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08화

좀좀이 2017. 9. 1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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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2장 08화


 학교가 폐교되었으니 아침에 학교에 가야 할 필요가 없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우물가에 가서 세수를 하고 돌아왔다. 정상적인 나날이었다면 지금쯤 학교에 가고 있어야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래야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학교에 가봐야 시위하고 있는 애들 뿐이겠지. 지금은 이른 아침이니 시위하는 애들도 얼마 없으려나? 수건을 벽에 걸어놓고 빗자루를 들고 서점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어떻게 하지?'


 빗자루로 쓸고 있는 이 먼지와 함께 이 고민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빗자루로 먼지를 쓸면 먼지만 쓸려나갈 뿐이다. 고민은 그대로 있다. 먼지가 말한다. '나를 치워봐야 내일 새로운 먼지가 쌓일 거야.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먼지가 아니야. 원래 있던 먼지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일 뿐. 네 고민도 마찬가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고민은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거야.' 내일 갑자기 폐교령이 취소될 일은 없겠지. 그렇게 쉽게 번복될 폐교령이었다면 애초에 내려지지도 않았을 거다. 내일도, 모레도, 한달도, 어쩌면 내년도, 그리고 또 어쩌면 영원히 학교는 다시 개교하지 않을 수 있다. 휴교령이 아니다. 폐교령이다.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폐교령이 언제 철회될지 전혀 알 수 없다. 어쩌면 에드자 대학교는 영원히 폐교되고 새로운 대학교를 하나 새로 세울 수도 있겠지. 그런다고 나는 달라질 것이 없잖아. 새로운 대학교가 생긴다면 거기 다시 입학해야 한다는 건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다. 지금 정부가 무너진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이제 여기에서 막일이라도 해야 할까? 수레 정거장에 가서 짐이라도 나르면서 돈을 벌까? 여기보다 돈 더 많이 주는 가게를 찾아볼까? 아니면 정말 싫지만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 그도 아니면 지금 모아놓은 돈만 들고 셀베티아 왕국으로 떠날까? 말이 통할 리 없겠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거기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여기로 다시 돌아와? 글자는 아니까 인쇄소에 식자공으로 들어갈까? 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모두 암담할 뿐이다.


 "안녕."


 라키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라키사는 학교가 폐교된 이후에도 아침마다 서점에 찾아오고 있다. 다행히 이고가 아침에 나와 라키사가 서점에서 무슨 일을 하든 아무 말 하지 않아서 아침에 서점 밖에 머물러야 할 필요는 없다. 아마 이고도 폐교령이 내려져서 나나 라키사나 충격이 큰 것을 고려해서 그러는 것이겠지. 특히 라키사는 장학금도 못 받게 되었으니 더욱 막막할 거구. 그래서 차라리 서점에서 책이나 보면서 일단 진정하라고 그냥 놔두는 것일 거다. 청소를 하든 책정리를 하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천천히 생각 좀 해보라는 것이겠지.


 라키사는 책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고는 서류 작업을 하고 있다. 아마 장부를 맞추어보고 새로 구입할 책 목록을 만드는 것이겠지. 이고에게 서점 일이라도 알려달라고 해야 하나? 이고에게 틈틈이 배워서 조금 할 줄 알기는 하지만 제대로 할 줄은 모른다. 그런데 서점 일을 배우면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길까? 내가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서 서점을 차려? 서점을 차리려면 돈을 많이 모아야 한다. 건물도 구해야 하고, 책이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니 책을 모으기 위한 돈도 있어야 한다. 서점 일을 배워봐야 내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내 서점 하나 차릴 수 있을 건가? 그 전까지는 뭐 먹고 살아?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이 책을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학과 정도가 아니라 학교가 폐교되었는데? 중앙학문연구소에 셀베티아어 전공이 생길까? 만약 중앙학문연구소에 셀베티아어 전공이 생긴다면 거기로 다시 입학해야 할까? 그런데 내 대륙공통어, 아드라스어 실력으로는 택도 없는 일이다. 게다가 중앙학문연구소는 들어가기 정말로 어렵다. 거기는 노력해서 들어가는 곳이 아니니까. 만약 거기에 셀베티아어 전공이 생긴다면 셀베티아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셀베티아어를 아는 학생들이 들어갈 거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네.


