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2017. 10. 2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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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18화


 "이제 11월도 며칠 안 남았네."


 이고가 달력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오늘은 11월 25일. 이제 5일만 더 지나가면 올해의 마지막 달이 찾아온다. 12월이 되면 상황은 지금보다 나아질까? 매일 사람들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민간인만 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경찰, 군인들도 죽어나간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밤에만 사람들이 살해당한다는 점이다. 백주대낮에 사건이 터진 것은 라키사와 내성으로 놀러갔을 때 정도다. 그 이후에도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리기는 하지만 자주 들리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거야 혼자 죽는 것이니 그 장면이 충격적이어서 문제지, 그 자체가 그렇게까지 공포스럽지는 않다.


 오늘 라키사는 집에서 쉰다. 어제 몸이 별로 안 좋아보였다. 계속 코를 훌쩍이고 추운지 계속 웅크리고 있었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아서 약을 사와서 라키사에게 주자 라키사는 약 먹을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툴툴대며 약을 입에 털어넣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물을 마셨다. 그렇게 약을 먹고도 몸 상태가 별로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았다. 결국 퇴근할 때 이고가 라키사에게 오늘은 서점 나오지 말라고 했다. 라키사가 괜찮다고 했지만 이고는 우리들한테까지 감기 옮기지 말고 집에서 푹 쉬고 감기 다 나으면 서점에 오라고 했다. 라키사는 이불 속에서 곤히 자고 있겠지? 라키사 몸이 나으면 라키사와 다시 한 번 내성으로 가볼까? 낮에는 별 일 생기지 않으니까 가도 상관 없을 거다. 그리고 설마 또 나한테 그런 일이 터지겠어? 그때는 그냥 운이 없었던 것 뿐일 거야. 그런 재수없는 일이 나한테 또 생길 리가 없지. 쿠룬나스에게 당한 시체도 보았고 터져 죽은 경찰관 시체도 보기는 했지만 다 한 번만 본 거잖아. 한 번 겪었으니 내게 또 그런 일이 생길 리는 없을 거다. 더욱이 내성 쪽은 더욱 철저히 지키고 감시할 거구.


 '오늘은 켈라자야가 조금 늦게 오네.'


 평소라면 아까 왔어야 할 켈라자야가 아직까지 안 온다.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밤에 대체 혼자 뭐하면서 돌아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안 오니까 걱정되잖아. 시계를 보았다. 오전 9시. 진짜 무슨 일 당한 거 아니야? 나가서 찾아봐야하나? 지금 나가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지금은 근무 시간이 아니니까.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얘가 이 도시 어디에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 도시를 모두 돌아다니는 것은 무리고. 켈라자야야 강하니까 나쁜 일을 당할 리가 없겠지? 가만히 기다리다보면 오겠지.


 그런데 지금 밤에 사람들을 죽이는 놈들은 약한 사람이 아니잖아? 쿠룬나스 또한 마찬가지구. 그 망할 것들이 켈라자야보다 약한지 강한지 어떻게 알아? 진짜 켈라자야 무슨 일 당해서 계속 안 오고 있는 거 아니야? 요새는 새벽에 오더만 갑자기 날이 훤해졌는데도 안온다. 진짜 무슨 일 당한 거 아니야? 나가봐서 찾아봐야하지 않을까? 얘가 아무리 제멋대로에 미쳤다고 해도 이러지는 않을텐데. 평소였다면 이렇게 걱정하지 않았을 거다. 그냥 안 오나보다 했겠지. 그렇지만 매일 여기저기서 사람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오는데 갑자기 안 오니 걱정된다. 게다가 켈라자야는 그냥 서점에 놀러오는 것이 아니라 밤새 에드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돌아와서 잠을 청하러 오는 거잖아.


 "이고, 나 바람 좀 쐬고 올께."

 "응. 잘 다녀와."


 켈라자야가 걱정되어서 안에 도저히 못 있겠다. 이고에게는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만 말했다. 켈라자야 걱정되어서 찾으러 나가겠다고 꼭 말해야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냥 말하기 부끄러웠다. 친구 걱정되어서 찾으러 나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고에게 그대로 말했다가는 분명히 나보고 켈라자야 좋아하냐고 물어보겠지. 켈라자야가 여느때처럼 아침 일찍 자러 왔다면 이렇게 걱정되어서 밖에 나올 일 자체가 없었을텐데.



 어디로 가야 하지? 막상 서점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전혀 모르겠다. 에드자가 무슨 우리 서점만한 곳도 아니고, 여기를 뭔 수로 다 돌아다녀? 켈라자야는 내성쪽으로 갔을까? 왠지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다. 거기는 아주 철저히 지키는 곳이니까. 켈라자야가 아무리 자기는 그런 나쁜 짓 안한다고 아무리 외치고 울어봐야 거기를 지키는 경찰과 군인들이 켈라자야 말을 믿을 리가 없다. 아무도 안 돌아다니는 한밤중에 내성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면 그 누구도 멀쩡한 인간, 사악한 목적이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오랜만에 학교나 다시 가봐?'


 그러고보니 에드자 대학교에 가지 않은지 꽤 되었다. 폐교령이 내려진 이후 거기 갈 일이 전혀 없었다. 그 불타버린 건물 보러 갈 필요도 없었고, 그 이전에 서점에서 나와 여기저기 돌아다녀봐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학교 건물이 다시 완공되면 휴교령이 해제될 거라고 발표되었다. 얼마나 학교 건물들이 다시 복구되고 재건되고 있는지 구경이나 하러 갈까? 거기 가면서 혹시 켈라자야가 있는지 살펴보구.


