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기적과 저주2017. 7. 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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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고, 걔 또 책 반납 안했어."

 "또? 아..."


 이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부러 형을 화나게 하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진짜로 걔가 책을 반납 안 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찾아가서 책과 연체료를 받아와야 한다. 이것은 이고가 하는 일. 나는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내가 걔에게 연체하라고 부탁한 것도 아니고. 하여간 걔가 문제야. 얘는 심심하면 연체야. 얘가 연체할 때마다 이고는 상당히 화가 났다. 이해한다. 책을 빌려갈 때 한두 권 빌려가는 것도 아니고 혼자 대여섯 권 빌려간다. 그리고 꼭 연체를 한다.


 "내가 가?"

 "됐다. 내 일인데."


 이고에게 연체된 책의 대출 카드를 건네주었다. 이고는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오늘 조금 힘들 거야. 받아와야 하는 책만 10권이다. 걔 혼자 6권이다. 그것도 아주 두꺼운 걸로 6권. 얘가 연체를 하는 이유는 확실하다. 자기가 서점으로 들고 오기 무겁거든. 까짓거 1일 연체료 한 번 내면 알아서 수거해가는데 왜 무겁게 들고 와? 분명 이렇게 생각할 거다.


 "오늘 비 안 내리겠지?"

 "이런 날에 비가 왜 와?"

 "그러면 가죽 말고 천 들고 가야겠다."


 이고가 대출 카드를 나무곽에 집어넣어서 외투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진짜 거지같네. 그 또라이는 왜 맨날 연체하고 지랄이야."

 "돈이 남아도나보지."


 연체를 하면 연체료를 내든가 대출 정지를 당하든가 선택해야 한다. 연체료는 대출료의 3배고, 대출 정지는 1권 연체 1일당 10일이다. 얘는 연체를 아주 상습적으로 한다. 연체하는 만큼 연체료도 매우 잘 낸다. 연체료를 내고 다음날 서점 와서 책을 또 몇 권 빌려간다. 그걸 또 연체. 연체료를 군말 없이 잘 내니 주인 아저씨는 매우 좋아하신다. 책 하루 연체하고 연체료로 대출료의 3배를 물어내니 연체료만 잘 낸다면 사람들이 연체해줄 수록 돈은 더 잘 벌린다. 이고만 엄청 힘들 뿐이지.


 "다녀올께. 도서관 잘 보고 있어라. 또 지난 번처럼 계산 틀리지 말구."

 "그거 실수야!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야?"


 이고가 지게를 짊어매었다.


 "아, 거지같네!"


 이고가 책을 회수하러 나가는 것을 배웅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도서관에 아무도 없다. 이 넓고 책만 가득한 공간. 이고가 오늘 기입한 장부를 쭉 읽어보았다. 오늘 책 많이 나가고 들어왔구나. 이고 하루 종일 정신없었겠네. 이런 날 하필 그 인간이 책 반납 안 했으니 화가 제대로 날 만 하다. 피곤에 절어 있을텐데 책 수거 10권. 그것도 하필 걔가 반납하지 않은 두꺼운 6권을 받아와야 한다. 이상하게 걔한테 책을 받으러 가면 꼭 늦게 돌아온다. 대체 뭐 때문에 걔한테 책을 받으러 가면 항상 늦게 돌아오는지 궁금하다.


 "책 정리해야겠네."


 이고가 반납받은 책을 다 정리하지 않았다. 책이 팔려서 빈 자리에는 다른 책을 꽂고 기록해야 한다. 이고한테 내가 책을 수거해온다고 할 걸 그랬나? 책 정리는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오늘도 외국 서적만 다 빠져나갔네!"