 책이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다 따로 논다. 글자는 글자대로, 페이지는 페이지대로, 눈은 눈대로, 생각은 생각대로. 모든 것이 사방팔방 뿔뿔이 흩어져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춤을 추어댄다. 라키사를 바라보았다. 라키사도 어지간히 집중이 안 되는 모양이다.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책장을 휙휙 넘겼을텐데...책을 펼쳐놓기만 하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 같다. 라키사도 머리 속이 복잡하겠지. 나보다 더 복잡할 거다.



 "라키사, 타슈갈, 뭐해?"


 치롤라였다. 쟤는 그래도 저주술사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학기 중간에 입학할 정도라고 하니 어디에 가든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받겠지. 정 안 되면 군대라도 들어가지 않을까? 저주술로 밥 벌어먹고 사는 방법이라면 연구원이 되거나 군인, 경찰이 되는 것 정도니까. 설마 저주술로 밥과 빵도 만들어내는 거 아니야? 어쩌면 치롤라에게 '학교'란 단지 인생의 장식물일 수도 있을 거다.


 "공부하고 있어."

 "지금 공부할 때니? 어서 투쟁하러 가자!"

 "무슨 투쟁?"

 "이런 불합리한 처사에 가만히 있을 거야?"


 치롤라가 '투쟁하러 가자고' 이야기했다. 치롤라는 처음부터 시위하는 무리에 섞여 있었지? 패싸움이 벌어졌던 날 잘 빠져나왔나 보다. 어디 다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설마 싸움 발생했을 때 저주술로 찬성파 몇몇 골로 보낸 것 아니야? 그나저나 투쟁은 무슨 투쟁을 하러 가자는 거야? 돌이라도 던지고 각목이라도 휘두르자는 건가. 전혀 내키지 않는다. 그런 곳에 나가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다.


 "거기 왜 가야 하는데?"


 라키사가 치롤라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면 가만히 있을 거야? 이런 불의에는 반드시 맞서 싸워야 해!"

 "나는 생각 좀 해볼께."

 "라키사, 생각할 게 뭐 있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 비열한 무리들이 계속 우리들을 우습게 알 거야! 이럴 때 우리들에게도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해!"

 "네 생각 잘 알았어. 나는 고민 좀 해볼께."


 치롤라가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글쎄..."

 "남자가 그 정도 용기도 없니?"

 "뭐?"

 "불의를 저지르는 무리들에 맞서 싸울 용기도 없는 게 남자니?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학교는 절대 다시 열리지 않아. 우리의 학교를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힘을 보여줘야 해! 생각해 봐.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인식론에 대해 배우겠다고 한 사람 없잖아? 그것을 왜 강제로 가르쳐? 정당한 절차와 합의를 거치지 않았잖아. 그래서 거부하는 것을 왜 '폐교'라는 폭력적 방법으로 대하는데? 어서 가자!"


 얘는 대체 왜 이래? 그렇지 않아도 머리 복잡해서 쉬려고 하는데 와서 짜증나는 말을 늘어놓는다.


 "싫어. 나중에 마음 내키면 갈께."


 치롤라가 노려보았다. 노려보면 뭐? 저주술이라도 쓰게? 솔직히 인식론 때문에 폐교되었냐? 너네하고 찬성파하고 신나게 치고박고 싸우다가 학교 폭발하고 불나서 폐교당했지. 싸우려면 자기들끼리 학교 밖에서 싸우든가. 내 눈에는 그놈이 그놈이다.


 "너희들 정말 한심해. 이것은 모든 마딜인의 문제야. 너희들도 예외가 아니라구! 게다가 우리 학교 폐교되었잖아. 당장 우리의 문제인데 이렇게 무기력하게만 있을 거야? 분하지 않아?"

 "야! 얘네들 지금 근무 시간이야!"


 치롤라가 일장 연설을 하려는데 이고가 버럭 소리쳤다.


 "오전인데 얘네들이 왜 근무시간이에요?"

 "내가 돈 주고 일 시키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 내가 얘네들 일 시켰다. 되었냐? 시위 나가려면 너나 나가! 일하는 애들 방해하지 말구."