 학교를 향해 걸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한때는 매일 아침 이 길을 걸었었지. 혼자서 이번 학기 어떻게 넘길지 한숨쉬면서 말이야. 그때는 그 생활이 참 저주받은 생활이라고 여겼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주 축복받은 생활이었어. 아다비아는 거의 매일 서점으로 찾아와 공부를 알려주었고, 라키사도 틈틈이 내 공부를 도와주었으니까. 게다가 시험도 통과했잖아. 2학기에는 라키사와 사이좋게 학교로 가며 이 길을 걸었었구. 참 행복하고 즐거운 길이었어. 내가 그때 너무 배가 부르고 욕심이 컸던 거야. 물론 그 당시에는 상황이 이렇게 나빠질 줄 몰랐지만 말이다.


 주변을 잘 살피며 걸었다. 켈라자야는 보이지 않는다. 얘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혹시 길모퉁이에 쭈그려앉아 졸고 있나 살펴보았지만 켈라자야는 없다. 켈라자야는 제정신이 아니니 내 생각 범위를 아예 벗어난 곳으로 가버린 거 아냐? 걱정되어서 이렇게 나와서 찾으며 돌아다니고 있지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안 좋은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길바닥에 앉아 엉엉 울던 라키사. 라키사도 차라리 그 순간이 나았다고 생각하겠지? 당연한 거 아니야? 그때는 그래도 밤에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놈들과 쿠룬나스는 없었잖아.



 에드자 대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정문은 열려 있었다. 대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하구나."


 모든 것이 그대로다. 아니, 더 나빠진 것 같다. 여기를 수리하려고 노력한 흔적 자체가 안 보인다. 오히려 그날보다 더 파괴된 곳도 있는 것 같다. 시위대 망할 쓰레기들. 그렇게 발광했으면 이제 그 힘으로 학교 건물이나 수리하든가. 에드자 대학교 폐교령 철회하라고 학생이고 일반인이고 나와서 나대더니만 학교 건물이 다시 복구되면 휴교령이 해제될 거라는 발표가 난 후 여기 와서 복구시켜보려고 한 놈이 하나도 없다. 한 놈이라도 있었다면 건물들 꼬라지가 이 모양이 아니겠지. 그 쓰레기들이 애초에 에드자 대학교 폐교령에 대해 깊이 생각이나 했을까? 절대 아닐 거다. 그저 시위할 구실 하나 잡았다고 좋아한 것 뿐이겠지.


 학교에서 나왔다. 휴교령이 풀리려면 엄청 오래 걸리겠구나. 아직 그 어떤 것도 손대놓지 않았으니까. 자연이 학교를 다 가루로 만들어버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니야? 어쨌든 복구가 안 되면 휴교령은 안 풀릴 거다. 과연 휴교령이 풀리는 날이 오기는 할까? 에드자에 있는 그 누구도 학교 건물을 복구시키는 것에 전혀 관심없을텐데. 지금 무슨 에드자 대학교 재건에 관심을 가져? 밤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그나저나 켈라자야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혹시 에드자 대학교 안에 있을까 하고 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찾아봤지만 없었다. 시장 쪽으로 가봐야 하나? 시장에도 없다면 어디에서 켈라자야를 찾아야 하지? 시장에 없다면 서점으로 돌아가서 켈라자야가 다시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야할 거다. 내성 쪽으로 갔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내성을 제외한 에드자도 절대 좁지 않다. 차라리 켈라자야가 내성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어서 거기서 켈라자야를 찾아 돌아다니는 거라면 몰라도 내성을 제외한 부분에서 걔를 찾아돌아다니는 건 무리다.



 시장 입구에 가까워졌다.


 "저거 켈라자야 아니야?"


 몸에 달라붙는 검은 원피스를 입고 왼팔에 빨간 외투를 들고 있는 여자. 검은 원피스의 소매는 손목에서 한뼘 정도 위로 올라가 있었다. 소매 테두리를 살구색 리본이 감싸고 있었다. 소매를 감싸고 남은 그 리본은 팔 안쪽에서 한뼘 정도 길이로 내려와 있었다. 살구색 리본에는 여러 색깔 꽃 자수가 일렬로 있었다. 소매 테두리를 저렇게 희안하게 꾸몄다니 참 켈라자야답다. 켈라자야는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켈라자야!"

 "어? 네가 여기 왜 왔어?"

 "너 찾으려구!"

 "네가 나를 왜 찾아?"

 "죽은 거 아닌가 걱정했잖아! 요즘 밤마다 사람 죽어나가고 있구만."

 "그게 왜?"


 켈라자야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너 맨날 아침 일찍 왔잖아. 오늘 갑자기 안 와서 뭔 일 있나 했지."

 "오늘은 아직 안 졸려서 안 갔어. 내가 거기 꼭 아침 일찍 가야해?"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런데 왜?"

 "걱정했잖아!"

 "그러니까 왜!"


 켈라자야가 성질을 내었다. 내가 뭐 잘못한 건가? 걱정되어서 찾으러 나왔는데 그게 틀린 행동이었던 거야? 어째서 그것이 틀린 행동인지 이해가 안 된다. 새벽에 여기저기에서 변사체들이 발견되고 있다. 켈라자야는 밤새 돌아다니고 아침 일찍 서점에 와서 잠을 청한다. 그런데 오늘 안 왔어. 그래서 밤에 위험한 일 당한 것 아닌가 하고 찾으러 나왔는데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야? 뭐라고 이야기해야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밤에 위험하잖아. 너 안 와서 무슨 일 생겼는지 걱정했다구."

 "그러니까 무슨 걱정? 너 지금 나한테 원하는 것이 뭐니? 뭘 어쩌라는 거야!"

 "아, 됐다. 서점으로 돌아가자."

