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19화

좀좀이 2017. 10. 29. 01:35
728x90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19화


 이렇게 올해가 끝나는 걸까? 참 우울하다. 벌써 12월 16일이다.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이제 보름만 더 지나면 올해도 끝난다. 이렇게 우울한 12월이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길거리에 웃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모두가 말없이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그럴 만도 하지. 누가 어디에서 무슨 미친짓을 할 지 모르는 상황인데. 일반인도 죽어나가고 경찰도 죽어나가고 군인도 죽어나간다. 낮에도 사람이 죽어나가고 밤에도 사람이 죽어나간다. 왜 그런 일이 터지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사람들은 죽어갈 뿐이다. 왜 사람이 폭발해 죽는지, 스스로 자살을 하는지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단지 그런 일이 도처에서 단 하루도 빠짐없이 발생하고 있을 뿐이다.


 바하르가 서점에 안 온 지 꽤 되었다. 전에는 밤에 종종 놀러오더니 경찰이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 날 이후부터는 안 오고 있다. 아마 못 오는 것이겠지. 그 전까지는 그래도 경찰과 군인을 건드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경찰과 군인도 공격을 당한다. 오히려 그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죽는 것 아닌가 싶다. 그들은 순찰 업무 때문에 밤에도, 으슥한 곳도 계속 돌아다녀야 하나끼. 요즘 길거리에 서 있는 경찰과 군인 표정을 보면 불안하다. 피로에 절은 티가 확 난다. 한결같이 퀭한 눈에 덥수룩한 수염, 먼지투성이라 뿌옇게 색이 변해버린 옷. 그 차림으로 고개를 여기저기 돌리며 사람들을 끊임없이 노려본다. 바하르도 어디에선가 우리 동네 경찰과 군인들 꼴로 밤에 순찰을 돌아다니고 있을 거다. 이제 야간 순찰 업무에서 벗어났으려나? 동원령이 풀릴 거라는 소식은 아예 없다. 에드자 길거리가 시위가 일어났을 때보다 훨씬 더 위험해졌는데 동원령이 해제될 리가 없지.


 그 시위대 놈들 때문에 다 이렇게 된 거야. 망할 폭도놈들. 확 다 잡아다 참수시켜버릴 것이지. 그랬으면 치롤라도 처형되었겠지? 솔직히 이 상황과 시위가 얼마나 서로 연관이 있는지 정확히 잘 모른다. 시위 이후 이상한 일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고, '저주술 만세'라든지 '진정한 자유와 진리 만세'라고 외치며 자살해대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어쨌든 그 시위가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안 터졌을 거야. 망할 폭도놈들, 그놈들 주장대로 에드자 대학교 건물이 모두 복구되면 휴교령이 해제되기로 했는데 그쪽은 얼씬도 안 하는 것 같다. 그러니 에드자 대학교는 파괴된 상태로 여전히 방치중이지. 쿠룬나스는 그딴 놈들이나 다 잡아먹어버릴 것이지, 왜 죄없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거야? 치롤라도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알아내어서 세상에 복수한다느니 헛소리 망상에 빠져 살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에드자 대학교 복구를 위해 벽돌이라도 하나 나르는 것에 훨씬 나을 거다. 대체 무슨 세상을 꿈꾸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감비르는 그날 이후 서점에 오지 않는다. 정말 다행이다. 라키사는 그때 그 자리에 직접 있지 않아서 정말 잘 되었다. 그때 감비르가 켈라자야에게 저주술로 대결하다고 들었다가는 켈라자야가 정말로 감비르를 죽여버렸을 거야. 미친놈,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야지. 켈라자야가 있는 한 감비르는 서점에 안 오지 않을까? 왜 그렇게 감비르를 보자마자 적대감을 여과없이 그대로 다 드러냈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켈라자야가 감비르를 정말 싫어한다는 거다. 그리고 이고도 감비르를 아주 싫어하구. 그날 밤, 이고가 내게 감비르한테 서점 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감비르가 내 말을 들을 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고, 다음에 감비르가 또 서점에 찾아오면 무조건 찻집으로 끌고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이고는 내가 근무 시간이어도 감비르가 오면 무조건 서점에서 끌고 나가라고 했다. 근무시간에 감비르 때문에 서점 밖에 머무르고 있는 것은 눈을 감아주겠다고 했다.


 감비르가 서점에서 켈라자야와 말싸움을 벌인 후 3일이 지난 후에야 라키사가 서점으로 돌아왔다. 라키사에게 감비르가 서점에 왔다가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라키사도 놀랐다. 이고는 라키사에게 감비르가 네 친구냐고 물어보았고, 라키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라키사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감비르 오면 나와 라키사가 알아서 서점 밖으로 잘 끌고 나가라고 했다. 라키사가 꼭 그래야하냐고 물어보자 이고는 그런 미친놈들 소굴이 되는 건 질색이라고 대답했다. 라키사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그렇게 쫓아내는 것은 너무하지 않냐고 이야기하자 이고가 한 마디 했다.


 "너는 세상 사람들과 모두 다 친해?"


 블랑쉬블르는 요새 들어 서점에 자주 놀러온다. 어떻게 이렇게 매우 안 좋은 분위기 속에서도 그렇게 밝게 지낼 수 있을까? 올 때마다 장난을 치고 깔깔 웃는다. 서점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닌데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도 블랑쉬블르 덕분에 가끔 웃을 일이 생겨서 좋기는 하다. 그렇게라도 웃지 않으면 웃을 일이 아예 없으니까. 블랑쉬블르가 감비르를 직접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감비르에게도 우리에게 장난치듯 아무렇지 않게 장난을 칠 수 있을까? 그러면 정말로 대단한 건데. 블랑쉬블르가 올 때마다 켈라자야는 매우 좋아한다. 켈라자야는 밤에 블랑쉬블르와 루즈카 집에 놀러가기도 한다고 했다. 둘의 집에 놀러가서 뭐하고 노는지는 모르겠지만 블랑쉬블르, 루즈카가 서점 왔을 때 켈라자야의 반응, 그리고 그 둘의 반응으로 보아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잘 노나 보다.


