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가면 케밥집이 정말 많아요. 지하철에서 나오는 순간 케밥 냄새가 코를 자극해요. 언젠가부터 이태원은 우리나라 케밥의 중심지가 되어버렸어요. 케밥이 할랄 음식의 대표격이 되어서 그럴 거에요.
한때 이태원에 있는 케밥집을 여기저기 다 가봤어요.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케밥 가게가 그렇게 흔하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양고기 케밥은 실상 이태원 아니면 먹을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태원에 가면 케밥을 먹곤 했어요. 저렴하게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이태원 가서 양고기 케밥을 먹는 것이었거든요.
이태원 케밥집을 여기저기 마구 돌아다녀본 결과, 가장 맛있는 케밥 가게는 이태원 모스크 올라가는 길에 있는 미스터 케밥이었어요. 가게는 조그맣고 안에 좌석도 별로 없지만 맛 만큼은 이태원에서 가장 맛있는 케밥집이었어요.
이후 한동안 이태원 가서 케밥을 먹지 않았어요. 하도 케밥을 먹어서 케밥 말고 다른 것 좀 먹고 싶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몇 년 간 이태원에서는 케밥을 안 먹었어요. 이태원 자체도 별로 가지 않았구요.
그러다 오늘 이태원에 갔어요. 혼자 갔기 때문에 거창한 것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게다가 딱 밥시간이었어요.
'오랜만에 시티 사라나 갈까?'
잠깐 고민했어요. 그러나 인도네시아 음식을 파는 시티 사라 말고 큰 길로 내려가는 쪽에 있는 인도 카레 뷔페를 더 가고 싶었어요. 인도 카레 뷔페로 갔어요.
"이제 금요일만 뷔페로 운영해요."
예전에 인도 카레 뷔페로 운영했던 그 가게에서 나왔어요. 다른 곳을 들렸다 의정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이태원에서 뭐 먹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딱히 뭔가 떠오르는 게 없었어요. 보이는 것은 오직 케밥 가게 뿐이었어요.
그래, 오랜만에 미스터 케밥 먹자.
미스터 케밥 안 간 지 꽤 되었어요. 비록 안 간 지 몇 년 되기는 했지만 여기는 믿고 먹을 수 있는 곳이었어요. 왜냐하면 왠지 장사가 안 될 것 같은 그 자리에서 희안하게 꾸준히 케밥을 팔며 장사하고 있었거든요. 지나갈 때마다 한 명은 안에서 케밥을 먹고 있었어요.
그리고 나는 여기 들어가서 세 번 놀랐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어요. 웬 한국인처럼 생긴 사람이 점원이었어요.
'여기 맛 완전 이상해진 거 아냐? 여기 원래 터키인들이 장사하던 가게인데.'
한국인처럼 생긴 점원은 안에 있는 터키인들과 터키어로 대화하고 있었어요. 터키어를 무지 잘 했어요. 저는 한국어로 주문했어요. 점원이 딱 봐도 한국인처럼 생겼기 때문에 한국어로 주문했어요. 점원은 한국어를 잘 했어요.
가게 안에서는 희안하게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베크어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터키인 두 명이 점원과 이야기하는데 계속 우즈벡 우즈벡 거렸어요.
제가 주문한 케밥이 나왔어요. 여기에서 첫 번째로 놀랐어요.
"이거 더 맛있어졌네?"
예전 미스터 케밥보다 맛이 더 업그레이드되어 있었어요. 6900원짜리 양고기 케밥으로 주문했어요. 양고기 잡내가 아예 없었어요. 딱 고소한 양고기 맛만 가득했어요. 소스와 야채 밸런스도 뛰어났어요. 예전에 먹었을 때보다 2배 더 맛있게 변해 있었어요.