 치롤라 표정이 굳었다. 이고를 노려보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치롤라도 이고가 루즈카의 애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이고를 만만하게 볼 지는 몰라도 루즈카를 만만하게 보지 못할 거다. 치롤라도 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루즈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겠지. 루즈카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치롤라보다는 훨씬 실력이 뛰어난 것 같으니까. 치롤라는 도끼눈을 뜨고 이고를 계속 노려보았다. 이고고 치롤라를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외국인은 어쩔 수 없군요."

 "그래서? 하지만 나는 마음에 안 든다고 땡깡부리고 폭력을 사용하지 않아."

 "얘들을 돈으로 얽매어서 꼼짝 못하게 하는 건 폭력 아닌가요? 그리고 시위 매우 평화롭거든요? 폭력은 절대 없어요! 밤에 어두워서 횃불 들고 있는 것이 폭력이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횃불이 아니라 불 붙인 몽둥이겠지."

 "역시 저주술도, 마딜인의 역사와 문화, 정신도 이해 못하는 외국인이네요. 무조건 인식론이 좋고 저주술이 열등해보이죠? 인식론을 받아들여야 자신이 더 우월해지니까요!"


 이고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경멸의 눈초리로 치롤라를 바라보았다.


 "내가 한 건 돈으로 애들 묶어놓는 폭력이고 네가 하는 건 평화로운 저항이냐? 너의 환상의 논리 참 멋지네! 치롤라, 가서 뭔 짓을 하든 내 알 바 아니지만, 지금 서점에서는 좀 나가줄래? 일 방해하지 말구!"

 "알았어요, 외국인 아저씨. 그리고 라키사, 타슈갈! 빈대처럼 굴지 말고 스스로 일어나!"


 치롤라는 문을 쾅 닫으며 서점에서 나갔다.


 "너희들 시위 참가하고 싶으면 참가해. 근무시간만 지키면 되잖아."

 "싫어."


 라키사가 이고의 말에 싫다고 딱 잘라서 말했다.


 "시위 참여하는 것 가지고 뭐라 안 할테니까 갔다오고 싶으면 갔다 와."

 "내가 원하는 것은 화풀이가 아니야. 저기 참여한다고 바뀔 것은 없어."


 이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안 갈 거야."

 "왜? 갔다와도 괜찮다니까."

 "가서 뭐해? 폐교된 것은 솔직히 화나지만 다 싫어. 다 미친놈들 같아. 이럴 거면 진작 싸우지 말 것이지, 이제 와서 뭐하는 거야? 시위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없는데. 횃불 들고 내성으로 쳐들어가서 다 불싸질러버릴 거야?"


 내 말에 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어떤 표정 변화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아서 자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고는 왜 치롤라에게 그렇게 격하게 반응했지?



 조용히 하루가 끝났다. 학교 쪽은 아마 시끄럽겠지? 그러나 서점이 있는 이곳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사람들은 찻집에 와서 차를 마시고, 사람들은 평화롭게 거리를 돌아다녔다. 물론 이 시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서점에 찾아와서 시위에 가담하라고 부추기는 사람이라고는 오늘 하루 종일 치롤라 뿐이었다. 치롤라만 아니었다면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거다.


 불을 끄고 드러누웠다. 아무 말 없이 먼저 드러누워 있던 이고가 말했다.


 "진짜 너 말대로 다 미쳐가는 거 아냐?"

 "왜?"


 지금 시위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건성으로 되물었다.


 "이것들이 죽게 처맞아보지 않아서 겁대가리가 없는 건가 싶기도 하구..."


 순간 깜짝 놀랐다. 이고가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아까 치롤라를 쫓아낼 때 평소보다 말이 심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말할 거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뭔 일 있었어?"

 "아냐. 아까 책 수거하러 돌아다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구. 일반인들도 시위에 몰려들고 있대. 시위 규모가 나날이 더 커져가고 있다고 하더라. 애들이야 죽을만큼 처맞아보지 않아서 그렇다 해도, 일반인들이 참여한다고 하니 또 그건 아닌 것 같구...여기는 전쟁 독하게 겪어본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면 전쟁보다 덜 무서우니까 나서도 된다는 건가?"