 루즈카는 며칠 전에 서점에 찾아왔었다. 켈라자야가 자기 집에 놀러오면 치롤라는 재빨리 방으로 도망가서 문을 굳게 걸어잠가버린다고 했다. 치롤라가 켈라자야만큼은 매우 무서워한다고 했다. 당연하겠지. 치롤라는 켈라자야에게 아무 것도 못 하고 죽을 뻔 했으니까. 루즈카는 그래도 치롤라가 그렇게 켈라자야에게 호되게 당한 후 많이 얌전해졌다고 했다. 예전과 달리 많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일곱 가지 꿈의 비밀을 밝히겠다고 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자해를 한다든가 하는 일은 없고, 밤에 잠도 잘 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 서점에 찾아온 루즈카의 얼굴은 전보다 매우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치롤라처럼 여기도 더 끔찍한 일이 발생해야 그나마 상황이 좋아질까? 모든 길거리가 피가 흐르는 냇가로 바뀌면 그제서야 안정을 되찾게 될까? 아니면 진짜 제대로 폭동이 일어나서 정부를 뒤엎고 살육과 도살이 판치는 상황이 제대로 발생해야 나아질까? 지금은 뭐 하나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나빠질 것이 더 있을까 싶던 9월부터 지금까지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세상이 매일 보여주고 있다. 이러다 상상력조차 벗어나는 것 아니야? 사람들 몸이 터져 죽고, 사람이 폭발하면서 그 주변 사람들까지 같이 죽는 것은 이미 상상력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기는 해.



 길거리에는 눈이 쌓여 있다. 새하얀 눈은 어디 가고 흙, 먼지, 재와 뒤섞여 지저분함 그 자체다. 저 눈은 언제까지 저렇게 있을까? 며칠째 밤마다 눈이 내린다. 낮에는 조금 녹아서 없어지나 싶으면 밤에 다시 눈이 내려서 쌓인다. 그리고 다시 해가 뜨면 사람들이 그 위를 걸어다니며 새하얗던 눈은 다시 더러움 그 자체로 바뀐다. 아무리 하늘이 눈으로 거리를 하얗게 덮으려 해도 그게 되지 않는다. 이렇게 날이 추우니 얼어죽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아직 우리 동네에서 길거리에서 얼어죽은 사람을 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시장 쪽에는 거지들과 피난민들이 많이 있으니 거기에서는 하루에도 몇 명씩 얼어죽어나가는 거 아냐?


 "우리 시장이나 다녀오자."


 이고가 대출 카드를 확인해보더니 침묵을 깨고 시장에 다녀오자고 말했다. 시장에서 뭐 사올 것도 없는데 시장을 왜 가?


 "시장? 갑자기 왜?"

 "가서 맛있는 것 좀 먹고 오자구."

 "위험하지 않아?"

 "지금 위험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어? 기분 전환도 좀 하구. 아니면 내성으로 갈래?"

 "아니, 그냥 시장으로 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점 문을 잠갔다. 오늘 오후는 시장 다녀오면 일이 다 끝나겠다. 이렇게 서점 문 막 닫아도 되나? 아마 오늘 책 수거하러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어서 문을 닫고 시장으로 밥 먹으러 가자고 했겠지. 그러고보니 넷이 다 같이 밥을 먹으러 특별히 어딘가에 간 적은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켈라자야까지 같이 간 적은 없었지. 켈라자야가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구. 그래도 매일 여기 오니 이제는 켈라자야가 여기에 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눈이 쌓인 길을 걸어간다. 예전 같았다면 이런 저런 잡담도 하고 웃으며 걸었을 거다. 그러나 지금 이 거리에 웃고 잡담을 하며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길 위의 공기가 모두에게 웃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 같다. 무표정한 사람들. 그러나 그 속에 불안이 있다. 경찰과 군인들 얼굴도 굳어 있다. 추운지 연신 손에 입김을 호호 불고 손을 비비고 있지만, 눈동자를 계속 좌우로 움직이며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 저 얼굴들은 단순히 추워서 굳은 것이 아니다. 자기들을 공격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굳은 것이지. 눈을 밟는 소리만 거리를 돌아다닌다. 수레와 마차가 달려올 때마다 길가로 비켜선다. 길가에는 길 가운데에서 치워놓은 눈이 쌓여 있다. 이 눈은 더러운 눈. 눈이 많이 쌓여 있기 때문에 그 위에 올라설 수도 없다. 올라섰다가는 발이 푹 빠지고, 신발 속으로 눈과 오물들이 들어올테니까. 마차가 지나가면 다시 길 가운데로 나가서 시장을 향해 걸어간다.


 "눈 좀 그만 왔으면 좋겠네."

 "에드자는 눈 원래 이렇게 많이 내려?"

 "응. 매해 있는 일이야."


 이고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켈라자야가 이고가 입에 물은 담배에 손가락을 톡 갖다대었다. 담배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고마워."

 "아니에요, 오빠. 우리 시장 가서 뭐해요?"

 "가서 이것저것 사먹고 살 거 있나 구경도 하구."

 "오늘 맛있는 거 먹는 거에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맛있는 거요."


 켈라자야가 활짝 웃었다. 별 일 없었다. 그래, 이 거리에서 웃지 말라는 법은 없어. 블랑쉬블르도 잘만 웃잖아. 괜히 겁먹고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다녀야할 필요는 없어.


 "시장 쪽에 음식 잘 하는 식당 있어?"

 "응. 가서 좀 따뜻한 것 좀 먹자. 동네 식당은 이제 쓰레기 되었잖아."


 이고의 말에 라키사가 인상을 살짝 쓰면서 이고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쓰레기라니 말이 심하지 않아?"

