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1장 14화

좀좀이 2017. 8. 13.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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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로 가기 전 달력을 보았다. 오늘은 1115년 6월 23일. 이제 시험이 딱 일주일 남았구나. 심장이 굳어간다. 단단해져서 아래로 떨어져 내릴 것 같다. 일주일. 저 시험이 끝나면 나의 이번 학기도 끝난다. 시험을 치루는 것은 안 두렵다. 그 이후가 두려운 것이지. 지금은 택도 없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매일 수업에 들어가지만, 시험이 끝나면 그 희망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거다. 희망이 사라지고 보지 않으려 애쓰던 현실만 남겠지.


 이렇게 눈을 비비며 아침에 학교를 향해 걸어갈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시험이 끝나면 다음 학기에도 이렇게 아침에 걸어서 학교를 갈 수 있을지 결정이 날 거다. 나도 알아.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이 이제 곧 여기 올 거라고 신호를 보낼 즈음에야 다시 이 시각에 학교를 향해 걸어갈 수 있겠지. 에드자도 겨울에 꽤 추울 텐데 아침 일찍 일어나 거리를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다행일까? 정말로, 만에 하나 기적이 일어나서 시험을 통과하게 된다면...올해 겨울에 맞이할 그 차가운 추위에서 벌벌 떨며 학교로 가는 아침이 즐겁게 느껴질까? 무의미한 상상이지만 궁금하기는 하다.



 역시나 오늘도 교수는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학생들도 나의 존재에 대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익숙해지지 않는 이 고독. 만약 이번 시험을 통과하게 된다면 이 고독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교실에 '없는 학생'에서 '있는 학생'으로 바뀔까? 이런 고민 자체가 무의미하지. 이런 고민은 내가 이 강의실 안에서 모두에게 최소한 있다는 것이 인지되고 있을 때에나 의미있는 고민이니까.


 '시험을 치러 들어가야 할까?'


 수업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아다비아와 약속한 것도 있고, 내년에 이 수업을 또 들으려면 어쨌든 한 번은 들어놓는 것이 더 나으니까. 그러나 시험을 치러 들어간다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대학교의 시험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는 것. 그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낙제는 확정인데? 그렇지만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면 일말의 희망을 내 손으로 꺼트리는 것이다. 시험 답안지를 제출해야 어떻게 기적이 일어나 낙제를 모면하기를 바랄 수라도 있으니까. 진심으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란다면 시험을 치러 들어가는 것이 맞다.


 그래. 시험은 일단 치르고 보자. 이 생각이 아마 맞는 것이겠지. 이렇게 매일 수업에 들어오고 있는 것은 기적이 일어날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잖아. 그런데 시험을 어떻게 치르지? 답안지를 어떻게 작성해야할 지 감이 오지 않는다. 문제는 보나마나 외국어로 나올 거다. 문제를 어떻게 해석한다 치자. 아마 답안지도 외국어로 작성하는 것을 강권할 거다. 아무리 아다비아 덕분에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답안지를 외국어로 작성하는 것은 아직 무리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가 아니다. 지금 당장 기본적인 아드라스어, 대륙공통어 작문도 힘든걸. 그렇다고 답안지에 말 한 마디 없이 모든 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제출할 수도 없잖아. 백지라도 일단 답안지를 내는 것이 나을까? 백지로 답안지를 내는 것이 아예 시험 치르러 들어가지 않는 것보다야 기적이 일어날 확률이 높겠지. 그렇지만 무의미하게 확률이 높아질 거야. 백지 답안지나 미응시나 다를 건 하나도 없으니까.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에서 나와 벤치에 앉았다. 앞으로 일주일. 시험을 치를 거라면 이제부터 시험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시험 준비를 해야 할까? 머리 속이 계속 복잡하다. 오기로라도 시험을 치르러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기는 했지만 백지를 내고 나오는 것은 영 내키지 않는다. 그런데 백지를 내지 않고 무언가 적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타슈갈, 서점 안 가?"

 "응? 아, 이제 가야지."