 "서점으로 돌아가면 되는 거지?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니야!"


 켈라자야는 내 행동에 매우 기분이 상했는지 얼굴이 굳었다. 입을 꽉 다물고 나를 노려본다. 아, 진짜 얘 뭐지? 왜 어린애가 집에 안 돌아가고 더 놀겠다고 고집피우며 화내는 것 같을까? 켈라자야는 화가 제대로 났는지 내 반대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고 팔짱을 끼었다.


 "너 옷 바뀌었네?"

 "그래서 뭐? 이번에는 옷도 갈아입으라고 하게?"

 "아니야. 그 옷 예쁘고 너한테 잘 어울린다구."

 "당연한 걸 왜 이야기해? 어서 가. 네가 가자고 했잖아."


 켈라자야가 고개를 내 반대쪽으로 틀고 내 쪽으로 걸어와 옆을 지나갈 때였다. 백 걸음 조금 안 될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섬광. 그리고 귓구멍을 날카롭게 후벼파 쑤시는 것 같은 폭발음. 소리가 몸을 흔든다. 뒤돌아서서 켈라자야를 덮쳤다. 켈라자야가 넘어졌고 그 위로 나도 쓰러졌다.


 "아야!"


 켈라자야의 비명.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사람 몸에서 섬광이 터져나왔고, 그와 동시에 폭음이 온몸을 덮쳤다. 너무 놀라서 순간적으로 뒤돌아서서 켈라자야를 몸으로 덮쳤다. 켈라자야가 앞으로 넘어져버렸고, 나도 균형을 잃고 켈라자야 위에 쓰러져버렸다. 고요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야, 비켜!"


 켈라자야가 신음하며 몸을 틀었다. 그제서야 켈라자야 몸 위에서 굴러떨어지며 정신이 돌아왔다. 바닥에 주저앉아 앞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비명소리. 사방팔방으로 퍼진 사람 조각들. 피투성이. 분명히 사람의 몸에서 섬광이 터져나오는 것을 봤다. 사람이 터지면서 주변 사람들을 찢어죽였다. 이런 것이 가능해? 사람 몸이 터지면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 몸을 갈가리 찢어버리는 것이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아, 아파. 옷도 더러워졌어!"


 켈라자야가 주저앉아 오른쪽 무릎을 바라보고 있다. 오른쪽 무릎이 까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괜찮아?"


 순간 고개가 홱 돌아가면서 왼뺨이 화끈거렸다.


 "야, 너 나한테 왜 이래? 너 지금 네 말 안 듣는다고 일부러 이런 거지? 너 때문에 무릎 까졌잖아! 옷도 더러워지구!"


 켈라자야는 내게 따귀를 갈기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소리쳤다.


 "그게 아니라 저거...너 보호해주려고 그랬던 거야!"

 "나 참, 너 진짜 어이없다. 네가 나를 왜 보호해줘?"

 "지금 사람이 폭발했잖아!"

 "그래서 뭐? 그거랑 네가 나 일부러 넘어뜨린 거랑 무슨 상관인데?"

 "저거 안 보여? 위험해서 너 보호해주려고 덮친 거였다구!"

 "저거 뭐! 저게 뭐 대단한 건데! 그러니까 네가 나를 왜 보호해줘? 너 때문에 옷만 더러워지고 다쳤잖아!"


 이 미친년은 왜 따귀를 때리고 소리를 질러대는 거야? 눈 멀었어? 고막 터졌어? 앞에 사람들이 폭발 때문에 찢어져 죽은 거 안 보여?


 "그러면 이런 상황에 부드럽게 감싸안아주냐?"

 "헐...이거 완전 미쳤네? 야, 네가 뭔데 나를 덮쳐? 대체 왜 나를 보호해주겠다고 하는 건데? 그래, 서점 가! 가면 될 거 아니야!"

 "아 진짜 미치겠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일부러 넘어뜨리려고 했어? 사람이 폭발하는 거 보고 순간적으로 켈라자야 보호해줘야겠다고 생각해서 덮친 거다. 나도 켈라자야가 그렇게 앞으로 넘어져버릴 줄 몰랐지. 기껏 자기 위해주니까 따귀 때리고 왜 자기를 보호해주냐고 오히려 눈에 쌍심지 켜고 달려든다. 그래, 너 좋을 대로 해라. 밤에 뒤지든 말든 이제 신경 쓰나봐라. 진짜 뭐 이런 미친년이 다 있나.


 일어나서 옷의 먼지를 털어내고 서점을 향해 걸어갔다. 켈라자야도 일어나서 서점을 향해 걸어갔다. 계속 나를 노려보고 있다. 노려보든가 말든가. 이건 미쳐도 제대로 미쳤어. 하늘에서 하얀색 차가운 솜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첫눈이 내리는구나. 사람이 폭발하면서 여러 사람이 찢겨져 죽은 날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떨어진다. 그래, 눈으로 다 덮어버려라. 하얗게 다 지워버려라. 첫눈이 내리는 즐거운 날이 이따위라니. 올해는 정말 이래저래 내 인생에서 제일 안 좋은 해구나. 눈이 점점 많이 내린다. 거리에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다. 올해는 눈이 시작부터 엄청나게 내리네. 하늘도 이 상황이 정말 꼴보기 싫은가보다.



 켈라자야와 함께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너네 같이 들어오네? 어? 켈라자야! 너 무릎 왜 그래?"


 뒤돌아서서 켈라자야의 무릎을 보았다. 무릎에서 피가 흘러 발목까지 내려가 말라붙어 있었다. 저 멍청이는 오는 동안 피를 닦지도 않고 그냥 온 거야? 저건 미친 거야, 멍청한 거야? 켈라자야는 절뚝이며 이고에게 다가갔다.


