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12화

좀좀이 2017. 9. 2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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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12화


 서점 문을 열자마자 이고는 간만에 장을 보러 다녀오겠다고 나갔다. 이고가 시장에 간 후, 얼마 안 되서 라키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서점에 들어왔다. 라키사에게 웃을 일이 아마 없기는 할 거다. 하지만 아침부터 왜 저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서점에 들어오지? 집에서 무슨 안 좋은 소식이라도 전해들었나? 라키사에게 인사를 하자 라키사도 내게 인사를 하더니 내 옆에 바짝 다가왔다.


 "타슈갈!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지금 난리났대."

 "뭔 난리가 또 나?"


 시위 진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이제 보름 되어가나? 그런데 이번에는 또 무슨 난리야? 에드자에서 난리가 나고 싶어도 날 수가 없을 텐데. 더 시끄럽게 만들 사람도 없을 거고, 경찰과 군인들이 더 시끄럽게 만들게 가만히 놔두지도 않을 거다. 지금도 거리 곳곳에 경찰과 군인이 쫙 깔렸는데 무슨 난리가 났다는 거야? 지난 시위보다 더 한 난리가 날 만한 것이 있기는 한가?


 "지금 에드자에서 전쟁 터지게 생겼어!"

 "갑자기 무슨 전쟁?"


 머리 속에서 전쟁이 터질 일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 시위대가 승리했다면 주변 국가들에서 쳐들어왔으려나? 아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시위대라고 외국인을 다 죽이자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을 거부한다고 해서 외국인들을 다 죽이자는 것은 아니었다. 인식론이 저주술을 부정하니까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거지. 그리고 어쨌든 시위대가 졌잖아?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은 여전히 살아있다. 에드자 대학교 폐교령이 취소되고 학교가 다시 문을 연다고 해도 수업 시간에 인식론을 배워야 하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거다. 외국에서 마딜 공화국으로 쳐들어오지 않는 한 에드자에서 전쟁이 터질 일은 없을텐데? 게다가 국경과 에드자는 거리가 멀고 말이다.


 "지금 남쪽이랑 북쪽에서 군대가 에드자로 진격하고 있대!"

 "왜?"

 "그 시위 때문에. 북쪽에서는 뮈젤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무리가 남진중이고, 남쪽에서는 치르치나, 티타카스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무리가 북진중이래!"

 "여기 와서 뭐하게?"

 "여기 점령하려고 하나봐!"


 에드자를 점령하려고 남쪽과 북쪽에서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다구? 시위 소식이 벌써 거기까지 퍼진 거야?


 "그거 진짜야?"

 "지금 엄청 뒤숭숭해. 그리고 양쪽에서 쫓겨난 사람들도 에드자로 몰려오고 있구. 그냥 소문이 아닌가봐."

 "쫓겨나? 그러니까 네 말은, 남쪽에서는 인식론 지지자들, 북쪽에서는 인식론 반대자들이 여기로 몰려오고 있다는 거야?"

 "응. 이미 여럿 여기 도착했대.

 "네가 직접 봤어?"

 "거리에 사람들이 확실히 많아졌어. 그리고 집주인이 내게 요즘 양쪽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방 구하러 돌아다닌다고 알려주었어."


 이거 진짜인가본데? 밖에 잘 돌아다니지 않아서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졌는지 줄어들었는지 전혀 몰랐다. 사실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양쪽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반드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뭔가 나올만한 일이 있어서 사람들이 집에 있지 않고 밖으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방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은 여기로 몰려온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시위 진압시 건물이 파괴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갑자기 방을 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정도로 도시가 파괴되었다면 내가 몰랐을 리가 없다. 라키사를 통해서든, 이고를 통해서든, 누구를 통해서든 에드자 어디에서 커다란 파괴가 일어났다고 들었겠지.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그 누구로부터도 듣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모두가 내게 숨겨야할 이유도 없구.


 "설마 진짜 에드자에서 전쟁이 일어날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

 "왜?"