 라키사가 벤치 앞으로 와서 나를 불렀다. 그래, 일단 서점 돌아가서 계속 생각하자. 라키사가 나를 부른 이유는 라키사가 직접 이야기해주지 않아도 안다.


 "나도 서점 가야 하는데 우리 같이 가자."

 "응. 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라키사는 시험 걱정이 전혀 안 되겠지? 당장 한 시간 후에 시험을 본다고 해도 얘는 만점 짜리 답안지를 작성할 거다. 나는 1년 뒤에 과연 만점 짜리 답안지를 작성할 수 있을까?


 "라키사, 물어볼 것이 있는데..."

 "응? 어떤 거?"


 라키사가 나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이런 것을 물어보기 정말 부끄럽다. 하지만 어떻게 해. 이런 거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이 라키사와 아다비아 뿐인데. 바하르는 친하기는 하지만 내 상황을 잘 모르니 물어볼 수가 없고, 이고는 진지하게 대답해주지 않겠지.


 "이번 시험 말이야...내가 치르는 것이 맞을까?"

 "타슈갈, 일단 최선을 다 해. 그래야 결과를 기다려볼 수 있잖아."

 "그렇겠지?"


 라키사는 시험을 일단 치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진짜 물어보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지. 라키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조금 껄끄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낙제를 당하기 싫다면 일단 물어보아야만 한다.


 "라키사, 내가 답안지를 어떻게 작성해야할까? 너도 알잖아. 나 답안지 작성할 수 없는 거..."


 라키사가 잠시 아무 말 하지 않고 바닥만 쳐다보며 걸어갔다. 라키사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냐. 이건 아무 연장 없이 맨손으로 거대한 바위를 어떻게 조각해야겠냐고 물어보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내가 라키사의 입장이어도 무슨 대답을 해주어야할지 고민할 거다. 내가 라키사에게 이런 질문을 한 것 자체가 나 스스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못 찾았다는 건데, 이 답을 라키사가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쨌든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거니까.


 "욕심을 버려. 그리고 최선을 다 해."

 "그냥 흰 백지 내라구?"


 라키사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지금 내가 욕심을 버리고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거 몰라서 물어보는 줄 아나?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라키사가 다시 아무 말 없이 바닥만 바라보며 걸어갔다. 나도 아무 말 없이 한숨만 내쉬며 걸어갔다. 그렇게 걸어가는데 라키사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너 내 말 듣고 화 안 낼 거지?"

 "응. 무슨 말 하려구?"

 "정말 화 안 내는 거다?"

 "응. 절대 화 안 내! 백지 내라는 말만 아니면 화 절대 안 낼께. 솔직히 백지 내는 건 너무하잖아. 시험치러 아예 안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라키사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보다 고개를 들고 내 눈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타슈갈, 욕심을 버려. 너 어차피 좋은 점수 못 받아."

 "알아. 내가 뭔 수로 좋은 점수를 받아?"

 "응. 너는 절대 좋은 점수 못 받아. 너 지금 고민하는 거 낙제만은 면하자는 것 때문이잖아, 맞지?"

 "응! 정말 낙제만은 면하고 싶어! 낙제 받으면 올 한 해 그냥 다 날리는 거잖아! 낙제 받으면 다음 학기에는 수업 자체를 못 들어갈 건데..."


 내가 정말 두려운 건 바로 이거다. 이번 학기 낙제를 받는 것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이번 학기 낙제를 받으면 다음 학기에는 수업에 아예 들어갈 수가 없다. 이게 문제이고 무서운 거다. 내년 새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아무 것도 못하고 가만히 기다려야 한단 말이다. 단순히 까짓거 나중에 한 번 더 들으면 된다는 문제가 아니다. 올해 1년치 등록금은 다 날아가는 것이고, 추가로 1년치 등록금을 일하면서 또 모아야 한다.


 "그렇다면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어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뭔데?"

 "답안지 작성이 정말 어려우면 마딜어로 작성해."

 "마딜어로?"

 "응. 너는 마딜어로 답안지 작성해서 감점당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잖아."


