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1장 12화

좀좀이 2017. 8. 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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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슈갈, 이 문장 해석할 수 있어?"


 이거는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다. 꾸준히 공부하다보니 이제 조금씩 책을 읽을 수 있다.


 "단어는 의미와...이건 잘 모르겠어. 단어는 의미와 이것으로 구성된다고 하는 거 같은데."

 "이 단어는 '외형'이라는 뜻이야. 이제 이 문장 이해돼?"

 "글쎄...단어가 의미와 외형으로 구성된다고?"

 "응. 우리가 보고 있는 이것은 '책'이지만 마딜어와 아드라스어 단어는 서로 다르지?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물체를 네가 말할 때 의미는 이 '물체'가 되는 거고, 외형은 네가 발음하는 소리가 되는 거야. 이해되니?"

 "응."

 "너 아드라스어 정말 많이 늘었어!"

 "고마워. 네 덕분에 이 정도까지 할 수 있게 되었어."


 아다비아가 어깨를 으쓱하며 활짝 웃었다.


 "나 정말 대단한 것 같지 않니? 너 같은 구제불능도 여기까지 건져주었잖아. 어때?"


 그래. 이게 아다비아지. 아직까지도 이해가 잘 안 된다. 내 공부를 도와주며 설명해줄 때는 참 말을 예쁘게 하는데 왜 그 외에는 말을 이렇게 이상하게 할까? 마지막 말만 안 했어도 매우 기분좋고 아다비아에 대한 호감이 많이 생겼을텐데. 이러니 애들 도와주고도 욕먹지. 저 이상한 말투 때문에 나랑 친하게 지내게 되었으니 나는 저 말투를 좋아해야 하는 건가?


 "그래. 너 정말 대단해."


 그냥 웃으며 대답해줬다. 자기가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가 보지. 그거 한 마디 해주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고.


 "정말?"


 아다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본다.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내 대답을 기다린다.


 "응. 너 진짜 엄청난 거 같아."

 "너 나중에 다른 말 하면 안 돼?"

 "다른 말 안 해!"


 아다비아가 너무 좋아한다. 그래, 너 잘났다. 이건 진심으로 인정한다. 너 아니었으면 내가 이 문장을 뭔 수로 해석했겠냐. 해석이야 했겠지. 하지만 해석하기 급급해서 이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거다. 간신히 단어만 다 찾은 다음 한참 이 문장을 노려보면서 '이것은 대체 무슨 헛소리를 적어놓은 거야!' 라고 속으로 수십 번 중얼거리고 인상만 박박 쓰다가 결국 포기하고 담배 한 대 태우러 나가버렸을 거다. 나는 정말 구제불능인가 한탄하면서 말이다.


 감비르도 나랑 같이 아다비아에게 같이 공부를 도움받는다면 좋을텐데. 그랬다면 저주술 수련한다는 헛소리는 하지 않았겠지? 아다비아가 왜 나만 도와주고 있는지는 그렇게까지 궁금하지 않다. 나는 매일 학교 끝나면 서점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일하고 있다고 아다비아에게 여러 번 말했다. 반면 감비르는 수업이 끝난 후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도서관을 안 간 것은 확실한데, 교문을 나선 후 바로 집으로 돌아갔는지 거리를 배회하다 돌아갔는지 바하르와 만나서 놀다 집으로 돌아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마 그래서 아다비아가 내게 찾아와서 공부를 알려주기 시작한 거겠지. 나는 서점에 오면 볼 수 있고, 감비르를 보려면 거리를 헤메며 찾으러 다녀야 하니까. 감비르가 도서관에 갔다면 내가 감비르처럼 이상하게 되어버렸을까?


 "앞으로 계속 열심히 해야 해. 알았지? 너 나랑 약속했어?"

 "응. 열심히 할 거야."

 "응! 우리 빨리 다음 문장 보자. 이거 재미있지 않니?"



