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

[자작 판타지 소설] 기적과 저주 - 1장 06화

좀좀이 2017. 7. 28.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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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오늘 뭐하냐?"

 "나?"

 "응. 오늘 서점 문 닫잖아."

 "글쎄?"


 이고가 며칠 전에 오늘 서점 문을 닫을 거라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딱히 특별한 일이 있어서 문을 닫는 것은 아니고 쉬는 날이라 문을 닫을 거라고 했다. 이고의 말을 들었을 때 쉬는 날이니 잘 되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날 특별히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놓은 것은 없었다. 그런 문제를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수업에서 쫓겨나게 생긴 것 고민하기도 바빴으니까.


 "오늘 서점에 그냥 있으려구. 이따 아다비아도 올텐데."

 "그럴 줄 알고 내가 아다비아한테 미리 이야기해놨어."


 그러면 오늘 정말로 할 게 없네? 서점 안에서 쉬다가 아다비아가 오면 같이 공부하고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할까 생각했다. 아다비아가 내 공부를 도와주고 있으니 언젠가 밥을 한 번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항상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고가 이미 아다비아에게 오늘은 서점 문 닫으니 오지 말라고 했다면 오늘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그동안 부족했던 잠이나 몰아서 잘까?


 "그러면 방 안에서 잠이나 잘래. 할 거 없잖아."

 "너 여기 와서 도시 좀 돌아다녀본 적 있냐?"

 "없어. 여기 오자마자 여기에서 일 시작했잖아."

 "야, 좀 나가라. 맨날 서점에 처박혀있지 말구. 이런 날 아니면 언제 여기 돌아다녀보겠냐?"

 "응? 여기 그다지 돌아다니고 싶지 않은데..."

 "안 돼! 좀 나가! 나가서 에드자 좀 둘러보고 와."


 이고가 팔을 잡아끌고 나를 밖으로 끌어내었다. 이고는 서점 문을 걸어잠그고 나를 길거리로 등떠밀었다.


 "나 오늘 만날 사람들 있어서 조금 늦게 들어올 거야. 너도 저녁때까지는 서점 들어오지 마라. 여기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면 나중에 책 수거는 어떻게 제대로 다닐래?"

 "알았어."


 적당히 동네나 한 바퀴 돌면서 산책하고 돌아와 서점 안으로 들어가 쉬려고 했다. 그런데 이고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다. 이고가 지금은 책 수거를 나에게 거의 맡기지 않는다. 내가 에드자를 제대로 잘 돌아다녀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이고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가끔 정말로 책 수거 일이 혼자 감당이 안 될 때에만 서점 주변의 책 수거 일만 부탁하곤 했다. 그나마도 내가 돈 계산 실수한 이후에는 거의 맡기고 있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에드자 돌아보기는 해야겠어.'


 지금이야 여기 온 지 오래되지 않았으니 서점 안에서만 일을 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나 역시 책 수거를 돌아다녀야 할 거다. 책 수거를 하러 돌아다녀야 받는 돈도 더 많아질테구. 내가 생각해도 지금처럼 학교와 서점 사이의 길만 안다면 절대 책 수거 일을 안 맡길 거다. 위치 못 찾아서 밤새 헤매다 자정 즈음 찾아가서 책 수거하러 왔다고 문 두드리면 문 열어줄 사람이 없을 테니까.



 '어디로 가지?'


 막상 서점 밖에 나와서야 깨달았다. 나 여기 정말로 하나도 모르는구나. 어떻게 떠오르는 것이 서점이랑 학교 밖에 없냐. 그 길 위에 있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안 떠오르는 것이 정상이지. 뭐가 있는지 그 자체를 모르는데 떠오를 게 있을 리 없잖아. 고향에서 에드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명한 것이 무엇이 있다고 제대로 들은 적도 거의 없다. 오히려 남아드라스 공화국에 유명한 장소가 어디 있는지를 더 많이 들었지. '에드자 진짜 별 거 없어. 남아드라스 공화국 어디 촌구석만도 못한 거 같아'라는 말만 엄청 들었다.


 햇살은 따스하고 하늘은 맑다. 이렇게 내가 있는 공간이 막연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진 적이 있던가? 분명히 매일 몇 번이고 보고 서 있던 서점 앞인데. 이렇게 익숙한 공간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어디로 가야할 지 감을 못 잡겠다. 어느 방향이든 방향을 잡아서 한 걸음씩 옮겨야 하는데 그 방향이라는 것을 전혀 정하지 못하겠어. 이렇게 무엇을 할 지 몰라 막막한 기분도 참 오랜만이네. 서점에서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서점 안에 앉아는 있는데 무엇을 할 지 몰라 이고가 무언가를 시키기 전까지는 가만히 앉아만 있었지. 시간이 몇 배로 느리게 흘러가 1초가 한쪽 벽에서 맞은 편 벽으로 하나의 완만한 물결을 이루어 흘러가 퉁 치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지금 그대로 다시 느껴진다.


