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2018. 2. 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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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3장 06화


 '오늘도 라키사 안 오네.'


 아다비아 문병을 다녀왔던 날 저녁, 라키사는 퇴근할 때 이고에게 몸이 안 좋아서 일을 잠시 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고는 알았다고 이야기하고는 다 나으면 돌아오라고 이야기했다. 라키사가 일당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자 이고는 달력을 쳐다보았다.


 "이번달은 4주 있으니까 4일에 3일 해서 7일까지는 돈 그냥 줄께. 그렇지만 그거 넘어가면 어쩔 수 없지."

 "알았어요."


 그렇게 말하고 서점을 나간 이후 단 한 번도 서점에 안 오고 있다. 오늘은 2월 16일. 그날로부터 딱 2주일이 되는 날이다. 일주일이야 쉬어도 돈을 준다고 했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벌써 2주일째다. 일주일 넘고 하루 이틀 정도는 그냥 많이 아픈가보다 했다. 그렇지만 열흘이 넘어가자 별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진짜 쓰러져서 골골거리고 있는 거 아니야? 서점 일이 싫어서 다른 일 찾아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에드자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고향 돌아가기로 결심했나? 바하르가 소식을 전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단 죽지는 않은 것 같다. 죽었다면 바하르가 나에게 달려와 바로 소식을 전해줬을테니까. 얘가 이렇게 아무 말 없이 2주일간 안 나올 애가 아닌데 왜 안 나오지?


 요즘 밤마다 이고는 루즈카 집에 간다. 루즈카는 아다비아 때문에 집에서 나올 수 없다 보니 이고가 아침에 시장 가서 장 보고 밤에 루즈카 집에 물건을 가져다주고 있다. 딱히 시장에서 구입한 것이 없어도 매일 밤 가기는 하지만 말이다. 둘이 연인 사이이니 이상할 거야 없지. 오히려 지금까지 이고가 서점에만 틀어박혀 있으면서 루즈카와 데이트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이상한 거다. 루즈카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얼굴 표정이 아주 어둡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다비아도 별 일 없는 것 같다. 이고가 말해준 바에 의하면 치롤라도 이제 아다비아가 쿠룬나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치롤라는 아다비아를 보더니 더럽고 역겹다고 외치며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고 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꼭 껴안아주면서 다시 꼭 돌아오라고 이야기해줬다고 한다. 그 일 이후 아다비아는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며칠 전, 이고가 이제 다시 아다비아 병문안을 다녀와도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아다비아 병문안 언제 가지?'


 어쨌든 아다비아야. 눈이 멀었든, 얼굴이 흉측해졌든 아다비아다. 아다비아가 진짜 사람을 잡아먹었을까? 아무리 이 질문을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아다비아를 떠올릴 때마다 따라서 같이 나온다. 아다비아가 사람을 잡아먹었을 리 없어. 아무리 작년 여름 서점에 와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설마 진짜 그랬겠어. 어떻게 해서 아다비아가 쿠룬나스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아다비아는 사람을 잡아먹은 적이 없다고 믿는다. 말을 오해받기 좋게 말할 뿐이지, 진짜 나쁜 애는 아니었잖아. 아다비아가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잡아먹는다구? 말도 안 돼. 내가 아는 아다비아는 그런 짓을 할 애가 아니다.


 내가 위기에 빠졌을 때 먼저 나서서 도와준 사람이 아다비아다. 어떻게 해야 아다비아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모른다. 이미 멀어버린 눈과 흉측해진 외모가 원래대로 돌아올 일은 없겠지. 그런 건 저주술로 가능한 일이 아니야. 그것은 키란님도 하시지 못할 거다. 하지만 눈과 외모를 제외한 나머지만은 예전의 아다비아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아다비아에게 받은 것만큼은 아다비아에게 돌려주고 싶다. 내게는 은인 같은 존재니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켈라자야가 내 자리에 드러누워 자고 있다. 이불을 덮지 않고 몸을 잔뜩 움추렸다. 뒤척이다 이불을 다 차냈나보다. 지금 나와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너야 원래 제정상이 아니었으니 더 나빠질 것도 없는 건가? 아무리 곤히 자고 있다지만 이불 좀 다시 잘 덮고 잘 것이지. 이불을 펴서 켈라자야에게 잘 덮어주었다. 켈라자야는 몸에 이불이 덮히자 몸을 쭉 뻗었다. 켈라자야는 나빠질 것이 없으니 앞으로 계속 좋아지기만 하겠지?


 켈라자야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 살짝 동그란 얼굴에 살짝 날카로워보이는 눈초리와 뭉툭해보이는 코. 간간이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 마딜인 같지만 자세히 볼 때마다 마딜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무언가 이질적이다. 특히 저 간간이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 갈색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마딜인은 본 적이 없다. 아드라스인도 머리카락 색깔은 새까맣고. 그런데 얘는 희안하게 갈색 머리카락이 간간이 섞여 있다. 분명히 마딜인이 맞는데 왜 마딜인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켈라자야는 내가 자기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는지 신경쓰지 않고 곤히 잘 자고 있다. 이불을 잘 덮어주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도 돌고 있다.


 하여간 볼 수록 신기한 애야. 켈라자야와 알고 지낸지 꽤 되었지만 얘가 어떤 애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밤새 이 위험한 도시를 돌아다니고 아침이 되면 서점으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는 것,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을 계속 찾으려 한다는 것, 그리고 내가 친구로써 좋아한다는 말을 좋아하는 남자에게 청혼을 받은 여자처럼 너무나 좋아한다는 것 정도다. 아, 성질이 더러워서 따귀를 때리는 것에 거침이 없다는 것도 있네. 그거 말고는 아직까지도 아무 것도 모른다. 얘의 과거도, 현재도 모른다. 내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감도 못 잡겠다. 뭔가 지독한 일들을 겪었던 것 아닐까 추측은 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그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다. 이고, 루즈카, 블랑쉬블르는 켈라자야에 대해 무언가 아는 것 같지만 내게 전혀 이야기를 해주지 않구.


 방에서 나왔다. 오늘도 라키사는 안 올 건가 보다. 오지 말라지. 오고 싶으면 오고 말고 싶으면 안 올 거다. 설마 그날 내가 뱉은 말에 충격받아서 못 오는 건가? 그날 그 말이 심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잖아. 감비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두 번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정말 많이 이야기했고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라키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 행동에 대한 결과가 바로 감비르가 아다비아를 죽이려 든 것이었다. 이건 알면서 일부러 그런 거다. 그래서 더 용서가 안 된다. 실수라 할 수가 없다. 몇십 번을 내가 잘못한 건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감비르가 그런 짓을 저지를 거라고는 나도 예상을 하지 못하기는 했다. 그래도 정신 나간 놈한테, 아다비아가 쿠룬나스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 좋은 행동을 보일 리 전혀 없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되는 놈한테 그걸 다 말해버린 건 아다비아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말한 거다. 알아서 하겠지. 내가 껄끄러워서 그만둘건가? 그러든가 말든가. 어차피 내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니 나도 모르겠다. 자기 일이니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그만두면 아쉽기는 할 거다. 그렇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가 잘못했으니 제발 남아달라고 이야기하지는 않을 거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고, 그랬다가는 라키사는 또 그럴 거니까.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라키사의 그 행동만큼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너무 말을 심하게 한 것 아닌가 생각을 고쳐보려 해도 감비르가 아다비아를 죽이려 들던 장면이 떠오르면 라키사가 너무나 미워진다. 나만 감비르가 미쳤다고 한 게 아니잖아. 모두가 감비르가 미쳤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왜 그것을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는 거야? 그렇게 감비르가 많이 좋은 거야? 그런 거라면 대놓고 나는 감비르가 좋다고 우리들에게 확실히 밝히면 될 거 아냐. 왜 내 말을 안 믿으려 하는지 답답하다. 답답한 정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화난다. 라키사 눈에 내가 평소에 어떻게 비쳐졌길래 나를 그렇게 못 믿는 것일까? 내가 그렇게 라키사에게 행동을 잘못했나?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모르겠다. 분명히 라키사와 잘 지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왜 노력을 할 때마다 서로가 맞지 않는다는 것만 확인하게 될까?