 이고의 말이 조금 못마땅하다. 내가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화풀이하려고, 싸움을 위한 싸움을 벌이는 것 같아서 참여하지 않을 뿐이다. 참여한다고 바뀔 것도 없을 것이고. 참여해서 극적으로 학교가 개교하게 된다면? 이번에는 저주술과 마딜인의 정신에 대해서 똑같이 강제로 배워야한다고 하지 않을까.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고, 이 문제를 만든 놈들끼리 싸우고 있는 것이라 신경을 끄고 있을 뿐이다. 인식론 자체에 대한 거부감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 죽게 처맞아서 죽어봐야 정신을 차릴 건가? 자기들이 시위에 참여하면 무슨 영웅인줄 아나."

 "그러면 너는 이런 시위 같은 것 겪어본 적 있어?"

 "나?"

 "응. 너무 잘 안다는 듯 이야기하잖아. 무슨 예언자가 된 것처럼 말이야. 저렇게 시위해서 인식론 강제 교육도 없어지고 에드자 대학교 폐지령도 철회될 수 있지 않아?"

 "그럴 리가 있겠냐? 그럴 거라면 당장 너부터 시위에 나갔을 거 아냐?"

 "나야 지금 시위하는 놈들이 싫어서 안 나가는 거구. 너는 저런 시위 경험해본 적 있어? 아니면 죽게 처맞아본 적 있거나."


 이고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새까만 어둠에 나와 이고가 숨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주변에 있어."

 "무슨 주변?"

 "내 주변에 시위에 말려들었다가 죽은 놈이 있다고."

 "여기에서?"

 "아니. 남아드라스 공화국에서."


 주변에 시위에 말려들어서 죽은 사람이 있다구? 이거 지어낸 이야기야, 자기 이야기야? 설마 시위 가담했다가 여기로 도망친 거 아니야?


 "너 시위 가담했다가 여기로 도주한 거지?"

 "아니야! 내가 무슨 시위에 가담해? 시위하는 것들 꼴도 보기 싫구만."

 "진짜 아니야? 그러면 마딜 공화국에 왜 와? 남아드라스 공화국이 훨씬 좋은 나라인데."

 "그러면 너네 부모님은 여기 왜 왔냐? 남아드라스 공화국에서 거지같이 살기 싫으니까 넘어온 거지."


 순간 화가 났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이고 말이 맞다. 내 부모님께서 마딜 공화국으로 넘어와 정착하신 이유가 별 거 있나. 남아드라스 공화국에 있으면 거지같이 살 것 같으니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고 넘어오신 것이겠지. 내 과거를 돌이켜보면 뭔가 큰 뜻을 품고 넘어오신 것 같지는 않다. 부모님께서는 지금도 평범하게 인파사에서 지내고 계시니까. 딱히 저주술을 배우거나 하시려 하거나 반대로 남아드라스 공화국의 문화와 문명을 여기에 전파하려고 하거나 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러니 내가 아드라스어를 못 하지.


 "그래도 마딜 공화국은 살만한 곳인가 봐. 저렇게 시위하다 너네 학교는 폭파되어 불타버리고, 그런데도 또 시위하는데도 정부는 가만히 있잖아."

 "남아드라스 공화국에서는 안 그런가 보네?"

 "그러면 그냥 놔두겠냐? 진압해도 벌써 열 번은 더 진압했을 거다."


 이고가 뒤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고는 이 시위와 무관하다. 치롤라 말대로 이고는 외국인이다. 이 시위의 중심에는 저주술이 있다. 그래서 치롤라가 더 격분했을 거다. 어쨌든 이고는 이 시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 왜 저렇게 시위를 싫어하지? 시위에 대해 안 좋은 경험이라도 있는 건가? 외국인이라 이 상황에 대한 이해 자체가 잘 안 되는 걸까? 단순히 시끄러운 것이 싫어서? 이해가 안 된다. 이고가 나와 다른 외국인이라는 것이 확 느껴졌다. 나도 피는 외국인이지만, 이고는 정말로 몸과 정신, 마음 모두 외국인이구나.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시위는 계속 벌어지고 있을 거다. 상관없다. 나는 거기 안 갈 거니까.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 강제 교육을 실시하고 학교를 폐교시킨 정부가 밉다. 하지만 그렇다고 패싸움이나 벌이고 폐교되고 나서 또 시위질이나 하는 무리도 밉다. 기적이 일어나서 두 무리의 머리 위에 똑같이 불벼락이 떨어져버렸으면 좋겠다.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내 속은 조금 시원해지겠지. 인식론이 싫다고 땡깡만 부릴 것이 아니라 인식론이 왜 잘못되었는지 증명을 하라구! 저주술사 놈들은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아다비아가 전에 말했었지. 사람들이 좀 제대로 된 것에 열광했으면 좋겠다구. 키란 이후에 저주술을 좀 제대로 발전시켰으면 이런 일이 발생했을 리도 없잖아!