 "그걸 내가 꼭 이야기해줘야겠니? 남쪽이랑 북쪽이랑 사이 엄청 안 좋잖아. 지금 정부는 뮈젤인들 중심이라 남쪽에서 불만 매우 크다구. 특히 치르치나, 티타카스쪽이 반감이 크대. 그런데 시위가 일어났으니 남쪽에서 정권 뒤엎으려고 지원오는 것일 거야. 북쪽은 이 기회에 정권 확실히 쥐려고 그러는 것일 거구."


 라키사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아는 거지? 남쪽과 북쪽이 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알고 있었다. 지금 정권의 중심은 뮈젤인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시위를 이용해 양쪽 다 정권을 잡으려고 했을 거라고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것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겠다니 미친 거 아냐? 마딜 전쟁에 대해 그렇게 끔찍했다고 가르쳐놓고 왜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거야?


 "라짐 마이슈프 이 찢어죽일 놈!"


 이게 다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 때문이다. 그 전에는 불만이 있었다고 해도 아무 일 없었잖아. 그 망할 인식론 강제 교육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그것만 없었어도 정말 아무 일 없었을 거다. 그리고 그놈들은 그깟 인식론 교육이 뭐라고 그렇게 흥분하고 들고 일어난 거야? 그거 강제로 배워야 한다고 해서 저주술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잖아. 정말 모든 게 원망스럽다.


 "제발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어."

 "별 일 없을 거야. 설마 전쟁이 그렇게 쉽게 나겠어?"

 "그렇지?"

 "응. 바보들도 아니고 설마 진짜 전쟁하려 들겠어?"


 라키사는 계속 굳은 표정을 지었다. 나와 라키사는 왜 이렇게 일이 참 안 풀릴까? 이제 바하르도 추가되려나? 라키사 걱정과 다르게 전쟁이 일어날 리는 없겠지만, 개학 후 좋은 일이 단 하나도 없다. 속이 배배 꼬여서 불평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정말 9월부터는 불평거리 빼면 아무 것도 없다. 아다비아에게 편지를 받은 것 정도 좋은 일이려나? 하지만 그것도 라키사에게는 말하지도 못했다. 라키사가 그 편지를 보면 더욱 속상해할테니까. 그렇게 보면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좋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라키사에게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말 외에는 해줄 말이 없다. 솔직히 좋아질 거라 믿고는 있지만, 이것이 언제부터 어떤 속도로 어떻게 좋아질지는 전혀 모르겠다. 내가 멀쩡하고 좋아져야 의미가 있지, 내가 죽은 후 좋아지면 무슨 의미가 있어?


 "너 전쟁나면 나 지켜줄 거야?"

 "뭐?"


 침묵을 깨고 라키사가 갑자기 물어본 질문에 깜짝 놀랐다. 라키사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지켜줄께."

 "진짜? 네가 나 지켜줄 거야? 너 그거 빈말 아니지?"

 "아니야. 그래도 너라면 지켜줘야지."

 "왜?"

 "그래도 우리 같이 고생하고 있잖아. 학기초부터 네가 나 많이 도와주기도 했구."

 "에이, 고작 그거 때문이야?"


 라키사가 갑자기 장난을 치고 싶은지 눈꺼풀을 살짝 내리고 아주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켜주는 데에 그거 말고 다른 이유가 또 뭐 있어? 친하고 같이 고생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그래도 라키사보다는 힘이 더 세니까 지켜줘야지.


 "뭐...은혜갚는 셈치고 지켜줄께."

 "에이, 시시하네. 지켜준다고 해서 뭔가 그럴싸한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뭐가 그럴싸한 거야?"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준 쿠키가 아깝다."


 라키사가 눈살을 찌푸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면 무슨 말을 바랬던 거야? 지켜주겠다는 것에 그 정도 이유면 충분하지. 더 거창한 이유를 듣고 싶었던 거야? 뭐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든가, 아니면 너 없는 세상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등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영웅들이 남기는 말 같은 거? 영웅들도 그런 말은 자기 애인에게나 하던데. 아니면 동료를 구할 때 하거나. 라키사는 동료라고 보아야 하나? 어쨌든 같이 고생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너는 나를 어떻게 지켜줄 거야?"

 "어떻게라니?"

 "그러니까...예를 들면 여기 불나면 어떻게 나를 구해줄 거야?"

 "화재?"

 "응. 화재. 여기가 화르륵 홀라당 타버리는 거야!"