 "왜 너 혼자 있어?"


 블랑쉬블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도 얼굴이 참 밝다. 지금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아다비아는 자기와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라 저럴 수 있는 건가? 그렇지만 아다비아 보러 갔을 때에는 술에 만취해서 울었는지 눈이 팅팅 부어 있었다. 저것도 제정신은 아니지. 지금 장난 받아줄 기분이 아닌데 딱 봐도 나한테 장난치고 싶어하는 눈치다.


 "이고는 루즈카 집에 갔고, 라키사는 아프다고 안 나왔어요."

 "그러면 이 누나와 둘이 오붓한 시간 보낼 수 있는 거야?"

 "방에 켈라자야 있어요."


 역시나다. 블랑쉬블르가 진지할 리가 없지. 저 인간은 '진지함', '걱정' 같은 건 머리 속에 아예 존재하지 않을 거다.


 "왜 그렇게 얼굴이 어두워?"

 "웃을 상황이 아니잖아요."

 "뭐가?"

 "뭐라니요?"

 "왜 얼굴이 어두워야 하는데?"


 그걸 설명해줘야 아나. 아다비아는 쿠룬나스가 되었고, 감비르는 완벽히 미쳤다. 에드자는 여전히 미쳐돌아가고 있고. 대체 웃을 구석이 어디 있다는 거야?


 "안 좋은 일만 있잖아요."

 "아...아다비아 때문에?"

 "모두 다요. 전부요. 이 도시, 이 땅 전체요."


 블랑쉬블르는 가볍게 피식 웃더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내 두 볼을 잡고 윗쪽으로 가볍게 잡아올렸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 좀 웃어. 웃어야 복이 오지."

 "뭘 웃어요!"


 블랑쉬블르의 손을 쳐냈다. 블랑쉬블르느 나와 눈을 똑바로 맞대었다.


 "타슈갈, 너 힘든 거 알아. 하지만 같이 울어주는 것이 전부는 아니잖아. 네가 원하는 것은 같이 울어주고 끝내는 거야? 답 없이?"

 "답이 있어야 뭘 하든 말든 하죠!"

 "좀 웃어. 그래야 답을 찾지."

 "웃으면 답이 나와요?"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방법이 나오지 않을까? 세상탓만 하는 것보다는 확률이 더 높잖아."

 "웃을 수 있어야 웃죠!"

 "억지로라도 웃어봐. 너 그러다 너까지 미쳐버린다?"


 순간 어이없어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한테 그러다가는 미쳐버릴 수 있다는 말을 들으니 그냥 어이가 없다. 블랑쉬블르는 자기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자각하고 있다는 거야, 뭐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고민없이 살 수 있어요?"

 "고민이 없다니?"

 "누나는 항상 밝잖아요. 고민이 하나도 없을 거 같아요."

 "나?"

 "예."

 "진짜로?"

 "예!"


 블랑쉬블르는 내 말을 듣고는 깔깔 웃었다. 세상에는 미친놈이 참 많고, 미친 증상은 너무나 다양하다. 켈라자야처럼 미친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블랑쉬블르처럼 미친 경우도 있다. 대체 어떤 부분에서 웃긴 건지 알 수가 없다. 관두자. 그딴 거 아무리 알려고 노력해봐야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블랑쉬블르는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내가 진짜로 고민 하나도 없어보여?"

 "예. 정말 세상에 즐거운 일만 가득해 보여요."

 "진짜로? 나한테는 모든 게 꽃밭으로 보일 거 같아?"

 "예. 좋은 일만 언제나 가득해보여요."

 "의외네."


 블랑쉬블르가 두 입술에 힘을 주며 입을 다물었다. 뭘 생각하는지 아랫입술이 위로 올라갔지만, 입꼬리를 보면 여전히 미소가 입에 머물고 있다. 그 묘한 표정을 계속 유지하면서 아무 말 없이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설마 내가 자기한테 '누나는 고민이 참 많지만 항상 밝은 표정을 짓고 있어요'라고 말할 줄 알았나? 당연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럴 말이 나오게 행동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어야지. 블랑쉬블르가 갑자기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타슈갈, 긍정적으로 생각해. 억지로라도 웃고. 알았지?"

 "예."


 따박따박 따져봐야 뭐하겠냐. 적당히 장단이나 맞추어줘야지.


 "그런데 너 문병 안 가봐도 돼?"

 "문병요?"

 "아다비아랑 라키사."

 "아다비아는..."

 "네가 아다비아 죽이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면 가봐야하는 거 아냐?"

 "예."


 그게 왜 이렇게 해석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당연히 살려야하는 거 아니야? 정말로, 진짜로 원래는 아다비아를 죽일 생각이었던 거야?


 "너 아다비아 보는 것이 무서워?"


 안 무섭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아다비아가 그런 모습으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날 줄은 몰랐으니까. 눈이 멀고 얼굴이 흉측해진 문제가 아니다. 쿠룬나스라잖아.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겠고, 쿠룬나스가 되어버린 아다비아를 어떻게 대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사람을 잡아먹는 쿠룬나스는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무서운 것일 거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정작 그 아다비아가 쿠룬나스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한다는 건지 감도 못 잡겠다. 아무리 친했던 아다비아라지만 '쿠룬나스'라는 사실에 만나기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기껏 용기내어 문병 갔을 때 겪었던 그 일.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런 일을 또 겪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


 "용기를 내. 아다비아는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렇지만 쿠룬나스잖아요."

 "이제는 괜찮아. 내적 안정을 찾았으니까."

 "내적 안정이라니요?"

 "인간을 잡아먹고 싶다는 욕구에 지배당하는 단계는 지나갔달까? 네가 계속 손을 내밀어주는 게 어때? 너 남자잖아."

 "그러면 좋아질까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야? 그래도 아다비아 문병 가보기는 해야겠다. 이고도 이제 다시 문병 가도 괜찮다고 했으니까.


 "라키사도 찾아가보구. 라키사 아파서 서점 안 나온지 꽤 되지 않았어?"

 "걔야 알아서 하겠죠."

 "너 라키사랑 무슨 일 있었어?"

 "예?"