 냉정히 말해서 솔직히 마딜인들 가운데에서 '저주술'이 무엇인지 확실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나도 그렇고, 모든 마딜인들이 저주술을 믿는다.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나도 그렇고, 다른 마딜인들도 그렇고, 이 땅에 있는 모두가 '저주술'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정신력과 상상을 현실 세계에서 힘으로 구현하는 것. 이것이 저주술이다. 그렇지만 귀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저주술이고, 남에게 저주를 거는 것도 저주술이고, 물체를 아무 노력없이 파괴하는 것도 저주술이다. 어떻게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저주술이다. 이러니 아다비아가 저주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짜증을 내었지. 우리 모두가 저주술을 알고 있다. 그런데 대체 저주술이 뭐냐구. '그것은 상상, 그것은 정신력'...이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고 정확히 저주술이 뭐냐구! 그러고보면 마법이 훨씬 뛰어난 거 아니야? 마법은 정확히 '4원소설을 토대로 한 아그라 배열을 통해 힘을 만드는 것'이라고 깔끔하게 정의가 되잖아. 저주술 책부터 시작해서 대체 지금까지 우리 모든 마딜인들이 한 것이 뭔지 모르겠다.


 그래, 지금 이 상황이 저주술 같은 상황인 건가? 학교는 폐교당했어. 나머지는 알아서 하래. 화난 놈들은 시위질이고, 나나 라키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할 뿐이야. 답 따위는 없어. 스스로 답을 찾으라는 거야. 그런데 대체 어디에 답이 있어? 시위질을 하는 것도, 앞으로 뭘 해야 할 지 몰라 제자리에서 뱅뱅 돌고 있는 것도, 정부가 한 짓이 잘 한 처사라고 박수치는 것 다 답이래. 뭐 이따위 상황이 다 있어?



 오후가 되었다. 바하르가 서점에 놀러왔다.


 "우리 차 한 잔 할래?"

 "차? 나 지금 근무시간인데..."

 "다녀와."


 이고가 내게 찻집 가서 놀다 오라고 허락해주었다. 오늘은 책 수거하는 일도 없고, 오전부터 계속 서점에서 자발적으로 잡일이나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이고가 괜찮다고 했으니 나가서 조금 놀다 와도 상관없겠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키사는 바하르에게 인사만 하고 다시 책을 읽고 있다. 같이 따라나갈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바하르와 라키사는 서로 그렇게 친하지 않으니 나 혼자 나가도 상관없을 거다.


 찻집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를 한 주전자 시켰다.


 "괜찮냐? 에드자 대학교 폐교당했다면서?"

 "괜찮을 리가 있냐?"

 "그러면? 그래도 너랑 라키사는 시위 안 나가네?"


 바하르가 매우 의외라는 듯 두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말했다.


 "거기 나가봐야 뭐해? 지금 시위하는 놈들도 폐교된 것에는 할 말이 없는 놈들인데. 일 저지르고 땡깡부리는 것도 아니구..."

 "그러게..."


 바하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바하르도 시위에 참가하러 이쪽으로 온 것은 아닌가보다. 그랬다면 치롤라처럼 나와 라키사가 서점 안에 있는 것을 보자마자 같이 시위하러 나가자고 소리쳤겠지.


 "그런데 너야말로 시위 안 나가?"

 "나? 왜?"

 "너 저주술사잖아."

 "저주술사면 꼭 시위 나가야 해?"

 "꼭 그런 건 아니지만...치롤라는 아주 격분하면서 시위 참여하는 것 같아서."

 "치롤라? 걔 시위 참가해?"