 대체 학자란 것들은 뭐하는 거야? 책 좀 마딜어로 번역하면 안 돼?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마딜어로 된 책은 거의 없다. 책 대부분이 대륙공통어나 아드라스어, 셀베티아어로 되어 있다. 마딜어로 된 책은 기껏해야 저주술 관련 서적 정도. 학자들은 연구만 할 것이 아닐 좋은 책 번역도 좀 하면 안 돼? 번역하면 지식이 싹 날아가? 어쨌든 마딜어로 된 책은 거의 없다. 이곳 역시 마찬가지. 사람들이 외국 서적을 주로 찾는데,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읽을 만한 책은 죄다 외국 서적이니까. 물론 그게 진짜 읽을만한 책인지는 몰라. 내가 대륙공통어, 아드라스어, 셀베티아어를 잘 모르니까. 어쨌든 이 언어들로 된 책이 매우 잘 나가고 잘 들어온다. 그리고 이런 책들이 들락날락거릴 때마다 나는 괴로워진다. 제목 읽는 것도 벅차니까.


 제목을 더듬더듬 읽어가며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고가 많이 정리해놓아서 다행이다. 만약 이고가 손놓고 있었다면 정말 지옥이었을 거야.


 '하긴, 그러니 나보다 돈을 많이 받지.'


 일하는 시간만 이고가 나보다 많은 게 아니다. 이고는 여기 일을 총괄한다. 말이 좋아 총괄이지, 직원이 나랑 이고 뿐이다. 내가 학교 가는 시간에는 이고 혼자 가게 일을 다 해야 한다. 여기에, 이고는 책 구입, 파기 여부도 직접 정한다. 최종 결정이야 주인이 하지만 이고가 목록을 작성해서 주인에게 전달한다. 어지간하면 주인이 다 통과시켜준다. 주인도 주인 나름 하는 일이 있기야 하겠지만, 실질적인 운영은 이고가 거의 다 도맡아 한다.


 나와 달리 이고는 외국어를 몇 개 할 줄 안다. 아드라스어는 이고가 남아드라스에서 넘어온 사람이라 당연히 잘 하고, 대륙공통어와 셀베티아어도 조금 하는 거 같다. 이고가 일이 있다고 일주일 서점을 비웠을 때 지옥을 맛보았지. 나는 그 언어들 글자도 잘 못 읽는데 책은 죄다 그 언어로 된 책들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래도 하도 서점에서 그 언어들로 된 책 제목들을 보아서 글자는 잘 읽지만, 그때는 참 힘들었다.


 책장에 책을 한 권씩 꽂아넣었다. 눈이 피곤하다. 아무리 글자들이 눈에 익었다고 해도 책정리할 때는 눈이 너무 힘들다. 책을 전부 책장에 꽂았다. 남은 일을 후다닥 해치웠다. 그런데도 이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역시나 오늘도 늦는구나. 하여간 걔한테 책을 받으러 가면 일찍 돌아오는 날이 없어. 오늘은 얼마나 화가 나서 돌아올 건가? 시간이 늦었으니 손님이 더 올 거 같지는 않고. 그런데 이고가 돌아와야 그 책들 정리하고 오늘 일을 끝내지. 걔가 이고를 어떻게 괴롭히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내가 일하는 시간까지 길어지는 것은 정말 문제다.


 '내가 대신 갈 껄.'


 하지만 이고가 대신 가게 해주지는 않았을 거다. 보나마나 자기 일이니 자기가 가겠다고 했겠지. 이고가 돌아올 때까지 공부나 해야겠다.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책을 펼치자마자 외국어의 공격이 시작된다. 내가 공부하려고 하는 것은 대체 뭐지? 나는 지금 아드라스어를 공부하려고 책을 펼친 것이 아닌데. 더듬더듬 읽어간다. 몇 줄 채 읽지 못해서 내가 공부하는 것은 아드라스어로 바뀌어버렸다. 사전을 뒤적여 단어를 찾았다. 단어를 다 찾았는데도 문장이 해석이 되지 않는다. 막막하다. 이 문장을 무시하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려 했지만, 다음 문장도 마찬가지. 일단 이것을 읽어야 과제도 하고 내일 수업 준비도 할 텐데 읽을 수가 없다. 외국어로 된 책을 사용하는 거? 좋아. 그런데 그러려면 최소한 제대로 된 사전이라도 만들어 달라구!


 '이고한테 물어보아야 하나?'


 순간 이런 기대를 했지만 포기했다. 이고가 돌아온 뒤의 일이야 뻔하지. 투덜거리며 반납받은 책을 정리하고, 서점 일을 마무리한 후, 저녁을 먹고 나서 이고는 바로 잠을 잘 거다. 이고에게 물어보면 보나마나 '네 일은 네가 해'라는 대답이 돌아올 거다.