 그 순간 서점 문이 열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점 문을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내가 일하는 시간이니까. 손님이 없으면 아다비아와 공부해도 크게 상관은 없다. 정확히는 이고가 그렇게라도 공부해서 제발 퇴학은 당하지 말라고 했다. 손님 없을 때 설렁설렁 일하면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아다비아 왔을 때 공부만 하고 아다비아 돌아가면 그때 집중해서 일 후다닥 해치우라고 시켰다. 물론 당연히 손님이 오면 일해야 한다. 손님이 왔다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손님이 왔는데 손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다비아와 공부하고 있으면 손님이 좋게 보지는 않을 거다.


 "라키사!"

 "라키사, 안녕!"


 서점에 들어온 사람은 라키사였다. 가방이 무거워 보이는 것이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 서점을 들렸나 보다.


 "너희 둘 정말 사귀어?"

 "아니야."

 "아니. 전에 우리 안 사귄다고 말했잖아."


 아다비아가 라키사에게 나와 자기가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똑바로 이야기했다.


 "미안해. 너희 둘 매우 사이좋아 보여서 물어봤어."

 "괜찮아. 얘 공부 봐주고 있던 중이었어. 타슈갈 나 때문에 아드라스어 실력 매우 좋아졌어! 얘도 인정했다니까? 그렇지, 타슈갈?"

 "응. 맞아. 아다비아가 서점에 와서 공부 도와줘서 도움 엄청 되었어."

 "그래?"


 라키사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내게 다가와 책을 건네주었다.


 "이거 반납하려고 왔어."

 "그거 재미있는 책이야?"


 아다비아가 나 대신 라키사로부터 책을 받았다.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표지에 적힌 제목을 읽어본다. 그 표정은 오래 가지 못했다.


 "너 이런 거 읽니? 저주술 수련해?"

 "아니. 외국어로 된 책만 보아서 마딜어로 된 거 읽고 싶어서 빌렸어."


 라키사의 말에 아다비아가 '그러면 그렇지, 어떻게 너 같은 애가 이런 것 따위를 읽겠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다비아는 흥미로워하며 책장을 넘겨보았다. 아다비아는 책 그 자체가 흥미로운 것이 아닐 거다. 라키사가 읽었다고 하니 어떤 책인지 궁금해서 보는 것일 거다.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아다비아는 눈살을 한 번씩 찌푸렸다. 점점 책장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아다비아, 너도 그 책에 불만이 참 많구나. 이해한다. 나도 그 책 보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며 어이없어했으니까.


 "감비르는 어떻게 지내?"


 라키사가 내게 물어보았다.


 "감비르 며칠 전에 서점에 오기는 했는데...뭔가 좀 이상해."

 "걔 어떤데? 어떻게 지낸대?"


 아다비아가 책을 덮고 내쪽으로 바짝 다가와서 나를 쳐다보았다.


 "걔 아무래도 올해 포기한 거 같아. 학교 안 나올 거고, 혼자 외국어 공부하고 저주술 수련할 거래. 저주술로 전공 바꿀까 진지하게 고민중이라던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가 봤을 때 그건 절대 불가능할 거 같은데..."


 아다비아와 라키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라키사, 너는 감비르가 저주술 수련한다고 저주술 쓸 수 있게 될 거 같니?"

 "글쎄...가능하지 않을까? 올해 반년 수련한다고 되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꾸준히 하다보면 몇 년 후에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


 아다비아는 라키사의 대답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건 타고나는 거야. 걔가 저주술 쓸 수 있었다면 벌써 쓸 수 있었을 껄? 내 생각에 걔는 절대 저주술 못 써. 그 노력으로 아드라스어랑 대륙공통어나 공부하지. 타슈갈, 그렇지?"


 아다비아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어보았다. 그 순간 나는 봤다. 라키사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풀어졌다. 그 표정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네 생각과 전혀 달라. 걔가 정말로 노력한다면 저주술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너랑 이런 문제로 다투기 싫어. 그러니 아무 말 하지 않을 거야.' 이거 참 난처하다. 이 상황을 빠져나가려고 아다비아의 질문에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면 아다비아가 화를 내겠지. 그렇다고 아다비아 편을 들어서 절대 못 쓸 거라고 대답하면 라키사가 기분이 상하겠지. 망할 감비르. 이놈은 왜 쓸 데 없이 저주술을 수련한다고 난리인 거야? 아, 그거 내가 얘네들에게 말해줬지? 내가 잘못했네.