 "그래도 학교 쪽으로는 가지 말자."


 몇 분째 제자리만 돌고 있다. 학교 가는 방향을 제외하고 나머지 방향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런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수레 정거장이나 다시 가봐?"


 에드자에 처음 온 순간이 떠올랐다. 지금 이 생활이 시작된 곳. 거기를 다시 가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일단 갈 곳을 수레 정거장으로 가기로 했다.



 "여기 얼마만이야?"


 수레정거장으로 가는 길. 학교 가는 방향과는 많이 다르다. 일을 시작하고 대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 길을 걸을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지. 에드자 처음 도착한 날이 생각난다. 가장 저렴해보이는 여관을 찾아 무거운 짐을 짊어매고 거리를 헤메었다. 다행히 수레 정거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주 저렴한 여관이 하나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얼굴을 쥐어잡고 패대기치듯 악취가 덮쳐왔다. '여기에서는 도저히 못 자!' 속으로 몇 번을 외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자리가 잡히지 않는다면 숙박비가 생활비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테니까. 만약 일자리를 못 구한다면 좋든 싫든 이 악취투성이에 3층 침대가 빡빡하게 들어찬 숙소에서 장기 계약을 맺고 눌러살아야했다. 짐을 침대에 던져놓고 바로 밖으로 뛰쳐나와 먼지 가득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한숨을 푹 내쉬었지. 그게 벌써 몇 달 전이다.


 "진짜 그 숙소에서 계속 지내야 했다면 코가 썩어버렸을 거야."


 그 숙소에서 3일간 머물렀다. 밤마다 코 고는 소리, 술 취해 들어와 바닥에 토하는 소리와 그 토사물 냄새에 시달려야 했다. 아침이 되면 화장실 앞에 줄이 길게 서 있었고, 세수할 물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우물가로 가서 세수를 하며 이게 뭔 짓인가 싶었지. 그 따위 숙소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래도 3일째 될 때는 그 생활에 나름 어느 정도 적응하기는 했다. 적응을 한 건지 내 코가 병신이 된 건지. 그렇게 3일간 그 최악의 여관에서 지내다 4일째 낮에 서점 일자리를 잡아서 그 여관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



 처음 에드자에 와서 싸구려 여관에서 머물던 때를 생각하며 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수레 정거장 근처까지 왔다.


 '여기는 왜 이렇게 거지들이 많냐.'


 수레 정거장에서 빠져나왔을 때 - 그러니까 내가 에드자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목격한 것은 수많은 거지들이었다. 그때 속으로 '여기는 왜 이렇게 거지들이 많냐'고 중얼거렸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 한 발음조차 틀리지 않고 그대로 중얼거렸다. 수레 정거장에 가까워지자 거지들이 매우 많이 보였다. 저 흐리멍텅한 눈빛. 생기라고는 하나도 없다. 수레 정거장인지 거지들을 부패시키고 풍장시키는 장소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야. 거지들은 모두 그늘 아래에 구더기떼처럼 모여앉아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뿐이다. 저게 눈을 뜨고 있고 숨쉰다고 배가 뿔룩뿔룩 거리니 살아있다고 아는 거지, 눈 감고 배도 안 움직이면 살아있는 건지 죽어있는 건지 분간도 가지 않을 거다.


 곳곳에 등에 칼을 메고 허리에 몽둥이를 찬 경찰들이 보인다. 저 경찰들 때문에 거지들이 얌전히 있는 것이겠지? 그러고보니 며칠 전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본 장면이 떠올랐다. 술 취한 거지가 지나가던 여자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돈을 달라고 보챈 건지 희롱을 해보려 한 건지는 모르겠다. 여자가 도와달라고 소리쳤고, 경찰들이 달려왔다. 경찰들은 술 취한 거지를 보자 거지의 무릎 뒤를 몽둥이로 강하게 때려서 거지를 주저앉혔다. 그 다음에는 무자비하게 몽둥이로 내리치고 발로 걷어차대었다. 자비란 없었다. 거지가 머리를 감싸쥐고 몸을 웅크리며 벌벌 떨든 말든, 피가 나든 흙먼지를 뒤집어쓰든 개 패듯 몽둥이로 사정없이 두들겨팼다. 어느 순간 거지의 웅크린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러자 경찰들은 거지를 질질 잡아끌며 어디론가 갔다. 그 모습은 흡사 거지를 쓰레기 버리듯 버려버리려는 것 같았다.