 "타슈갈이 이랬어요! 갑자기 저를 덮쳐서 넘어뜨렸어요!"

 "뭐? 타슈갈이?"


 이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말하기도 싫다. 방 안으로 들어가 화로에 불을 붙이고 드러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진짜 첫눈 내린 날 이게 뭔 개같은 경우야? 아니지, 얼마나 하늘도 보고 어이가 없었으면 다 지워버리려고 눈을 쏟아내냐. 다시는 켈라자야에게 좋은 일 하나봐라. 따귀만 처맞고 욕만 들이먹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켈라자야가 죽든 말든 그냥 놔두고 나만 몸을 틀어 바닥에 주저앉아버릴 걸 그랬어. 여자라서 확 갈겨버리지도 못하고. 진짜 미친 새끼는 가까이하는 게 아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켈라자야다. 이제 자려고 방으로 기어들어오나보네. 켈라자야는 내쪽으로 다가와 쭈그려 앉았다.


 "타슈갈, 아까는 미안해."

 "됐어."

 "오빠가 네가 나 좋아해서 진짜 보호해주려 한 거였을 거래."


 이건 머저리인가? 그걸 남한테 물어보고 설명을 들어야 아는 거야?


 "앞으로 네가 또 그러면 나 보호해준 거라고 생각할께."

 "됐으니까 잠이나 자."

 "고마워. 보호받아본 것은 처음이야."


 아무 말 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나 그래도 네가 시킨 대로 서점 왔어. 나 무릎 너무 아팠는데도 너 쫓아가려고 열심히 걸었어! 잘했지?"

 "그래, 잘 했다."

 "오빠가 이런 건 좋아해야하는 거래. 아직 네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고마워."


 고마워하든가 말든가. 아까 따귀 때리고 화 바락바락 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고한테 설명들었다고 고맙다고 하면 내가 '어이구, 천만에요. 저는 제 할 일을 해야했을 뿐이었어요. 저는 당신의 그 심정을 이해해요' 라고 할 거 같냐?


 "나 기뻐. 나를 보호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신기해."

 "별 게 다 신기하네."

 "진짜야. 나를 위해 주는 사람은 없었어."

 "넌 맨날 미움만 받았냐?"


 얘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계속 해대는 거야? 이건 미쳐서 자기가 뭔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거 아니야?


 "미움받는 것이 뭐야? 이것이 이상한 것 아니야? 오빠, 언니, 너, 라키사가 이상한 거잖아."

 "야, 뭐가 이상해!"


 켈라자야의 미친 헛소리를 무시하고 넘기려 했지만 들을 수록 속에서 천불이 난다.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아 켈라자야를 바라보았다. 켈라자야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친구가 친구를 위해주는 게 뭐가 이상하단 거야? 너 친구 없어? 맨날 여기저기서 두들겨 처맞고 욕만 들어처먹었어? 뭘 또 오빠가 알려줘서 이제부터 그러면 보호해준 거라고 생각해? 장난하냐? 그걸 누가 알려줘야 아는 거야? 뭐가 내가 이상하다는 거야!"


 켈라자야가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맨날 여기저기서 두들겨맞고 혼나고 욕먹었는데? 모든 곳에서 모든 시간에."

 "뭐?"

 "응. 그게 정상적인 거 아니야? 나 많이 맞았어. 모두가 나한테 그랬는데?"

 "야, 그게 말이 돼? 뭘 또 두들겨맞았다는 거야?"

 "주먹으로 때리고, 몽둥이로 때리고, 쓰러지면 머리 발로 걷어차고 여기저기 마구 밟구."

 "그걸 나한테 믿으라는 거야?"

 "너 나 안 믿어?"

 "그걸 맨날 당했을 리가 없잖아!"

 "매일 겪는 일이었는데? 너야말로 왜 나한테 잘 해줘?"


 이건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걸까? 아니면 그냥 미친 걸까?


 "당연히 친구니까 잘 해주지! 그걸 물어봐야 알아?"

 "그게 당연한 거야?"

 "그래!"


 켈라자야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 나는 켈라자야에게 이렇게 당연한 것을 이야기해줘야 할까? 켈라자야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방문을 확 열어제끼고 밖으로 나갔다. 저건 미쳤어. 대화가 통할 애가 아니야.


 다시 방바닥에 드러누워있다 일어났다. 담배나 한 대 태워야겠다. 방문을 열고 나왔다. 


 '이거 무슨 장면이야?'


 켈라자야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울고 있다. 이고는 그런 켈라자야가 안타까운지 한숨을 내쉬며 켈라자야를 바라보고 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거지?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잠시 후 켈라자야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이고가 눕는 자리로 가서 드러누웠다. 이고랑 켈라자야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길래 켈라자야가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었을까?



 켈라자야가 잠든 것 같다. 밖으로 나왔다. 이고가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이고에게 바짝 달라붙어서 모기 소리마냥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고, 아까 켈라자야랑 무슨 이야기한 거야? 왜 그렇게 펑펑 울어?"

 "아...그냥 이것저것."

 "무슨 이것저것이었길래 서럽게 울어대?"

 "그냥 걔 과거 이야기. 뭐 고생 많이 했더라구."

 "어떤 고생?"

 "그건 나중에 네가 직접 물어보든가."