 "사실은 사실인걸. 국수를 그따위로 주고 50마르라 받아먹는다니 말이 돼?"

 "그래도 그렇지. 그 사람들도 어쩔 수 없어서 가격 올린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50마르라짜리 국수가 아니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여기에서 몇 년을 살고 있는데."

 "그래도 그건 말이 심했어."


 솔직히 그 국수가 50마르라라니 심하기는 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50마르라까지 받을 것은 아니니까. 겨울이라 말라비틀어진 풀쪼가리도 귀한 철이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타슈갈,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내 말이 맞지?"

 "응? 그런데 거기 진짜 심하기는 해."

 "뭐가 심하다는 거야?"

 "그건 네가 진짜 먹어봐야 해. 돈 버리는 줄 알았어."

 "뭘 돈을 버려!"


 라키사가 손바닥으로 내 팔을 가볍게 쳤다. 이건 너 편을 들어주고 싶어도 도저히 들어줄 수 없어. 진짜로 그 국수는 너무 심했다구. 방에서 이고와 말린 풀쪼가리와 말라비틀어진 고기조각 몇 개, 빵을 찢어 넣고 물에 푹 불려먹는 것보다도 못한걸. 그걸 50마르라 받아먹는 건 날강도야. 그날 이후로 다시는 그 식당에 안 가고 있다. 그건 돈 주고 먹을 것이 아니란 말이야. 그렇게 장사하는데도 가끔 그 앞을 지나가다보면 사람들이 식당에서 국수를 먹고 있다.


 "진짜야! 네가 그거 먹었으면 바로 식탁 엎었을 걸?"

 "내가 뭘! 내가 언제 식탁을 엎었다고 그래?"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분노를 참을 수 없는 맛이었다구. 내가 방에서 말린 야채랑 말린 고기, 빵 넣고 대충 불려먹는 게 더 맛있어!"

 "진짜야?"

 "진짜야. 진짜 형편없다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맛없으려구."

 "네가 원하면 한 번 사줄께. 직접 먹어봐! 그건 먹어봐야 알 수 있어."

 "내가 그걸 왜 먹니?"


 이고와 켈라자야가 웃었다. 이고가 라키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네 아예 사귀지 그러냐? 아주 주거니 받거니 잘하네."

 "우리가 뭐가!"


 라키사가 이고에게 바로 쏘아붙였지만 얼굴이 빨개졌다. 만약 라키사와 내성으로 놀러갔던 날에 그 미친놈이 자살하는 일만 터지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와 라키사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일이 발생한 이후 라키사에게 어디 놀러가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나만 재수가 없었던 걸까?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넘길 수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으니까. 이제는 낮에도 사고가 나잖아. 이제 라키사와 단둘이 놀러갈 구실도 없다. 그때 그 공부 도와준 것이 대체 언제적 일이야? 지난 학기 일이니 거진 반년이 다 되어간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그렇게 위험한 일이 우리에게 직접 발생한 적은 없지만 내성으로 놀러가면 그날 그 사건이 또 아주 선명하게 떠오를 것 같다. 상황이나 안정되어야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하며 넘어가지. 상황이 더 나빠졌는데...어쩌면 그 미친놈이 자살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어.


 "저기다!"


 벽돌을 쌓아 만든 3층 건물이 보이자 이고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다비아와 내성에서 갔던 식당에 비하면 매우 수수하게 생긴 외관이었다. 입구에는 '식당'이라고만 적힌 간판이 붙어 있었다. 문 양 옆으로 화분이 있었다. 화분 위에는 눈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겨울이라 화초가 죽어서 화분만 남았다지만 좀 치워놓지. 화분이 장식이라면 눈이라도 치우던가.



 이고가 문을 열고 앞장서서 들어갔다. 이고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온기가 온몸을 껴안았다. 여기는 서점과는 비교가 안 되게 따뜻하구나! 직사각형 탁자가 줄을 맞춘 것처럼 배치되어 있다. 빈 탁자로 가서 앉았다.


 "뭐 드실 거에요?"

 "구운 쇠고기랑 수프 주세요."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으러 오자 이고가 구운 쇠고기와 수프를 달라고 주문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식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벽. 유리창으로 햇볕이 안으로 들어온다. 여기는 벽난로도 있다.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좋다. 이 안이 따뜻하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만족스럽다. 라키사도 실내가 따뜻해서 매우 기분이 좋아보인다. 켈라자야는 들어와서 자리에 앉더니 미소를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졸리면 잠깐 눈 붙여도 돼. 여기 음식 주문하면 30분은 기다려야 나와."

 "괜찮아요. 저 안 자도 돼요."


 그러나 켈라자야는 그 말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나도 점점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서점이 이 정도로 따뜻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을 바라는 것은 큰 욕심이겠지? 지금 같이 매우 안 좋은 상황 속에서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해야하겠지? 차라리 여름이 훨씬 좋았어. 그때는 어디를 가든, 어디에 있든 다 똑같이 더웠잖아. 겨울이 되니 누구는 따뜻한 곳에서 행복해하고 누구는 추운 곳에서 벌벌 떤다. 올해는 조금 덜 한 걸까? 모두가 겁에 질려 있으니까.


 "여기는 어떻게 알게 되었어?"

 "여기서 몇 년을 살았는데."

 "여기 루즈카랑도 왔었어?"

 "아주 예전에."


 식당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이 주문한 음식도 구운 쇠고기와 수프였다.


 "여기에서는 다 구운 쇠고기랑 수프 주문해?"

 "거의 그럴걸? 여기에서 제일 괜찮은 것이 구운 쇠고기랑 수프니까."

 "다른 것도 팔아?"

 "있겠지? 나도 여기는 항상 구운 쇠고기랑 수프 먹으러 오던 곳이라 잘 몰라. 다른 것을 주문하려고 했어봐야 알지."