 "뭔가 이상한데? 이렇게 많이 아파하면 가봐야 정상 아니야?"

 "아..."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누나한테만 살짝 말해 봐."

 "아무 일 없었어요."

 "무슨 일 없기는...딱 봐도 무슨 일 많았구만. 자, 어서, 어서! 누나한테만 살짝 말해!"


 블랑쉬블르가 내 옆에 바짝 달라붙어서 계속 옆구리를 쿡쿡 찔러댄다. 무슨 일 있었죠. 라키사가 감비르한테 아다비아가 쿠룬나스가 되었고 루즈카 집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서 감비르가 아다비아를 죽이러 갔었어요. 그것을 그 자리에서 보고 열받아서 라키사에게 살인자 새끼라고 했어요. 오직 그것 때문에 안 나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도 원인 중 하나이기는 할 거에요. 하지만 누나에게 굳이 이것을 일일이 다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네요.


 "진짜 아무 일 없었어요."

 "설마 감비르가 아다비아 죽이려고 해서 화난 거야?"


 순간 놀랐다. 하마터면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볼 뻔 했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 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루즈카도 있었다. 감비르가 루즈카에게 대들다가 루즈카 집에서 쫓겨났지. 루즈카가 감비르가 와서 무슨 짓을 했는지 블랑쉬블르에게 이야기해주었다면 충분히 알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서점으로 돌아와 라키사에게 화낸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지 않다.


 "누나,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뭐?"

 "아다비아는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지금은 사람 안 잡아먹어."

 "그거 말구요. 눈이랑 외모요."

 "그거? 글쎄...이고한테 물어봐. 나는 잘 모르겠어."


 블랑쉬블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슈갈, 주변에 있을 때 잘 해. 뭐,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이 누나한테 와도 되기는 하겠지만 말이야."

 "누나한테 갈 일은 전혀 없을 거 같네요."


 블랑쉬블르는 내 말을 듣고는 또 다시 깔깔 웃더니 인사를 하고 서점에서 나갔다.


 '이고 돌아오면 아다비아 문병 다녀와야겠다.'


 블랑쉬블르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억지로라도 좀 웃자. 그러다보면 조금씩 좋아지지 않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개같은 상황이 이어질 리는 없잖아. 지금까지 계속 나빠졌다. 이것이 최악이라고 생각하면 새로운 무저갱이 나타나고는 했다. 그렇게 계속 더 나빠져만 갔다. 언제 좋아질지 모르겠다. 이게 진짜 밑바닥 수렁인지, 이 아래에 새로운 최악의 바닥이 또 기다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바닥을 치고 위로 올라갈 날이 오지 않을까? 물론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말이겠지만.



 이고가 돌아왔다. 이고에게 아다비아 문병을 가기 위해 루즈카 집에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했다. 이고는 그러라고 했다.


 "아, 이고, 나 하나 물어볼 거 있는데..."

 "뭐?"

 "아다비아는 회복할 수 있을까?"

 "걔 이제 사람 안 잡아먹어. 걱정마."

 "그거 말고...눈이랑 외모."


 이고는 입을 다물고 잠시 말 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건 바라지 마. 저주술로도 안 될 거야."

 "그렇구나."

 "그래도 다 살 방법이 있겠지. 네가 잘 챙겨주면 되잖아."



 밖으로 나와 루즈카 집을 향해 걸어갔다. 저주술로도 아다비아의 눈과 외모는 어쩔 수 없겠지? 저주술로 사람들을 치료해준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것이 가능했다면 마딜 전쟁에서 마딜인들이 그렇게 많이 죽어나가지도 않았겠지. 저주술로 치료할 수 있다면 심한 부상을 입은 많은 사람들을 다 치료했을테니까. 저주술로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그래도 살아갈 방법은 있겠지. 아다비아라면 스스로 극복해낼 거다. 눈이 안 보인다는 것이 엄청난 장애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아다비아는 항상 잘 해왔잖아. 이 어려움도 어떻게 스스로 극복할 방법을 찾을 거야.


 루즈카 집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렸다. 루즈카에게 인사를 했다. 루즈카는 잠을 잘 못 잤는지 두 눈이 퀭하다.


 "아다비아 보러 왔니?"

 "예."

 "아다비아는 방에 누워 있어."

 "아다비아 상태는 어때요?"

 "안정을 많이 찾았어."


 루즈카라면 다른 대답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저주술사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뛰어난 저주술사라고 하니 저주술에 대해 블랑쉬블르, 이고보다는 아는 것이 훨씬 더 많겠지.


 "루즈카,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요."

 "응? 어떤 거?"

 "아다비아는 다시 눈을 뜰 수 있을까요?"

 "그건...기적이 일어난다면?"

 "기적이 일어난다면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하지만 기적이 일어난다면 가능할 수도 있을 거야. 그래서 기적이겠지만..."

 "그냥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로군요."

 "일단 현실적으로는."

 "예."


 역시 아다비아가 눈을 다시 뜨는 방법은 없구나. 저주술이라고 모든 게 다 가능할 리가 없지. 그랬다면 에드자가 지금 이 꼬라지일 리가 없다.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한 칸을 올라갈 때마다 계단 한 칸만큼 긴장이 된다. 감비르 그 새끼 일 때문에 충격 꽤 많이 받았을텐데. 괜찮아졌다고 해서 오기는 했지만 정말 괜찮아진 것이 맞는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다음에 올까? 지난 번에는 아다비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지금은 그 정도 문제가 아니다. 지금 아다비아를 만나는 것이 맞는 행동인지 그 자체가 의문이다. 내가 아다비아 문병을 오지 말아야 아다비아에게 더 좋은 것 아닐까? 지금 아다비아를 보러 가는 이 행동이 옳은 행동이라는 확신이 전혀 서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아다비아를 보러 가지 않는 것이 옳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블랑쉬블르는 용기를 내라고 했다. 그 말대로 용기를 내서 여기 왔다. 그런데 그 용기가 정말 제대로 된 용기일까.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되는 용기 맞을까. 아다비아가 눈을 못 뜨는 것처럼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만 하는 잘못된 용기 아닐까.


 아다비아가 있는 방 문고리를 잡았다.


 '아다비아는 분명히 좋아질 거야.'


 그래. 믿자. 아다비아는 좋아질 거다. 이것은 제대로 된 용기다. 무서워하지 말자. 쿠룬나스고 나발이고 이 문 너머에 있는 사람은 아다비아다. 아다비아는 아다비아다. 아다비아는 아다비아이고, 아다비아이기 때문에 아다비아다. 바뀐 것은 없어. 아다비아는 아다비아야. 예전처럼 앞을 볼 수 없고, 예쁜 얼굴도 흉측해져버렸지만 아다비아다. 왜냐하면 아다비아니까. 아다비아가 아다비아인 것에는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아다비아는 아다비아이기 때문이다. 쿠룬나스, 장님, 추녀. 그게 뭐 어쨌다고? 어쨌든 이 문 너머에 있는 사람은 아다비아다. 그래, 아다비아야. 서점에 찾아와서 공부를 도와주던 아다비아이고, 항상 자신감에 차 있고 당당해하던 아다비아이고, 뭔가 참 사람 속 긁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착한 아다비아다. 전보다 좋아졌다잖아. 그러면 된 거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다비아, 몸은 좀 괜찮아?"