 그때 서점 문을 열고 누가 들어왔다. 초록색 외투에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블라우스에 샛노란 짧은 치마. 무릎까지 올라오는 손가락 하나 높이의 굽이 달린 부츠. 시허연 분칠에 시뻘건 입술, 새까맣게 칠한 눈가. 그리고 머리에 두른 보라색 리본. 가슴은 또 뭘 집어넣은 거야? 가슴이 아주 빵빵하게 튀어나와 있다. 저거 감비르잖아! 저 미친놈은 여전히 저러고 다니네. 이고를 바라보았다. 이고의 인상이 성질 나서 있는 힘껏 마구 구겨댄 종이처럼 일그러졌다. 이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하지 않아도 왜 일어났는지 안다. 저새끼 쫓아내려고 일어난 거겠지.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비르, 우리 나가자!"

 "왜? 나는 서점 구경하고 싶은데..."

 "아니야, 우리 나가자!"

 "어머, 지금 손님 쫓아내는 거니? 나는 책 보고 싶다구!"

 "아니, 빨리 나가자. 찻집 가서 이야기하자."


 감비르의 손을 잡고 서점 밖으로 끌어내려고 하는데 감비르가 크게 소리쳤다.


 "어머, 너 지금 나 차별하는 거니? 너 그런 편견 가득한 차별 너무 안 좋은 거 모르니?"

 "야, 좀 나가자구!"


 감비르의 면상을 보는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이 병신같은 놈은 왜 화장은 아주 떡칠을 하고 온 거야? 여자들도 이렇게 화장을 개떡같이, 그리고 진하게 하지 않는다. 이 새끼는 면상으로 사람들 정신 공격하려고 작정했나? 그때 방문이 열리고 켈라자야가 나왔다.


 "뭐야? 저 병신 쓰레기 새끼는."


 그 순간 생각이 정지해버렸다. 켈라자야는 길거리 개똥을 보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감비르를 바라보았다. 감비르는 너무나 태연하고 평화로운 표정이다.


 "지금 저한테 그런 말씀 하신 거에요? 어머, 너무 편견에 사로잡혀계시다!"

 "뭐가 편견이라는 거야?"

 "지금 제 외모 보고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그거 너무나 나쁜 편견! 저는 말이에요,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소중한 존재랍니다."

 "미친 새끼, 뭔 소리래? 너 어디서 되도 않는 여자 흉내야? 여자 놀리는 거야?"

 "여자를 놀리다니요? 저는 남자이자 여자에요. 보면 모르겠나요?"


 감비르는 눈을 살짝 감고 턱을 치켜들었다. 자기가 치마를 입은 것을 잘 보이게 하려는지 몸을 비스듬히 틀고 외투를 뒤로 젖히며 두 손을 허리춤에 가져다대었다.


 "여장하면 여자 되니? 별 미친놈 다 보겠네."


 그래, 켈라자야. 네가 감비르보다는 정상이다. 이 병신 미친 새끼 앞에서는 너도 정신을 차리고 정상인이 되는구나. 광기 보존의 법칙이냐? 한 공간 안에 광기는 항상 일정량만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진짜 더 미친놈이 나오면 덜 미친놈이 정신을 차리고 정상인이 되는 거야?


 "어머! 그것은 편견! 저는 남자이자 여자에요. 이것은 진정한 진리와 자유, 그리고 저주술의 근본 정신! 당신은 지금 편견이 가득한 차별을 하고 있는 거 아시죠? 그거 너무나 나쁜 거랍니다. 저처럼 저주술의 근본 정신을 깨우쳐봐요."

 "얘 뭐래? 저주술? 뭐 이런 미친 새끼가 다 있어?"


 켈라자야가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 화났다. 게다가 켈라자야는 진짜 저주술사다. 감비르 이놈이 함부로 저주술 어쩌구 주둥이로 나불댈 상대가 아니라구!


 "야, 나가자. 나가서 나랑 이야기하자."

 "아니. 나 저 편견에 사로잡혀서 차별하는 여자랑 싸워야겠어."

 "이 미친 새끼야, 좀 닥치고 나와!"


 감비르를 잡아당겼지만 감비르는 내 손을 계속 뿌리치려하면서 켈라자야를 똑바로 응시했다. 켈라자야는 기가 찬다는 듯 피식 웃더니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감비르 이러는 거야 지난 번에 겪어봤으니 그러려니 하는데, 켈라자야는 왜 감비르를 보고 이렇게 흥분하는지 모르겠다.


 "저는 남자이자 여자에요. 공부 좀 할래요?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때요? 진리를 깨우치고 저주술의 황홀함을 느껴보세요."

 "저주술? 너 저주술 좀 써?"

 "켈라자야! 그만해! 감비르, 너는 따라나오라니까!"


 하지만 둘 다 내 말을 들을 리가 없지. 왜냐하면 둘 다 미쳤으니까.


 "너 화장 떡칠한다고 진짜 여자가 될 수 있을 줄 알아? 나는 너처럼 꼴깝떨지 않아도 여자인데 부럽지? 남자면서 여자라니 별 미친놈 다 보겠네."


 그 순간 감비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켈라자야가 정곡을 찌른 건가?


 "저는 남자이자 여자에요. 그러니 이렇게 여자옷이 제게 잘 맞는 것이구요. 저 부럽죠?"

 "지랄하네. 너 지금 여자 비하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아니요. 저는 진짜로 남자이자 여자에요. 공부 좀 많이 하지 그래요? 남아드라스 공화국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건데요."


 순간 이고가 소리쳤다.


 "뭔 개소리야! 내가 남아드라스 공화국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당신이 남아드라스 공화국 다 알아요? 어머, 너무 오만하시다. 그것도 편견!"

 "남아드라스 공화국에서 너처럼 하고 다니면 인간 취급 안해!"

 "그건 내가 안 봤으니 몰라요. 나는 당신이 맞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진짜 미치겠네. 모두가 미쳐버린 거 같다. 나까지 포함해서.