 음식이 나오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이고가 30분 정도 걸린다고 이야기했지만, 40분 넘게 기다려서야 음식이 나왔다. 각자 앞에 구운 쇠고기가 놓인 접시와 수프가 담긴 그릇이 놓였다. 고기는 엄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잘게 잘라져서 나왔다. 고기 옆에는 구운 감자 반쪽과 기름에 볶은 감자가 올라가 있었다. 수프에는 야채와 고기가 들어 있었다. 야채는 말린 야채를 넣고 불린 것이었지만 고기는 제대로 된 고기였다. 이 얼마만에 먹는 제대로 된 음식이야! 라키사가 켈라자야를 깨웠다. 켈라자야는 잠을 깨려고 고개를 흔들고 두 손으로 뺨을 두드렸다. 꽤 많이 졸렸나보다. 켈라자야는 기지개를 켜고는 식탁을 바라보았다.


 "우와! 이게 다 뭐야?"

 "구운 쇠고기랑 수프."

 "이거 진짜 먹어도 되는 거야?"

 "응. 네 앞에 있는 건 다 네 거야."

 "오빠, 고마워요!"


 켈라자야가 고기 한 조각을 손으로 집어서 입에 넣고 씹었다.


 "너무 맛있어!"

 "많이 먹어."

 "진짜요? 나 이거 다 먹고 또 먹어도 되요?"

 "응. 부족하면 더 시켜줄께."


 켈라자야는 고기를 입에 마구 우겨넣기 시작했다. 옆에 포크가 있는데도 손으로 집어먹는다.


 "켈라자야, 그렇게 급하게 먹을 필요 없어. 부족하면 더 사줄께."

 "이거 너무 환상적이에요!"


 켈라자야에게 포크를 써서 먹으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관두었다. 켈라자야가 포크를 사용할 줄 몰라서 저러는 것이 아닐 거다. 정말로 너무 맛있으니까 흥분해서 저러는 거겠지. 라키사도 환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는다. 나도 고기와 수프를 먹었다. 전부 맛있다. 맛만 따진다면 아다비아와 내성에서 먹었던 거기보다 더 괜찮다. 여기는 핏물 흐르게 내놓지도 않고 처음부터 속까지 잘 익혀서 주었다. 여기 가격 꽤 나오지 않을까? 가격이 문제냐? 진짜 맛있는 것을 오랜만에 먹는 것이 중요하지. 눈물이 날 거 같다. 이 얼마만에 먹는 훌륭한 음식이야! 전쟁 위기 속에서 벌벌 떨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그 말라비틀어진 풀떼기와 불리지 않으면 씹지도 못할 것 같은 말린 고기를 물에 불려 먹었다. 이런 음식도 세상에 있는데!


 "고기 더 시켜줘?"


 이고가 켈라자야에게 손수건을 건네주며 물어보았다.


 "아니에요, 오빠. 배불러요."

 "너희는?"

 "저희도 배불러요."

 "그러면 이제 나가자."


 이번에도 이고가 돈을 전부 다 내었다. 이고에게 돈을 나누어서 내자고 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면 라키사와 켈라자야도 돈을 내야 하잖아. 이따 밤에 이고에게 오늘 얼마 나왔냐고 물어보고 내 몫은 이고에게 줘야지.



 식당에서 나와 시장으로 갔다. 시장 입구에는 거지들이 곳곳에 앉아 있다. 저 거지들 중에는 원래부터 여기 있던 거지들도 있을 거고 피난온 사람들도 있을 거다.


 "피난민들도 저 속에 섞여 있겠지?"


 이고에게 작게 물어보았다.


 "피난민들은 별로 안 섞여 있을걸. 성 밖에 움집 짓고 산다고 하던데."

 "진짜?"

 "군인들이 모여있는 쪽에 움집촌 생겼다고 하더라구. 그게 아마 피난민들이 사는 곳 아닐까?"

 "그 사람들은 뭐 먹고 살아?"

 "모르지. 그거야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구. 그래도 굶어죽지는 않지 않을까? 날 풀리면 그쪽에서 농사라도 짓겠지."

 "거기에 그 사람들이 농사지을 땅이 있어?"

 "뭐든 해먹고 살겠지."


 그 사람들은 이 겨울을 어떻게 넘길까? 하루에도 어마어마하게 얼어죽는 거 아니야? 성 바깥 어딘가에 움집촌이 생겼다는데 겨울을 버틸 수 있을까? 어떻게든 다 살아남을 거다. 어차피 그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할 거 아니야. 여기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알아서 찾아내겠지. 군인들이 모여있는 곳 근처에서 산다고 하니 군인들이 굶어죽고 얼어죽게 놔두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잘난 자기들과 생각이 같은 동지들이잖아.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군것질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보인다.


 "우리 저거 사먹자!"

 "뭐?"

 "저거!"


 과일잼을 밀가루 반죽 속에 집어넣고 튀긴 간식을 파는 곳으로 갔다.


 "얼마에요?"

 "10마르라에요. 몇 개 드릴까?"

 "4개 주세요."


 아주머니에게 4개 받아와서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한 입 베어물었다. 고소하고 달다. 이런 것은 왜 우리 서점 근처에는 없는 거야? 크기도 손바닥만하다. 이거 세 개면 대충 한 끼 때웠다고 할 수 있겠다. 그 50마르라 국수보다 이것이 훨씬 낫네! 모두가 맛있게 먹는다. 갓 튀긴 것이라 뜨거워서 좋다. 그래, 지금이라도 좀 웃고 즐기자. 이 정도 즐긴다고 세상 달라질 것도 없잖아. 모처럼 진심으로 즐겁다.


 "우리 저것도 먹자!"

 "또?"