 치롤라가 시위에 참가하고 있을 거라는 말에 바하르가 놀라며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바하르가 치롤라 좋아하지? 설마 지금 바로 치롤라 보러 시위하는 곳으로 간다고 하는 것 아니야? 치롤라가 아주 평화로운 시위라고 했으니 시위 장소에서 둘이 시위도 같이 하고 데이트도 같이 하고? 둘 다 저주술사이니 그래도 꽤 잘 어울리기는 하겠다.


 "아주 열심일걸. 전에 서점 와서 시위하러 가자고 했다가 이고랑 다투었어."

 "이고랑? 왜?"

 "그때 나랑 라키사가 시위 참여하기 싫어서 나중에 내키면 간다고 했거든. 그러니까 치롤라가 막 흥분해서 일장연설을 하려고 든 거야. 그거 보고 이고가 나랑 라키사 근무시간이라고 하니까 치롤라는 무슨 오전에 근무시간이냐고 하고, 이고가 내가 애들한테 돈 주고 일 시킨 게 뭐가 잘못이냐고 하니까 치롤라는 그거 폭력이라고 하고, 이고가 황당해서 네가 하는 시위는 착한 시위고 내가 돈 줘서 일 시키는 건 나쁜 폭력이냐고 하니까 치롤라가 역시 외국인이라고 했어."

 "진짜? 치롤라가 그랬어?"

 "응. 내가 너한테 거짓말하겠냐?"


 바하르는 작게 혀를 차며 쯧쯔쯔 소리를 내었다. 그런데 바하르는 인식론에 대해 별 생각 없나? 바하르도 저주술사잖아. 분명히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을 보았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을텐데?


 "야, 네가 보았을 때 인식론 어떻냐?"

 "그거? 완전 미친 소리지."

 "그런데 가만히 있어? 나야 뭐 일반인이지만 너는 저주술사잖아."

 "뭐 딱히 놀라울 것도 없어서."

 "놀라울 게 없다니?"


 바하르의 덤덤한 반응에 놀랐다.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에서 대놓고 비난하는 것이 바로 저주술과 저주술사인데 어떻게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신기하다. 너무 화내서 이제 화낼 힘도 없다는 것일까? 아니면 저주술은 감정이 중요한 것이라 일부러 감정을 통제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내 앞에서 굳이 감정을 통제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 바하르의 반응이 너무 덤덤해서 오히려 내가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은 엉터리라고 화를 내야할 것 같다.


 "그거 이미 4년 전부터 꾸준이 계획되어온 일일걸? 나는 그렇게 알고 있어."

 "4년 전부터?"

 "응. 그런 책이 하루 이틀에 나올 책은 아니잖아?"

 "그렇긴 해."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을 읽고 더 화가 났던 것은 이것들이 또 꽤 그럴듯한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인식론은 오히려 읽으면 읽을 수록 납득이 가고 조금씩 그 책의 내용에 동조하게 될 것 같았다. 동조하게 될 것 같은 만큼 반발하는 마음도 생겼고 말이다. 게다가 어느 날 갑자기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을 강제로 배우게 할 수도 없다. 책이 얼마나 비싼데...게다가 한두 권 인쇄한다고 될 일도 아니구. 책을 많이 인쇄할 돈도 마련해야 하고, 그 책을 인쇄할 인쇄소를 구해야 한다. 4년씩이나 걸렸을 지는 생각해보아야겠지만,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 강제 교육은 아무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내놓고 바로 실시한 정책이 아니다. 그 책 보고 화나지 않을 마딜인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높으신 분들이라고 설마 몰랐겠어. 그 정도가 심해서 학교가 폐교시킨 것이겠지만 저항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다.


 "우리는 입학하자마자 그거 배우기 시작했어. 너네 학교가 그나마 늦게 배우기 시작한 것일걸? 뮈젤, 묄른 같은 곳에서도 올해초부터 그거 배우기 시작했다고 하던데. 완성된 책으로 출판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인가부터지만, 하여간 다른 곳에서는 올해 초부터 배우기 시작했대."

 "우리가 늦은 거라구?"

 "응. 남쪽은 잘 모르겠다. 이게 남쪽과 북쪽이 좀 다르잖아. 남쪽은 아무래도 전쟁때 크게 피해입어서 이런 것에 거부감이 훨씬 크지. 북쪽은 솔직히 말해서 얼떨결에 해방되었다고 해야 하나?"

 "아...그래서 북쪽부터 너네까지는 올해 초부터 배워왔고, 우리들은 이제부터 배우고?"