 "그 가슴은 또 뭐야? 가슴에 수건 넣으면 여자 되냐?"

 "당신이 가슴을 달고 있는 것이나 이거나 똑같아요. 저는 여성 육체의 느낌을 익혀가고 있으니까요."

 "수건하고 가슴이 같다고? 진짜 너 미쳤구나!"

 "그러니 당신이 저주술을 못 쓰는 거랍니다. 저는 아름다운 저주술을 사용할 수 있어요. 부럽죠? 남성성도 여성성도 다 갖고 있고, 저주술도 멋지게 쓸 수 있구요. 저주술은...너무나 황홀하고 아름다워요!"


 더는 못 참겠다. 켈라자야에게 자꾸 저주술로 도발하는 건 진짜 위험하다. 이놈이 무슨 저주술을 황홀하고 아름답게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켈라자야와 저주술로 싸울 실력은 절대 아니다. 감비르는 켈라자야를 처음 봤기 때문에 잘 모를 거다. 켈라자야는 치롤라 정도는 가볍게 죽일 수 있다구! 루즈카가 직접 에드자로 데려온 그 치롤라를 말이야! 켈라자야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감비르 이 새끼 지금 자기 주제도 모르고 깝치고 있는데 켈라자야한테 저주술로 나대다가는 진짜 죽을 수 있다.


 "켈라자야, 그만해! 감비르 너도 좀 그만하구!"


 소리를 질렀다. 켈라자야는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감비르를 있는 힘껏 잡아끌어서 서점 밖으로 끌어냈다.



 "찻집 가자. 뭔 이야기를 하러 서점에 온 거야?"

 "나는 너도 만나구 책도 보려고 왔지. 그런데 저 여자 너무 무식하다. 이고도 다시 봤어! 어쩜 그렇게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니?"

 "일단 가서 이야기하자."


 감비르를 찻집으로 끌고 갔다.


 "잘 지냈냐?"

 "나 너무 마음이 아파."

 "왜?"

 "거리 돌아다닐 때마다 사람들이 다 나를 바라보는 거 있지? 나를 기분나쁘게 위아래로 훑어봐. 여자들이 그런 시선에 너무 힘들어하는 걸 알았어. 나 이제 편견이 가득한 차별에서 조금 더 탈출했어! 그 여자들이 느끼는 모멸적인 시선! 정말 기분나빠!"


 야, 너를 그렇게 보는 것은 그래서가 아니지. 멀쩡한 남자가 되도 않는 여장하고 억지로 여자 흉내내니 이 무슨 미친놈인가 보는 거야. 너를 보고 성욕을 느낄 남자는 세상에 없어! 같은 게 아니라 전혀 다른 거라구! 이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이놈이 또 발끈해서 난리를 치고 침 튀겨가며 그것이 편견에 사로잡힌 생각이라고 반박하려고 들겠지? 그냥 말을 말자.


 "게다가 사람들이 일부러 나한테 시비거는 거 있지! 여자로 사는 것은 너무 어렵고 힘들어. 내 이런 복장으로 너무 차별해!"


 그게 과연 차별일까? 솔직히 이상한 것 사실이잖아. 아니야, 그래도 라키사가 이야기했었다. 개인 문제인데 뭔 상관이냐구.


 "그래서?"

 "이 지독한 편견 가득한 차별! 나는 꼭 투쟁해서 승리할 거야! 나는 나날이 그런 편견 가득한 차별을 겪으며 강해지고 있단다."

 "응. 잘 하고 있네."


 대체 이놈을 어떻게 해야 맨정신으로 되돌려놓을까? 그보다 이놈은 '편견 가득한 차별'이라는 말 없으면 말을 못하나? 아주 우주 삼라만상이 다 편견 가득한 차별이라고 하지 그러냐? 해가 뜨면 낮이고 해가 저물면 밤인 것도 편견 가득한 차별이라고 우겨보지 그래? 그렇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거 맞다고, 그것도 편견 가득한 차별이라고 되도 않는 소리를 하겠지?


 "어머! 나 방금 너무 기뻤어! 너는 정말 저주술에 대해 많이 깨우쳤구나! 너는 왜 저주술 수련을 하지 않니?"

 "뭔 저주술이야? 나 저주술 모르고 관심도 없다니까!"

 "어머, 설마 부끄러운 거니? 몰래 저주술 열심히 수련하면서 잘 사용하지 못하니까 그러니?"

 "아니라구! 나는 이 나라 떠나는 것이 목표라고!"


 감비르는 '어머, 내숭은'이라고 말하며 피식 웃었다. 라키사와 아다비아도 웃을 때 저렇게 웃지는 않던데 얘는 뭘 보고 여자 흉내를 낸답시고 저 따위로 웃지?


 "나 매일 공격받아서 괴로워."

 "무슨 공격?"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왜 이렇게 화장하고 여장하고 다니냐고 물어보는 거 있지?"

 "그게 뭐?"

 "그거 공격이야! 나에게 상처를 주는 공격!"

 "너 투쟁한다고 하지 않았어?"

 "응. 어머, 너 잘 기억한다!"

 "그러면 질문에 대답해주고 설득시키면 될 거 아냐."

 "나는 언제까지 그 똑같은 질문에 대답해주어야 하니? 그리고 그들은 나와 토론을 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 아니야! 이미 나는 틀렸다고 가정하고 나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질문을 사용하는 것 뿐이야!"


 이건 또 뭔 소리야? 뭐가 어쨌든 네 꼬라지에 관심이 생겼으니 질문하는 거잖아. 너 꼴이 정말 꼴보기 싫었다면 너를 피해가든가 너한테 시비를 걸고 주먹을 날렸겠지.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호감은 있으니 주먹 대신 질문을 날린 거잖아. 그렇게 그 잘난 '투쟁'이 하고 싶다면 거기에 성의껏 잘 대답해주며 상대를 설득하면 되는 거구.