 아다비아는 하얗고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두 눈부터 이마까지 하얀 붕대가 감겨 있다.


 "왜 왔어?"

 "너 괜찮나 보러."

 "구경하러 왔니?"


 아다비아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아니야. 너 걱정되어서 왔어."

 "이 꼴 보고 비웃으러 왔지?"

 "그런 거 아니야. 진짜로 너 걱정되어서 괜찮나 보러 온 거야."

 "너 뻔뻔하게 거짓말 잘 하는구나."


 아다비아는 계속 입으로 독을 잔뜩 품은 가시를 뱉어대었다.


 "몸은 어때?"

 "보면 모르겠니? 왜 나를 살렸어?"

 "왜 살리다니?"

 "네가 나 살리라고 했다면서? 감비르가 나를 죽이려고 했을 때도 못 죽이게 한 건 너구! 왜 나를 살렸어?"

 "왜 살리다니?"


 무슨 말이야? 당연히 살려야하는 거 아니야? 설마 내가 너는 죽어야 한다고 목에 핏대 세워가며 주장하기를 바랬던 거야?


 "역겨운 연극 좀 그만할래? 너 내가 이렇게 망가진 모습 구경하려고 살린 거지?"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면 왜 살렸는데? 너 나 싫어하잖아!"

 "무슨 소리야?"

 "너 지금 웃고 있지?"

 "아니야!"

 "거짓말하지 마. 지금 내 꼴 보고 터져나오려는 웃음 억지로 참고 있잖아!"


 아다비아가 이를 악물었다. 온몸을 부르르 떤다. 왜 나한테 화내는 거야? 그래, 그건 나와 친했으니 투정부리는 거라 생각하자. 그렇지만 왜 살렸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 거잖아. 우리 친구 아니었어? 그리고 무슨 네가 망가진 모습을 구경하고 싶다는 거야? 진짜 네가 걱정되어서 찾아온 거다. 솔직히 무섭기는 했다. 쿠룬나스니까, 그리고 이게 맞는 행동인지 그 어떤 확신도 들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네가 나아지는 것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온 거라구. 그런데 너는 지금 나한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아니야! 내가 왜 너 망가진 모습을 보고 싶어해?"

 "아니라구? 거짓말하지 마. 너는 내가 이렇게 비참해지는 꼴이 보고 싶었던 거잖아!"

 "그런 거 아니라구! 너는 분명히 좋아질 거야! 그래서 온 거야!"

 "너 진짜 어이없다. 더러운 거짓말 그만해. 내가 모를 줄 알아?"

 "뭐가 거짓말이라는 거야?"


 아다비아는 다시 이를 악물고 거칠게 숨을 씩씩 내쉬었다. 당황스럽다. 그래도 당황하면 안 된다. 나라도 지금 아다비아 모습이었다면 혼란스러울 거다.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어?"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몸 팔고 구걸하는 거 말고 뭐 있냐구!"


 머리 속이 새까맣다. 텅 비어버렸다. 어떻게든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게 뭔지 몰라. 아다비아 말마따라 몸 팔고 구걸하는 거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 비참한 일들 말고 다른 일이 뭔가 있지 않을까? 막연히 그렇게만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눈 먼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든 그거 말고 다른 일이 있지 않을까. 어떻게 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였기 때문에 항상 저렇게 생각하고 생각을 마무리지었다. 지금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그거 말고 다른 일이 있을 거라고? 어떻게든 될 거라고?


 "그래, 창녀나 해야겠네."


 아다비아가 두 발을 휘저어 이불을 모두 걷어찼다. 하얀색 헐렁한 긴 드레스를 입은 아다비아 몸이 드러났다. 전과 다르게 몸은 침대에 묶여 있지 않았다. 그러나 몸을 감아 앞으로 묶여 있는 긴 소매는 여전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나도 모르니까.


 "자, 덮쳐!"


 아다비아가 몸을 비틀고 다리를 마구 움직여 긴 하얀 치마를 위로 걷어올리더니 가랑이를 쫙 벌렸다. 하얀 속옷이 드러났다.


 "이러지 마!"


 재빨리 이불을 아다비아 목까지 덮었다. 아다비아는 마구 발버둥치며 이불을 다시 걷어차내려고 했다. 이불을 꽉 눌렀다. 아다비아는 상체를 일으키려 했지만 내가 이불을 계속 힘껏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한참 발버둥치고 몸부림치더니 숨을 거칠게 내쉬며 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너무 더러워서 못 품겠지?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런 거 아니야!"

 "그러면 지금 덮쳐! 어차피 아무한테나 대줘야 하는데!"

 "아니야!"

 "뭐가 아니라는 거야! 너 지금 내가 더러워서 못 덮치는 거잖아!"

 "아니라구!"

 "그러면 왜 못 덮치는데!"

 "이건 아니라구! 진짜 이건 아니야! 네가 창녀를 왜 해!"

 "그러면 눈 먼 년이 창녀 말고 뭐 하라구!"

 "뭔가 있겠지! 이건 아니야!"

 "너 내가 역겨워서 못 덮치는 거잖아! 내가 모를 줄 알아? 이 꼴 보니 속이 시원하지? 웃겨 죽겠지?"

 "아니라니까!"


 순간 가슴 속 무거운 돌덩이가 폭발하더니 그 파편들이 목구멍을 뚫고 솟구쳐 올라왔다.


 "아니라고! 왜 내 말을 못 믿어? 진짜 아니라구! 네가 왜 창녀짓을 해? 어떻게든 될 거야! 뭐라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제발 그만해!"

 "너 나 싫어하잖아!"

 "뭘 싫어해! 싫어하면 여기 왜 와? 너 걱정되어서 온 거잖아! 어떻게 해야 믿을래? 왜 너까지 나를 못 믿는 건데?"


 아다비아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아다비아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있는 힘껏 소리치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멍하다. 어떻게 해야할지 떠오르는 게 없다. 뭐라도 말하고 달래야 하는데 무엇을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울고 있는 아다비아 얼굴을 그저 바라만 본다. 눈 위의 붕대가 조금씩 젖어간다. 머리 속에 커다랗고 투명하고 속이 텅 비어 있는 무언가가 꽉 들어찼다. 그 위로 지금 이 아다비아의 모습이 비친다. 아다비아 모습은 계속 그 내 머리 속 투명하고 속이 비어 있는 무언가의 표면에 계속 깊이 새겨진다. 무언가를 찾아서 말해야 한다. 그러나 텅 빈 것 속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좋아질 거야. 진짜로...정말로 좋아질 거야."

 "뭐가 좋아져! 어떻게 좋아져!"

 "진짜로 좋아질 거야. 뭐든 같이 찾아보면 되잖아."

 "뭘 같이 찾아!"

 "뭐든 간에."

 "대체 뭐를! 너는 나보고 대체 어쩌라는 거야!"

 "진짜 좋아질 거라니까!"

 "네가 뭘 안다고!"

 "같이 찾아보면 뭐든 찾겠지!"