 "그러면 문 열고 도망가게 해야지."

 "문부터 불타면?"

 "글쎄? 내가 문을 부셔야겠지?"

 "너 문 부술 수 있어? 저 문 꽤 튼튼할텐데."


 그러고보니 저 문 꽤 튼튼하지? 게다가 문이 두 개다. 문을 부수려면 문 두 개를 부셔야 하는구나. 이건 조금 힘들 것 같다. 발로 힘껏 걷어차거나 몸통으로 들이받는다고 쉽게 부서질 문이 아니잖아.


 "그러면 창문으로 너를 들어서 밀어서 내보낼께."

 "헉! 너 그러면서 내 치마 속 들여다보려는 거 아니야?"

 "뭘 너 치마 속을 들여다봐? 불 나서 도망치려면 그럴 정신이 어디 있어!"

 "이거 응큼하네."


 라키사가 깔깔 웃었다. 무슨 불 나서 도망치는 상황에서 너 치마 속을 볼 기회를 노린다는 거야? 너만 살아야 하냐? 너 빨리 창문으로 밀어서 내보낸 후에 나도 빠져나가야지.


 "누가 칼로 나 내려치려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칼?"

 "응! 전쟁이면 당연히 칼로 휘두르면서 사람들 죽일 거 아냐. 누가 나한테 칼 들고 와서 나 죽이려고 하면 너 어떻게 할 거니?"

 "그건...어떻게든 노력할께."

 "너 칼 쓸 줄 알아?"

 "아니."

 "그러면 어떻게 싸우려구? 나 대신 죽게?"

 "그건..."

 "뭐야? 전혀 믿음이 안 가잖아! 이러다 내가 너 지켜주겠다, 야!"


 뭐 어쩌라는 거야? 라키사는 계속 재미있어한다. 라키사의 장난이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라키사가 저렇게 밝은 표정을 지으니 딱히 뭐라고 말하지도 못하겠다.


 "누가 저주술로 나 죽이려고 하면 어떻게 나 지켜줄 거야?"

 "저주술?"

 "응!"


 이건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감도 못 잡겠다. 칼까지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할 수 있었다. 정 안 되면 눈에 흙이라도 뿌리고 라키사를 데리고 도망치기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저주술은 정말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누가 나한테 저주술을 쓰는지나 알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저주술을 모르는데 무슨 수로 저주술사와 대결을 해? 이건 정말로 난감한 질문이다.


 "라키사, 뭔 일이길래 그렇게 좋아해?"


 이고가 수레를 끌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라키사에게 물어보았다.


 "타슈갈이 전쟁 나면 나 지켜주겠대!"

 "진짜? 타슈갈, 너 라키사 좋아하는 거였어?"


 라키사의 말을 들은 이고가 바로 내게 라키사를 좋아하냐고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아니야! 그래도 같이 있다면 당연히 지켜주기는 해야 할 거 아냐?"

 "오! 타슈갈, 다시 봤어?"


 나를 다시 봤다는 이고의 말에 라키사가 인상을 가볍게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데 타슈갈이 영 믿음이 안 가. 왠지 내가 타슈갈을 지켜줘야할 거 같아. 여기에 화재 나면 나를 창문으로 던지면서 내 치마 속이나 들여다볼 생각이나 하고 있어!"

 "뭐? 진짜야?"

 "아니야! 뭔 불이 났는데 라키사 치마 속을 들여다봐?"


 얼굴이 갑자기 확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라키사는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야? 이고와 라키사가 웃는다. 기분이 안 좋기는 하지만 분위기가 밝아져서 꼭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 이렇게라도 둘이 웃는 일이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거니까. 내 기분은 영 좋지 않지만 내가 착한 일 한 번 했다고 생각해야지. 라키사가 장난으로 저러는 것 뻔히 아는데 그것을 따박따박 반박하는 것도 웃기잖아.


 "이고, 수레 끌고 어디 다녀왔어?"

 "장 좀 봐왔어."


 라키사가 이고가 끌고 온 수레로 다가갔다. 나도 수레로 다가가 이고가 무엇을 사왔는지 보았다. 버터와 기름, 빵, 말린 과일과 말린 고기만 잔뜩 사왔다.