 "아마 그럴 거야."


 그런데 중앙학문연구소 애들은 이거 배울 때 가만히 있었나? 거기라고 북부 애들만 들어가는 곳은 아니다. 남쪽 사람들도 들어간다. 당장 바하르만 해도 남쪽 쿠루시 출신이다. 게다가 바하르는 바로 조금 전에 라짐 마이슈프의 인식론 보고 완전 미친 소리라고 했다. 바하르도 인식론 자체에 반감이 큰 것 같다. 이런 애들이 중앙학문연구소에 한둘일까? 거기도 저주술사들 꽤 있을 텐데. 거기도 저주술 전공이 있으니 그쪽도 반감 갖고 있는 애들이 당연히 많을 거다.


 "너네는 그거 배울 때 가만히 있었어?"

 "우리는 너네처럼 저항하면 바로 쫓겨나."

 "쫓겨나? 퇴학?"

 "응. 왜냐하면 우리는 학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국가에 고용되어 있거든. 그러니까 그렇게 여러 혜택도 받고 매달 돈도 받지. 우리는 입학할 때 처음부터 명령을 반드시 따르겠다고 서약하고 들어가. 그러니 속으로는 싫어도 겉으로는 따라야만 하지."


 그러고보니 그렇겠네. 괜히 마음에 안 든다고 들고 일어나면 바로 쫓겨나니까 우리 학교 머저리들처럼 무턱대고 싫다고 들고 일어날 수 없었을 거다.


 "너네 학교 폐교되었는데 너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글쎄...잘 모르겠어. 일단은 서점에서 계속 있기는 할 건데 어떻게 해야할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머리 엄청 복잡해. 확 셀베티아 왕국으로 넘어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구."

 "아직 시간 많으니 천천히 잘 생각해봐."

 "그래야지.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모든 신경이 에드자 대학교가 폐교된 상황 속에서의 내 미래에 쏠려 있다. 이건 이고를 보고 있든, 라키사를 보고 있든, 치롤라를 보고 있든, 바하르를 보고 있든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는 아다비아가 보낸 편지를 읽을 때조차 머리 속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아다비아는 진짜 운이 좋다. 어떻게 중앙학문연구소 연구원이 되고 교육까지 떠나서 이 참사를 절묘하게 피해갈 수 있었을까? 이건 능력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운도 엄청 좋은 거다. 단순히 능력 때문이었다면 라키사도 중앙학문연구소 연구원이 되었겠지. 라키사 성적이 아다비아 성적보다 더 좋았잖아.


 바하르도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들이더니 하늘을 향해 연기를 후 불고는 말했다.


 "이 망할 시위, 좀 끝났으면 좋겠다."

 "뭐?"

 "이 망할 놈의 시위가 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구."

 "너 저주술사잖아! 오히려 시위가 더 크게 일어나서 정부가 인식론 강제 교육 폐지하게 해달라고 빌어야 하는 거 아냐?"


 바하르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너도 인식론 강제 교육 엄청 싫어하잖아? 게다가 나야 인식론을 배우든 말든 솔직히 상관 없는 일이다. 어쩌면 배우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인식론이야 마딜어로 되어 있고, 시험도 마딜어로 치르겠지. 대륙공통어, 아드라스어로 된 책으로 공부해야 하는 분량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부담은 많이 줄어든다. 하지만 바하르는 저주술사잖아? 저주술을 미개한 것으로 몰아가는 인식론이 널리 퍼지는 것이 더 싫은 일 아니야? 오히려 뒤에서 지금 시위하는 무리 보고 박수치며 잘한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시위 커지면 동원령 내려질 수 있단 말이야."

 "동원령?"

 "응. 우리는 국가에 고용되어 있잖아. 이렇게 시위가 자꾸 더 커지면 치안 유지를 위해 강제로 동원될 수 있어. 우리들은 그 의무가 있단 말이야."

 "진짜? 그건 몰랐어."

 "동원령이 발동될 일이 어지간해서는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대규모로 시위가 발생하면 발동될 수 있어. 동원령 발동되면 2교대로 치안 업무에 차출돼. 벌써 안에서 동원령 발동될 수 있다고 말이 돌고 있어."

 "그러면 진짜 심각한 거 아니야?"