 라키사가 깜짝 놀랐다. 괜찮다. 모처럼 누리는 즐거움인데. 이번에는 속에 삶은 팥과 꿀을 버무려 쌀가루 반죽 속에 집어넣고 쪄내어서 위에 빵가루를 바른 간식을 구입했다. 이것은 아까 먹은 것보다 크기가 훨씬 작다. 둥그런 것이 지름이 엄지 손가락만했다. 이것은 하나에 5마르라. 아까 것에 비하면 비싸지만 괜찮다. 이것도 네 개 구입해서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달콤하고 맛있을 수가! 에드자 와서 군것질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런 것 비슷한 것을 먹어본 것이 벌써 작년 일이다. 서점 근처에는 이런 것을 파는 곳이 없어서 천상 시장 가야 먹을 수 있는데 시장 갈 일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막상 시장 가면 다른 것 사느라 돈을 써야 했고, 그러다보면 돈 때문에 먹고 싶은 생각이 확 사라지곤 했다.


 시장에서 파는 식료품은 확실히 여름에 팔던 것에 비해 질이 형편없다. 야채를 파는 곳에서는 말린 채소와 감자, 당근 같은 것만 팔고 있다. 과일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과일 가게에서 팔고 있는 것은 한결같이 절인 과일과 잼 뿐이다. 모두가 무뚝뚝한 표정이다. 그래도 여기는 사람이 많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여기저기에서 흥정을 벌인다. 곳곳에 군인과 경찰이 깔려있기는 하지만 괜찮다. 사람들이 말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른 거야. 여기는 우리들끼리 마음껏 이야기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모두가 말을 하고 있으니까!



 시장 구경을 마치고 다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오늘은 정말 즐거웠다. 이렇게 즐거운 날도 있구나! 이 시장을 벗어나면 다시 암울한 시간이 시작되겠지. 여기라고 암울한 시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단지 암울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웃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사람들이 떠드는 것조차 어색한 그 공간으로 이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넷이 나와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다. 서점 안에서라도 이렇게 웃고 떠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누구도 일부러 웃고 떠들지 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웃을 수가 없다. 온통 안 좋은 일, 안 좋은 소식 뿐이니까. 오죽하면 블랑쉬블르가 와서 우리들에게 짓궂은 말장난을 칠 때가 그나마 웃을 수 있는 순간일까.


 사람들 속으로 새하얀 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가 보였다. 짐을 들고 오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보였다 안 보였다 하지만 손을 잡고 내가 걸어가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저 둘. 왠지 낯이 매우 익다. 쟤네들 내가 아는 애들인데? 아는 애들이 분명한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진짜 싫어했던 애들인 것은 분명한데 이름이 뭐였더라? 그때 그 둘이 내 옆을 지나갔다.


 "병신들, 재미있을 거야."

 "너 너무 멋져!"


 그들이 내 옆을 지나가며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가 재미있을 거라는 거야? 그것보다 쟤네들 누구였더라? 아! 자에드와 예라! 뒤돌아보았다. 그 둘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자에드와 예라도 아다비아처럼 교육받으러 뮈젤 간다고 하지 않았나? 바하르 말로는 자에드와 예라도 뮈젤로 교육받으러 갔다. 이제 교육 끝나고 돌아온 건가? 저놈들은 여기에 무슨 일이지? 이런 시장 바닥에 올 일이 없을 것 같은 애들이었는데. 재미있을 거라니 뭐가 재미있을 거라는 거야?


 '아다비아는 뮈젤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건가?'


 아마 잘 지내고 있겠지? 여기처럼 난리는 아닐 거다. 거기에서 고생하고 있기는 하겠지만 여기만 하겠어? 여기는 이제 대낮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위험한 곳이다. 강의실에서 유령 취급 당하던 시절과는 아예 비교할 수 없다구. 낙제하더라도 죽는 것은 아니잖아. 그렇지만 지금은 정말로 내가 죽을 수 있다는 위험 속에서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아다비아는 아다비아대로 힘들테니 네가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그나저나 답장을 할 수나 있어야 그런 말을 적을지 말지 고민이라도 하지. 답장을 보낼 수 없으니 이런 생각 자체가 의미없다. 아다비아야 잘 지내고 있을 거야. 그 이후 편지가 안 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다비아잖아. 그 짧은 시간동안 엄청나게 노력해서 자에드와 예라 같은 애들이나 가는 그 교육도 참가하게 되었잖아. 자기만큼 잘난 인간들과 경쟁하게 되어서 힘들었을 거야. 그래도 아다비아는 다 이겨내겠지. 그리고 돌아와서 내게 마구 자랑할 거다. 나는 전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라고 으스대면서 자기가 내 공부를 봐준 것을 영광으로 알라고 하겠지.


 '아다비아 보고 싶네.'


 이 자리에 아다비아까지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다비아와 켈라자야가 잘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다비아는 저주술 무지 싫어하잖아. 게다가 켈라자야가 치롤라를 죽이려 들었었구. 그래도 그건 직접 만나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다비아가 성격은 착하니까 의외로 켈라자야를 잘 돌보고 챙겨줄 수도 있다. 어쩌면 아다비아 특유의 말투가 켈라자야 마음에 들 지도 모르구.


 시장 입구에 도착했다. 경찰 두 명이 서 있다. 그 옆에는 쓰레기통으로 사용되는 무릎 높이까지 오는 항아리가 있다. 경찰 둘이 사람들을 노려보듯 바라본다. 시장에서 사고가 잘 발생하니 당연한 것일 거다.


 "야, 너 이리 와 봐."

 "예?"

 "이리 오라고, 새끼야."


 경찰 둘이 맞은편 벽에 기대어 서 있는 소년에게 소리쳐서 오라고 명령했다. 소년은 나보다 어려보였다. 15세쯤 되어보였다. 소년은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자세로 다리를 절며 경찰에게 갔다.


 "너 지금 우리들한테 저주술 쓰려고 했지?"

 "아니에요."

 "이 새끼, 거짓말하네? 왜 우리를 계속 노려봤어?"

 "나으리, 절대 아니에요. 저는 나으리 바라보지도 않았어요."


