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람이 있다 (2019)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모산 달동네 구룡마을

좀좀이 2019. 5. 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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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9일, 강남3구에 있는 달동네 세 곳을 보러 출발할 때였어요.


'현금 인출해 가야겠다.'


저는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아요. 제가 현금을 인출하는 경우는 오직 하나 - 지하철 카드를 충전할 때에요. 그런데 이날은 왠지 현금을 조금이라도 들고 나가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어요. 어디에 그 현금을 쓸 지 딱히 생각해 놓은 것은 없었어요. 그냥 왠지 현금이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부러 출발하기 전에 편의점에 들려 ATM에서 현금 만원을 인출했어요.


"구멍가게 여기 또 있네?"


구룡마을은 단순한 판자촌 달동네가 아니라 정말로 하나의 마을이었어요. 이곳 안에는 구멍가게, 미장실, 점집, 교회 등이 있었어요. 마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얼추 다 있었어요.


'음료수나 하나 사서 마셔야겠다.'


마침 음료수가 마시고 싶었어요.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주인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렸어요.


"여기 가게 맞죠?"

"예, 맞아요."

"여기 음료수 있나요?"

"거기 그쪽에 있어요."


어떤 음료수가 있는지 살펴보았어요. 종류가 많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료수는 있었어요. 제일 무난한 콜라를 마시기로 했어요. 날이 덥지는 않았지만 구룡마을에서 열심히 돌아다녔더니 시원한 것을 마시고 싶었어요.


"콜라 시원한 것 없나요?"

"그건 여기 있어요."


아주머니께서 가정용 냉장고에서 콜라캔 하나를 꺼내주셨어요. 돈을 내고 콜라를 구입한 후 아주머니께 여쭈어보았어요.


"여기 사진 하나 찍어도 되나요?"

"사진요? 여기 뭐 볼 게 있다구요."

"아...제가 사진 찍는 것이 취미라서요."

"예, 찍어요. 나만 찍지 말구요."


아주머니께서 가게에서 나가셨어요. 가게 사진을 찍었어요. 가게 사진을 찍고 카메라를 끄는 순간 에러가 발생했어요. 다시 켜고 사진을 확인해 보았어요. 가게 안을 찍은 사진이 저장되어 있지 않았어요. 아주머니께 죄송하지만 사진이 저장되지 않아서 다시 한 번 찍어도 되냐고 여쭈어보았어요. 아주머니께서 그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사진을 다시 찍었어요.


구룡마을 구멍가게


가게 안에는 연탄 난로가 있었어요. 술, 생수, 음료수, 과자, 라면도 있었어요.


개포동 구룡마을 가게


강남구 구룡마을


사진을 찍은 후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었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여기 이 가게는 주문하는 것이 적어서 구입할 때 할인을 크게 못 받는다고 하셨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언제 여기로 오셨어요?"

"나는 31년 전에 왔어요."

"31년 전이요?"

"예. 내가 1940년에 태어났고, 여주 출신이에요."

"1940년이요?"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늙어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러면 한국전쟁도 기억하세요?"

"한국전쟁도 기억하죠. 그런데 내가 살던 여주는 서울만큼 그렇게 크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전쟁은 겪었어요."


아주머니께서는 한국전쟁도 직접 목격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여기 돌아다니다 보니 공가랑 철거된 집 많이 보이던데요."

"예, 이 마을에서 사람들이 원룸을 받았대나 어쨌대나...보상 받고 많이 나갔어요."

"아, 강제 퇴거 같은 게 아니라요?"

"예, 아직까지 강제 철거는 없어요. 다 보상 받고 자발적으로 나가서 빈 집들이에요."

"정말 다행이네요."


구룡마을을 돌아다니며 빈 집을 꽤 많이 봤어요. 부서진 집도 여기저기 있었구요. 다행히 그 집들이 강제 퇴거 및 강제 철거된 집은 아니래요. 보상 받고 나간 집이 그렇게 비어 있고 부서진 거래요.


"여기는 비록 허름하지만 주민들끼리 화목하게 살고 있어요."

"예."