 "응. 진짜 심각한 거야. 그러니까 치롤라 좀 말려봐. 너랑은 그래도 조금 친하잖아. 지금 상황 많이 안 좋다니까? 저 멍청한 것들 주제 모르고 나대는데, 정부가 얌전히 있겠냐? 지금이야 아직 자기들 딴에 별 거 아니라 생각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바하르의 얼굴에는 심각함과 짜증이 뒤섞여 있었다.


 "정부에 남쪽 출신들도 있을 거 아니야?"

 "야, 남쪽 출신이라고 시위대 지지하겠냐? 지금이야 지지할 수도 있지. 하지만 자기들 권력에 도전한다고 생각되면 바로 달라질걸? 그리고 걔네들도 어쨌든 동의를 했으니까 강제 교육이 실시되는 거 아냐."


 이거 진짜 상황 심각하게 돌아가는 건가? 그래도 설마 정부가 그렇게 나설까?


 "너네 학교 폐교령 내려진 거 보면 모르겠냐? 게다가 저주술은 마딜 공화국에서만 허용된 거잖아. 남쪽 사람들이 백날천날 반대해봐야 뭐하냐? 다른 나라들 없으면 제대로 된 것 뭐 하나 생산하는 것 없는 게 우리 나라잖아."

 "그러고보니 그렇네?"

 "그러니까 치롤라 좀 어떻게 말려봐. 이거 잘못하다가는 시체된다니까?"

 "걔가 그런다고 말 듣겠어? 이고랑도 한 판 붙었다니까."


 바하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치롤라한테 별 일 없어야 할텐데. 그리고 이 빌어먹을 시위 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동원령 내려지면 진짜 개같을 건데. 동원령 내려지면 맨날 12시간씩 치안 업무 보조 들어가야 한다구. 매일 8시를 기준으로 해서 말이야. 한 조는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다른 조는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이게 사람 할 짓이냐? 진짜 생각만 해도 거지같네. 진짜 지들이 뭣 좀 되는 줄 알아. 그렇게 시위할 시간 있으면 제대로 된 뭔가를 좀 만들어서 내놓든가. 머리 합쳐서 한다는 게 고작 시위질이야? 머리가 다 텅 비어있나."

 "너 진짜 동원령 내려지면 힘들겠다."

 "힘들기보다는 아주 거지같겠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바하르가 툴툴거렸다. 바하르의 반응이 많이 의외이지만 이해가 간다. 하루 12시간씩 근무 들어가면 개인 생활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겠네. 그런다고 돈을 더 주는 것도 아니라고 하니 짜증 엄청 나겠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바하르는 확실히 시위 따위로 절대 바뀔 리가 없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이러다가 정부가 작정하고 진압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다 진짜 무슨 일 터지는 거 아니야?


 "야, 치롤라 보이면 잘 설득해봐. 이거 괜히 객기로 나설 일 아니야. 진짜 심각하다구."


 바하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이 정말 안 좋다. 내 예상보다 일이 더 안 좋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학교쪽은 아예 가보지 않아서 시위가 얼마나 크게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른다. 바하르와 이야기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도 시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시위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음이 느껴졌다. 바하르와 시위 이야기를 해서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이 느낌이 맞는 것일까? 괜히 바하르와 시위 이야기를 하면서 시위 상황에 관심이 생겨서 그렇게 상황이 진행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닐까? 바하르 말대로 정부가 그런 선택을 할 지 모르겠다. 분명히 시위에 저주술사들도 참여하고 있을텐데 순조로운 진압이 가능할까? 저주술사들이 바보도 아닌데 진압하려 들면 저항하겠지. 그보다 그런 극단적 상황이 일어날 것이란 생각이 쉽게 들지 않는다. 지금 내 주변 모든 것이 어제와, 그저께와, 그그저께와 다를 것이 없다. 지금 바뀐 것이라고는 에드자 대학교가 폐교당해서 나와 라키사가 다닐 학교가 없어졌다는 것 뿐이다. 아무 일도 없을 거다. 시위가 언제까지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시위도 일상처럼 변해버리지 않을까. 그러다 흐지부지되고 모든 것은 다 조용해지지 않을까. 아마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 희망일 수도 있고, 내 예상일 수도 있지만 아마 그렇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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