 소년은 경찰이 무서운지 경찰과 눈도 못 마주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소년의 목소리가 떨린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 같다. 경찰이 저렇게 나오면 그 누구라도 무섭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이 쳐죽일 새끼가 어디에 대고 거짓말이야!"

 "정말 아니에요! 저 저주술 몰라요!"


 경찰 하나가 허리춤에서 몽둥이를 뽑아내 들었다. 소년의 몸이 움찔했다. 경찰이 몽둥이를 치켜들자 소년은 두 팔로 머리를 가렸다.


 "저 정말 아니에요! 저주술사 아니라구요! 그런 거 쓸 줄 몰라요!"

 "그러냐?"

 "예, 그렇구 말구요! 진짜에요!"


 경찰의 말이 조금 누그러졌다. 경찰은 몽둥이를 치켜든 채로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손 내려."

 "예?"

 "손 내려! 거짓말 아니면 손 내려!"

 "때릴 거잖아요!"

 "안 내리면 죽인다. 저주술사 아니면 손 내려!"


 소년이 두 손을 내리며 고개를 살짝 들어 경찰의 표정을 살폈다. 경찰은 몽둥이로 자기 어깨를 톡톡 치고 있었다.


 빠악!


 순간 사람들 모두 얼어버렸다. 저 경찰 미친 거 아냐? 나무 몽둥이를 치켜든 경찰은 소년의 머리로 있는 힘껏 몽둥이를 내리쳤다. 소년이 힘없이 쓰러졌다. 저 소년 죽었어! 경찰이 애꿎은 소년을 죽인 거야! 저 소년을 저주술을 썼는지 안 썼는지야 모르지. 하지만 어떻게 사람 머리통에 대고 있는 힘껏 몽둥이를 내리치는 거야! 모두가 경찰을 바라보았다. 쓰러진 거지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저주술사 개새끼, 죽어!"


 다른 경찰도 몽둥이를 뽑아서 소년의 몸을 향해 내리쳤다. 경찰 둘은 몽둥이로 거지를 마구 때렸다. 소년은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몸을 움추리려는 움직임조차 없었다. 그저 몽둥이질을, 발길질을 그대로 다 맞을 뿐이었다.


 "개새끼, 어디서 저주술로 우리 죽이려구."


 아니야, 저 소년은 저주술을 쓰려고 하지 않았어. 저주술을 쓰게 생기지도 않았잖아. 그냥 벽에 기대어 서 있었을 뿐이다. 저주술을 그렇게 허접하게 사용할 리가 없잖아. 얼어있는 사람들 중 청년 한 명이 사람들을 밀치고 경찰 둘 앞으로 갔다.


 "지금 뭐한 거에요! 왜 애꿎은 이 애를 죽여요!"

 "뭐하긴 뭐해! 이 패죽일 새끼가 우리한테 저주술 쓰려고 한 거 몰라? 너도 한통속이냐?"


 경찰이 화를 내며 몽둥이를 다시 치켜들었다.


 "쟤가 무슨 저주술사야? 맨날 저기에서 서서 짐 나르던 아이인데!"

 "경찰 새끼가 사람을 지키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잖아!"

 "이 쓰레기 같은 놈들아, 왜 죄없는 아이들을 죽이는 거야!"


 사람들이 하나 둘 경찰에게 다가가 경찰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정신 안 차려? 이 새끼가 뭐든 저주술 쓰려 했다구!"

 "걔가 무슨 저주술을 써요? 여기서 맨날 짐나르던 아이인데!"

 "조금 모자라기는 해도 착한 애라구요! 왜 죽이는 거에요!"

 "멀쩡한 사람 죽인 살인 경찰!"

 "이제는 네놈들이 우리를 죽이냐?"


 켈라자야가 내 팔과 이고 팔을 잡아당겼다.


 "우리 빨리 가요."

 "응? 아...그래."


 좋은 장면이 아니다. 아주 나쁜 장면이다. 경찰도 미쳤어. 왜 멀쩡한 애를 몽둥이로 패서 죽인 거야! 저주술사보다 이놈들이 더 나쁘잖아! 켈라자야가 자꾸 잡아끌어서 경찰들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래도 경찰이라고 사람들이 에워싸고 공격하지는 못한다. 이 경찰들이 미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경찰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이들을 함부로 공격했다가는 경찰과 군인들이 떼로 몰려와서 두들겨패고 잡아갈 거니까.


 경찰과 군인들이 정말 힘든 것은 안다. 아마 내 짐작보다 훨씬 더 많이 죽을 맛이겠지. 여기저기서 동료들이 죽어나가고, 그렇다고 숨지도 못해. 근무가 편한 것도 아니야. 이렇게 추운 겨울에 계속 밖에서 돌아다녀야 하니까. 낮에는 그나마 나으려나? 밤에는 쿠룬나스까지 돌아다닌다.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야. 우리들보다 죽음의 공포를 더욱 직접, 더 많이 느끼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죽을 수 있다'는 공포와는 규모와 차원이 다른 공포를 항상 느끼고 있을 거다. 눈을 떴을 때부터 감을 때까지. 어쩌면 꿈속에서조차.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소년은 네놈들이 두 손을 내리라고 해서 두 손을 내렸어. 정 의심이 가서 때려서 제압해야 했다면 두 팔로 머리를 보호하고 있을 때 그냥 때렸어도 되었잖아! 그리고 그거 맞고 멀쩡할 놈이 없는데 왜 쓰러진 애를 그렇게 미친듯이 또 때리는데? 미쳤어. 다 미쳤어!


 켈라자야가 계속 내 팔을 잡아당겨서 끌려가듯 가고 있었지만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경찰 둘이 사람들에게 너희들도 한 패거리냐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당장 여기에서 흩어지지 않으면 전부 체포할 거라고 외쳤다. 사람들이 스믈스믈 뒷걸음질치며 하나 둘 그 자리에서 멀어져갔다. 이렇게 오늘은 경찰들에 의해 사람이 죽는구나. 하루도 멀쩡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네. 망할 놈들! 다 망할 새끼들아!