 "호기심에 질문하는 건데 그것이 공격적이라는 거야?"

 "그러면 나는 언제까지 똑같은 대답을 계속 해줘야 하니?"

 "어쨌든 질문을 한다는 건 너한테 상대를 설득시킬 기회가 생긴다는 거잖아."

 "아니. 그것은 나를 공격하고 상처입히는 것이야."

 "그러면 뭘 원하는데?"

 "내가 이렇게 저주술 수련하는 것에 관심을 안 가져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투쟁은? 뭐, 네가 생각하는 것을 널리 퍼뜨리고 싶은 거 아냐?"

 "그러니 당연히 나를 이해해주고 알아줘야지."

 "뭔 수로? 질문하지 않으면."

 "스스로 저주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라고 해!"


 이건 뭘 어쩌라는 거야? 물어보지도 말라면서 또 뭘 이해해주고 알아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너의 마음은 네 이마에 큼지막한 글자로 새겨져 있냐? 물어보고 알아달라고 하든가, 물어보지 말고 살던 대로 살라고 하든가...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말이랍시고 주둥이를 놀리고 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구. 되도 않는 억지 부리지 말고!


 "뭘 어떻게 저주술에 대해 깊이 생각하라는 건데? 그 방법은 결국 네가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할 거 아냐. 관심도 없는 사람 잡고 이러라고 강요할 거야?"

 "아니. 스스로 깨우쳐야지. 그것을 왜 내가 알려주니?"

 "너, 방금 너에 대해 이해해주고 알아줘야 한다고 했잖아."

 "응."

 "그런데 뭘 어떻게 이해하고 알아야할지 모르는 사람한테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건 스스로 해야 해."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에게 뭘 스스로 하라는 거야?"

 "그러면 나는 영원히 계속 그 모욕적이고 공격적인 질문에 상처받으며 똑같은 대답을 무한번 반복하라는 거니?"

 "안 그러면 어쩌라구?"

 "당연히 나를 이해하고 알아줘야지!"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건가? 뭘 이해하고 알아줘? 너의 그 태도를 네가 똑바로 설명하지 않으면 무슨 수로 이해해? 아, 똑바로 설명도 못하고 있지! 말을 계속 해봐야 끝날 것 같지 않다. 이놈과 정상적 대화가 될 것 같지가 않다. 아무래도 화제를 돌려야겠다.


 "너 그 가슴은 뭐야?"

 "이거 말이니?"

 "응."

 "어머! 이 응큼한 것! 너 지금 내 가슴 본 거야! 나 지금 성적 수치심 느낀 거 있지!"


 진짜 미치겠네. 뭐가 또 성적 수치심이야? 남자 새끼에게 이런 말을 듣는 나야말로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 거 아닌가. 그래도 다시 한 번 정신줄을 꽉 움켜쥐었다.


 "야, 너한테 전혀 흥분 안 되거든? 그 가슴은 뭐야? 네가 갑자기 가슴이 자라났을 리는 없을 거구."

 "이거 헝겊 뭉쳐서 가슴에 대어놓은 거."


 감비르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기도 쪽팔린 것은 아나보군.


 "그걸 왜 했어?"

 "여자의 신체가 되기 위해서 했어."

 "가슴에 헝겊 뭉치 대어놓으면 가슴이 자라나?"

 "아니. 이럼으로써 여자 몸의 감각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거란다."

 "뭐?"

 "여자가 가슴이 나와서 겪는 느낌과 기분, 고통을 몸에 새기고 있는 과정이야. 이렇게 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다 갖추어가고 있단다. 굉장하지 않니? 너도 해볼래?"

 "미쳤냐? 그걸 내가 왜 해?"


 감비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라키사는 이런 감비르를 제대로 보았을까? 이런 것을 겪고 그때 감비르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 거야?


 "타슈갈, 나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니?"

 "뭐?"

 "만약 내가 다른 남자들처럼 남자의 복장과 외모를 하면 어떨 거 같니?"

 "글쎄..."

 "분명히 나를 평범한 남자로만 생각할 거야. 그리고 아무 일 없겠지? 내 말이 맞지 않니?"

 "글쎄다."


 이 되도 않는 여자 흉내 때려치면 겉보기로는 멀쩡해보이긴 할 거다. 하지만 몇 마디 나누다보면 금방 이놈이 미쳤다는 것을 깨닫겠지. 이것은 단순히 시각적 문제가 아니다. 생각 자체가 미친 거야. 시각적인 문제는 그 충격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구. 너 라키사한테 그 가슴에 헝겊 뭉치 대어놓으면 여자의 육체에 대해 알게 되어 여성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면 라키사가 '어머, 멋지다'라고 할 거 같냐?


 "실례하지만 같이 앉아도 될까요?"


 술냄새가 확 풍겼다. 얼굴에는 수염이 지저분하게 나 있었다. 머리통은 크고 목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보이지 않았다. 누가 손으로 면상을 움켜쥐고 구겨놓은 것 같은 얼굴. 얼굴에 불만과 괴로움이 아주 떡져 있었다. 나이는 이고보다도 많아보였다. 향수를 독하게 뿌려서 가려보려 했지만 아저씨 특유의 냄새를 다 덮을 수는 없었다. 키는 작고 꽤 뚱뚱해보였다. 옷은 딱 봐도 엄청나게 비싼 옷이었다. 왼쪽 손목에는 초록색과 보라색 보석이 박히고 섬세하게 불을 뿜는 용이 그려진 황금 팔찌를 차고 있었다. 오른쪽 손목에는 색색의 보석이 박힌 은팔찌를 차고 있었다. 돈은 엄청 많아 보였지만 절대 합석하고 싶지 않았다. 취객과 자리를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유쾌한 일이 아닌데다, 이 사람은 보자마자 멀리하고 싶다는 느낌이 확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당신이 참 멋져보여서요."