 아마 여기도 거지들이 행인에게 시비를 걸면 경찰들이 달려와서 그렇게 무자비하게 두들겨패겠지? 그러니 거지들이 얌전히 그늘 아래에서 죽은 것처럼 널부러져 있는 거구.


 어린 거지들이 달려와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무시했다. 이런 곳에서 거지들에게 돈을 함부로 주는 것 아니다. 어린 거지들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행인들에게 돈을 달라고 하지만 모두가 무시한다. 이런 곳에서 함부로 적선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돈을 받은 거지가 다른 거지들에게 저 사람은 돈을 준다고 소문을 내고, 그러면 거지들이 그 사람에게 서로 달려들어 자기들에게도 돈을 달라고 조르기 때문이다. 이때 단순히 구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머니를 털어가려는 놈도 당연히 있구.


 '어째 거지들이 예전보다 더 늘어난 거 같다?'


 처음 수레 정거장 왔을 때보다 거지들이 더 많아보인다. 이 거지들은 대체 어디에서 온 거지들일까? 마딜 공화국이 독립한 이후에 여기저기에서 몰려온 거지들이겠지? 마딜 독립 전쟁 마지막에 키란이 에드자 성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저주술로 죽였다고 하니 그 전부터 있었던 거지들은 아닐테구. 전쟁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야 않겠지. 아무리 거지들 중 신체불구인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말이야.



 수레 정거장 안으로 들어갈까 하다 말았다. 수레 정거장 안에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겠지.


 '생각해보니 수업에서 여학생들은 거의 다 에드자 출신이네?'


 이상할 것은 없다. 수업에 여학생들도 많다. 남학생들은 여러 지역에서 온 학생들인데 여학생들은 거의 다 에드자 출신이다. 에드자 출신이 아닌 여학생이라고는 라키사 정도려나? 집에서 여자들은 먼 도시로 잘 보내지 않는다. 워낙 가는 길이 험하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보통 여자들에게는 적당히 살던 마을에서 계속 살라고 한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는 여학생들이 많았지만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한 학생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남자다. 그리고 에드자로 올라온 사람은 나 혼자이구. 라키사도 에드자에 있는 친척집에서 머무른다고 했지? 그 외에 다른 지역에서 온 여학생들이 몇 있기는 한데 거의 전부 친척집에 신세지고 있다고 했다. 내가 탔던 수레에도, 그리고 내가 수레 정거장에 도착한 그 날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수레 정거장 출구에도 여자라고는 가족들이 올라온 경우 말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자 혼자 올라온 모습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다.



 수레 정거장 출구 근처 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시장 근처로 가니 거지가 아까보다 훨씬 더 많다. 종이 열 두 번 쳤다. 정오다. 거지들이 갑자기 생기를 부여받은 시체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느리게 어기적거리며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거지들 다 어디 가는 거야?'


 거지들이 걸어가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멀찍이서 뒤따라가봐야겠다. 거지와 거리를 상당히 많이 유지하며 천천히 따라가보았다. 빵을 싣고 온 수레가 보였다. 경찰 두 명이 수레를 호위하고 있다. 수레 위에서 빵을 거지들에게 던져주다시피 하며 나누어준다. 예상 외로 거지들이 수레 근처에서는 줄을 잘 서고 있다. 아마 경찰 때문일 거다. 수레 근처에 우루루 몰려오면 경찰들이 몽둥이로 사정없이 두들겨대겠지. 아마 그 과정을 수 년간 반복해서 거지들의 머리 속에 확실히 각인시켜놓은 것일 거야. 안 그러면 이렇게 이 거지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빵을 받아갈 리가 없지.


 저 빵은 저녁에 빵집을 돌아다니며 남은 빵을 수거해서 나누어주는 것이다. 우리들은 적선을 하면 나중에 몇 배로 돌려받을 수 있다고 믿으니까. 이 생애에서 돌려받지 못한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사후세계에 몇 배로 되어 쌓여 있을 거라 믿는다. 아무리 그래도 거지 아이들에게 돈을 함부로 주는 것은 위험하다. 게다가 나는 미래의 빵을 위해 지금 당장 굶을 수도 없다. 미래의 빵, 사후세계의 빵을 저축하는 것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생각해볼 거다.



 주변을 둘러보며 계속 걸어갔다. 키란 동상이 나왔다.