 라키사는 내게 답안지를 마딜어로 작성하라고 조언해주었다. 답안지를 마딜어로 작성한다면 점수가 엄청나게 크게 감점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 장학금을 노리는 것도 아니고 낙제만 면하는 것이 목표인데 마딜어로 답안지를 작성해서 점수가 크게 감점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최소한 꼴찌를 면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것조차 내게는 큰 욕심이다. 그저 꼴찌로라도 낙제만 모면하면 된다. 그렇다면 라키사 말대로 마딜어로 작성해서 점수가 크게 감점당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지금 배우는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가 상대에게 완벽히 전달될 수 있을지의 여부야. 시험 문제도 이것이 나올 거구. 나는 불가능하다고 답안지를 작성하려고 해."

 "그래? 그러면 나도 불가능하다고 적으면 돼?"

 "오늘 배운 곳에서 훨씬 뒤로 넘어가면 불가능하다고 나와. 지금 우리가 배우는 부분에서는 가능하다는 식으로 언급되고 있지만 말이야."

 "아! 어떻게 불가능하다고 나오는데?"

 "너 단어가 '의미'와 '형식'으로 구성된다는 거 아니?"

 "응! 그거 알아!"

 "우리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을 전달해. 그 형식을 받아들인 청자가 임의적으로 의미를 해석하구. 그래서 완벽한 의미의 전달은 불가능해. 같은 형식이라도 화자와 청자가 그 형식에 연결짓는 의미가 다르면 의미 전달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아."

 "그거 조금 더 설명해줄 수 있어?"


 라키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언가 예시를 들 만한 것이 없나 찾아보는 것 같다. 영 마땅한 것이 안 보였는지 라키사는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너 '나무'라고 하면 어떤 것이 떠올라?"

 "갈색 몸통에 초록 잎사귀..."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볼래? 최대한 구체적으로 말이야."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가 열리고, 이파리는 넓적하고..."

 "응. 좋아. 나는 '나무'라고 하면 키가 크고 이파리가 뾰족한 나무가 떠올라. 그 나무들이 많은 숲에 가면 상쾌하고 시원한 향을 맡아. 가을에는 다람쥐가 열매를 까서 먹어."

 "네가 무슨 나무 말하는지 알겠어!"

 "타슈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야. 내 말 잘 들어봐. 내가 네게 '나무'라고 말하면 너는 잎이 넓적한 나무를 떠올리겠지? 하지만 나는 잎이 뾰족한 나무를 떠올리며 말하는 것이야. 의미 전달이 완벽히 되었니?"

 "아...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하지만 그러면 서로 이야기할 거 아냐?"

 "타슈갈, 더 나가지 마. 딱 그 순간을 보는 거야. 이해돼?"

 "그러니까 너는 잎이 뾰족한 나무를 생각하며 '나무'라고 말했는데 내가 잎이 넓적한 나무를 떠올린 그 순간?"

 "응. 바로 그거야!"


 라키사가 밝은 표정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어려운 문제를 하나 풀어내서 기뻐하는 모습니다.


 "그러면 네가 방금 이야기해준대로 쓰면 돼? 너도 그렇게 쓸 거야?"

 "나는 보다 이론을 많이 쓰려고 해. 하지만 너는 이론에 대해서는 못 쓰잖아. 거기까지 책을 볼 수 없으니까..."

 "그렇지..."

 "내가 너라면 이런 저런 사례를 최대한 많이 쓸 거야. 그러면 분량은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잖아. 진지하게 생각하고 관찰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라키사, 고마워!"


 라키사가 알려준대로 답안지를 작성해야겠다. 마딜어로 적는 것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사례를 많이 쓰는 것이라면 지금부터 사례를 만들어내면 된다. 이것은 책을 많이 볼 필요도 없다. 답안지 처음에 방금 라키사가 알려준 내용을 간단히 적고, 나머지는 전부 사례로 꽉 채워버릴 것이다. 그러면 어찌 되었든 시험지에 글을 꽉 채워서 쓸 수 있겠지? 이러면 최소한 낙제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라키사가 책을 빌리고 돌아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다비아가 서점으로 왔다.