 에드자 대학교로 진학하기 전, 아드라스어와 대륙공통어를 학교에서 배우기는 했다. 딱히 흥미를 가지지도 않았고, 제대로 잘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대학교 들어와서 보니 그때 열심히 공부했든 안 했든 별 상관 없었다.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수업에서 요구하는 아드라스어와 대륙공통어 수준은 너무 높았다. 내가 고향에서 학교를 다니며 이들 언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해서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내가 고향에서 그나마도 이들 언어들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지만.


 "에휴...이거 대체 어떻게 다 보지?"


 까마득하다. 20쪽을 읽고 요약해야 한다. 요약한 것을 내일 제출하고, 요약한 내용 관련 쪽지시험을 치룰 것이다. 이것을 오늘 어떻게든 봐내야만 한다. 그런데 처음 두 줄에서부터 막혀버렸다. 책을 찢어버리고 불태워버리고 싶다. 이 책이 마딜어로 되어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남들은 원서를 보면서 실력이 는다는데, 나는 왜 원서를 볼 수록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라 반감만 늘어나는 걸까?


 간신히 세 쪽을 읽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문을 바라보았다. 이고였다.


 "걔는 왜 자꾸 바쁜 사람 잡고 쓸 데 없는 소리야!"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책 정리하자."


 이고가 지게를 내려놓았다. 지게로 가서 책을 꺼내 계산대로 들고 왔다. 이고가 주머니에서 돈을 주섬주섬 꺼내서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돈 액수를 맞추어본 후, 장부에 기입하고 책을 자리에 꽂았다. 오늘 일은 이제 다 끝났구나. 청소는 미리 다 해놓았다.


 "밥 먹자."

 "어디에서?"

 "나가서 먹자."

 "응."


 서점 문을 걸어잠그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가 깜깜하다. 사람들이 없다. 이 시각에 문을 열고 장사를 하는 곳이라고는 식당과 술집 밖에 없다. 식당도 웬만한 곳은 다 닫았다.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야식을 먹으러 가는 식당까지 가야한다. 참 조용한 거리. 밤에 조용한 것은 내 고향이나 여기나 똑같다. 마딜 공화국에서 가장 큰 에드자라는데도 밤은 똑같아. 다른 점이라면 에드자에는 밤에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이고는 담배를 뻑뻑 태우며 길을 걸어간다. 오늘도 걔네 집 가서 책 찾아오는 과정에서 화가 꽤 많이 났나보다. 그런데 대체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오늘 걔가 또 뭐라고 했어?"

 "아니. 별 거 없었어."

 "그런데 왜 그렇게 얼굴이 굳어 있어?"

 "너 같으면 저 책들 짊어지고 돌아다니는데 웃음이 나겠냐?"


 뭘 뻔한 걸 물어보냐는 식으로 대답했다. 나한테 말하고 싶지 않은 거라는 거 안다. 이고 대신 몇 번 걔네 집에 가서 책을 받아온 적이 있다. 내가 갈 때는 아무 문제 없었다. 바로 책과 연체료를 주었다. 이상하게 이고가 가면 꼭 걔한테 잡혀 있다가 돌아온단 말이야. 둘이 뭔가 날을 세우고 이야기하고 돌아온 거 같기는 한데 도통 모르겠다.


 식당에 도착했다. 자리가 많다. 피로에 절어보이는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점원이 와서 무엇을 먹겠냐고 물어보았다. 이고는 국수를 주문했다. 나는 수프를 주문했다.


 활기가 없는 식당.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돈을 내고 밖으로 나갔다. 이 식당에 이고와 나 뿐이다.


 "타슈갈, 너 내일 몇 시에 돌아와?"

 "내일은 오전에만 수업 있으니까 오후에는 서점 올 수 있어."

 "아, 그래?"

 "왜? 내일 뭐 있어?"

 "아니. 그냥."

 "일찍 오면 아드라스어 좀 도와줄 수 있어?"

 "한가하면."