 꽈앙!


 경찰 둘 옆에 있던 항아리가 갑자기 폭발했다. 몸을 돌리면서 두 팔로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뒤를 돌아보았다. 경찰 둘의 몸이 산산조각났고, 경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몸도 갈가리 찢겨나갔다. 바닥에 쓰러져 죽은 소년의 시체도 산산조각났다. 사람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팔을 움켜쥔 사람, 다리를 두 손으로 쥐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 배를 움켜쥐고 신음하는 사람. 경찰의 말이 다 틀린 건 아니었다. 분명히 저주술사가 있었다! 단지 그 소년이 아니었을 뿐. 그리고 경찰을 향해 저주술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경찰 옆 항아리에 대고 저주술을 사용했다.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에서 구르던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의 정면은 바로 우리를 향하고 있다. 얼굴 전체가 피투성이다. 그는 갑자기 품에서 단도를 꺼냈다. 활짝 열린 입술과 꽉 악다문 싯누런 치아가 보였다. 저건 웃는 건가?


 "진정한 진리 만세!"


 자기 목 측면을 단도로 푹 찔러넣었다. 단도 끝이 반대쪽으로 튀어나왔다. 저 새끼가 저주술로 저 항아리를 폭발시킨 거야?


 "이 찢어죽일 새끼...작정했잖아!"


 이고가 화를 내며 일어났다. 그러면 죽이려고 작정했으니까 저런 짓을 한 거지, 그냥 재미로 했겠어?


 "아주 많이 죽이려고 작정을 했네, 썩을 새끼."


 이고의 말이 느리게 들린다. 똑바로 들리지도 않는다. 웅웅 울린다. 모든 것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심지어 소리까지도. 폭발. 자살. 피. 절규. 비명. 이고가 다가와서 나를 일으켜세웠다. 일어나서 라키사와 켈라자야를 바라보았다. 라키사는 사건이 발생한 현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켈라자야는 똑바로 서서 현장을 바라본다. 라키사는 충격을 크게 받았다. 켈라자야는 전혀 충격을 받지 않은 것 같다.


 "누군지는 몰라도 진짜 지극 정성인 새끼네."

 "뭐가?"


 이고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왼팔을 보여주었다. 외투 왼쪽 소매가 칼로 그은 것처럼 날카롭게 베어져 있었다.


 "왜 그래?"

 "파편이 베고 갔어. 진짜 똑똑한 새끼야. 정성도 있고. 찢어죽일 새끼. 누군지 잡히기만 해봐라."


 지난 번 켈라자야와 시장에서 겪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그때와 비슷한 거리인데 그때 나와 켈라자야에게는 아무 일이 없었다. 내 주변에도 아무 일이 없었구. 이번에는 이고의 옷소매가 조금 베였다. 이제는 뭐 어떻게 해야 더 나빠지게 만들지 시합이라도 하는 거야? 어떤 새끼인지는 몰라도 이것은 철저히 준비한 거다. 진짜 엄청 똑똑한 새끼네. 항아리를 폭발시킬 생각을 하다니. 이런 저주술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매우 훌륭해. 그래, 사람들을 많이 죽이는 것에는 너무 훌륭하다. 그 새끼 잡아다 너무 잘 했으니 잘한만큼 때려주겠다고 외치며 몽둥이로 패죽이고 싶다. 경찰이 소년을 패죽이던 것처럼 말이다.


 순간 문득 떠오른 장면. 예전에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 교육에 반대하던 무리가 에드자 대학교 건물 입구를 막고 찬성하던 애들과 대립할 때 모든 건물에서 폭발이 일어났었다. 그게 이거랑 비슷한 방식이었을까? 그때 건물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까지도 그게 누가 어떻게 저지른 짓인지 모른다. 그 일을 벌인 놈들 외에는 아무도 모를 거다. 그런데 그게 이것과 비슷한 방법 아니었을까? 그리고 또 하나 떠오른 것. 아까 자에드와 예라. 설마 걔네들 짓은 아니겠지? 자에드가 말한 '병신들, 재미있을 거야'란 말의 뜻이 이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겠지?


 라키사를 일으켜세웠다. 라키사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래. 이건 정상이야."

 "무슨 말이야?"

 "이상할 거 없어. 이제는 이것이 일상이니까."

 "이게 무슨 일상이야!"

 "아니야. 이건 평범한 거야."


 라키사 눈에 눈물이 고였다. 뭐가 평범한 거야! 하지만 말을 할 수 없다. 반박하고 싶지만 라키사의 말이 사실이니까.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맨날 이렇게 사람들이 살해당한다. 낮이고 밤이고 말이다. 사람이 살해당하지 않았다는 날이 없다. 이제 사람이 살해당하지 않은 날이 있다면 그게 이상한 하루일 거다. 주변이 다시 시끄럽다. 사람들이 사고가 일어난 현장으로 몰려왔다. 경찰과 군인들도 달려왔다. 이것이 일상이야. 저주받은 이 도시의 평범한 모습이다.



 서점으로 돌아왔다. 문틈에 편지가 한 통 꽂혀 있었다. 받는 사람만 '타슈갈에게' 라고 적혀 있다.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안 써 있다. 이것을 보자마자 누가 보낸 편지인지 알았다. 아다비아가 보낸 편지다. 서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고는 화로에 불을 피웠다. 아주 잠깐 즐거웠다. 그리고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아니야, 그래도 조금 즐거웠으니 된 거야. 그 일을 안 겪었더라도 어차피 지금 이 상태보다 기분이 나았을 리 없잖아? 우리는 그 사건이 발생한 순간 아무 일 없었어. 우리는 죽지 않았어. 다치지도 않았잖아. 그걸로 된 거야. 그것으로 충분해. 지랄같은 하루가 또 시작되겠지. 그래도 그 지랄같은 하루를 새롭게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어디야.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사람은 죽는 순간 그 새로운 하루를 원할 텐데. 아닌가? 아까처럼 순식간에 죽어버리면 그런 것을 원할 틈도 없을 건가? 죽은 후에 바라겠지. 그래, 우리가 나은 거고, 우리는 그나마 축복받은 거야. 어떻게든 이 망할 땅에서 살아서 나갈 거야. 뭔 수를 써서라도 탈출할 거야.