 "내 생각에는...사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나 저주술을 쓸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아. 그런데 모르겠어. 진짜 기적이 일어나서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잖아. 어쩌면 감비르가 진짜 소질이 있는데 여태 자각 못했을 수도 있구. 나도 감비르가 쓸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지만 기적이 일어나면...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적?"

 "응. 기적이 일어나면. 꽤 큰 기적이어야겠지만 말야."

 "네가 나와 라키사를 만난 것처럼? 그렇지, 라키사?"


 라키사가 아다비아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응'이라고 대답했다. 라키사는 아다비아가 사용하는 '아다비아 말투'를 알아듣는 거겠지? 라키사와 아다비아가 친하기는 한데, 볼 때마다 매우 신기하다. 라키사라고 해서 아다비아 특유의 말투에 기분이 안 상할 리는 없을텐데. 그렇다고 둘이 딱히 사이좋게 지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구. 라키사와 아다비아는 셀베티아어 전공에서 공부를 제일 잘 하는 두 명이다. 공부에서 남의 도움이 전혀 필요없고 도움 받을 수도 없는 독보적인 1,2등이다. 그래서 둘이 더욱 잘 어울려서 노는 건가? 어지간해서는 아다비아의 저 말투에 전혀 적응 못 할텐데. 라키사가 딱히 평판에 의식하는 애는 아닌 거 같고 말이다.


 "너희 뭐 공부하고 있었어?"

 "이거."


 라키사가 나와 아다비아가 무엇을 공부하고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라키사에게 책을 보여주었다. 라키사는 책을 받아들고 거꾸로 쭉 넘겨보았다.


 "너 앞에는 다 보았어?"

 "아니. 아다비아가 알려준 부분 앞부분은 잘 몰라."

 "알았어."


 라키사는 내게 책을 돌려주고는 또 마딜어로 된 책이 꽂혀 있는 책장으로 갔다. 한참을 책을 꺼내 펼쳐보고 집어넣기를 반복하더니 한 권을 골라서 들고왔다.


 "이 책 무슨 책이야?"

 "저주술...마딜어로 된 책이 이런 거 밖에 없잖아."


 아다비아가 순간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인상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그래. 나도 공부하다 피곤하면 마딜어로 된 거 읽고 싶은데 읽을 게 없어."


 라키사는 책을 빌리고 서점에서 나갔다.



 "우리 이제 다시 책 보자!"

 "응."


 라키사 아까 기분 꽤 상한 거 같던데. 아다비아는 못 느끼고 있는 건가? 아다비아 표정을 보면 아다비아는 라키사 기분을 전혀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아는데 일부러 그러는 건가? 그건 아닐 거야. 설마 기분 상한 거 알면서 그랬겠어. 그러면 아다비아도 제 정상이 아닌 거지.


 "내일 사과해야지..."

 "응? 뭐?"

 "아니야. 어서 책 보자."


 아다비아가 한숨을 내쉬며 내일 사과해야겠다고 중얼거렸다. 내가 뭐냐고 물어보자 바로 아니라고 하면서 어서 책을 보자고 말을 돌렸다. 그러면 그렇지. 아다비아도 자기가 라키사에게 말 심하게 한 거 모를 리가 없다. 아다비아는 정신 자체가 삐딱한 것이 아니라 말하려는 것이 꼭 뱅뱅 꼬여서 튀어나오는 애니까. 아까 자기가 어떻게 말했고 라키사의 반응이 어땠는지 알면 자기도 미안하겠지. 얼마 전 일을 떠올려보면 더욱 이해가 간다. 아다비아는 저주술을 영 탐탁치 않아 하는 것 같던데 하필 저주술 이야기에 라키사가 그렇게 이야기했으니 발끈하기까지 했을 거다.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아다비아를 살짝 쳐다보았다. '내가 아까 왜 그랬지'하며 후회하는 표정이다. 모르는 척 하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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