 아다비아는 아무 말 없이 계속 엉엉 울기만 한다. 그렇게 아다비아는 한참을 울었다. 아다비아를 말없이 계속 바라보았다. 눈 먼 년이 앞으로 뭐하고 살아가?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눈 먼 년이 할 수 있는 게 몸 팔고 구걸하는 거 말고 뭐 있냐구! 그래, 창녀나 해야겠네. 머리 속에서 계속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아니야, 그건 진짜 아니야! 아다비아에게 그렇게 끔찍한 미래? 안 돼! 그것만큼은 안 된다. 창녀가 된 아다비아? 이 뭔 미친 개쓰레기같은 소리야? 하지만 이것이 현실. 뭐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이 현실이니까.


 "가."

 "응?"

 "가라구."


 아다비아는 울음을 멈추고는 내게 가라고 했다. 막연히 좋아질 거라는 말 외에 내놓을 답이 없다. 오늘은 아다비아 말대로 일단 가야겠다.


 "다음에 또 올께."

 "오지 마. 나를 비웃으러 오는 거잖아!"

 "안 비웃어! 너 비웃은 적 한 번도 없어!"

 "오지 마!"

 "시간 되면 또 올께."

 "아니, 영원히 오지 마. 너 나 싫어하잖아. 나도 너 싫어!"

 "안 싫어해! 너야말로 지금 나 싫어하잖아!"

 "그러니까 오지 말라구!"

 "시간 되는 대로 올께."


 방에서 나왔다. 루즈카에게 인사를 했다. 루즈카는 별 말 없이 잘 가라고만 말했다. 루즈카 집에서 나와 서점으로 돌아왔다. 머리 속이 멍하면서 어지럽다. 이제 장님이 된 아다비아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거지와 창녀 말고 또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 둘 만큼은 절대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둘 말고 뭘 할 수 있을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무언가 있을 거야. 단지 내가 모르는 것 뿐일 거다. 뭔가 길이 있을 거다. 분명히 있을 거다. 아니, 분명히 있다. 내가 모르고, 아다비아가 모르는 것 뿐이다.



 아다비아 문병을 다녀온지 3일이 되었다. 라키사는 여전히 서점에 나오지 않고 있다.


 "너 이따 라키사 집에 한 번 찾아가봐라."

 "나?"

 "응. 진짜 무슨 일 생긴 거 아냐?"

 "설마. 무슨 일 있었으면 바하르가 와서 전해줬을 걸?"

 "그건 거리에서 죽었을 때구...아파서 집에서 쓰러져 있으면 그걸 어떻게 알아?"

 "아..."


 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너 라키사랑 무슨 일 있었냐?"

 "나? 아니. 왜?"

 "이상하네."

 "뭐가?"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아파서 못 나오고 있는 건데. 라키사가 아파서 못 나온다고 한 거잖아. 서점에 못 올 정도로 많이 아픈가 보지.


 "너 라키사랑 친하지 않아?"

 "응."

 "걱정 하나도 안 돼?"

 "아..."


 이고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보니 그렇네. 라키사 걱정을 거의 안 하고 있었다. 계속 아다비아와 켈라자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다비아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까. 그리고 켈라자야는 요즘 왜 얌전하고 조용한 걸까. 라키사에 대해서는 아파서 안 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2주 넘게 서점에 안 오고 있으니 이상한 것이기는 한데.


 "너네 싸웠냐?"

 "아니."

 "그런데 왜 그래? 라키사가 서점에 안 온 지 2주가 넘었는데 병문안 가볼 생각도 안 하구."

 "라키사야 스스로 잘 하잖아."

 "그래도 2주 넘게 안 올 정도면 많이 아프다는 거잖아."

 "그렇네."

 "어쨌든 이따 라키사 집에 가봐. 이렇게 계속 말없이 안 올 애가 아닌데..."



 이고가 수레를 끌고 서점에서 나갔다. 이고가 나간지 얼마 안 되어서 켈라자야가 서점 안으로 들어왔다.


 "춥지?"

 "아니. 안 추워."

 "얼굴 빨갛게 얼었는데 뭐가 안 추워?"

 "안 추워."


 켈라자야가 외투를 벗었다. 오늘은 새까만 원피스를 입고, 허리에 쇠사슬 같은 허리띠를 차고 있다. 오늘은 완전 새까만 켈라자야네. 켈라자야가 화로 옆으로 와서 앉았다. 방 안으로 들어가서 컵에 뜨거운 물을 뜨고 말린 사과를 두 조각 집어넣었다. 안 춥기는 뭐가 안 춥다는 거야? 밤에 얼마나 많이 추웠다구. 그 춥고 어두운 밤에 길거리를 계속 돌아다녔으니 엄청 추울 거다. 그래도 밤에 추웠는데 뭐가 안 춥냐고 말했다가는 또 발끈하겠지.


 "자, 마셔."

 "고마워."


 켈라자야가 컵을 받아들어 사과차를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밤새 별 일 없었어?"

 "응."

 "다행이네."

 "뭐가?"

 "간밤에 너한테 별 일 없어서 다행이라구."


 켈라자야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사과차를 호호 불어가며 마셨다.


 "타슈갈, 이건 당연한 거야?"

 "너한테 차 준 거?"

 "아니."

 "그러면?"


 얘는 또 뭐 이상한 것을 물어보려고 하는 거야?


 "가슴이 따뜻해."

 "따뜻한 거 마셨으니 당연하지."

 "아니...그게 아니라..."

 "그러면?"


 켈라자야는 연한 미소를 지으며 컵을 살포시 바라보았다.


 "내가 잘 때 네가 이불 덮어주는 거 알고 있어."

 "아...그때마다 깨었어?"


 켈라자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성질낼 건가?


 "다음부터는 조심할께."

 "아니. 그때마다 좋았어. 가슴도 따스해지구."

 "지금 춥잖아."

 "그게 아니구...이상한 건데 기분이 좋아져."

 "이불 덮어주는 게 뭐라구."


 술이라도 한 잔 하고 들어왔나? 계속 가슴이 따뜻해진다고 한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사과차 마시니 가슴이 따스해지고, 추위에 떨며 자는 거 이불 덮어주었으니 가슴이 따스해지지. 별 것도 아닌데 유난이네. 속으로 피식 웃었다. 뭐 거창한 것을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고작 가슴이 따스해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켈라자야한테 당한 것이 있어서 그런가? 일반인의 생각은 아득히 뛰어넘은 과격한 발언에 공격성을 전혀 숨기지 않던 태도. 한두 번이 아니라 그게 켈라자야한테는 정상적인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뭔가 심각한 것을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한다는 이야기가 가슴이 따스하다는 이야기다. 차마 내색은 하지 못하지만 속으로 계속 웃었다. 이런 당연한 것이 얘한테는 이상한 거야?


 "그거 말해줘."

 "그거?"

 "응."


 그거 또 시키네. 간만에 너 덕분에 속으로 웃었다. 이 기회에 겉으로도 활짝 웃어야지.


 "나 너 좋아해. 친구로써 말이야."

 "나도 너 좋아해!"


 켈라자야도 활짝 웃었다.


 "나 들어가서 잘께!"

 "이불 잘 덮고 자. 방도 추워."

 "알았어!"