 그 누구도 내게 온 편지에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화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나도 지금 편지를 뜯어볼 생각이 없다. 이따 일이 끝나면 편지를 뜯어볼 거다. 아다비아는 편지에 무슨 말을 써서 보냈을까? 아마 전보다는 더 밝은 내용이겠지. 아다비아, 너는 정말 축복받은 거야. 이런 미친 동네에 있지 않잖아. 여기는 이제 사람이 살해당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곳이야. 그것이 일상이야. 이 미친 상황은 끝도 안 보여. 여기 있는 모두가 죽어야 끝날 것 같아. 이곳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행운이고 축복이야.



 서점 문을 닫은 후 방으로 들어가 품에서 편지를 꺼냈다.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고 편지지를 꺼내 펼쳤다.


 나 조만간 에드자 돌아가.

 너를 보고 싶어.

 너와 만날 수 있을까?

 잘 지내.

 언제나, 항상, 영원히.


 이거 뭐야? 돌아와서 긴 이야기를 할 건가 보다. 아다비아가 에드자 돌아오면 만나게 될 거다. 아까 자에드와 예라도 에드자 돌아왔던데 아다비아도 벌써 돌아와 있는 거 아닐까? 설마 여기 상황 매우 안 좋다고 전해 들어서 내가 자기와 만나기 전에 죽을까 걱정되어서 이렇게 써서 보낸 거야? 전보다 편지 내용이 더 짧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조금 찜찜하기는 하지만 별 거 아닐 거다. '언제나, 항상, 영원히'라고 써놓은 건 뭐야? 무섭게시리. 영원히 작별하는 사람끼리나 하는 말 아니야? 아다비아도 자에드와 예라처럼 무사히 잘 돌아왔으면 좋겠다. 마지막 문장이 상당히 찜찜하기는 하지만 괜찮을 거다. 설마 멀리 뮈젤에 있는 아다비아에게 무슨 심각한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니겠지. 그래야 한다. 아다비아에게까지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끔찍할 거다. 지금도 여기 남아 있는 우리들이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것 하나로 버티고 있는데.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를. 아다비아에게는 아무 일 없을 거다. 거기에서 교육 끝나서 돌아오는 거야. 설마 자에드와 예라가 그 교육에서 쫓겨나서 여기로 돌아온 것이겠어? 네가 서점에 놀러오기만 한다면 나를 쉽게 만날 수 있을 거다. 내가 책수거 나가서 자리에 없다면 서점에서 잠시 기다리면 돼. 그래, 아다비아에게는 아무 일 없어. 나와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기 싶기 때문에 이렇게 아주 짧게 보낸 거야. 아다비아에게 아주 안 좋은 일이 생긴 것 아닐까 싶기는 하지만 이것은 쓸 데 없는 걱정일 거야. 그래야만 하구. 그럴 거야. 괜히 나쁘게 생각하지 말자. 나쁘게 생각하면 진짜 그게 현실이 되어버릴 수 있잖아. 아다비아에게는 아무 일 없다. 조만간 여기로 돌아올 거다. 나는 언제든 너를 기다리고 있으니 서점으로 놀러와. 그리고 이 썩을 도시에 들어오는 순간 항상 조심하구. 너야말로 여기에서 살해되는 사람들처럼 잔인하게 살해당하면 안 되잖아. 이렇게 내게 편지를 보낸 것으로 보아 아무 일 없었던 거야. 그래, 좋게 생각하자. 돌아와서 거기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게 엄청난 불평을 늘어놓겠지. 그리고 자기가 그 어려움을 다 이겨내었다고 자랑할 거야. 그러면서 '나 굉장하지?'라고 물어보겠지. 내가 맞다고 활짝 웃으며 대답하면 '너는 내가 공부를 도와준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해'라고 으스대겠지. 그게 아다비아니까. 그러면 나는 정말 고맙다고 진심으로 이야기할 거다.


 내가 너한테 만나기 싫다고 한 적도 없는데 무슨 나와 만날 수 있을지 물어보고 있어? 언제는 나한테 물어보고 나 보러 왔냐? 당연히 네가 온다면 나는 대환영이야. 이왕이면 네가 돌아온 후 이 도시가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라키사가 오늘 이 미친 상황이 평범하고 정상인 것이라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그건 아니잖아? 지금이 이상한 거고, 네가 이 도시에 다시 발을 대는 순간 기적처럼 다 원래대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학교야 계속 휴교 상태이겠지만 상황이 좋아지면 슬슬 복구 작업을 개시하겠지. 학교가 휴교 상태이면 너는 서점에 놀러오기 더 좋잖아? 내가 항상 서점에 있으니 너 편한 시간에 언제든 오면 되지. 너한테까지 동원령이 적용될 리는 없을 거구.


 별 거 아니야. 정말 별 거 아니야. 아다비아가 이제 곧 돌아갈 거라고 덜렁 쓰기 그래서 괜히 일부러 줄 늘리기 위해 저렇게 쓴 거야. 편지 내용을 보고 불안한 마음이 자꾸 들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일 거야. 아다비아에게는 별 일 일어나지 않았다. 아다비아는 무사히 교육을 잘 받고 돌아온다. 그래. 쓸 데 없이 나쁜 상상 같은 건 하지 말자. 불안한 마음이 들더라도 무시하자. 그런 것들이 진짜 현실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해. 아다비아는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이게 사실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