케밥을 다 먹었어요. 양은 괜찮았어요. 그러나 배가 고팠기 때문에 하나 더 먹고 싶었어요. 원래 케밥은 한 자리에서 혼자 2개 먹으면 안 되요. 그러면 돼지 되요. 케밥은 열량이 꽤 높은 음식이거든요. 그러나 하도 맛있어서 하나 더 먹고 싶었어요. 고민되었어요. 하나 더 먹을까 말까 고민했고, 만약 먹는다면 이번에는 닭으로 먹을지 아니면 또 양으로 먹을지 고민했어요.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터키인 한 명이 들어왔어요. 점원에게 터키어로 심부름을 시켰어요. 점원이 춥다고 점퍼를 껴입고 밖으로 나갔어요.
'양고기로 하나 더 먹자.'
터키인 아저씨에게 가서 양고기 하나 달라고 주문했어요.
"여기 사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미스터 케밥 사장님은 원래 엄청 뚱뚱한 터키인이었어요. 막 케밥 굽는 기계에 올려놓은 케밥 고기 뭉치처럼 엄청난 몸매를 자랑하시는 분이었어요. 그분은 잊을 수가 없어요. 케밥도 잘 만드셨지만 왠지 참 케밥집에 잘 어울리게 생긴 분이셨거든요. 그래서 지나가다 미스터 케밥 사장님 보면 왠지 케밥 제대로 만들 거 같아서 먹고 싶어지곤 했어요. 그런데 주문을 받는 터키인 아저씨는 왜소한 몸매였어요.
"제가 사장이에요."
"아뇨, 저 사진 속..."
"저 사람이 저에요. 저 수술로 살 뺐어요."
"예?"
두 번째로 놀랐어요.
위 사진 속 터키인이 미스터 케밥 사장님이에요.
벽에 붙어 있는 사진 속 엄청난 몸매를 자랑하시는 남자가 바로 위 사진 속 터키인과 동일 인물이에요. 완전 다른 사람이었어요. 계속 사진과 터키인 사장님 얼굴을 비교해서 보았어요. 이후 자리에 앉아서도 계속 정말 동일 인물인지 살펴보았어요. 동일 인물 맞았어요.
양고기 케밥으로 하나 더 주문했어요.
"맵게 드려요?"
"예."
아까는 안 맵게 먹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매운 걸로 먹기로 했어요.
케밥에 이것저것 꽉 채워놨는데 이것이 잘 말려 있었어요.
두 개 먹기 잘했다.
똑같은 양고기 케밥인데 매운 것과 안 매운 것은 달랐어요. 맛 자체가 달랐어요. 다음에 여기 가서 주문할 때는 반드시 그냥 '양고기 케밥이요'라고 하지 말고 정확히 매운 것인지 안 매운 것인지도 구분해서 주문할 거에요. 안 매운 것이 순하고 부드러운 맛이라면 매운 것은 맛이 강렬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만약 양고기 케밥을 처음 먹어보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안 매운 것이 입에 더 맞을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아까 그 직원 한국인이에요?"
터키어 잘 하는 한국인 직원 참 잘 뽑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터키어 잘 하는 한국인 청년은 기껏해야 한국외대 터키어과 학생 뿐이거든요. 터키인들과 점원이 잡담하는 걸 보니 터키어를 정말 유창하게 잘 했어요. 아주 원어민 수준이었어요.
"아니에요. 우즈벡이에요."
여기에서 세 번째로 놀랐어요.
한국인처럼 생겼는데 우즈벡인이었어요. 그제서야 왜 그렇게 터키어를 유창하게 잘 했는지, 그리고 아까 터키인 두 명이 왜 우즈벡 우즈벡 거렸는지, 매장 안에서 왜 우즈베키스탄의 우즈베크어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우즈베크인도 터키인과 마찬가지로 튀르크인이고 크게 보면 둘 다 같은 튀르크 문화권이거든요. 우즈베크인들이 음식을 잘 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그런지 중동-터키 식당에서 일하는 우즈베크인들이 은근히 조금 있어요.
나중에 또 이태원에서 가볍게 식사 겸 간식으로 뭔가 먹고 싶다면 미스터 케밥을 갈 거에요. 케밥집이 바글바글한 이태원에서 치열하게 경쟁해 살아남은 이유가 있는 집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