 2일 12시 34분. 중계본동종점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중계본동종점


중계본동종점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자 백사마을이 보였어요.



중계본동종점에서 백사마을 가는 길을 찾는 것은 매우 쉬웠어요. 굳이 지도를 보고 길을 찾지 않아도 그냥 찾을 수 있었어요.


'어느쪽으로 갈까?'


백사마을은 규모가 꽤 큰 곳이었어요. 달동네 특성상 시작이 정말 중요했어요. 그냥 정말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무지무지 중요해요. 달동네는 길이 엄청나게 많아요. 간신히 한 명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길도 있고, 넓은 길도 있어요. 그러다보니 차근차근 다 보기 매우 어려워요. 길 잃어서 안에서 출구 찾느라 헤멜 걱정은 안 해도 되요. 달동네 특성상 아래로만 내려가면 어떻게든 빠져나올 수 있거든요. 그러나 미로 같은 골목을 돌아다니며 꼼꼼히 보려면 시작 지점을 잘 선택해야 해요.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닐 것이었어요. 호구조사하거나 지도 만들러 가는 게 아니었어요. 카카오맵, 네이버 지도는 달동네 돌아다니는 동안 거의 전혀 도움이 안 되요. 발 가는대로 가고 직감적으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시작을 잘 골라야 했어요.


저는 반시계방향으로 돌기로 했어요. 일단 시장골목으로 갔어요.


백사마을 시장골목


시장골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백사마을 규모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었어요.



잡화, 의류를 판매하는 가게도 있었어요.


백사마을 전파상


이 가게는 전파상 같았어요.


중계본동


시장골목 큰 길로 이어지는 작은 골목도 있었어요.



이 작은 골목은 나중에 들어가보기로 했어요. 관광지도를 들고 돌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처음부터 골목길 막 들어가다보면 나중에 정신없어서 헤메기 딱 좋거든요.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달동네 - 백사마을





시장골목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이런 저런 가게가 시장골목을 따라 있었어요. 가게 사이에 위로 올라가는 골목이 있었구요.


A4용지에 인쇄해 붙인 벽보가 하나 있었어요.


벽보


벽보 내용은 다음과 같았어요.


백사마을 재개발에 대해 알림

서울시의 계획되로 개발이 된다면 내 땅을 평당 약 400만원대의 헐값으로 보상해준다는데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주거지보전지역 (13000평)을 헐값에 매각하고 12800평을 공원을 조성해서 서울시에 꽁짜로 주어야 합니다. 미친 짓입니다.

서울시의 주장대로 개발하면 20평 토지소유자가 34평 입주 시에 ___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는데 누가 입주를 할 수 있겠습니까?

내 소중한 재산일 지키고 빠른 개발사업을 위해서는 마을주민 모두 단결해야 합니다.

백사마을 주민 올림


제목 앞부분이 찢어져서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거기에는 백사마을이 있었을 거에요. 다른 동네 이름을 저기 적어놓고 벽보를 붙였을 리는 없으니까요. 중계본동 백사마을도 재개발로 시끄러운 동네 중 하나에요.


백사마을 피아노학원


중계본동 백사마을 시장골목에는 피아노 학원도 있었어요. 어렸을 적에는 동네마다 피아노 학원이 최소 한 곳은 꼭 있었어요. 요즘도 예전처럼 피아노 학원이 바글바글한지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시장골목을 따라 계속 직진하자 갈림길이 나왔어요.


중계로6가길


왼쪽은 중계로6가길이고, 오른쪽은 중계로6길이에요. 저는 왼쪽 중계로6가길로 먼저 갔어요.


리어카와 자전거가 있었어요.


리어카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았어요.


서울


조금 더 걸어가자 고물상이 나왔어요.


고물상


"이거 뭐야?"


하얀 날개가 달린 씨앗이 마구 날리고 있었어요. 거대한 먼지조각이 떼거지로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았어요. 먼지나 솜은 아니었어요. 씨앗이 봄날의 눈송이처럼 공기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어요.




하천이 하나 있었어요. 하천 바로 옆으로도 집이 있었어요.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


백사마을 안을 계속 돌아다녔어요.






벽에 재개발사업 촉구 결의집회 벽보가 붙어 있었어요.


재개발사업 촉구 결의집회 벽보


이 벽보는 꽤 오래된 벽보였어요. 중계본동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 촉구 결의집회일이 2015년으로 되어 있었거든요.


교회가 하나 나왔어요.


백사마을 교회


백사마을에 있는 교회 중 하나로, 시온교회였어요. 교회 첨탑 십자가가 없어졌어요.



조그마한 공원도 있었어요.


중계본동 백사마을 공원



계속 골목길을 살피며 걸었어요.




중계본동 백사마을은 범죄제로화 사업구역이래요.


중계본동 백사마을은 범죄제로화 사업구역


이것을 보고 백사마을을 둘러보며 봐야할 곳을 대충 파악했어요.



하얀색 개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떠났다는 말을 들었지만 여기저기 사람들 살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였어요.







백사마을에도 벽화 작업이 이루어졌어요.


백사마을 벽화


불암산 자락에서 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길은 계속 이어졌어요.



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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