 시덥잖고 영혼 없는 대화 몇 마디가 오갔다. 그리고 다시 각자 침묵. 음식이 나왔다. 말이 좋아 수프지 고기가 스쳐간 맹물이다. 이 맹물에 향이 나는 풀떼기 몇 잎 들어가고, 야채 조금 들어있을 뿐. 그래도 고기 기름 먹잖아. 빵을 잘게 찢어서 수프에 집어넣고 불어나기를 기다렸다. 빵이 축 젖자 스푼으로 떠먹기 시작했다. 이거 먹고 돌아가서 과제 해야 하는데...후다닥 먹어치웠다. 이고도 말없이 면을 건져먹고 국물을 들이마셨다.


 "자, 30마르라."


 이고가 철 동전 3개를 꺼내서 내게 주었다. 내가 먹은 것도, 이고가 먹은 것도 30마르라. 아주머니께 60마르라 드리고 식당에서 나왔다. 거리는 아까와 다를 것이 없다. 한없이 조용하고 적막하다. 하늘의 달빛이 쏟아지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고는 내가 계산하는 동안 벌써 밖에 나와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가자."

 "나 이제 불 붙였어."

 "걸어가면서 피워."

 "뭘 걸어가면서 피워. 여기서 다 태우고 가자."

 "에휴. 그러자."


 둘이 말 없이 담배를 태웠다. 담배를 다 태우고 다시 말 없이 서점으로 돌아왔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말하지 않았다.


 서점 문을 열고 입구에 놓아둔 램프를 꺼냈다. 가로등으로 갔다. 불을 램프에 옮겨 붙였다. 램프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램프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펼쳤다. 그동안 이고는 신발을 벗고 옷을 갈아입고는 자기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이고, 나 책 좀 보는 거 도와주면 안 돼?"

 "나중에. 오늘 피곤해."

 "이거 내일까지 해가야 하는데..."

 "나도 그거 안 배워서 몰라."


 내일 아침까지 다 볼 수 있을까? 이런 숙제는 내일 내줄 것이지, 왜 오늘 내준거야! 이고는 이것을 공부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이고에게 안 도와준다고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어쩌다 가끔 이고가 도와줄 때 보면 이고도 이 책을 읽을 때 인상을 박박 쓰곤 했으니까. 지금 이 책 보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면 이고도 잠을 별로 못 잘 거다. 도와준다면 좋겠지만 안 도와준다고 해서 뭐라고 할 수도 없다.


 "이거 낙제하는 거 아냐? 그러면 정말 끔찍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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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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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비밀댓글입니다

    2017.07.03 21:50 [ ADDR : EDIT/ DEL : REPLY ]
  2. 익명

    비밀댓글입니다

    2017.07.05 22:06 [ ADDR : EDIT/ DEL : REPLY ]
    • 조언 너무나 감사해요!!! 앞으로 꾸준히 쓰도록 노력할께요. ^^
      초반부 전개를 빠르게 빼고 싶은데 그러려면 재미없는 설정 늘어놓기 해야 해서 어찌할까 계속 고민중이에요. 기본 인물들도 도입부에 인사 한 번씩은 하러 나오라고 등장시켜줘야하기도 하구요 ㅎㅎ
      지도는...아주 예전에 그렸던 것 가지고 참고해가며 글을 쓰고 있는데 그건 워낙 대충 그려서 올리려면 새로 그려야할 거에요...ㅠㅠ;;

      2017.07.07 02:02 신고 [ ADDR : EDIT/ DEL ]
  3. 연체 ㅋㅋㅋㅋㅋ 헛 ㅋㅋㅋㅋㅋ 찔리네요. 연체 진짜 매번 하고 연체료도 잘 내고 잽싸게 또 빌려가는데... ㅋㅋㅋ
    나중에. 오늘 피곤해. 이거 멘트도 소름돋네요 ㅋㅋㅋㅋㅋㅋ

    2017.07.06 08: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bravebird님께서는 도서관을 살찌우고 계시는군요 ㅋㅋㅋㅋㅋㅋ bravebird님을 소름돋게 한 멘트가 하나 있었다니 기뻐요 ^^

      2017.07.07 02:03 신고 [ ADDR : EDIT/ DEL ]