 켈라자야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다행이야. 켈라자야는 좋아지고 있으니까. 모든 것이 나빠지고 있는데 켈라자야만큼은 신기할 정도로 좋아지고 있다. 워낙 나빴던 상태였기 때문에 좋아지고 있는 걸까? 그나저나 가슴이 따스해진다는 건 또 뭐야. 그런 당연한 걸 나한테 왜 말하는 건데? 그런 것도 신기한가? 참 신기할 것도 없네. 하지만 그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니 내 기분도 좋아진다. 암울하고 끔찍한 이야기만 듣다가 간만에 좋은 이야기 들은 거니까.



 서점 문이 열렸다. 치롤라가 여기 갑자기 왠 일이지? 치롤라는 서점에 들어오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켈라자야 있나 살펴보는 건가? 그날 이후 둘이 만난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켈라자야한테 호되게 당한 후 둘이 관계가 좋아진 것 같지는 않다. 그랬다면 어떤 식으로든 내 귀에 이야기가 들어왔겠지. 둘 사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 것도 나한테 도달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보아 둘 사이는 여전히 좋지 않을 거다. 켈라자야는 딱히 신경쓰지 않을 거 같고, 치롤라는 켈라자야에 대한 감정이 상당히 안 좋겠지. 그때 제대로 당해서 덤비거나 복수할 엄두는 못 내겠지만 이를 박박 갈고 있을 거다.


 "이거 다 너 때문이야."

 "뭐가?"


 치롤라는 내 앞으로 오자마자 다짜고짜 이게 다 나 때문이라고 말했다. 뭐가 또 나 때문이라는 거야?


 "아다비아 말이야. 아다비아 어쩔 거야!"

 "아다비아가 왜 나 때문인데?"

 "너 아직도 모르겠니?"

 "대체 뭘?"

 "아다비아가 쿠룬나스 된 거!"

 "그게 왜 나 때문인데?"


 어이없다. 아다비아가 쿠룬나스가 된 것과 내가 무슨 상관이라는 거야? 그건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아다비아가 뮈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에드자 돌아와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다비아를 쿠룬나스로 만든 건 아니잖아.


 "아다비아가 왜 저렇게 되었다고 생각해?"

 "몰라."

 "우리의 숭고한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놈들이 저지른 짓이라구!"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저주술은 저런 짓 안 해!"


 쿠룬나스와 저주술의 상관관계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다. 딱히 있을 거 같지는 않다. 그래, 누가 저주술로 아다비아를 쿠룬나스로 만들지는 않았겠지.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아다비아가 대체 왜 쿠룬나스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다비아는 변한 게 없다. 이고, 루즈카, 블랑쉬블르가 쿠룬나스라고 하니까 쿠룬나스라고 알고 있는 것이지, 아다비아가 사람을 잡아먹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그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너는 우리가 거룩한 투쟁을 하는 동안 관망만 했잖아! 아니지, 속으로는 우리가 무너지기를 바랬지?"

 "그러니까 시위에 참여하지 않아서 아다비아가 저렇게 되었다는 거야?"

 "그래!"


 어이없네. 내가 시위에 참여했으면 아다비아가 저렇게 되지 않았다는 거야? 아다비아가 뮈젤로 떠난 건 시위가 일어나기 전인데?


 "그건 또 무슨 논리냐? 내가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거랑 아다비아가 쿠룬나스가 된 게 대체 무슨 상관인데?"

 "하나 하나의 힘이 모여서 거대한 힘이 되는 거 몰라?"

 "그러니까 그 시위랑 아다비아랑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거잖아!"

 "우리의 투쟁이 승리했다면 아다비아가 쿠룬나스가 될 일도 없었다구!"

 "그러니까 무슨 근거로? 너는 아다비아가 어떻게 쿠룬나스가 된 지 정확히 아나보다?"


 치롤라가 입을 굳게 다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 망할 시위 때문에 이 도시가 이렇게 막장 엉망진창이 된 거 몰라? 뭔 얼어죽을 자유고 진리라는 거야? 그 잘난 자유와 진리를 부르짖으며 난동을 부려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데? 그 시위 이후로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있다. 그 전에는 아이들 겁주려고 하는 이야기인줄 알았던 쿠룬나스가 진짜로 에드자에서 돌아다닌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무기한 휴교 상태고, 중앙학문연구소 학생들은 죄다 동원령에 걸려서 학교도 못 가고 경찰 보조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게 자유와 진리냐?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자유와 진리를 지껄여대며 시위한 거잖아! 그따위 논리라면 나도 똑같이 해줄 수 있다. 너희가 개판쳐서 지금 이 도시에 이 사단이 난 거고, 아다비아도 거기에 휩쓸려 쿠룬나스가 된 거 아니야? 그렇게 경찰한테 두들겨맞고 켈라자야한테 처맞아놓고서도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렸나. 참 한심하네. 평화 시위는 무슨 평화 시위야? 폭동이었지. 내성으로는 왜 쳐들어가? 쳐들어가면 뭐 좀 될 줄 알았냐?


 "그 망할 시위 때문에 이 도시 이렇게 된 거 안 보여? 아직도 시위 타령이야?"

 "이 상황은 시위 때문이 아니야. 저주술을 모욕한 자들이 승리했기 때문이야!"

 "아, 그래. 그런데 대체 아다비아가 쿠룬나스가 된 것이 왜 나 때문이라는 거야?"

 "너는 숭고한 투쟁에 힘을 보태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시위 참여 안 한 사람은 죄다 아다비아에게 죄 지은 거냐? 그들 모두가 아다비아를 쿠룬나스로 만든 거라고?"

 "그래!"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바하르가 치롤라와 잘 해보려고 하고 있지만 않다면 독하게 말했을 거다. 시위 현장인 에드자에 있지도 않았던 아다비아가 언제 쿠룬나스가 되었는지 어떻게 알아? 뮈젤에서 쿠룬나스가 된 거라면 어떻게 할 건데? 그놈의 저주술. 이제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날 거 같다. 감비르도 툭하면 자유와 진리, 치롤라도 자유와 진리, 그리고 그게 저주술이라고 하는데 그런 건 대체 누가 정한 거야? 언제부터 저주술이 자유와 진리의 상징이었다는 거냐? 나도 마딜 땅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마딜 공화국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쭉 여기 있으면서 저주술이 자유와 진리의 상징이라는 소리는 얘네들한테 듣기 전까지는 듣지 못했다. 그 전까지는 그 누구도 그딴 소리를 하지 않았다. 저주술이라 하면 상상을 현실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라고만 할 뿐이었다. 누구 멋대로 거기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데? 켈라자야나 루즈카가 그런 소리를 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하겠다. 그런데 뭔 같잖은 것들이 저렇게 떠들어대고 있으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왜 자기들 멋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 자체가 또 진리라는 거야? 왜 저주술은 자유와 진리라는 것이 진리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그 소리보다는 차라리 켈라자야와 블랑쉬블르의 태도와 행동이 훨씬 정상적이고 말이 된다.


 "말을 말자. 또 뭐 선동하려고 온 거야?"

 "아니."

 "치롤라. 저주술이 진리와 자유 그 자체라고 생각하든 말든은 너 자유야. 그런데 요즘 상황 진짜 안 좋은 거 너도 알잖아? 눈치껏 적당히 해."