 "이걸 왜 사왔어?"

 "혹시 몰라서."

 "혹시 모르다니?"

 "진짜 전쟁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이고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로 상황 많이 안 좋아?"

 "그런 것 같아. 시장 가보니까 거지도 엄청 많아졌고, 이제 막 여기 온 사람들도 득시글해."

 "그러면 우리 피난가야 하는 거 아냐?"

 "야, 사람들이 여기로 다 몰리고 있는데 우리가 피난갈 곳이 있겠냐? 다른 데에서도 다 전쟁 피해서 여기로 몰려오고 있는데?"


 이고가 짜증을 버럭 냈다. 표정도 심각하지만 속으로는 진짜 많이 심각한가보다. 그나저나 이고 말대로라면 이제 피난도 못 가고 여기에서 전쟁이 터지지 않기만을 빌어야 하는 거야? 만약 전쟁 터지면 진짜 어떡하지? 그때 시위 진압과는 아예 차원이 다를텐데! 그날밤에는 서점 문을 부수고 쳐들어오거나 여기에 불을 지른 놈은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라면 그런 놈들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거다.



 밤이 되었다. 오늘도 바하르가 놀러왔다.


 "바하르, 진짜 전쟁날 것 같아?"

 "전쟁?"

 "응. 오늘 이고랑 라키사가 전쟁날 수도 있다고 했어."


 바하르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준비는 해 둬."

 "그거 소문이 아니라 진짜야?"


 바하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미친 거 아냐? 전쟁 일으켜서 뭐하려구!"

 "그걸 나라고 아냐? 그런데 진짜 상황 안 좋아. 지금 거리에 돌고 있는 소문들 거의 다 사실이야."

 "다른 곳에서 사람들이 도망쳐서 여기로 오고 있다는 거?"

 "그것도 사실이고, 여기 점령하려고 남쪽과 북쪽에서 몰려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야."

 "완전 최악이네."


 바하르가 전쟁 이야기는 과장된 것이거나 거짓된 것이라 말해주기를 바랬다. 이고와 라키사가 들은 것은 어디까지나 소문이고, 단순히 사람들이 여기로 몰려오고 있다는 것 뿐이었다. 자기 주변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기야 하겠지만 주변이라고 해도 다 거기서 거기겠지. 그래서 바하르가 괜찮다고 하면 마음을 놓을 생각이었다. 바하르는 지금 동원령이 내려져서 일하고 있으니 바하르의 말이 가장 정확하다. 바하르가 아니라고 하면 마음을 놓고 내일 웃으며 바하르가 괜찮다고 했다고 이고와 라키사에게 이야기해주려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반대로 바하르도 상황이 매우 안 좋다고 알려주었다.


 "지금이라도 여기에서 도망치는 게 나을까?"

 "지금은 여기가 제일 안전해. 지금 소식 들어오는 것 보면 다른 곳에서는 학살도 일어나고 장난 아닌가봐. 그냥 몰려오는 게 아냐. 하나하나 밀어가면서 진격해오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피난민들이 다 여기로 몰려들지."

 "그 정도야? 학살까지 해?"

 "정확히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몇 곳에서는 확실히 일어났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도망칠 곳 어디 없을까? 머리 속이 깜깜하다. 이 사태를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피할 길이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둘 다 여기 도착하면 바로 전쟁 시작되는 거야?"

 "그러지는 않을 거야. 일단 우리가 성을 봉쇄할 거니까. 두 무리 중 먼저 에드자를 공격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할 거야. 우리는 우리대로 여기를 지키기 위해 싸울 거고, 나중에 도착한 쪽은 우리랑 싸우고 있는 놈들을 칠 테니까. 아마 두 무리가 자기들끼리 먼저 싸운 후, 이긴 쪽이 여기를 공격하지 않을까 싶어. 그때가 되면 정말 혼돈이겠지."

 "그렇게 되면 성 안에서도 전투가 일어나겠지?"

 "거의 그렇다고 봐야지. 너도 알다시피 북쪽 사람들은 에드자 북쪽에, 남쪽 사람들은 에드자 남쪽에 몰려 살잖아. 한쪽이 승리하면 그쪽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성 안에서 전투를 일으키지 않을까? 그 전이야 팽팽한 긴장 속에서 조용히 있겠지만 말이야."