 "어머, 진짜요?"

 "예. 세상은 더욱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해요.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은 인간이 만든 제약이구요.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당신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요."

 "어머, 어째요! 저 너무 기뻐요! 제 이름은 감비르에요. 그쪽 성함은 어떻게 되요?"

 "제 이름은 게첸이에요. 뮈젤 근처 다슈엘 출신이죠. 중앙학문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어요. 나이는 마흔이에요."

 "그 태도 좋지 않네요. 왜 일부러 편견을 낳는 함정을 만드는 거죠?"

 "예? 편견을 낳는 함정이라니요?"


 감비르 이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자기 소개한 것을 가지고 왜 편견을 낳는 함정이라고 하는 거지? 감비르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이야기했다.


 "나이로 저를 누르실 건가요? 직장으로 저를 누르실 건가요? 아니면 고향으로 묘한 동질감 유발? 왜 그런 것을 이야기하죠?"

 "앗!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미안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괜찮아요. 하지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요. 저는 편견이 가득한 차별에 투쟁중이니까요. 저는 감비르에요."

 "정말 이렇게 우연히 이런 멋진 분을 만나다니 행운이에요!"

 "저도 처음으로 공부를 많이 하고 머리가 트인 분을 만나서 기뻐요!"


 이 아저씨도 미친 새끼인가? 둘이서 아주 짝짜꿍이 잘 맞는다. 영혼의 커플이다.


 "나 간다."

 "같이 이야기하다 가시지 그래요."

 "아니요. 이제 슬슬 일할 시간 되어가서요."

 "어디에서 일하는데요?"

 "저 서점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게첸'이라는 아저씨는 왜 어울리고 싶지도 않은데 억지로 친한 척이야? 뭐 둘이 잘 놀겠지. 둘 다 서점에는 오지 마라.



 서점으로 돌아왔다. 켈라자야는 다시 자나보다. 의자에 앉았다. 참 피곤한 하루다. 이고는 별 말이 없다. 그저 책만 읽을 뿐이다. 다행이다. 감비르 때문에 이고도 기분 엄청 나빴을텐데. 감비르 저놈은 어떻게 된 것이 지난번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졌어!


 서점 문을 닫을 시각이 되어서야 켈라자야가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나와서 이고에게 인사를 한 후 내게 다가왔다.


 "너 아직도 화났어?"

 "아니."

 "미안해. 너는 나한테 좋은 사람. 너, 오빠, 언니, 루즈카, 라키사. 나한테 정말 좋은 사람!"

 "갑자기 왜 이래?"


 켈라자야는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까 이고랑 무슨 이야기를 그리 나누었길래 갑자기 이래?


 "그런데 아까 그 미친놈..."

 "아, 걔? 왜?"


 감비르에 대해 뭐 말하고 싶은 것이 있나?


 "그런 놈도 나보다 행복하게 지냈겠지?"

 "응?"


 켈라자야는 아무 말 없이 손을 흔들며 종종걸음으로 서점에서 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무슨 말이지? 마지막에 감비르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문만 바라보았다. 켈라자야가 남기고 간 장미향이 계속 말한다. 그런 놈도 나보다 행복하게 지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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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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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으아 이번편 진짜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타슈갈! 너는 이제 켈라자야의 그윽하고 엄청난 다크의 매력에 퐁당 빠지고 말았어!!!

    타슈갈이 맨날 툴툴거리긴 해도 되게 기사도 넘쳐요. 켈라자야 안온다고 걱정해서 찾으러 가고! 사람 터질 때 켈라자야 감싸안고 지켜주고... 흑흑... 역시 너는 켈라자야랑 잘 어울려... (아... 치롤라와 카마수 해야 하는데...) 켈라자야 불쌍해요 흐흑... 그리고 켈라자야가 입은 이쁜 옷 저도 입어보고파요 ㅋㅋ 나중에 이 소설이 영화화되면 (욜씨미 다이어트를 해서) 켈라자야 대역으로라도 한번 출연하고파요 ㅋㅋ 하지만 실제로 얘들 중 누가 되고프냐 하면 루즈카님(=부자라서 ㅋ.. 옛날에 고생한 거 다 빼고!)

    감비르 ㅠㅠ 저는 감비르 너무 짠해요... 저런 과잉으로 인해 때로는 더 상처입을 수 있는 건데ㅜㅜ

    2017.10.29 21:1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켈라자야가 타슈갈에 대해 조금은 호감을 갖게 되었겠죠? 그 전까지는 왜 자기한테 자꾸 이래라 저래라 명령이냐고 짜증 버럭버럭 내었는데요 ㅎㅎ 이제 타슈갈과 켈라자야를 응원하시는 건가요? 그런데 치롤라 ㅋㅋ 타슈갈 친구 바하르가 치롤라 좋아하는데요^^;; 배역은 켈라자야지만 실제로는 루즈카님 ㅋㅋㅋㅋㅋㅋ 루즈카 옷에 대한 묘사도 좀 해야겠군요 ㅋㅋ;; 이러다 나중에 정말 만약에 이 소설이 영화가 된다면 liontamer님께서 모든 배역 대역으로 출연하시는 거 아니세요? ^^;;
      감비르는...앞으로 흥미진진할 거에요 ㅎㅎ;

      2017.11.12 05:53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