 "타슈갈, 어서 공부하자! 이제 시험 일주일 밖에 안 남았어!"

 "아다비아, 그런데 내가 낙제 면할 수 있을까?"


 라키사가 알려준 방법대로 하면 낙제를 피할 수 있을까?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아다비아가 똑같이 말해준다면 확신이 생길 거 같다.


 "갑자기 무슨 소리니?"

 "낙제를 피하지 못할 거라면 이번에 굳이 시험을 치를 필요가 있나 싶어서..."

 "너 그러면 시험 안 칠 생각이니?"

 "그건 아닌데..."


 아다비아가 눈에 힘을 주며 나를 응시한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런 표정은 학기초 교수가 나를 혼낼 때 짓던 표정을 떠올리게 한다. 무언가 지독하게 훈계하려고 작정한 표정. 아다비아는 입술을 꽉 다물고 그렇게 나를 응시했다.


 "타슈갈, 나는 네가 낙제는 면할 거라고 믿어. 그런데 네가 그걸 안 믿으면 어떻게 하니?"

 "아...미안해."

 "정신 바짝 차려! 이제 일주일 밖에 안 남았어!"

 "알았어. 열심히 할께."


 아다비아 말이 맞다. 내가 시험치러 들어가지 않는다면 지금까지의 아다비아의 노력에 대놓고 그것은 무의미한 노력이었다고 반박하는 거다. 지금까지 내 공부를 도와준 아다비아의 성의와 노력 때문이라도 일단 시험은 치러 들어가야 한다. 마음을 다잡자. 이건 단순히 내가 낙제를 면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니야. 나 혼자 책 잡고 괴로워한 것이 아니잖아? 아다비아도 지금까지 열심히 내 공부를 보아줬는데.


 "답안지 작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좀 어려워. 나도 그 문제 진지하게 생각해봤거든? 그런데 시험장에서 네가 스스로 답안지를 작성하는 건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아."

 "그렇지...?"


 아다비아의 말은 냉정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걸. 그래도 아다비아가 이렇게 이야기하니 마음이 조금 아프다. 이건 아다비아 특유의 말투로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아다비아는 뱅뱅 꼬지 않고 정확히 말한 것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구. 그래도 조금은 부드럽고 희망에 찬 말을 해주기를 기대했다. 바랄 걸 바라자. 내가 아다비아여도 그런 말을 하기는 정말 어려울 거다.


 "내가 네가 낙제를 면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생각해 봤는데...문제에 신경쓰지 말고 네가 아는 모든 것을 아드라스어나 대륙공통어로 적는 게 낫지 않을까?"

 "응? 문제에 신경쓰지 말라구?"

 "응. 문제는 아마 아드라스어나 대륙공통어로 나올텐데 너 그거 해석할 수 있니? 그리고 문제를 해석했다고 해도 거기에 맞는 답을 쓰기도 어렵잖아."


 아다비아의 말이 맞다. 내가 문제를 해석을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설령 문제를 제대로 해석했다고 치자. 그에 대한 답변은 어떻게 적지? 답변을 적는 것도 문제다. 사실 이것이 더욱 큰 문제이기도 하구.


 "타슈갈, 네가 답안지를 미리 작성하면 내가 봐줄께. 지금 교수님은 네가 공부를 안 해서 화난 게 아니잖아. 네가 대륙공통어와 아드라스어를 너무 못해서 화가 난 거지. 그러니까 네가 대륙공통어와 아드라스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아...알았어. 고마워."

 "지금 우리가 배우는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가 상대에게 똑바로 전달되는 방법이야. 전에 단어가 의미와 형식으로 구성된다고 한 거 기억나?"

 "응. 그거 기억하고 있어."

 "그것을 마딜어로 잘 적어봐. 내가 아드라스어로 번역하는 것 도와줄께. 그러니까 포기하지 마!"

 "알았어! 아다비아, 정말 고마워!"


 아다비아에게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하자 아다비아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다비아가 살짝 웃으며 한 마디 했다.