 "그러면 기적적으로 자기들끼리 싸우다 둘 다 망하면 전쟁이 안 날 수도 있는 거야?"

 "그렇기는 한데...그보다 정부가 어떻게든 협상을 하려 하지 않을까? 정부에 뮈젤인만 있는 건 아니잖아. 전쟁 나면 자기들도 죽을 수 있는데. 어차피 다 한통속이니까 어떻게든 협상을 하려고 할 거라 봐. 지금 내부에서 도는 말이 그 협상을 믿어보자는 거구. 협상이 잘 되기만을 바래야지. 그거 말고는 전쟁을 피할 길이 없으니까."


 바하르가 한숨을 푹 내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도 따라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싶지만 바하르가 근무중이라 그것은 권할 수가 없다.


 "아, 너 감비르한테 편지 받았어?"

 "편지? 응. 조금 되었어."


 바하르가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인 후 감비르에게 편지를 받았냐고 물어보았다.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감비르에게 편지를 받았다는 말을 바하르에게 해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감비르가 편지에 이상한 말을 잔뜩 써서 보냈었지. 이고와 블랑쉬블르는 그 편지를 읽고 얼굴이 돌처럼 굳어버렸구.


 "걔 너한테는 뭐라고 했어?"

 "나한테? 무슨 진리니 자유니 하던데?"

 "그거 말고 다른 거 없었어?"

 "'디브'라는 사람이 자기 스승이고 '페스테로스'라는 위대한 저주술사가 있었다는 이야기 정도?"

 "그래?"


 바하르는 '디브'라는 사람과 '페스테로스'라는 사람을 알까? 얘는 저주술사이니 그런 것에 대해 듣는 것이 좀 있지 않을까?


 "너 '디브'라는 사람이랑 '페스테로스'라는 사람 알아?"

 "아니? 나도 그거 물어보고 싶었어. 너 혹시 아냐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저주술사도 아닌데.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아야하는 거 아냐?"

 "내가 왜?"

 "너는 중앙학문연구소에서 저주술 연구하잖아. 뭐 듣는 거 있지 않냐?"

 "우리라고 전국에 있는 저주술사를 다 알겠어? 게다가 둘은 마딜인도 아니래매."

 "응. 남아드라스 공화국 사람이라던데?"


 바하르가 잠시 말없이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나도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밤하늘 가득 별이 반짝이고 있다. 저마다 빛을 갖고 있고 있다. 저 별도 아마 각자의 이야기가 있겠지? 우리는 별자리로 묶어서 이야기하지만 말이다. 저 별들이 인간의 운명과 관련있다는 말도 있던데, 내 운명과 관련된 별은 뭘까? 하도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을 건가? 그렇게 잠시 가만히 별을 보며 각자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바하르가 계속 별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아드라스 공화국 사람이 저주술을 쓴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런데 편지에 그렇게 썼잖아."

 "남아드라스 공화국 사람이 저주술을 쓴다는 것은 말이 안 돼. 거기는 저주술 수련이 아예 금지되어 있잖아. 나는 거기 평생 갈 수 없다구."

 "그러면 감비르가 편지에 쓴 건 뭐야?"

 "그냥 미친 거겠지. 남아드라스 공화국 사람이 저주술을 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페스테로스'라는 인간이 키란님보다 더 위대한 저주술사라고? 키란님도 궁극의 저주술을 깨우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저주술을 수련하셨는데...그 나라에서 그렇게 했으면 화형을 열 번도 넘게 당해야 정상일걸?"


 바하르 말을 들어보니 그렇다. 그 땅에서 저주술 수련하다 적발되면 바로 화형이라고 하는데 무슨 위대한 저주술사가 나와? 감비르가 사기를 당했거나 미친 거다. 편지 내용 자체가 미친놈이 쓴 것 같았잖아. 너무 미쳐버린 상태라 이고와 블랑쉬블르가 걱정했던 것 아닐까? 그렇게 미친놈이 쓴 편지를 보는 것 자체가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보고 놀랐던 것일 거다.


 "너한테는 뭐라고 써서 보냈어?"