 치롤라가 단지 나와 아는 사이라면 나한테 피해만 안 오면 그만이다. 나는 치롤라와 뜻을 같이 할 생각이 흙먼지 한 알만큼도 없다. 또 시위를 하든 혼자 저주술로 발광을 하든 알 바 아니다. 그러다 경찰한테 처맞아 죽어도 내 알 바 아니구.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 치롤라는 루즈카가 에드자로 데려왔다. 치롤라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루즈카가 괴로워할 거다. 전에 치롤라가 경찰한테 두들겨맞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루즈카가 치롤라 때문에 우는 거 봤다. 루즈카가 괴로워하면 루즈카의 애인인 이고도 같이 힘들어할 거다. 그리고 지금 바하르는 치롤라를 매우 좋아한다. 치롤라가 죽으면 바하르가 가만히 있지 않겠지. 이러니 문제다.


 "나는 반드시 아다비아를 비참하게 만든 잡것들한테 복수할 거야."

 "야, 뻘짓 말고 몸 사리고 있어."

 "뻘짓? 너 말 다 했니?"

 "지금 상황 어떤지 알잖아. 엉뚱한 짓 했다가는 누구한테 죽임당할지 모른다니까? 만에 하나 잘못 되어서 너 하나 죽으면 그걸로 끝이냐? 루즈카는? 바하르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해야만 해. 반드시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혀내서 그 힘으로 복수할 거야!"

 "진짜 조심해. 일 더 키우지 말고."

 "나는 너 같은 기회주의자 겁쟁이가 아니야.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게 하고 말 거야. 그것이 정의니까!"


 치롤라가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고는 서점에서 나갔다. 쟤는 또 왜 눈이 돌아갔어? 치롤라가 아다비아가 쿠룬나스가 된 것을 알게 된 것 자체는 놀랍지 않다. 치롤라는 아다비아와 친했고 루즈카 집에서 살았었으니까. 루즈카 집에 찾아갔다가 알게 되었을 수 있다. 그런데 무슨 복수야? 누가 아다비아를 쿠룬나스로 만든지는 알고 하는 소리인가? 아다비아가 어떻게 해서 쿠룬나스가 되었는지도, 누가 아다비아를 쿠룬나스로 만들었는지 아무 것도 모르잖아. 그렇다고 무슨 루즈카 급으로 저주술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구. 켈라자야한테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 하고 제압당해서 질질 짜던 게 반년 채 되지도 않았다.


 '바하르한테 치롤라 말려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저건 바하르라고 답이 있을 거 같지는 않다. 바하르도 치롤라가 저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거 충분히 잘 알고 좋아하는 거구. 진짜 일 제대로 키워버리는 거 아냐? 진짜 멀쩡한 놈이 하나도 없다. 그나마 바하르가 정상이려나? 이제는 내가 미친 건지 세상이 미친 건지 모르겠다.



 이고가 서점에 돌아오자 라키사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갔다. 딱히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이고가 가보라고 했으니 가는 거다. 별 일 없겠지.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한 송이 두 송이 천천히 떨어진다. 그래, 다 덮어버려라. 추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싹 다 덮어서 지워버리는 거야. 이 망할 에드자에는 그게 답 아닐까. 손바닥을 내밀었다. 하얀 눈송이 세 개가 손 위에 떨어졌다. 손으로 눈송이를 쥐었다. 눈은 금새 형체가 없는 물이 되어버렸다. 그 순간 하늘에서 무섭게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갓난 아기 주먹만한 눈이 폭우가 쏟아지듯 하늘에서 쏟아져내렸다.


 "모자라도 쓰고 나올걸."


 머리 위에도 눈이 쌓인다. 털어도 금방 다시 쌓인다. 머리를 앞으로 숙일 때마다 눈덩이들이 땅으로 떨어진다. 눈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그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눈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눈송이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그 위에 또 다른 눈송이가 떨어져 이미 땅에 떨어져 있던 눈을 덮어버린다. 조금이라도 더러워진다 싶으면 바로 덮어서 숨겨버린다.


 "여기일건데."


 주소를 보니 다 왔다. 나무로 지은 2층집. 여기에서 방 하나 빌려서 살고 있다고 했다. 눈을 대충 털어내고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한 분이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누구쇼?"

 "라키사 보러 왔어요."

 "그러니까 누구인데요?"

 "라키사와 같은 서점에서 일하는 직원이에요. 라키사가 2주 넘게 일하러 나오지 않아서 와보았어요."

 "아, 그렇구만. 위로 올라가서 오른쪽 끄트머리 방으로 가요."


 2층으로 올라갔다. 방이 4개 있었다. 이 중에서 오른쪽 끝에 있는 방이라고 했지? 복도를 걸어가서 오른쪽 끝 방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나야. 타슈갈."


 문이 열렸다. 거의 발목까지 내려오는 두꺼운 분홍색 민무늬 외투를 입은 라키사가 보였다. 정말 많이 아팠구나. 라키사 얼굴이 핼쓱해져 있었다. 안색도 창백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먹을 거라도 조금 사올 걸 그랬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무언가를 사서 가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왜 라키사에게 그렇게 화가 나 있었던 것이었을까. 그것만 계속 생각했다. 아다비아를 죽을 위기에 빠뜨렸기 때문이 아니다. 내 말을 안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머리 끝까지 화가 났던 거다.


 "들어와."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온기가 거의 없다. 장작이라도 사올 걸 그랬나? 진짜 돈 엄청나게 아끼는구나. 저렇게 아픈데도 화로도 제대로 안 때고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안에는 침대와 탁자, 의자 두 개, 커다란 옷장 하나와 화로가 전부였다. 라키사는 화로에 장작을 넣고 성냥을 꺼냈다.


 "불 내가 붙일께."

 "아니야. 내가 할께."

 "너 아프잖아."


 이제서야 병문안 오는데 아무 것도 안 들고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렇게 지내고 있는 줄 알았다면 먹거리도 조금 사오고 장작도 한 단 사올 걸 그랬다. 성냥이라도 내 것 써야 그나마 조금 덜 미안할 거 같다. 이 정도로 버티고 있다면 성냥 한 개피도 신경쓰며 살고 있을 게 뻔한데. 라키사는 연신 괜찮다고 하며 자기가 불을 붙이겠다고 했지만 가볍게 몸으로 밀어내고 주머니에서 성냥갑을 꺼냈다. 성냥을 그어서 화로에 불을 붙였다.


 "화로에 불 피우고 누워있지 그랬어."

 "이불 속에 있으면 괜찮아."

 "그래도 아픈데..."


 라키사는 아무 말 없이 화로만 바라보았다. 진짜 장작이라도 사왔어야 했어. 지금 나 때문에 일부러 화로에 불 피운 것이 분명하다. 이러니 진짜 미안해진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내 방까지 찾아오고..."

 "너 계속 서점 안 나와서."

 "미안. 다음주 월요일부터 다시 나갈께."

 "몸은 괜찮아? 아직도 많이 아픈 거 같은데."

 "응. 기운내야지."

 "아프면 누워 있어."

 "아니야, 괜찮아."