 "뭐야? 이거 인파사에 있는 거랑 비슷하잖아?"


 에드자에 키란 동상이 있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어보았다. 우리 나라에 키란 동상이 없는 도시가 어디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에드자에 있는 키란 동상은 뭔가 크게 특별할 줄 알았는데 크기가 크다는 것 말고는 내 고향 인파사에서 보던 동상과 그렇게 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다. 크기는 인파사에 있는 것보다 2배는 되어 보였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저 뻣뻣한 차렷 자세 말고 다른 자세로 세우면 안 되나? 크게 만들려고 하다보니 저런 자세 밖에 안 나오는 걸까? 뻣뻣한 차렷 자세로 먼 곳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 참 어색하다. 진짜 키란이 저런 자세를 하고 서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무슨 순간 포착도 아니구.

 

 키란 동상에는 참배객이 많을 줄 알았다. 하지만 꽃이 몇 송이 놓여있을 뿐, 참배객은 보이지 않았다. 동상 앞에 놓인 꽃은 인파사에 있는 키란 동상 앞에 놓인 꽃보다 훨씬 적었다. 내 고향에서 키란은 우리나라를 악마 같은 우르간 대제국의 마수에서 해방시킨 영웅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의미가 조금 다르려나?


 키란이 에드자 전투에서 에드자 성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다 증발시켜버리면서 전쟁이 끝났다. 학교에서 배우고 책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그 당시 에드자를 점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고 한다. 우르간 대제국군의 최정예가,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병력이 몇 년을 버틸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해방군 측에서도 빨라야 1년이 걸리지 않을까 예상했을 정도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키란이 자신의 생명을 이용해 저주술을 시전해 성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다 증발시켜버렸고, 이 사건으로 인해 우르간 대제국이 항복하고 마딜 땅에서 물러났다고 했다.


 우리야 전쟁이 끝나고 독립했으니 좋기는 하지만, 에드자에 살던 사람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 사람들이야 다 죽었으니 그렇다 치고, 에드자에 친인척이 있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래서 여기는 이렇게 동상 앞에 꽃도 적고 참배하러 오는 사람도 별로 없는 걸까?


 "어? 타슈갈! 네가 여기 왠일이야?"

 "응? 라키사! 너야말로 여기 왜 왔어?"


 누가 나를 불러서 쳐다보니 라키사다. 라키사는 싱싱한 꽃다발을 들고 있다.


 "나는 키란 동상 참배하러 왔어. 너도 참배하러 왔니?"

 "아니. 오늘 모처럼 쉬는 날이라 걷다보니 여기로 왔네."

 "그래? 같이 참배할래?"

 "어."


 라키사가 키란 동상 앞에 꽃다발을 놓고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땅에 이마를 대었다. 나도 라키사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혀 땅에 이마를 대었다. 일어나서 동상에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라키사를 바라보았다. 라키사는 두 손을 모아 무언가를 비는 것 같다. 키란 동상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무언가 빌더니 다시 한 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너 진짜 정성을 다해서 참배한다. 고향에 있을 때에도 그렇게 했어?"

 "응."

 "여기 자주 와?"

 "틈틈이 여기 와서 참배하곤 해. 너는?"

 "여기는 오늘이 처음이야. 고향에 있었을 때는 가끔 하곤 했는데."

 "그래? 알았어. 나 이만 갈께. 내일 봐."

 "응. 잘 가."


 라키사는 조용히 어디론가 걸어갔다. 나도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다. 에드자를 전부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이정도면 충분하다. 수레 정거장을 들러 키란 동상까지 왔으니 나름 많이 걸었다. 에드자는 작은 곳이 아니니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또 다른 곳을 가봐야지. 내일 수업에 들어가려면 이제부터 또 책을 봐야 한다. 귀찮은데 내일은 수업 들어가지 말까? 들어가봐야 투명 인간인데.



 시뻘건 저녁 햇살을 맞아가며 서점으로 돌아왔다. 서점 문은 아직도 굳게 잠겨 있었다. 서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서점 문을 닫는 날이니 안에서 다시 잠가야지. 문을 잠그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다. 이고는 아침에 누구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아직도 안 돌아왔다. 블랑쉬블르한테 끌려갔나? 아니면 이고 여자친구라는 루즈카 만나서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나? 그거야 이고 알 바고 내 알 바는 아니지. 아직 아주 어두워지지 않았지만 모처럼 많이 걸으며 돌아다녔더니 피곤하다. 내일 수업은 모르겠다. 오늘은 피곤해서 내일 수업때 배울 것을 미리 보지 못하겠다. 자리에 드러누웠다. 눕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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