 감비르가 저주술사인 바하르에게는 편지에 뭐라고 써서 보냈는지 궁금해졌다. 감비르는 내 질문에 계속 밤하늘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 '디브'랑 '페스테로스'란 남아드라스 공화국 사람에 대해 적혀 있었어. 그리고 무슨 경계를 넘어야 한다고 써놨더라. 그런데 그 경계라는 것이 모든 것이 갖고 있는 고유의 경계래. 인간, 짐승, 더 나아가 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물, 궁극적으로 무생물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자유롭게 하나가 되어야만 궁극의 진리와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거래. 이게 말이 되냐?"

 "그냥 상징적인 표현 아냐?"

 "아냐! 그놈 진짜 미친 것 같아! 상태 많이 안 좋아. 마음 같아서는 치르치나 내려가서 걔 끌고 오고 싶다니까? 네가 상상하는 그 수준이 아니야."

 "내가 상상하는 수준?"

 "진짜로 하나가 되어야 한대! 그건 진짜 미친 거야. 진짜 그 편지 내용은 떠올리기도 싫다. 걔는 지금 뭔가에 홀린 거야. 저주술 수련한다더니 돌아버렸어."


 감비르가 편지에 무슨 내용을 써서 바하르에게 보냈길래 저러지? 입에 담배를 물었다.


 "저기요!"

 "예?"


 입에 담배를 물은 순간 여자 한 명이 나를 부르더니 내쪽으로 걸어왔다. 키가 큰 편이었다. 어둠 속에서 얼굴의 하얀 피부가 빛난다. 허리를 살짝 넘어가는 외투와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었다. 내 바로 앞에 왔을 때 이 여자가 나와 비슷한 또래이고, 머리카락이 등까지 자랐다는 것이 보였다. 굽이 없는 평평한 신발을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키가 내 귓볼까지 다다르는 것 같았다. 외투가 빨간색이고 치마가 검은색이라는 것도 보였다.


 "지금 담배 태우실 거죠?"

 "예. 그런데요?"

 "제가 불 붙여드릴께요."

 "예?"

 "제가 불 붙여드릴께요. 담배 입에 물고 계세요."


 이 여자 뭐야? 미친 여자인가? 감비르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이야기의 힘 때문에 미친 사람이 끌려온 건가? 어차피 태울 담배였기 때문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여자가 가늘고 긴 검지 손가락을 세워 담배 끝을 가볍게 톡 건드렸다. 담배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어? 저주술사에요?"


 여자는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손바닥을 하늘을 향하게 해서 내쪽으로 내밀었다.


 "예? 뭐요?"

 "불 붙여주었으니 돈 내야죠. 10마르라 주세요."

 "예? 왜 제가 당신에게 돈을 줘요? 당신이 불 붙여준다고 했잖아요."

 "저 때문에 성냥 아꼈잖아요? 그리고 불 붙여주었으면 당연히 돈을 주어야죠. 10마르라 내놔요!"


 자기가 불 붙여주겠다고 와서 불 붙여줘놓고는 갑자기 돈을 내라고 하니 황당하다. 10마르라면 큰 돈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건 또 무슨 신종 구걸 수법이야? 그리고 왜 이렇게 어렵게 구걸을 하지? 이해되지 않는다. 저주술사가 뭐가 아쉬워서 구걸을 해? 그것도 큰 돈도 아니고 고작 10마르라다. 머뭇거리자 여자는 내 눈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흰자위는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눈처럼 새하얗고, 눈동자는 지금 밤하늘보다 더 새까맣다. 눈을 보는 순간 이 상황을 빨리 피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주머니에서 10마르라를 꺼내 여자의 손에 올려놓았다.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10마르라를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이 여자는 대체 뭔 정신나간 여자일까? 그리고 이런 미친 여자가 어떻게 저주술을 쓸 수 있는 걸까? 여자는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야, 저 여자 뭐냐?"


 바하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바하르는 아무 말 없이 계속 여자가 사라진 어둠만 노려보고 있다. 팔꿈치로 팔을 치자 그제서야 나를 바라보았다.


 "야, 저 여자 뭐냐구?"

 "몰라. 이상한 여자야."

 "그거야 당연한 거고."