 이제 무슨 말을 하지?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날 그 일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다. 켈라자야와의 관계도 라키사가 상상하는 그런 연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전하고 싶다. 정확히는 왜 내 말을 자꾸 안 믿는지 이야기를 하고 서로 오해를 풀고 싶다. 그렇지만 지금 라키사 상태를 보아하니 그런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다. 이것 말고는 딱히 라키사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든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엄청난 벽이 있음을 확인할 뿐이니까.


 라키사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다. 침묵만 흐른다. 라키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와 같이 오해를 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설마 라키사도 나처럼 답답해하고 있는 거 아니야? 왜 자기를 못 믿고 자기가 말한 것이 똑바로 전달되지 않냐고 말이다. 라키사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켈라자야와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잖아. 켈라자야도 인정했구. 감비르가 이상한 것은 굳이 말로 이야기해야만 알 수 있는 건가? 그 이상한 되도 않는 여장한 꼴을 자기도 봤다고 했다. 그러면 감비르가 멀쩡한 상태가 아니란 것 정도는 알 수 있는 거잖아.


 눈을 침대쪽으로 돌렸다. 누르스름한 이불보. 돈 아낀다고 오래된 이불보를 구입한 건지 원래 여기에 있던 이불보인지 모르겠다. 이불보 너머 베개로 시선을 바꾸었다. 배게 옆에 머리띠가 하나 있다. 분홍 리본이 오른쪽 끝에 매달린 노란 머리띠. 저거 내가 전에 라키사랑 내성 놀러갔을 때 사준 거 아냐? 그날 저 머리띠 사준 후 어떤 놈이 '진정한 자유 만세!'라고 외치고는 몸이 터져 죽는 바람에 아주 엉망이 되었다. 저거 안 버리고 베개 옆에 놔두고 있었구나.


 "저 머리띠 내가 사준 거야?"

 "응."

 "안 버리고 갖고 있네?"

 "네가 선물로 준 거잖아."

 "버렸을 줄 알았어. 워낙 끔찍했던 날이라서..."

 "네가 선물로 준 걸 왜 버리니?"


 다시 이어지는 침묵. 저 머리띠 계속 갖고 있을 줄 몰랐다. 그날 일을 다시 떠올리기 싫어서 버렸을 줄 알았다. 버리지는 않더라도 눈에 안 띄는 곳에 처박아놓았을 거라 생각했다. 저 머리띠를 하고 서점에 온 모습을 단 한 번도 못 보았으니까. 그래도 섭섭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 끔찍했던 사건이 떠오르는 물건인데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빈 손으로 온 것이 더 미안해진다.


 "타슈갈."

 "응?"

 "나도 감비르 이상한 거 알아."

 "아..."

 "그런데 있지...나 말이야, 한 가지 꿈이 있어."

 "무슨 꿈?"

 "모두가 사이좋게 지내던 그때로 돌아가는 거. 나 매일 그 꿈이 이루어지기를 빌고 있어."


 그게 과연 가능할까? 나도 그걸 바라기는 한다. 그렇지만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감비르는 완전히 미쳤다. 그 이상한 생각에서 빠져나오고 말고 할 단계를 넘어버렸다. 이것은 설득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버렸다. 단순히 말로만 자기가 남자이자 여자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그걸 진짜로 믿고 있고, 그 생각을 가지고 저주술 수련을 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실제 저주술을 쓸 수 있기는 하다는 거다. 그 잘못된 생각이 현실에 존재하는 힘이 되어버린 거다. 이것을 무슨 수로 되돌려. 아다비아도 마찬가지다. 쿠룬나스는 시간이 흐르면 낫는다고 하니 기다려볼 수 있다. 마음의 상처도 시간이 어느 정도 치유해주겠지. 하지만 이미 멀어버린 눈과 흉측해져버린 얼굴을 무슨 수로 예전의 밝고 예뻤던 얼굴로 되돌릴 거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불가능한 것이고, 기적이 수만 번 일어나도 이것들은 불가능하다.


 "나 말이야, 그 꿈마저 없다면 여기에서 어떻게 버텨야할까?"

 "글쎄..."

 "정말 간절히 믿고 있어. 우리 모두 예전 행복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 때는 반드시 올 거구. 그렇게 될 거고, 그렇게 되어야만 해. 나 진심이야. 우리 모두가 간절히 원한다면 분명히 이루어질 거라구."

 "응..."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그러나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다. 라키사 말도 이해가 된다. 희망은 하나도 안 보여. 이게 절망의 끝인가 싶으면 바닥이 무너지며 더 끔찍한 절망이 나타나. 대체 어디까지 나빠질지도 모르겠고, 언제까지 계속 나빠지기만 할 지도 모르겠다. 눈을 뜨면 지옥이다. 내가 미친 건지 세상이 미친 건지 분간할 수 없다. 거리에는 공포가, 광기가 가득하다. 어제는 어디에서 몇 명이 죽었고 오늘은 어디에서 몇 명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심지어 나 조차도. 앞으로 좋아질 거라는 헛된 희망조차 없다면 견딜 수가 없다. 아니, 견디는 문제가 아니다. 정말 버틸 수가 없다.


 "이만 갈께."

 "응. 조심해서 가. 병문안 와줘서 고마워. 다음주 월요일에 일하러 갈께."

 "응. 몸조리 잘 해."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눈이 무섭게 쏟아지고 있다. 계속 땅에 떨어진 눈 위에 바로 새로운 눈이 떨어져 더러움을 숨겨버리고 있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무 것도 말하지 못했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좋아진 것? 아무 것도 없다. 오늘도 역시나 나와 라키사 사이에 있는 그 뭔지 알 수 없는 엄청난 벽을 만져보았을 뿐이다. 이 집을 향해 걸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가슴이 답답하다. 이 망할 눈 좀 그만 와라. 아니면 아주 쏟아져내려서 에드자를 다 파뭍어버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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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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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기적과 저주 새로운 편이군요 이거 읽고파서 어서 휴일이 오기를 기다렸답니다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가 문체가 약간 바뀐 느낌이 들어요 중간으로 갈수록 다시 타슈갈 말투인데 앞부분은 조금 더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되나
    글을 읽으니 아다비아도 불쌍하고 라키사도 불쌍하고 치롤라도 켈라자야도 다들 불쌍해요 그리고 블랑쉬블르는 역시 맘에 들어요 블랑쉬블르랑 앉아서 칵테일 한잔 마시며 눈 오는 거 구경하고파요.
    제목이 기적과 저주니까 부디 기적이 일어나서 아다비아도 눈을 뜨고 외모도 되찾고, 라키사 소망대로 모두가 다시 행복해지고, 켈라자야는 항상 가슴이 따스해지면 좋겠어요 ㅠㅠ

    2018.03.02 00:2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진짜 오랜만에 썼네요. 그 전 화가 작년 12월 11일에 썼으니 2달 넘게 안 쓰고 있었어요. 문체는 안 바뀌었어요. 타슈갈의 심리적 고립상태 여부에 따라 조금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요 ㅎㅎ 저도 소설 속 인물들이 모두 행복해지고 좋아졌으면 좋겠어요 ㅠㅠ

      2018.03.05 10:56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