아주머니께서는 여기가 많이 허름한 동네이긴 하나 사람들끼리 화목하게 살고 있는 마을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어디선가 읽은 글이 떠올랐어요. 이런 마을이 재개발될 때, 단순히 보상금으로 집을 못 구하는 문제 뿐만이 아니라 커뮤니티가 박살나는 문제도 심각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이건 제가 생각해봐도 진지하게 연구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였어요. 가난할 수록, 못 배웠을 수록 정보 취득에 매우 취약해요. 그렇기 때문에 빈민으로 갈 수록 알음알음 인맥으로 돈벌이를 찾고 소식을 전해듣는 식으로 획득하는 정보가 획득한 정보 전체에서 엄청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해요. 이 '인맥'이라는 것이 마을 커뮤니티인데, 재개발로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지며 이 정보 획득 경로가 산산조각나버리는 거에요.


"여기 난방은 전부 연탄인가요? 가스도 있나요?"

"아, 여기는 당연히 전부 연탄으로 난방하죠."


아주머니께서는 여기 모든 집이 난방을 연탄으로 하고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여기 절은 없나요? 교회는 보이던데 절은 못 봐서요.

"교회는 내가 처음 왔을 때부터 있었고, 절은 없어요."


아주머니께서 구룡마을에 교회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이 마을에 절은 없다고 하셨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아주머니께서 구룡마을에 오신 후 여기에 큰 화재가 두 번 일어났었다고 알려주셨어요. 구룡마을 꼭대기에 쓰레기 수북히 쌓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때 화재로 불탄 것들 모아놓은 것이라고 하셨어요.


실제 구룡마을에는 큰 화재가 2번 있었어요. 하나는 2014년 11월 9일 7-B지구에서 처음 발생해 8지구 전역까지 확산됐고 오후 3시 34분께 진화된 화재에요. 이 화재로 인해 할아버지 한 명이 숨졌고 구룡마을 58080제곱미터 중 900제곱미터, 무허가주택 16동 63세대가 불에 타서 이재민 136명이 발생했대요.


두 번째 화재는 2017년 3월 29일 오전 8시 52분에 구룡마을 제7B지구 소망교회에서 시작된 화재에요. 이 화재 발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어요. 화재 발생 1시간 40분 만에 큰 불길이 잡혔고 주민 30여 가구가 대피했대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이제 구룡마을을 떠날 때가 되었거든요.


구룡마을


종이 매달려 있었어요.




벽보가 붙어 있었어요.


구룡마을 벽보


맨 앞에 붙어 있는 것은 A4용지로 출력해 붙여놓은 구룡마을 CCTV설치 관련 의견 수렴 안내문이었어요. 이 외에 구룡마을 실시계획인가 직전 거주민의 총 궐기 대회 주민설명회 벽보도 붙어 있었어요.


구룡마을 우편함


조금 더 걸어가자 우편함이 나왔어요.


강남구 우편함


우편함은 도착 경과 날짜로 정리되어 있었어요.


개포동 구룡마을


대모산 판자촌 구룡마을


개포1동 판자촌


다시 제2방수구를 건너려고 갔어요.


대모산 달동네 구룡마을


서울 판자촌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모산 판자촌 구룡마을


제2방수구를 건넜어요.




허물어진 공가가 있었어요. 내부를 들여다보았어요.


구룡마을 공가


버려진 공가 안에는 쓰레기가 가득했어요.


입구쪽을 향해 계속 걸어갔어요.












'서울시는 실시계획 인가 하루빨리 발표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이 매달려 있었어요.


대모산 빈민촌 구룡마을


구룡마을 소방파견소까지 왔어요.


구룡마을 소방파견소


구룡마을 소방파견소에는 구룡마을 전체 지도가 걸려 있었어요.


구룡마을 지도


뒤를 돌아보았어요.


대한민국 서울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 대모산 판자촌 달동네 구룡마을에서 나왔어요. 바로 앞에는 이제 곧 철거될 개포주공1단지 아파트가 있었어요.


이렇게 구룡마을 돌아다니는 것을 마무리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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