 "저 여자 진짜 뭐지?"

 "왜?"

 "그 담뱃불 붙이는 거 쉬운 게 아닌데...어떻게 저렇게 가볍게 저주술을 쓰지?"

 "궁금하면 쫓아가서 물어보든가."

 "아니야. 나 이제 순찰 돌아야해. 나 이만 간다!"


 바하르가 여자가 사라진 어둠의 반대쪽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9일이 흘렀다. 나날이 상황이 더 나빠졌다. 소문의 내용도 더 안 좋아졌고, 눈에 띄게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책을 빌려가는 사람은 없는데 서점에 와서 일자리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매일 열 명 넘게 찾아왔다. 아침에 세수하러 가는 길에 짐보따리를 끌어안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는 사람도 몇 명 보였다. 전에는 이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이고는 매일 시장에 가서 먹을 것을 사왔다. 그러나 나날이 그 양이 줄어들었다. 왜 양이 계속 줄어드냐고 물어보자 이고가 길게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지금 시장에 물건 남아있는것이 없어. 우리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사서 집 안에 숨겨놓는 것이 아니라구.



 그리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1115년 10월 11일. 남문 너머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왔다. 모두가 무기를 지참하고 있다. 갑옷을 착용한 사람들도 꽤 많다. 그렇게 오지 않기를 간절히 빌고 빌었지만 와버렸다. 이들은 티타카스, 치르치나를 중심으로 한 남부에서 올라온 무리였다. 성문은 굳게 잠겼다. 길거리에서 그렇게 많이 보이던 군인과 경찰이 싹 사라졌다. 그들 모두 성을 지키기 위해 그쪽으로 몰려갔다. 거리에서 잠을 자고 구걸하던 사람들도 싹 사라졌다. 그들을 어딘가 한 곳에 다 몰아놓았다고 한다. 내성 근처 어딘가라고 한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리를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도 없다. 마치 시위대의 행진이 지나간 뒤처럼 거리가 너무 조용하다.


 북문 너머에는 뮈젤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와 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전원이 무기를 지참하고 갑옷을 착용하고 있다고 한다. 성 북쪽은 갈 일이 아예 없고 서점에서 멀어서 가볼 수가 없다. 지금 이럴 때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잘못하면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 안 북쪽도 여기와 분위기가 다르지는 않을 거다. 어쩌면 거기는 여기보다 훨씬 더 발달했으니 더욱 공포에 사로집힌 분위기일 수도 있다. 잃을 것이 많은 사람들이니 말이다.



 이고가 라키사에게 서점에서 지내라고 했다. 아무래도 혼자서 방문 걸어잠그고 있는 것보다는 서점에서 나와 이고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말이다.


 "나와 타슈갈은 아드라스인이야. 성 안에서 전투가 발생한다 해도, 양쪽 다 어지간해서는 외국인을 건드리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이 훨씬 안전해."


 이고가 라키사에게 이렇게 말하자 라키사가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허리를 90도로 숙여 이고에게 인사했지. 그때 이고는 라키사에게 내가 라키사를 서점에서 지내게 하자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말했다. 라키사는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오른손을 자기 가슴에 얹고 내게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이고에게 라키사를 여기로 일단 피신시키면 안 되겠냐고 물어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이고에게 매달리며 부탁하지는 않았다. 내가 물어보자마자 이고가 바로 그러자고 했으니까. 이고가 안 된다고 하면 서점에 나 대신 라키사 재우라고 할 생각이었다. 라키사가 끔찍하게 괴로운 일을 겪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아주고 싶었다.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라키사가 나게 쿠키도 종종 챙겨주고 내 공부도 종종 봐주었잖아. 힘든 일을 같이 겪었고.


 북소리가 울려퍼진다. 협상이 이제 조금 후 시작될 것이다. 제발 이번만큼은 기적이 일어나야 해! 대체 어디까지 떨어져야 한다는 거야? 바닥인 줄 알면 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제 여기서 더 떨어질 바닥도 없잖아! 설마 '죽음'이라는 제일 밑바닥까지 굴러떨어져야 이 끔찍한 추락이 끝나는 걸까? 제발 협상이 잘 끝나서 이 진절머리나는 상황이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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