 "고마운 줄 알면 포기하지 말라구. 타슈갈, 마지막까지 힘내. 내가 계속 도와주잖아."



 아다비아가 돌아간 후 고민이 시작되었다. 라키사는 의미 전달이 완벽히 될 수 없다고 쓰라고 했다. 그것도 마딜어로. 아다비아는 의미 전달이 완벽히 될 수 있다고 아드라스어로 쓰라고 했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할까? 둘 다 너무 맞는 말이라 누구의 말을 들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이고, 답안지 작성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뭔 답안지 작성?"


 이고가 갑자기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냐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고에게 일단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것이 먼저겠지?


 "이번 시험 말인데, 라키사는 의미가 완벽히 전달될 수 없다고 마딜어로 적으라고 했거든. 그런데 아다비아는 아까 의미가 완벽히 전달될 수 있다고 아드라스어로 적으라고 했어. 누구 말을 듣는 것이 더 좋을 거 같아?"


 이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지금 원하는 게 뭐냐?"

 "나? 원하는 거?"

 "너 지금 낙제만은 피하자는 거 아냐?"

 "응."

 "그러면 뭘 선택하든 달라질 것도 없잖아? 마딜어로 적든 아드라스어로 적든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의미가 통하든 말든은 또 무슨 상관이구? 걔네들 너네 전공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애들이라면서? 그러면 둘 중 누구 것을 따르든 잘만 하면 낙제는 면할 거 아냐."

 "그렇네?"


 이고가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네가 뭘 선택하든 달라질 건 없어. 그런 쓸 데 없는 데에 너무 머리 굴리지 마."

 "무슨 말이야? 이게 얼마나 중요한데?"

 "너는 지금 꼴등은 확정이야. 그건 죽어도 못 피해. 단지 낙제 당하고, 최악의 경우 퇴학까지 가는 것만은 피해보자는 거잖아. 그러면 너 좋은 걸 선택해. 너 지금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는 거지?"

 "응...그래서 지금 너한테 물어보고 있잖아."


 이고가 모처럼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너라면 이런 걸로 머리 안 굴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애가 조언해준 것을 골라서 따를 거야."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어차피 누구 말이든 네가 진심으로 따르면 된다니까? 라키사 것 따라서 낙제 받는다면 아다비아 것 따라갔어도 낙제라는 이야기야. 아다비아 것 따라서 낙제라면 라키사 것 따라갔어도 낙제구. 뭔 말인지 이해돼? 뭘 선택하든 아무 의미 없다니까? 그러니 너 좋아하는 애가 알려준 대로 해."


 뭔가 아닌 거 같은데...그런데 생각해보면 저 말이 맞는 거 같기도 하다.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택한 것을 얼마나 잘 따르느냐가 중요한 것이겠지. 그러므로 선택을 어떻게 할 지는 정 모르겠으면 내가 좋아하는 애가 알려준 것으로 선택하면 된다는 거구.



 일이 끝난 후, 홀로 방바닥에 기대어 책을 펼쳤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까? 라키사? 아다비아? 둘 다 일리는 있다. 이고의 말도 맞다. 나는 지금 위로 올라가기 위해 시험을 치는 것이 아니라 꼴등은 확정이고 퇴학당하지 않기 위해 시험을 합격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공부를 도와준 것은 아다비아다. 아다비아의 말을 따라야할 것 같다.


 하지만...아다비아야말로 말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은 애잖아? 만약 의미 전달이 완벽히 된다면 아다비아가 말 때문에 그렇게 오해를 받고 외톨이가 될 일이 있었을까? 이고 말대로 좋아하는 애의 답을 따르고 싶지만 아다비아나 라키사나 그냥 친한 친구일 뿐이다. 아다비아가 계속 서점에 찾아와 내 공부를 도와주는 것은 많이 고맙지만...어차피 걔가 나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 전공에서 친구가 없고 외로우니 나한테 놀자고 오는 거겠지.


 "라키사 말을 따라야겠다."


 라키사 말을 듣는 것이 나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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